배수천 배우는 한국무술영화사에 길이 남을 악역배우이다. 가느다란 눈을 치켜 뜨며 상대를 쏘아보다가 폭소라도 터뜨리면 관객들조차 몸서리친다. 주인공은 마지막까지 그에 맞서 죽을 힘으로 싸우는데 만만치는 않다.
그러나 결국 주인공 앞에 무릎을 꿇고 마는데 그의 최후는 또 나름대로 비장미 넘친다. 그를 위한 감독의 배려일 수도 있고 그렇게 몸부림치던 그다운 멋진 연기로 편집당하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그래서 그가 출연한 영화는 재미를 더하고 주인공의 활약은 눈부시다. 배수천 앞에 무릎 꿇은 주인공이 한 차 분량이면 그의 굴복 또한 그만큼의 분량이다. 그래도 그는 오뚜기처럼 당당하게 다음 영화에서 그만의 카리스마로 무장하고 관객앞에 선다.
집의 가족도 몸서리칠 만한 악역배우로 첫손가락 꼽히는데 그의 캐릭터에는 희극적인 요소가 있어 웃음을 유발한다. 잔인하지만 웃음을 유발한다는 것은 이대근 배우도 가지고 있는 희극성을 겸비한 이중적인 요소로 악역에선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그만의 장기이다.
<무장해제>에서 체면불구하고 주인공에게 매달려 잃어버린 자신의 훈장을 돌려달라며 애원하던 장면과 어항 속의 금붕어를 꺼내 아무렇지도 않게 씹어먹던 연기는 두고두고 회자된다.
배수천 배우의 연기를 보면서 일본사람은 꼭 저렇게 생겼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팬들이 있을 정도로 명연기다. 특히 익살맞은 악역이니 그로서는 감독이 주문보다 두 박자는 앞서가며 악역을 소화해내었다. 이 말은 그누구도 흉내내지 못할 악역의 성격을 창출해 보여주었다는 말이다. 한마디로 천하의 악당이면서도 밉지않은 악역배우다
<무장해제>에서 훈장을 강대희에게 빼았기고 홧김에 어항 속에서 금붕어를 맨손으로 잡아 완샷에 커팅없이 질겅질정 씹어먹는 연기는 결코 감독의 주문이 아니었다고 한다. 시키지도 않은 흉물스런 연기로 팬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던 그이다. 그만큼 연기후의 그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을 것이다. 현장에서의 연기는 신들린 듯이 했지만 정작 본인으로서는 썩 유쾌한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한태일 배우가 본 배수천 배우는 천하의 악역 전문배우인 그는 악역에 대해 상당히 불만이 많았다고 한다. 연기자로서 팬들의 기억에 좋게 남았으면 하는 생각을 가질 수는 있겠다 싶지만 그것보다 훨씬 심각하게 자신의 배역에 불만을 가졌다는 이야기이다. 그것은 감독도 미처 모르는 사실일 수도 있다. 연기자라면 한 번 쯤은 도전해보고 싶지만 "너는 타고난 악역배우다" 라며 계속해 그런 역을 맡는 것도 그로서는 큰 고역이었을 것이다. 동료 연기자로 함께 있었던 한 태일 배우가 들려준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아래 사진은 무장해제의 미국판 <장군을 죽여라>의 자켓으로 배수천 배우가 크게 소개되었다.
그는 훗날 영화제작에도 손을 대 1991년 <신팔도사나이>에서 주연을 맡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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