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동성당 5·18 사적지 지정 과정
․ 2005. 2. 24(목)
사목협의회 1차 회의 시 ‘5·18 25주년’을 본당에서는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를 안건으로 상정. 먼저 남동성당을 5·18 사적지로 지정되어야 한다고 모두가 공감.
․ 2005. 3. 2(수)
광주광역시장, 5·18기념재단, 전남대학교 5·18연구소, 사)5·18유족회, 사)5·18 부상자회, 사)5·18유공자회 등 6곳에 남동성당을 5·18사적지로 지정해 달라고 민원 공문 발송.
․ 2005. 3. 10(목)
윤영길 주임 신부님, 김송백 사목회장, 차광애 부회장, 윤광장 복음화 선교위원장 4명, 5·18기념재단을 방문. 차명석 상임이사와 면담. 적극 협조 요청.
․ 2005. 3. 15(화)
오후 2시 조비오 신부님, 윤영길 신부님, 김송백 사목회장, 윤광장 복음화 선교위원장 4명 시청 방문. 시장과 면담. 시장님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재심위원회 소집하도록 선양과장에게 지시함.
․ 2005. 3. 17(목)
10시 시청 5·18 선양과 방문. 선양과장, 기념사업 담당자와 윤광장 면담. 제 문제 협의. 사적지 지정 심의 소위원회 8명 명단 확인. 당일 5·18기념재단 유족회, 부상자회, 유공자회 실무 사무처장들 면담. 재차 협조 요청.
․ 2005. 3. 18(금)
전남대학교 5·18연구소, 5·18 3개 단체에서 시청에 남동성당을 5·18사적지로 지정해 줄 것을 요청한 공문 발송을 확인함. 당일 오후 시청으로부터 본당에 사적지 지정에 따른 제 자료 준비하여 보내줄 것을 요청한 민원 회신(2005. 3. 2 본당에서 민원 제출) 등기로 도착.
․ 2005. 3. 25(금)
1주일 동안 자료 준비하여 선양과로 제출.
․ 2005. 4. 6(수)
선양과에서 7명 재심의 위원(3. 31 윤영규 위원 타계로 7명이 됨)에게 남동성당 5·18사적지 심의 자료 송부하여 회의 없이 선양과 직원이 재심위원 개개인과 면담하여 지정 여부 결정하겠다고 공문 발송.
․ 2005. 4. 13(수)
회의 소집 없이 사적지 결정은 비민주적이다고 문제를 강력 제기. 결국 2005. 4. 16(토) 10:00에 재심위원회 소집을 통지함.
․ 2005. 4. 16(토)
10:00 재심위원회 개최. 본 남동성당 5.18 사적지 지정을 7명 전원 찬성으로 결정함.
- 사적지 지정 경과보고
2005년 2월초 당시 윤영길(사도요한) 주임신부님이 남동성당이 5ㆍ18사적지와 5ㆍ18 기념성당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시고 당시 신자인 윤광장(안드레아, 2009년 5ㆍ18 기념재단 이사장) 형제를 불러 협조를 요청하면서 사적지 지정 문제가 거론되었다. 이때 윤광장 형제는 주임신부님께 ‘교구장님이 지정하는 기념성당이 되려면 시에서 지정하는 사적지 지정이 먼저 되어야 모양도 좋고 쉬울 것이다.’ 라는 얘기를 하였다. 거듭 도움을 요청받은 윤광장 형제는 다시 주임신부님께 ‘사적지 지정에 관한 모든 사항을 위임해 주십시오.’ 하고 말하고, 주임신부님 또한 ‘그렇게 하겠다.’고 하여 윤광장 형제의 주관아래 사적지 지정을 먼저 추진하게 되었다. 사적지가 되면 기념성당이 되기 쉽다는 의미는 사적지가 아니라도 교구장이 기념성당으로 선포하여 기념성당이 되는 것은 쉽지만 역사적, 사회적으로 또한 대외적인 무게감에서 차이가 있는 것을 의미한다.
윤광장 형제는 5ㆍ18 25주기 기념일에 사적지 지정을 목표로 다음날부터 바로 일을 추진하였다. 시청 선양과에 사적지 지정 민원을 제출하고 회신을 기다렸으나, 통상 민원 결과는 10일 안에 회신이 되는데 2월 말이 되어도 회신이 오지 않았다. 그러자 직접 시청 선양과를 방문 선양과 과장과의 만남에서 사적지 지정을 요청하였으나 예산과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지정을 거절하였다. 그리고 사적지 지정 권한은 사적지 심의 위원회에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런 후 공식적인 회신을 받았는데 자료가 부족해 지정이 어렵다는 내용 이였다. 회신을 받고 전남대 5ㆍ18연구소장 최형태 교수와 5ㆍ18관련 3개 단체에 남동성당의 사적지로서의 가치에 대해 설명을 하고 선양과에 협조 공문을 보내줄 것을 요청하였다. 5ㆍ18 연구소등 관련단체에서 사적지 지정에 동의하여 공문이 시청 선양과에 접수되자 윤광장 형제는 직접 자료를 찾아 교구 내 정의평화위원회 사무실을 방문 직접 자료를 찾았다. 자료실을 뒤진 끝에 1981년 5ㆍ18 1주기 추모미사 때 사제단이 발표한 ‘우리의 주장’과 1984년 4주기 추모미사 때 당시 순천 조곡동 주임신부님이셨던 남재희 신부님의 강론 원고, 그리고 교구청에서 소장하고 있던 1980년 5ㆍ18 당시부터 2005년까지의 기록을 첨부 선양과에 심의를 다시 요청, 선양과로부터 심의위원회를 소집 하겠다는 연락을 받았다. 하지만 25주기 5ㆍ18 민중항쟁일 까지 두 달여 밖에 남지 않아 시간이 촉박하였다. 그래서 박광태 광주광역시장을 만나 협의하고자 면담을 요청 하였으나 성사되지 않자, 심의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고 박시장의 정치적후원자 격인 전남대 김동원 교수의 도움을 받아 면담을 성사시켰다.
조비오 신부님, 윤영길 본당 주임신부님, 윤광장(안드레아), 김송백(바오로, 당시 사목협의회장) 형제님이 함께 박시장, 선양국장, 과장을 면담하였다. 조비오 신부님께서 5ㆍ18과 관련 남동성당의 의미를 설명하자 박시장도 이에 적극 동의 하였다. 박시장은 “남동성당이 그런 역사적 사실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사적지가 되지 못한 것은 이해가 안된다. 본인도 정치에 입문하기 전에 해마다 남동성당에서 행사나 미사가 있을 때 참석했는데 아직까지 사적지가 안되었는지 이해가 되지 안된다.” 그러면서 배석한 공무원에게 “시간이 없으니 빨리 심의위원회를 소집하고 일을 처리하라.”라는 시장의 직접 지시에 사적지 지정이 급물살을 타고 일사천리로 추진되기 시작하였다.
4월 중순경 심의위원회가 소집되자 윤광장 형제는 심의위원 가운데 타계한 한 분을 제외한 모든 위원께 전화를 걸어 협조를 부탁하였다. 그러나 위원중 한 목사의 반대에 부딪쳐 일이 더 이상 진전되지 못하였다. 그 목사의 반대 이유는 “남동성당이 사적지가 된다면 제일교회, 한빛교회등 사적지가 될 교회는 많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사실 그곳은 지속적이고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교회들이었다. 최종심의 결정이 있던 날 윤광장 형제는 회의장 앞에서 위원들에게 일일이 인사하며 사적지 지정 결정을 부탁하였다. 회의가 시작되고도 한참 동안 결정이 나지 않았다. 회의 시간이 1시간여 흘렀을 때 심의위원회 위원 만장일치로 남동성당이 5ㆍ18 사적지 25호로 지정이 결정되었다. 사적지가 지정되니 교구장이 지정하는 5ㆍ18 기념성당은 대외적으로 무게감을 가지고 급물살을 타고 진행되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천주교 광주대교구
남동 5.18 기념성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