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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서전
경북 상주군 모서면 갈밭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여 났습니다.
위로 오빠 한 분과 아래 여동생과 함께 공직에 계시는 아버님 어머님 슬하에 삼남매가 남들의 부러움 속에서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입학하러 갈 때 아버지 손잡고 학교에 갔으며 비오면 아버지께서 개울을 업고 건너 주시고 출근길에 제 손을 꼭 잡고 십리나 되는 학교를 데려다 주시곤 했습니다.
그렇게 행복한 시절을 보내다 대동아 전쟁이 발발하고 일본식민지 시절이 되어 학교 다니면서 일본어를 써야 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때는 전시여서 열심히 공부도 못했고 상급 학교 진학도 못했습니다. 8.15해방이 되어 대한 독립만세를 부르며 기뻐했습니다. 길쌈을 해서 의복을 만들고 무엇이든 손이가야 무엇이든 되는 시대였습니다. 열 칠곱 여덟이 되니 혼담이 오고 가고 선을 보러 오더니 아버지께서 가셔서 보시고 결정을 하고 19살에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시댁에서 어려운 시집살이를 살고 있는데 6.25 사변이 일어나 피난을 가야했고 피난 중에 하나뿐인 동생이 병이 나서 오지 못할 길로 떠나보냈습니다. 얼마나 먼 길 이기에 가면 못 오는지 너무도 막내 동생이 가여워 너무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때에는 제가 하느님을 모를 때였고 16세에 어린 나이로 피지 못하고 간 여동생 때문에 너무 슬펐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남편과 시댁 식구들과 다시 만나서 살게 되었고 첫딸이 태어났습니다. 집안에서 살림만 하다가 모회사에 근무하게 되던 중 어떤 자매님의 권유로 하느님 뵙게 되었습니다. 예비자 교리반에서 열심히 교리 배워 영세 받게 되어 대모님도 세워주시어서 부활 주일에 아네스 본명으로 하느님 딸로 탄생하여 주님 은혜 안에서 기쁜 마음 누구도 아사가지 못하는 기쁨으로 딸도 보례시키고 예쁘게 자라고 동생도 태어나고 살다 보니까 좋은 일도 있고 세상 사노라면 이런 저런 일 격어 가면서 사는 것이 인생인가 봐요.
딸이 자라서 학교도 가고 귀엽게 자라고 공부도 열심히 잘 하고 참으로 사는 동안에 좋은 일 궂은일 격고 사는 게 인생이듯 사람 은 내일이라는 희망을 안고 살아가면서 건강 주심 만도 감사할 것뿐이지요. 무엇을 행복, 기쁨도 마음먹을 탓 아이들 건강한 아기 주심 감사드리고 공부도 잘 하고 중학교 가서 2학년 때 글짓기 대회에서 백일장 대회에서 특상을 차지했고 참 귀여운 짓도 해주었고 고등학교도 장학생으로 가고 주님께서 많은 것을 주시여서 아이들 잘 자라 주었고 주님께 감사드릴 분이옵니다.
세월이 흘러 친가 부모님 대전으로 이사 오셔서 반가움과 오래 간만에 만나 뵈옵고 부모형제 담소 나누며 지내던 중 아버지께서 감기몸살이 나서 편찮으셔서 한 삼일 기력이 너무 없으셔서 예감이 돌아가실 것만 같으셔서 아버지께 말씀 드려 천주교 사대교리 말씀 드려 요셉 본명으로 대세 드리고 삼십 분 후 임종하시였으며 성당에서 많은 분 들이 오셔서 연도 드리고 교회 법규대로 장례절차를 드리고 편히 천주교 공원묘지에 잘 모시고 지내든 중 시어머니가 병이 나셔서 두 분 이 사시다가 어머니를 모시고 올 때 아버님 오시자니 안 오실라 하셔서 어머니만 모시고 살던 중 아버님 가끔 다녀가시고 친정어머니 병이 나서 노환이시라 회복하실 가망이 없어 보여서 잘 말씀 드려 근면 하야 마리아 본명으로 데세 드린 후 삼일 만에 임종하시여서 성당에 연락하고 교회 장으로 장례차로 편히 모셔드리고 하느님 품으로 가신 어머니 영원한 안식누리소서
얼마 지난 뒤 시아버님께서 병이 나시여 병원에 모시고가 진찰 결과가 간경화라 가망 없다 시더니 한 일주일 치료와 약도 무효인지라 아버님께 교회 법규를 말씀 드리고 허락하셔서 사대교리로 토마스 본명으로 대세 드리고 선종하시여서 상당에 연락드리고 교회 법규대로 장례절차로 장례미사를 드려주셔서 동내 분들께 큰 빛이 되였으며 아버님 영원한 안식 누리옵소서.
45세
산 사람은 할 일 하고 살아가는 것이 원칙인고로 살면서 생각하면 천년만년 사는 줄 알면서 살다보면 주님께서 영 한번 내리시면 눈 깜박 사이에 가고 다시는 오지 못하고 살 동안 주님 보시기 잘살고 훗날 주님 보시고 착히 자라 살았다고 하시기 원하면서 시어머님 주님 품이 그리워 가실 준비를 잘 말씀드려 교회법 사대교리 말씀으로 마리아 본명으로 몇 칠 후 운명하시고 성당 연락드리고 교회법규대로 장례절차대로 많은 연도와 장례미사연결식후 편히 모셔드려 어머님 미사도 신부님께서 집에 오시어서 드려 주셔서 저는 더 감격
제가 생을 살면서 큰 은혜 두고두고 감사드립니다.
그때는 참 어려운 시대이고 가난한 이웃이 많이 살고 있었고 돌아가신 분 갈 곳이 없어 가족들이 걱정을 면치 못할 때 환자를 잘 권면하여 대세 드려 천주교 공원묘지 안장시키는 일이 여러 차례 여서 천주교회에서 참 좋은 일을 많이 한다고 초상나면 구역장은 맛상제 처럼 손님 안내 하다 보니 갈마동 신자 분 들은 단합도 일등이고 궂은일도 마다않고 내일처럼 보살펴 드렸고 조재구씨 부친이 위독하시다는 연락을 봤고 옥 단장님께 연락을 드리고 방문하니 대세 드리고 가셨다고 하셔서 출근 하였다 돌아오니 임종하시어서 신자들도 상가 돌보아드리고 주님 영광 기리 빛냈으며
50대
또 외롭게 살든 민씨 부인이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고 방문 하였더니 사경을 헤메는데 말을 하기에 물어보니 대세 받기를 원한다기에 사대교리 말씀 드리고 마리아 본명으로 부처 드리니 기뻐하며 아무 걱정이 없다면서 주님께 보내드리고 장례식 날 점심밥 쌀을 모금해 가지고 점심을 대접하였고 신부님께서 영구차 비용을 내주시고 참 은혜로운 일도 많고 갈마 감리교회 신자들이 부러워하였으며 어느 날 아침에 전화가 와서 받으니 울면서 딱한 사정 하소연 하여서 성당에 가서 수녀님께 딱한 사정을 말씀 드리고 그날 복지회가 있는 날이라 의논해 보겠다는 말씀 기다렸더니 월요일 미시 끝에 찾으셔서 같더니 부탁드린 것을 받아 가지고 잘 전달하였고 학생 4명 등록금이었고 미망인 너무너무 감사했으며 주님께서 인간을 통해 역사하고 계시 옴 감사드립니다.
주님 큰 딸이 대학 갈 때 성모여고를 나와서 수녀님께 상의 드리러 간다기에 허락 하였더니 다녀와서 하는 말이 대학교도 가고 수녀원도 가고 싶다는 말씀 드리니 삼년동안 그 뜻을 몰랐다고 수녀님께서 어머니 허락 받으라 하셨다고 말하는데 본인이 원하는 것은 들어 주는 걸로 하락하였으며
그 후 준비해야 하는 것을 해가지고 수녀원에서 생활하면서 대학 다니고 졸업 후 수녀 지원기 모든 절차를 거쳐 서원하고 소임 받고 잘 살다가 좀 아프다고 하기에 가 보았더니 아무 걱정하지 말라고 수년원에 웃어른 계시는데 무얼 걱정 하시느냐고 하던 말 귓전에 쟁쟁 하는 듯 지나간 추억들이 기쁨도 예쁜 일도 많이 주더니 어느 날 깜짝 놀란 일이 주님 감사 합니다. 나이 많아야 가는 곳 인줄 알았더니 젊은 나이에 많은 수고 감사드리며 영원한 수녀 되게 해주심 감사드립니다. 주님 곁에서 영원한 안식 누리게 하소서. 세상 모든 분들 가는 데가 모두 달라 그렇지 누구나 가야 되는 곳 한번 가면 다시 못 오는 곳 영원히 누리는 그곳 세상에 와서 세상 모든 것 보고 누리다 가는 곳 가고 다시는 오지 못하고 살 동안 주님 보시기 잘 살고 먼 훗날 주님 보시고 착히 잘 살았다고 하시기 원하면서 어느 날 밤 찾아온 손님 가정불화 끝에 갈 곳이 없어 찾아온 분 쉬는 교우 자매 몇 달 같이 있으면 성당도 같이 가고 기도도 같이 드리고 하던 중 남편이 와서 데리고 가서 남편 영세시켜 혼배하고 잘 살고 있다고 종종 안부전해오고
86년
어느 날 깜짝 놀란 일이 직장에 출근 한 저에 남편이 병이 나서 병원 갔다는 전화를 받고 가던 중 운명 하셨단 말 너무나 깜짝 서러 참으로 무슨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가신분 말이 무슨 소용 고통 없이 주님께서 부르심 감사드립니다.
직장 모든 처리 아이들과 뒤처리하고 아직도 고우하든 아이들 학업마치고 자라서 출가 시키고 주님은혜로 살아가고 살아가며 가신 분 못하고 간일 까지 열심히 하며 살아가겠으며
65세
저에 앞집 마리아 할머니 며느님이 작은딸이 속 썩이는 말을 하기에 마음을 위로해 드리며 그런 문제를 하느님께 여쭈어드리자고 말씀 드렸더니 이제 그러고 싶다하여 어느 날 갈수 있느냐니까 일요일 이라 하여 일요일 9시 교리에 입교시켜 예비자 교리 후 저에 대녀로 탄생하여 율리아 본명 탄생하였고 몇 년 후 가정을 방문하였더니 아직 남편이 성당에 안 나온 다기에 성당에 나오면 고인 대신 어머니께서 좋아 하시겠느냐는 말에 그 뒷날부터 입교하여 프란치스코로 탄생하여 지금까지 잘 성가정 이루고 딸도 출가해 아들 낳고 잘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나온 날 들 다 주님 감사 드릴뿐 주님 사랑합니다. 또 어느 날 급히 와 달라는 연락을 받고 가니까 아는 말 조카가 병이 나서 아무것도 안 먹어 걱정 된다는 말과 외모 우리 엄마는 내가 아프면 사과도 갈아 주는데 대모는 왜 안해 주느냐는 말에 사랑 보족한 것을 알고 주님께 기도 바친 후 김현이야 빨이 밥 먹고 엄마 아빠 보러 가게 할머니가 먹여 줄게 사랑이 그리운 아기에게 사랑이 약이므로 받다 먹고 잘 놀고 잘 자라서 지금 출가하여 가정도 잘 꾸리고 잘 살고 있습니다.
또 어느 날 빨리 오라는 연락 받고 급히 갔더니 아기 쌍둥이가 앓고 있다기에 가서 기도 바치고 아기들에 사랑으로 안아주고 번갈아 가면서 사랑해 주었더니 아기들이 기분 좋아 노는 것 보고 돌아 왔습니다.
그 아기들이 자라서 3월초에 어린이집 간다는 소식 전화 소식이 왔습니다. 참 사람이 살아가는데 어린이에서 어른에 이르기까지 기분이 좋으면 건강도 좋아지고 세상만사 즐거운 마음으로 살아가면 만사형통인 것 같습니다.
2. 지나간 추억들 일장춘몽처럼 지나 사회 나가 직업가지고 활동하며 살아 간 날들 주님께서 알뜰히 보살펴 주신 은혜로 잘 살았다는 마음가득하고 앞으로도 주님 뜻으로 열심히 살아 갈 것을 결심하면서 지난 세월에 88년도에도 갈마동에서 가장 아파트로 이사 와서 간곳마다 우리 교우 분들과 잘 살며 있다가 아파트 재개발 강제로 용문동으로 이사 가서 이웃 교우 분들과 잘살아가면서
직장에서 보내 주시어 홍콩과 태국을 91년도에 외국 구경도 다녀왔습니다.
저는 그때 비행기도 타 보고 92년도 제주도 가보고 참 좋았다고 넘겼습니다.
시대가 많이 변천하여 일 년에 몇 차례씩 관광을 가는 시대가 국내 관광도 참 새로운 곳에 가보면 산들도 좋은 곳이 많고 바다도 좋고 가보는 곳마다 정말 하느님에 위대하심 감사가 절노 나옵니다.
지난 가을 일박이일코스로 가본 곳도 얼마나 좋았으며 울산 바위에 웅장함과 바다 풍경 진안 마이산에 부부바위 정말 신비롭고요 신기 하였으며 좋은 곳도 많이 보게 해 주심 눈으로 보는 것도 이리 좋아 하는데 하느님 나라는 이 땅에다 비교 하오리가
저는 2004년도 4월 동유럽 5개국 버드내 신자분들과도 다녀왔습니다.
건강 주신 주님께 감사드리는 마음은 끝이 없습니다.
세상 와서 살아오면서 초년에 부모 슬하에서는 귀염둥이로 지내다가 출가 후 무거운 짐 지고 사변과 고난 후 주님의 선택을 받은 후에는 정말로 즐거운 생활로 가볍게 지고 갈 수 있게 해 주시어서 기쁘게 살아갔습니다.
감사드리면서 노년을 기쁘게 잘 살아 갈 것을 마음으로 다짐하면서 잘 살아서 훗일 모든 분들 보기에 좋은 모습을 남기고 하느님께 영광을 돌려드리고 세상 와서 살 동안 많은 것 격고 은혜로운 일도 자녀를 통해 기쁨도 아픔도 격고 아이들 기를 때가 커가는 모습 보며 잘 기르고 싶은 대로 잘 길러서 다 출가시키고 지금은 아이들 잘 사는 모습 보며 행복해 하며 저만 건강하며 잘 살면 아이들에게 걱정 않게 살아가면서 잘 있어주는 것만이 자녀들을 도와주는 거라고 생각하고 가고 싶은 곳도 혼자가고 하는 것도 모두다 아이들 도와주는 것이라 생각 하며 건강관리 잘해가면서 주님말씀 대로 잘 살고
참 쓰다 보니 저는 2000년도 9월 버드내 아파트에 입주하여 버드내 성당 신자로 잘 살고 지금에 도달하였고 저는 69년도 대전 서구 갈마동에 이사 와서 목동 신자로 그 후 괴정동으로 불리 되어 77년도 그 후 지금 이렇도록 열심히 잘 살아 갈 수 있게 보살 펴 주신 주님은혜 감사드리며 생을 잘살다가 주님 곁에 갈 때 주님께서 허락해 주신다면 저에 몸 다 기증하여 필요한 분께 나누어 주고 싶은 마음입니다.
주님 지금까지 잘 살게 보살펴 주신 주님은혜와 본당 신부님 수녀님이하 모든 신자 분들께 다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두서없이 쓴 글이라 모든 분께 보여 드릴 수 있는 것도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