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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그라나다의 알람브라 궁전
세비아에서 그라나다까지는 약 250km이다. 세비야를 출발하니 연변의 평야지대에는 밀과 채소 등을 경작하는 밭과 초원들이 전개되며 간간이 양과 소를 방목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라나다 쪽으로 이동할수록 점차 고원과 산간지대로 들어서며 흙의 색깔도 척박하게 보였다.
그라나다 지역에서는 주요 작물이 올리브나무와 고랭지 채소라 했다. 차창을 통하여 올리브 나무들이 널리 산재해 있는 모습들이 보였다. 올리브는 척박한 땅에 잘 자라는 식물이다. 특별히 손질해줄 필요도 없고 좋은 열매를 골라서 수확하는 작업만이 중요한 기술이다. 그러나 묘목이 완전히 뿌리를 내리는데 15년이 걸린다고 한다. 그래서 묘목은 15년 만에 첫 열매를 맺고, 수령이 30년이 되어야 본격적인 수확을 할 수 있게 된다.
올리브 나무의 수명도 평균 천년이며, 이천년이 넘은 나무들도 있다고 하니 한 번 조성된 올리브 농장은 대대손손으로 이어져야하는 산업이다. 스페인에는 안다루시아 지방을 근간으로 9만㎢(전 국토의 27%)의 올리브 농장이 산재해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 남한의 면적에 상응하는 넓이이다. 그 규모의 광대함을 짐작해 볼만 했다.
우리가 탄 버스가 3시간 반 정도 달려서 그라나다에 도착하였다. 그라나다는 스페인에서 가장 높다는 물라센 산(3,480m) 정상에서 동 서로 뻗어 내린 시에라네바다 산맥을 배경으로 자리를 잡고 있는 도시이다. 국립공원인 물라센 산은 정상이 만년설로 덥혀 있다. 이 눈이 녹으면서 흐르는 다로강을 따라 도시가 발달하였다. 그래서 어느 시인은 그라나다와 알람브라를 ‘다로강에 허리를 감싸인 귀부인’이라고 했다. 이슬람교도의 거점도시로써 오랫동안 번영을 누린 고도이기도 하다.
이슬람교도들이 이루어낸 역사의 숨결과 문화유적들이 산재해 있어 많은 관광객을 불러들인다. 연간 400만 명의 관광객들이 방문한다는 이 도시는 38만 여명의 인구가 상주하는 비교적 큰 도시이다. 다로강의 남쪽 언덕에 알람브라 궁전이 위치하고, 여기에서 북서쪽 언덕에 역사적 보존지역인 알바이신 그리고 북동쪽 언덕에는 집시들의 생활구역인 사크라몬데가 있다. 알람브라 서쪽지역에는 대성당과 왕실예배당을 포함하여 번화한 시가지가 형성되어있었다.
‘그라나다’라는 명칭은 ‘성스러운 언덕‘이란 뜻이다. 13세기에 가톨릭 세력과의 전투에서 패하여 코르도바왕국의 지배권을 빼앗기자 이슬람 왕 유세프가 이곳으로 후퇴하여 그라나다 왕국을 건설하였다. 그라나다는 왕국의 수도로 발전을 거듭하며 이슬람세계의 정치, 경제, 문화 중심지로 군림하였다. 그러나 이 왕국의 마지막 왕인 무함마드 12세는 1492년 1월 2일 카스티야의 이사벨라 여왕과 아라곤의 페르난도 2세에게 항복함으로써 250여 년간 이어온 그라나다의 이슬람 왕국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이로써 711년 지브롤터 해협을 건너와서 이베리아 반도를 점령했던 이슬람세력이 780년 만에 이곳에서 영원히 사라지게 되었다. 그라나다를 떠나 모로코로 망명길에 오른 무함마드 12세는 시에라네바다 산맥을 넘어 가다가 그라나다가 보이는 마지막 언덕위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이 고개 이름이 ‘무어인의 탄식(엘수스피로 델 모로)‘이라 했다. 나라를 잃은 슬픔이 우선이겠지만 낙원 같은 알람브라궁전을 두고 떠나는 마음이 얼마나 아팠겠는가!
그라나다 왕국이 멸망 후 알람브라 궁전은 한동안 방치되어 도둑들의 소굴로 변하였다. 승자의 오만 앞에 패자의 비참한 모습을 알람브라 궁전이 떠안고 있었다. 이 비참한 모습을 안타깝게 여긴 사람들이 있었다. 미국태생의 워싱턴 어빙과 스페인 출신인 프란시스코 타래가였다. 워싱턴 어빙은 이곳에 살면서 알람브라 궁전에 대한 이야기와 구전으로 전해오는 이야기를 수집하여 "알람브라의 이야기"라는 책을 펴내었다. 이를 개기로 알람브라를 복원해야 한다는 소리가 높아져 오늘과 같은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또 한사람인 프란시스코 타레가는 스페인의 작곡가이면서 뛰어난 기타 연주가였다. 그는 <알람브라 궁전의 추억>이라는 곡을 작곡하여 알람브라 궁전에 헌정하였다. 잔잔히 흐르는 멜로디의 저변에는 아름다운 건축물을 가톨릭교도들에게 내주고 지중해를 건너야 했던 이슬람교도들의 슬픔과 회한이 깔려 있는 듯했다.
그라나다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단연코 알람브라 궁전이었다. ‘알람브라’는 아랍어로 ‘붉은 성’이란 뜻이다. 이것은 성곽을 쌓는데 사용된 석벽이 철을 많이 포함하여 붉은 색을 띠기 때문이다. 원래는 무어인 병사들의 방어용으로 지은 성채였는데 13세기 전반부터 보수하고 확장에 들어가 14세기 후반 유세프 1세와 그 아들인 무하메드 5세 치세에 이르러 오늘의 모습으로 완성되었다. 궁전은 이슬람교, 유대교, 기독교 건축 양식이 한데 결합된 이른바 무데하르 양식으로 지어졌다. 유럽의 다른 궁전들처럼 웅장하거나 보석이나 그림 등으로 화려함을 뽐내는 것과는 다른 모습이다. 우상숭배를 금지한 이슬람의 율법에 따라 내부 장식을 식물과 기하학적인 디자인으로만 구성하였기 때문에 소박하지만 환상적인 모습이 특징이다.
이슬람사원에는 반드시 뜰이 있고, 뜰에는 나무를 심고 물을 끌어들인다. 그리고 이것들을 통하여 자연과 조화를 이루려한다고 한다. 알람브라의 궁전도 소박하고 단아한 모습의 건물과 나무와 수로로 잘 가꾸어진 정원이 잘 어울리는 듯하였다. 궁전 전체가 아름답고 신비로운 정원처럼 느껴졌다.
알람브라는 크게 왕이 정치를 하던 왕궁과 카를로스 5세 궁전, 성채인 알카사바, 여름별궁인 헤네랄리패 등 4개 구역으로 나눠져 있다. 왕궁 내에는 아라야네스 정원, 맞추카 정원, 코마레스 정원 그리고 라이온 정원 등 작은 정원들로 건묵물들과 조화를 이루었다.
왕궁은 세 개의 궁전 -메수아르 궁전, 코마레스 궁전, 사자의 궁전-으로 이루어져 있다. 처음에 메수아르 궁전이 만들어지고, 남쪽으로 코마레스 궁전이 만들어졌다. 왕의 집무실이었던 메수아르의 방은 벽면과 천장이 온통 아라비아 특유의 기하학적 문양타일과 아라비아 문자가 새겨진 정교한 석회 세공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코마레스 궁의안뜰에는 가운 데 연못이 있는 아라야네스 정원이 있고, 안뜰의 남쪽과 북쪽으로 거실을 만들어 왕족이 거주할 수 있도록 하였다.
무하마드 5세(1362-1391) 때 사자의 궁전을 만들면서 알함브라 궁전의 중심은 자연스럽게 코마레스 궁전에서 사자의 궁전으로 옮겨졌다. 사자의 궁전의 정원에는 물을 뿜는 12마리의 사자가 있다. 가장자리에는 124개의 대리석주로 이루어진 회랑이 있고, 사방으로 네 개의 방이 있었다. 동쪽에 있는 왕의 방은 사자의 궁전에서 가장 좋은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것은 방 앞쪽으로 사자의 분수가 있고, 방 뒤쪽으로 엘 파르탈 정원이 넓게 펼쳐져 있기 때문이다. 이 방은 왕이 사교와 휴식을 위한 공간이었다. 넓은 로비가 앞에 있고, 그 뒤로 4각형의 방이 세 개, 작은 응접실이 두 개 있다. 왕의 방에서 엘 파르탈 정원으로 나가다 북쪽으로 보면 다로강과 강 너머 알바이신언덕이 한 눈에 들어왔다.
카룰로스 5세궁전은 신성로마황제가 된 에스파냐 왕 카를로스 5세의 명으로 건축되었다. 르네상스 양식으로 지어졌는데, 당시로서는 상당히 전위적인 양식이었다. 궁전 입구의 벽면 장식을 통해 매너리즘적 요소도 확인할 수 있다. 건물은 가로, 세로 63m의 정사각형이며, 그 안에 원형의 중정(中庭)을 배치했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카를로스 5세는 이 궁전에 한 번도 살지를 못했다. 그는 정치와 경제 등에서 에스파냐를 부흥시키느라 그라나다를 찾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그의 아들 펠리페 2세도 1561년 톨레도에서 마드리드로 수도를 옮기면서 남쪽으로 내려올 일이 거의 없었다. 이때부터 그라나다는 역사 속에서 점점 잊혀져가는 도시가 되었다.
알카사바는 알함브라 궁전을 지키는 요새였다. 9세기 로마시대의 성채 자리에 무어인이 쌓아 올렸다. 전성기에는 24개의 탑과 군인들 숙소, 창고, 터널에 목욕탕까지 갖추어진 성채였지만 지금은 그 때의 자취만 남아있을 뿐이었다. 성채의 중간 지점에 있는 벨라탑은 전망대이자 종탑으로 알함브라 궁전에서 전망이 가장 좋은 곳이었다. 동쪽으로 왕궁과 카를로스 5세 궁전이 보였고, 서쪽으로는 멀리 시내 중심에 있는 대성당과 왕실예배당도 보였다. 왕실 예배당에는 이사벨여왕 부부와 광녀 후안나 부부의 시신이 안치되어 있다고 했다. 남쪽으로 멀리 시에라네바다 산맥이 보이고, 북쪽 언덕 위 알바이신 지구가 바로 눈앞에 보였다
헤네랄리페는 그라나다 왕국의 여름 별궁이었다. 이곳은 궁전과는 달리 하얀 외벽이 특징이었다. 「자연 그대로」를 강조하는 아랍식 정원의 진수를 보여주는 곳이라고 했다. 「건축가의 정원」이란 뜻의 헤레랄리페는 꽃과 나무 그리고 물이 건물과 절묘하게 어울려 있다. 정원의 안쪽에 있는 아세키아 정원이 있었다. 아세키아란 수로란 뜻이다. 기다란 수로 양옆에 많은 분수를 두고 그곳에서 물줄기가 뿜어져 나와 아치를 그리며 떨어지게 하였다.
사크로몬테는 왕궁 밖에 있는 집시들이 거주지역이다. 작은 동굴들이 보이는데 옛날 집시들이 생활하던 곳이다. 이곳에 집시들이 살게 된 연유는 카톨릭교도들이 그라나다를 탈환할 때 이 지역의 사정을 잘 아는 집시들이 협력이 컸다. 그래서 이 지역을 집시들이 살도록 해주었다. 이 지역에는 타블라오(플라멩코를 공연하는 전문식당)가 모여 있고 관광객들로 붐비는 장소이다.
알바이신은 알람브라 궁전에서 마주 보이는 언덕 일대에 하얀 벽의 집들이 밀집해 있는 마을이다. 알람브라 궁전이 생기기 전에는 이 언덕 위에 그라나다 왕궁이 있었다. 이곳은 그라나다 왕국 시절에는 기품이 높은 이슬람교도들이 살던 주택지였다. 가톨릭교도의 그라나다 탈환전 때 끝까지 저항하는 바람에 흰 벽과 돌길이 피로 물들었다는 비참한 역사의 현장이다. 그라나다에서 가장 오래된 지구로 알람브라 궁전과 함께 1984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록되었다. 원래 성채도시로 설계되었기 때문에 길이 좁고 복잡하다. 지금은 좁은 골목길에는 자갈이 깔려 있고, 길가에는 정원이 갖춰진 저택들이 들어서 있다.
우리는 이 지역에서 집시들이 공연하는 플라멩코를 관람하였다. 플라멩코 공연은 밤에만 있었다. 공연장에서 제공하는 버스를 타고 집시들의 거주 지역으로 들어섰다. 버스에서 내리자 나이 지긋한 안내인이 나와서 공연장까지 안내하면서 거리 곳곳을 보여주었다. 좁은 골목길과 꽃으로 장식된 저택들 그리고 알람브라 궁전의 야경을 잘 조망해 볼 수 있는 언덕을 차례로 보여주었다.
플라멩코 공연장의 입구는 그럴싸했지만 안으로 들어가니 마치 선술집 같은 분위기였다. 마치 동굴에 들어 온 것처럼 천정이 낮고 좁은 공간에는 5,60명 정도의 관람객만으로도 만원이었다. 작은 극장에 무대정도는 갖추어져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왔는데 이외의 모습에 다소 실망이 되었다. 우리 돈으로 8만 원정도의 입장료를 지불하고 관람하기에는 너무 허술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중에 안내 팜푸렛을 통하여 입장료에는 가이드 코미션이 상당액 포함되어 있음을 알았다. 관객들의 호흡과 무대의 열기로 공기 탁하여 1부공연이 끝나고 나자 밖으로 나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플라멩코는 노래와 춤 그리고 기타반주로 구성되었다. 공연장의 마루는 나무판으로 되어있는데 관람석이 곧 무대였다. 먼저 기타 연주자의 리듬에 맞추어 노래를 부르자 댄서가 무대 위에서 춤을 추었다. 가사가 무슨 내용인지 모르지만 애절한 목소리가 가슴을 파고들었다. 곧 박자에 맞추어 발 구르는 소리와 함께 여자 댄서가 등장하였다. 앳된 얼굴의 그녀는 음악에 맞추어 절도 있는 동작으로 비장함을 온 몸으로 표현해 내는 듯 했다. 느렸다가 빠르고 격하게 움직이다가 어느 순간에 멈춰 섰다. 감정이 절정기에 이르렀을 때로 보였다. 이어서 남자 댄서가 등장했다. 그는 춤의 리듬에 맞추어 손뼉과 발의 움직임으로 묘한 율동을 연출 하였다. 발의 움직임에 따라 마루바닥을 굴리는 리듬소리가 관객들의 심장을 고동치게 하는 것 같았다.
플라멩코는 발바닥에서 머리끝까지 몸부림치면서 마음을 표현해내는 전위예술이라 했다. 기타 연주자는 마음에 심금을 울릴 수 있도록 연주하고, 노래하는 소리꾼은 목에서 피가 나도록 노래를 불러야 한다. 그래서 플라멩코는 악보도 교본도 없고, 즉흥적인 감정으로 마음을 표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우리나라의 아리랑 공연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그래도 참고 끝까지 관람한 보람을 느꼈다. 2013년 스페인의 플라멩코가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지만 아리랑은 아직 심의 보류상태라 하니 피곤한 여행객의 발길을 더 무겁게 하는 것 같았다. 1시간 20분 정도의 공연을 끝내고 호텔로 돌아오니 거의 자정이 되었다.
그라나다에서의 짧은 일정은 좀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슬람 문화의 자취를 좀 더 느껴볼 수 있는 기회가 없음을 안타까워하며 여기에서 마음을 접기로 하였다. 다음날은 발렌시아를 향하여 떠나야 했다.
궁의 안뜰 가운 데 연못이 있는 코마레스 궁전
소박하고 단아한 모습의 메수아르 궁전
12마리 사자들 입에서 물을 뿜도록 배치된 사자의 궁전
나무를 심고 물을 끌어들여 자연과의 조화를 꾀한 궁전 정원
아라비아 특유의 기하학적 문양
방 천정의 문양
아라비아 문자가 새겨진 정교한 석회 세공
플라멩코 공연장의 내부 모습
첫댓글 플랴맹코 공연장 구경 잘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최상순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