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증보문헌비고 사진 자료는 천안전씨 시조로 전섭으로 되어있습니다.
② 그러나 잘못 표현된 부분을 바로 잡은 부록(정오표)이 공식적으로 정선전씨의 시조가 전섭임을 밝혔습니다.
③ 최종적으로 증보문헌비고의 입장은 아래와 같이 표현되어 있습니다.
※ 참고로 제 의견은 정선전씨와 천안전씨의 시조는 전섭입니다.
같은 시조를 둔 종중이므로 서로 존중하면서 지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증보문헌비고 제51권 - 제계고 12 부록 씨족 6
◇ 전씨(全氏)
〔하우씨(夏禹氏)의 먼 후손인 왕몽(王蒙)이란 자가 공갑(孔甲)의 난(亂) 때에 유누(劉累)와 함께 조선(朝鮮)으로 도망하였다. 그 후 진한(辰韓)·마한(馬韓) 때에 "초가집에 사는 왕몽이 임금이 되리라."는 동요가 있었다. 왕몽이 이를 듣고 두려워하여 몸을 바닷가에 숨기고, 사람들이 자기를 왕씨로 알까 두려워하여, 왕자(王字) 위에다 사람 인자(人字)를 더하여 성(姓)을 전씨(全氏)로 하니, 여러 세대(世代) 동안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다고 한다.〕
◆ 정선 전씨(旌善全氏)
시조 전섭(全聶)
〔십제 공신(十濟功臣)으로 환성군(歡城君)에 봉해졌다.〕
전섭의 아들 전호익(全虎翼)
〔벼글이 백제(百濟)의 병상(兵相)이었다.〕
전호익의 6세손 전선(全宣)
〔전선(全愃)으로도 쓰며, 정선군(旌善君)에 봉해졌다.
○ 백제(百濟) 다루왕(多婁王) 때에 전호익(全虎翼)의 아들 전반(全槃)이 낭장(郎將)으로 한(漢)나라에 들어가 표기 대장군(驃騎大將軍)이 되었는데, 전반의 5세손 전선(全宣)이 대광 공주(大光公主)의 배신(陪臣)으로서 우리나라에 왔다.〕
전선의 증손 전이민(全而敏)
〔벼슬이 신라(新羅)의 이찬(伊飡)이었다.〕
전이민의 5세손 전의갑(全以甲)
〔벼슬이 고려(高麗)의 태사(太師)였으며, 시호는 충렬공(忠烈公)이다.〕
전이갑의 아우 전의갑(全義甲)
〔벼슬이 산기상시(散騎常侍)였으며, 시호는 충강공(忠康公)이다.〕
전선의 후손 전승택(全承澤)
〔벼슬이 첨의 정승(僉議政丞)이었다.〕
전승택의 아들 전연(全演)
〔벼슬이 평장사(平章事)였으며, 시호는 문경공(文敬公)이다.〕
전이갑의 아들 전보인(全輔仁)
〔벼슬이 좌복야(左僕射)였으며, 시호는 문경공(文敬公)이다.〕
전보인의 손자 전함정(全咸正)
〔벼슬이 판도판서(版圖判書)였으며, 시호는 공의공(恭毅公)이다.〕
전함정의 5세손 전존걸(全存傑)
〔벼슬이 대장군(大將軍)이었다.〕
전존걸의 아들 전수룡(全守龍)
〔벼슬이 도순사(都巡使)였다.〕
전수송(全守松)
〔벼슬이 호부 상서(戶部尙書)였다.〕
전수룡의 아들 전의(全懿)
〔벼슬이 찬성사(贊成事)였으며, 시호는 위열공(威烈公)이다.〕
전여(全輿)
〔벼슬이 판전교시사(判典校寺事)였다.〕
전흥(全興)
〔성산군(星山君)에 봉해졌다.〕
전익(全翼)
〔황간군(黃澗君)에 봉해졌다.〕
전의의 증손 전영보(全英甫)
〔벼슬이 좌복야(左僕射)였으며, 도원군(桃源君)에 봉해졌다.〕
전영보의 아들 전윤장(全允藏)
〔벼슬이 평장사(平章事)였으며, 석릉군(石陵君)에 봉하여졌다.〕
전의의 손자 전방숙(全邦淑)
〔벼슬이 평장사(平章事)였으며, 시호는 문정공(文貞公)이다.〕
전함정의 7세손 전보문(全普門)
〔벼슬이 판삼사사(判三司事)였으며, 시호는 안경공(安敬公)이다.〕
전보문의 아들 전우화(全遇和)
〔벼슬이 어사 대부(御史大夫)였다.〕
전우화의 아들 전분(全賁)
〔벼슬이 전서(典書)였으며, 시호는 평간공(平簡公)이다.〕
전분의 아들 전오륜(全五倫)
〔벼슬이 산기상시(散騎常侍)였으며, 서원(書院)에 배향되었다.〕
전오기(全五紀)
〔벼슬이 전법 판서(典法判書)였다.〕
전보인의 13세손 전언(全彦)
〔감천군(甘泉君)에 봉해졌다.〕
전여의 현손 전집(全潗)
〔완산군(完山君)에 봉해졌다.〕
전보인의 12세손 전이도(全以道)
〔벼슬이 판전농시사(判典農寺事)였다.〕
전여의 현손 전경(全卿)
〔나성군(羅城君)에 봉해졌다.〕
전윤장의 증손 전신(全信)
〔벼슬이 제학(提學)이었다.〕
전신의 9세손 전용(全龍)
〔공신으로 석릉군(石陵君)에 봉해졌다.〕
전오륜의 손자 전유은(全由恩)
〔벼슬이 형조 판서(刑曹判書)였다.〕
전효우(全孝宇)
〔문과 출신으로 벼슬이 한림(翰林)이었다.〕
전효원(全孝源)
〔문과 출신으로 벼슬이 직제학(直提學)이었다.〕
전오기의 후손 전목(全穆)
〔문과 출신으로 벼슬이 한성윤(漢城尹)이었다.〕
전충효(全忠孝)
〔진사(進士)로서, 한 파(派)를 이루었다.〕
전민행(全敏行)
〔벼슬이 훈도(訓導)였으며, 한 파를 이루었다.〕
◆ 천안 전씨(天安全氏)
시조 전종도(全宗道)
〔벼슬이 정승(政丞)이었다. ○ 전이민(全而敏)의 현손이다.〕
전종도의 아들 전악(全樂)
〔벼슬이 좌복야(左僕射)였으며, 시호는 충달공(忠達公)이다.〕
전악의 아들 전홍술(全洪述)
〔영산군(寧山君)에 봉해졌으며, 시호는 무강공(武康公)이다.〕
전홍술의 아들 전충우(全忠佑)
〔벼슬이 시중(侍中)이었고, 환계군(歡溪君)에 봉해졌으며, 시호는 충숙공(忠肅公)이다.〕
전충우의 아들 전세주(全世柱)
〔벼슬이 소경(少卿)이었고, 천성군(天城君)에 봉해졌으며, 시호는 문정공(文靖公)이다.〕
전세주의 아들 전인량(全仁亮)
〔벼슬이 좌정승(左政丞)이었고, 천양군(天陽君)에 봉해졌으며, 시호는 무절공(武節公)이다.〕
전인량의 아들 전조(全朝)
〔벼슬이 판공부사(判工部事)이었다.〕
전승(全昇)
〔영평군(寧平君)에 봉해졌으며, 시호는 문충공(文忠公)이다.〕
전참(全旵)
〔벼슬이 시중(侍中)이었다.〕
전조의 아들 전익(全翊)
〔문과 출신으로 벼슬이 제학(提學)이었다.〕
전익의 아우 전여(全呂)
〔벼슬이 정당 문학(政堂文學)이었고, 도평군(兜平君)에 봉해졌으며, 시호는 강숙공(康肅公)이다.〕
전익의 아들 전영좌(全永佐)
〔벼슬이 전라 감사(全羅監司)이었다.〕
전영좌의 7세손 전상의(全尙毅)
〔무과 출신으로 벼슬이 부사(府使)였으며, 서원(書院)에 배향되었다.〕
전여의 손자 전문식(全文軾)
〔벼슬이 형조 판서(刑曹判書)이었으며, 시호는 문평공(文平公)이다.〕
전승의 아들 전신(全信)
〔벼슬이 동지밀직사사(同知密直司使)였으며, 시호는 문효공(文孝公)인데, 서원(書院)에 배향되었다.〕
전신의 아들 전희안(全希安)
〔벼슬이 공부 상서(工部尙書)였다.〕
전문식의 9세손 전동흘(全東屹)
〔무과 출신으로 벼슬이 훈련 대장(訓鍊大將)이었다.〕
전문식의 후손 전덕린(全德麟)
〔벼슬이 판관(判官)이었으며, 서원(書院)에 배향되었다.〕
전근(全瑾)
〔벼슬이 진도 군수(珍島郡守)였으며, 한 파(派)를 이루었다.〕
전부(全符)
〔벼슬이 감찰(監察)이었으며, 한 파를 이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