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몇년전 ER 20년 사를 준비하며
한별이가 부탁해서 써 둔 글입니다.
지난주 14년 만에 토왕을 다시 다녀 왔습니다..
이제는 후련하며 시원섭섭하네요...
-----------------------------------------
2008년 토왕폭 시즌 초등 조난 생환기
이제 기억도 아스라이 멀어져 간다.
10년의 시간이 흐르며...
정말 죽을 것 같았고, 평생을 기억할것 같았던, 그 절박한 순간들이 세월의 흐름에 묻혀져 간다.
고마운 여러 악우님들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는데, 자꾸 흐려지는 기억의 조각을 모아 기록으로 남기려 한다.
특히나 ER 동문님들의 헌신적인 노력 덕분이 지금의 내가 있다 생각하니
더 더욱 이번 20년사에 훈훈한 미담으로 그 기록을 더한다
좀 많이 늦었다.
서울에서 우유대리점을 하며 산을 열심히 다녔다. 보통은 금요일 저녁까지 배달을 하고 토요일 새벽에 출발을 하는 스타일로 등반을 했는데, 마침 배송하시는 분이 자리를 비워 화수목 3일을 밤에도 배달을 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니까 좀 피곤하고 힘든 몸 컨디션이었다.
요즘도 그렇지만 그때도 먹고 살기는 힘들고 팍팍한 삶이었다.
그런 삶에 가운데 등반은 나에게 매우 중요한 활력소이자 비타민이었다.
목요일 전화가 왔다.
ER 동문회에서 함께 등반을 하는 오윤묵 동문이다.
겨울이 오기 전, 한 술자리에서 오고가는 이바구에 토왕등반 이야기를 했고 결빙이 되면 시즌 초등을 노려 보자고...
주 초부터 갑작스런 추위로 곳곳에서 결빙이 되었다는 소식이 흘러 들어왔다.
하지만 토왕은 아직이어서 등반 허가도 안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현지 소식통 말이 등반이 가능할 정도로 결빙이 이쁘게 되었다는 소식...
바로 설악산 관리공단에 전화를 했다.
이번주는 상황을 보고 다음주 허가가 날거라는 통보에 윤묵이와 고민을 잠시 했다.
불법이기는 하지만 토요일 등반을 하면 시즌 초등은 가능한 상황...
몸은 3일을 지새워 조금 피곤하기는 하지만 토왕이 부르는 그 간절함에 우리는 등반강행으로 결정했다.
걸리면 벌금 내고 시즌초등과 바꾼다는 도전 정신
2008년 1월 18일 금요일 업무를 서둘러 정리하고...
장비를 챙겨 설악으로 향한다.
오윤묵 동문과 둘이서 등반하니 장비도 깔끔하다. 설악캔싱턴 호텔에 주차을 하고 바로 토왕골로 향한다.
그때만 해도 캔싱턴 호텔에서 비룡폭으로 바로 지르는 샛길이 활성화 되어 있어 작은 시간이나마 절약할 수 있었다.
토왕골 게곡길은 적당한 눈에 어프로치는 그리 힘들지않았다.
자박 자박 눈을 밟는 소리가 상큼하다.
우리 손길을 기다리는 토왕을 생각하니 마음이 두근 두근 설레님에 힘든지 모르고 발길을 옮긴다.
아직은 등반 허가가 나지 않은 코스라 등반하는 다른 팀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하단에 도착했을 때 한팀이 먼저 와 남자 두명이 등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런 시즌 초등이 저 멀리 날아 가고있다.
서로 인사를 나누고 우리도 장비를 준비한다.
부산에서 오신 팀이라 했다.
서로 단단히 준비를 하며 함께 하단을 올랐다.
올해는 아직 아무도한테도 허락않은 토왕 하단을 그렇게 올랐다.
비록 먼저오신 부산팀때문에 시즌 초등은 아니지만 그래도 올해 유난히 멋지게 얼어준 토왕에게 감사하며
등반을 시작한다
얼음도 단단하고 몇 번을 타격해야 바일이 박힐 정도로 힘들었다.
잠을 못잔게 좀 티가 난다.
나도 최상은 아니지만 부산팀도 속도가 좀 느리다.
아무래도 아무 등반 흔적이 없는 빙벽은 좀 시간이 걸린다.
등반을 하며 부산팀 등반루트와는
거리를 두고 오르니 나도 초등은 매 한가지다
루트를 살피려 위를 보는데 부산팀 낙빙이 떨어지며 튕겨 내게로 온다.
작지만 큰 얼음덩어리가 핼및을 타격한다.
윙~~~~~~ 조금 멍 한 순간이 지나가고 상태를 보니 핼및에 부착한 패츨 바이저가 반쯤 부러져 있다.
그나마 다행이 완전 부러진건 아니어서 그런대로 등반은 가능한 상태
이걸로 이번 등반 액댐 했다고 하고 등반을 이어 간다.
한 여름을 지나며 녹슬었던 빙벽 타격감각이 조금씩 살아나 등반이 물흐르듯 이어지는 느낌에 오롯이 토왕과 교류하는 나를 느낀다.
하단을 마치고 부산 팀은 얼음 상태가 너무 힘들어 하산은 결정했다.
우리는 계속 등반 하기로 했고,
부산팀은 먼저 내려가 속초에서 회를 사놓고 함께 한잔 하자고 약속했다.
산에서의 잠깐 인연이지만 그 사이 정이 들었다.
토왕이라는 공간은 그런 공간이다.
잠시의 인연이 우리를 묵었고 하산주를 함께 할 정도로 하나로 만들었다.
눈이 제밥 쌓여 설렁설렁 중단을 마치고 상단이다.
이제 조금씩 피로감이 본격적으로 온다.
일단 잠도 못 자고 배달까지 하고 오니 내 몸도 이제 신호를 보내고 있다.
잠시 손목걸이를 할까 ? 하는 생각과 바일과 안전밸트 확보줄을 할까 하는 고민을 하다 그래도 그냥 해 보자 하는 결심에 상단을 출발 한다.
자 그래 힘을 내자.
지금처럼 설악의 얼음을 아무도 간 흔적이 없을때 해본게 얼마만인가? 그 때문에 2배 이상은 힘이 들었지만 평소 편안한 등반만 한 나를 탓하며 한번 두번 바일을 휘두르고
스텝을 올리며 등반을 이어 간다.
이제 상단테라스
힘든 구간이 끝나고
어느덧 이제 한 피치 남았다.
윤묵이와 함께 화이팅을 외치고
마지막 피치를 시작 한다,
없는 힘도 내야지 하는 마음이지만 급격한 체력저하로 등반이 너무 힘들다.
젠장 잠 좀 자고 왔으면 하는 부질없는 생각만 자꾸 난다.
힘들면서 약간은 졸리는 이상한 경험을 한다.
상단을 거의 다 올랐으니 뒤를 보면 울산암이 잡히고, 아래를 내려보면 윤묵이도 잘 안 보일 정도의 고도감이 엄청난 곳인데 무서움은 전혀 없다.
간이 부은건지, 토왕이 포근 한건지, 이제 조금 남았다 바로 정상이다 경사가 완만해지고 상단 확보지점이 보인다.
긴장이 풀린다 그리고 어느 순간
추락이다
무엇 때문이었는지 어떻게 추락인지 그냥 정신없이 떨어지는데
아! 그 짧은 순간 많은 것이 뇌리를 스치고 간다
정말로 기적처럼 아내의 얼굴, 하늘이 바다 그리고 어머님
나의 삶이 한순간에 정리되는 느낌
그리고 줄의 탠션이 느껴지고 몸이 정지되어 허공에 매달린 느낌
살았나? 하는 순간
바로 찾아오는 엄청난 고통
그 고통속에서도 아! 난 참으로 멍청하구나 그리고 살았구나, 아이러니 하다, 다리에 느껴지는 극심한 고통이 나에게는 살았다는 안도감으로 자위를 하고 있으니 확보를 보고 있는 윤묵이에게 추락 사실을 알리고 일단 확보줄을 고정하라고 하고 한숨을 돌린다.
찰라의 시간동안 상황이 정리되자 극심한 고통속에 또 한동안 내 자신을 추스려야 했다,
평생 아픈것 이순간에 다 경험 하는구나 했는데 오늘이 다 가기전에 지금의 고통의 순간을 그리워 하는 어마무시 슈퍼 울트라 기가 캡숑 고통을 두번이나 더 거쳐야 했으니...
등반 중 사고로 조난자를 구조는 많이 했어도 내가 당사자가 되니 극심한 고통속에 정리가 안된다.
시간을 보니 2시가 조금 지난 시간
내가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여기서 죽는다.
이제는 아내와 아이들이 있는 집으로 가는게 지상 과제가 되어 버린 상황
내 자신에게 소리친다 “정신차려”
차분해 진다는게 줄에 대롱대롱 매달려진 상태에서 극심한 고통속에서는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래도 차분하게 현 상태를 자가 확인 해 본다
머리, 목, 어깨, 팔, 허리 이상이 없다,
다행이다,
다리로 시선이 내려가며 황당한 상황이 눈에 들어 온다?
발은 그대로인데 양발모두 빙벽화 앞코가 뒤굼치 위치로 180도 돌아 가 있다,
추락을 하며 앞코가 얼음에 튕기며 발목이 으스러지며 180도 돌아간 것이다,
눈으로 확인을 하니 고통이 X2 아니 X10은 되는 느낌이다
그냥 포기하고 싶다.
아래 윤묵이는 상태가 궁금한지 자꾸 고함을 치고 이제는 탈출을 할지
여기서 죽을지 결정을 해야 한다.
나는 등반을 하다 떨어졌으니 그렇다 해도 윤묵이는 무슨 죄?
내가 포기하면 윤묵이 혼자 탈출도 불가 한 상황인데
순간 결정했다
살자 살아서 내려가 가족도 보고 후일을 도모 하자
사람의 정신력이 무서운건지 내가 살려고 그런건지 추락을 하면서도 손목걸이도 안한 바일이 내손에 잡혀 있다. 추락의 순간에도 바일을 놓치지 않은 것이다.
정말 차라리 죽고 싶은 두번의 고통 중에 한번의 고통의 순간이 다가 왔다
두발목이 180도 돌아간 상태에서는 자력탈출도 불가하고 어떻게 구조가 된다고 해도 부수러진 발목뼈들이 신경과 힘줄을 손상시켜 평생을 발목아래는 없이 살아야 하는데 아무리 고통이 커도 발목을 돌려야 내가 산다
바일로 돌아간 발목을 쳐서 돌려야 한다. 더 시간이 지체하면 지금의 상태로 신경이나 힘줄이 부서진 뼈 조각들과 엉켜 돌리는게 오히려 더 나쁜 상황을 만들 수도 있다.
지금도 돌리면서 신경이나 인대등이 손상되면 감각이나 운동성을 잃을 수도 있으나 그건 살아서 걱정해야 하는 행복한 고민일거라 자위하며 발목 돌리기를 시도했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10년이 지났는데 그때의 고통에 몸이 떨린다.
몇번의 시도끝에 원래의 발목상태로 돌렸다, 그냥 붙어만 있는 상태로 발목아래로는 어떠한 감각도 없다.
이제 탈출을 해야 한다.
천우신조? 천만 다행으로 그동안 3년을 쓰던 휴대폰을 1달전에 새거로 바꿔서 휴대폰 감도도 좋고 배터리도 최고의 컨디션이다.
내 생명줄이 될 휴대폰이다.
여기서 고민을 잠시 한다 내가 119에 조난 신고를 하면 자력탈출시 계속 상태를 통화해야 하는데 2시간 조금 더 지나면 해가 진다.
토왕 상단에 매달려 하룻밤을 지새운다면 우리 상태로 아침까지 살아난다는 보장이 없다.
설사 산다해도 아침에 구조도 불확실하고 두 발목은 절단이 분명하니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
토왕폭 경험이 있으면서 차분하게 오늘 하루 구조를 총괄할 귀인이 필요하다.
대부분 산에 갔을텐데....
아 ER 후배 이기도
기도가 오늘 근무한다는 기억이 났다.
가장 먼저 기도에게 전화를 했다
신호가 한참이 가고 기도가 나왔다.
반가운 목소리로 토왕등반은 잘 했냐고 묻는 말에....
먼저 이것 실제 상황이고 농담이나 장난 아니라고 말하고 지금의 조난 상황을 차분하게 설명 한다.
일단 위치는 토왕 상단이지만 위로 가는건 불가하니 자력으로 중단으로 가니 핼기로 중단에서 구조를 요청한다고....
나는 자력탈출을 해야 하니 자네가 119와 협력하고 혹시 ER 식구들에게 상황을 알려 119 구조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분이 있으면 도와주고 아마도 가망은 없지만 그래도 희망을 가지고
긴급 수술이 가능한 병원을 수배해 달라고....
이 모든 상황은 기도가 책임지고 진행해서 나를 제발 살려 달라고...
정말 간절하게 부탁을 했다.
그리고 윤묵이와 음성으로 소통이 어려워 전화를 했다
일단 윤묵이를 안심 시켰다
그리고 함께 힘을 모아 탈출을 하자고
장비가 문제다
스크류가 부족하다
탈출을 하려면 피치를 중단까지만 해도 6개가 필요한데 등반하며 다 사용해 윤묵이가 있는 확보지점에 2개하고 나에게 남은 2개
최소한 3개는 더 있어야 한다
윤묵이에게 줄을 당기라고 하고 죽을 힘을 다해 기어 올라 스크류 1개를 회수하고 하강을 하며 2개를 더 회수 한다,
발목을 건들거면 극심한 고통이 뒤따르고 시간을 흐르러가니 몸은 빨리 움직여야 하니 입에서는 계속 욕만 나온다.
띠벌 띠벌 하면서 추락 후 30분 만에 윤묵이와 합류했다.
내 몰골을 보고는 오히려 윤묵이가 더 맨붕이 된다.
일단 상태를 설명하고 기도가 서울에서 우리를 살리려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우리가 할일을 하자고
탈출 방법은 간단하다
스크류 2개를 설치하고 1개는 보조로 한개에 의지해서 윤묵이가 나를 하강시켜주면 나는 엉덩이를 이용해 토왕을 미끄러져 내려간다.
한피치를 내려가면 내가 스크류를 설치하고 자기확보를 하면 윤묵이가 하강을 하고, 다시 나를 하강시키고
어지간한 고통이면 익숙할때도 되었는데 조금만 움직여도 뼈에 사무치는 고통이 엄습하니 이제 내 몸은 육체의 고통과는 별개로 살고자 하는 정신이 육체를 지배하는 상태
무념 무상의 상태로 고통을 외면하며 한스텝 한스텝 탈출을 하고 있다
중단까지만 가면 핼기로 구조가 될거라 생각하고....
상단을 내려오는건 그나마 매달려 내려오니 할만(?)했는데 중단은 오를때 편안했던 눈들이 오히려 하강을 방해 한다,
원피스 트라우져가 나를 한번 살렸다
멀리서 헬기 소리가 들린다
반가운 구조대 헬기 손을 흔들어 신호를 보낸다
서울에서 기도가 열심히 구조대와 소통을 하며 확인 한 결과다
그러나 중단을 선회하던 헬기는 그냥 돌아가 버린다.
전화로 연락이 왔다.
중단에 기류 상태가 나빠 호버링이 불가해서 다시 온다고 한다.
그럼 시간적 여유가 조금 생겼다.
힘을내서 다시 하강.....
잠시후 다시 핼기 소리가 들린다.
이제 잠시 후면 해가 진다.
마음이 초초해진다.
젠장 마음이 초조해지는 가운데도 아픈건 똑 같다
정말 지랄처럼 아프다
그런데 핼기는 또 몇 번 선회만 하더니 다시 그냥 돌아 간다.
어 이러면 안되는데...
전화가 왔다
아까처럼 상태가 안좋다고
돌아가 마지막으로 기름 보충하고 다시 온다고 한다.
이때 또 울리는 전화
아침에 만난 부산팀이다.
속초애서 회를 사려 하는데 언제쯤 도착할 수 있냐는 전화
현재 조난 상황을 말씀드리고 아쉽지만 후일을 기약한다
사고만 아니였으면 지금쯤 속초 어느 횟집에서 설악과 토왕을 마시며 흥에 겨워할 시간인데...
좀 불길한 느낌.
그래도 중단까지는 왔으니 윤묵이는 살 수 있다. 그래도 마음은 나도 살아야지 하는 마음 뿐이다.
이런 상황이 되니 아픈것보다 사는게 더 절실했는지 아픈것도 잠시 미루게 된다.
해가 지는 가운데 세번째 핼기 소리가 들린다.
정말 간절하게 기도한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
대자대비하신 부처님.
코란은 모르지만 그래도 영험하신 알라신.
특별한 신앙이 없으니 일단 모든 신께 한다리씩 걸쳐 놓는다.
갑작스런 기도여서 일까?
기도빨이 안 먹힌다.
몇번을 선회만 한다.
해는 지고 이번에 돌아가면 정말 끝이다.
그 순간 전화가 울린다.
ER의 맹장 전용학 강사
실폭에서 빙벽훈련 중 내 사고 소식을 기도에게서 듣고 바로 속초로 넘어와서 구조대 요청으로 구조 핼기를 탄 거였다.
“형 걱정하지 말고 기리다려요 내가 꼭 살려줄께”
용학이의 이 말이 그토록 불안하던 내 마음을 편안하게 안정시킨다.
구조대 핼기는 결국 중단은 포기하고
하단에 용학이와 119구조대원 2명을 레펠로 하강시키고 돌아 갔다.
이제 해는 지고 시나브로 어둠이 깔리는데 용학이의 숨가쁜 전화
지금 단독등반으로 하단을 올라오고 있다고 한다.
윤묵이와 우리도 다시 힘을내서
핼기 구조 지점에서 용학이가 등반을 해 올라올 포인트로 이동을 했다.
희미하게 들리는 용학이의 바일소리가 하늘에서 들리는 천사들의 속삭임보다 더 감미롭게 들린다.
잠시후 용학이와 반가운 재회를 하고
두명의 도움으로 무사히 하단까지 내려 왔다.
내 상태를 점검한 119구조대원은 이 상황에서 설악동으로 하산은 불가하니 여기서 밤을 보내고 아침에 하산을 하자고 결정을 한다.
이때 용학이가 간절하개 말한다.
이 형님 가족이 셋이고 정말 착하게 산 형님인데 오늘 여기서 하루를 묵으면 다리상태로 봐서 두 다리 다 절단을 해야 하는데 그러면 본인이 죄스러워 못산다고
무리를 해서라고 지금 내려가야 살릴수 있다고...
그 호소에 결국 아래 설악동에서 비상대기중인 민간 합동구조대를 즉시 토왕으로 출동시키고 우리는 후송준비를 시작했다,
너덜거리는 다리를 앙카에 고정하는데 그 고통은 ...
그래도 나 때문에 생고생을 하는 용학이와 119구조대원에게 누가 될까 이를 악물고 참고 또 참는다.
완전한 어둠이 내리고 한무리의 민간 합동 구조대가 도착했다.
서론 인사를 하고 바로 후송 시작이다.
앙카가 이동하며 흔들릴때마다 어김없이 찾아오는 극심한 고통은 조금도 누그러지는 기색도 없다.
그래도 이제는 살았다는 안도감에 추위도 몰려오고 갈증도 나고 사람으로의 욕구가 생겨난다.
후송중에도 힘쓰시는 구조대원과 가벼운 대화도 하고
마의 비룡폭 구간은 넘자 후송에 속도가 난다.
기억은 가물가물 하지만 구급차가 있는 비룡폭입구 식당에 도착한 시간이 밤 11시 경이다.
정말로 고생하신 119구조대원과 민간합동구조대원에게 마음을 담아 감사의 인사를 올리고 구급차에 오르려는데 이시간에도 참으로 부지런한 관리공단 직원이 기다리고 있다. 등반허가 전에 등반을 했으므로 과태료 처분을 위해 기다린 것이다.
맙소사 결국 신음소리와 함께 주소와 주민번호를 불러주고야 구급차를 탈 수 있었다. 주변에서 쭈뼛거리던 윤묵이도 결국 딱지를 띠고 말았다고 후일 전한다.
사실 토왕에서 사고는 흔한 사고 중 하나다. 그래도 나처럼 오후시간 정상에서 30여미터 추락하고 당일 자력으로 탈출해 구조대의 도움으로 당일 병원까지 후송된 경우는 흔치 않은 경우다.
위급한 상황에서 함께 탈출에 힘써준 윤묵이와 해가 진 후 토왕하단를 미친듯이 올라와 구조에 최선을 다한 용학이, 그리고 서울에서 모든 상황을 컨트롤 해준 기도,
거기에 119 구조대원과 3번이나 구조를 시도해주신 헬기조종사, 후송에 힘을 써주신 민간합동구조팀 여러분의 헌신으로 오늘의 내가 있는것이라 생각하며 늘 감사한 마음으로 살고 있다.
그리고 이후 속초병원까지 달려와주신 수많은 ER 동문님들의 응원과 격려가 큰 힘이 되었다.
특히 응급실에서 응급처치에 함께 해주신 강인철 선배님께 감사드린다.
마지막으로 늘 이런 사고만 치는 남편을 지금까지도 삼시세끼 밥까지 챙겨주는 아내에게 나의 온 마음을 다해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그리고 사람 외적인 도움은
적당이 추운 날씨에 토왕 상단에 낙수가 없었다,
마침 입고 등반한 고어택스 원피스 트라우져 덕분에 중단 설원지대를 엉덩이로 끌며 기어 내려오는 과정에 눈의 유입이 없어 체온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체력이 조금 떨어진다 느끼면 바일손목걸이와 안전밸트 확보이음줄을 꼭 하기를 당부 드린다.
나는 그래서 나의 최종학력은 익스트림 라이더 등산학교 라고
자랑스럽게 외친다
PS : 응급실에서의 상황과 긴박했던 서울이송 그리고 수술과정
기나긴 입원과 재활
그런 내용은 그냥 넘어 간다.
글 중간에 언급한 두번의 고통 중 마지막 두번째 가장 큰 고통은 속초 병원에서 서울로 응급후송 뒤 수술예정이라 마취도 못하고 생으로 손가락 길이 만큼 오픈된 양 발목의 뼈들을 생으로 늘려 살 안으로 들여 보낼때 이다.
첫댓글 영동빙벽장 가는 중에 사고전화통화가 지금도 귓가에 들리는듯 하네요. 광섭형님 화이팅~~~
그래 인연이 이어져 지금까지~~~
고마워 일영아~~~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자 라는 영화가 생각나네요~
네 아내가 기다리고 하늘이 바다 그리고 어머님이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와야 했습니다
좌우간...대단합니다.!
그 상황 이해합니다.암튼 홧!팅!!입니다,심부회장님~
감사합니다
늘 안전한 등반 함께 해요~~~
광섭형 멋짐이 넘쳐요 멋쟁이 😎
고마워~~~~~
병원갔더니 어마무시한 쇠장비들을 다리에메달고누워 , 보는사람은 기가막히는데 .
누나! 아크테릭스 원피스 트라우져를 와이프가사줘서
이거덕분에 살었어~
라며 웃던~~
암튼 살어줘서 고마우이~
전샘이랑 강성신씨외에도
많은분들이 달려갔지~
Er 힘 ! Er 의리 !
누나....
한참을 함께 보냈는데....
늘 고마운 누나~~~
앞으로도 쭉~~ 이뻐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