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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운산, 쫓비산의 산행(걷기 운동)을 마무리하고 광양 다압면 '청매실농원'에 도착하였다.
광양 매화축제가 올해로 19회를 맞이하여 3월18일(금)~27일(일)까지 10일간 매화가 한참 개화할 것을 감안하여 축제행사를 홍보하고 있어 매년 한,두 번씩 가는 곳이라서 백운산, 쫓비산 산행을 겸하여 매화축제의 장소를 갈 것을 계획하고 있었다.
알고있는 한 산악회에서는 때를 맞추어 백운산, 쫓비산 산행을 겸하여 매화축제를 하고있는 청매실농원으로 하산하는 무박2일의 계획이 있어서 갈 것을 신청하여 어제밤 광양(옥룡면 진틀)으로 내려가는 버스에서 잠을 청하였지만, 잠을 잘 수가 없었고 가깝지도 않는 산길을 쉼없이 걸었기에 쫓비산에 도착, 청매실농원으로 하산하는 길을 걸을때는 무릎관절이 결리고 아파왔다.
하지만, 무릉도원이라고 했던가? 신선들이 사는 이상형의 세계를 말하는 단어를 가져다 붙여도 좋을 만큼의 매화 풍경이다. 봄이 오면 내 영혼은 섬진강변에 피는 꽃들에게 영락없이 사로잡히고 만다. 매년 3~4월에는 남도의 섬진강변에 꽃들의 잔치가 벌어지고 있다.
2월 중순부터 5월초에 이르기까지 섬진강가엔 붉은 동백을 시발로, 고결한 매화, 샛노란 산수유 꽃, 붉은 진달래 등 꽃들의 교향곡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이런 선계의 세계도 지금은 꽃이 떨어지고 있을테니 며칠 남지않은 세상이기도 하다. 매화는 그렇게 매화축제로 봄을 밝혔다.
길! 길은 여러갈래다. 갈라지고 만나고, 또 갈라지고 만난다. 그 길속에는 봄을 담은 꿈이 있다. 지구촌 어느 곳을 돌아보아도 이처럼 아름다운 꽃들의 향연을 만나보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봄이 오면 사람들은 섬진강으로 간다. 비발디 '사계'의 선율이 아무리 아름답고, 요한 시트라우스의 '봄의 소리'가 그리도 곱다고 하지만, 꽃들이 들려주는 생음악에 비기랴!
섬진강은 한반도의 뭍에 봄이 상륙하는 첫 관문이다. 봄의 화신이 백운산 자락의 동백림과 화엄사 뒤뜰의 동백나무에 꽃의 숨결을 붙어 넣으면, 붉은 동백은 이윽고 봄의 화신이 되어 강변의 매화를 깨우고, 매화는 산수유를, 이어서 산수유의 노란영혼은 벚꽃의 꽃망울이 터져 나오도록 재촉한다. 그 뒤를 이어 진달래와 철쭉이 지리산을 물들인다. 연이어 터지는 꽃들의 교향악이 섬진강과 지리산 무대에 울려 퍼지고 있는 것이다.
섬진강 하면 뭐니 뭐니 해도 매화가 제일이다. 매화는 붉은 동백꽃이 떨어지기 전에 춘설 속에서 피어난다. 매화가 피어나기 시작하면 섬진강변은 순식간에 순백의 매화꽃으로 단장을 하고 만다. 이번 겨울엔 매화마을엔 때늦은 동장군의 기세에 눌려 꽃망울이 터져 나오기가 겁이 났던지 머뭇거리다가 3월20일 이후에서야 만개를 하고 있었다.
섬진강변이 온통 매화의 물결로 춤을 추고 있다. 홍쌍리 청매실농원을 중심으로 광양군 다압면 전체가 온통 매화 천지다. 매화는 난초, 국화, 대나무와 함께 사군자의 고결함을 간직하며 옛날부터 시인과 묵객들의 사랑을 듬뿍 받아왔다. 매화꽃의 아름다운 자태 못지않게 더욱 매력을 끄는 것은 그 향기다. 전설에 피어오르는 진한 향기는 사람의 마음을 감싸고 뼛속까지 싱그럽게 한다.
매화는 귀하게 여겨지는 꽃이다. 매화를 귀하게 여기는 것은 첫째는 함부처 번성하지 않으며, 둘째는 나무의 늙은 모습이 아름답기 때문이며, 셋째는 살찌지 않고 마른 모습 때문이며, 넷째는 꽃봉오리가 벌어지지 않고 오므라져 있는 자태 때문이라고 한다. 우아하면서도 매서운 추위를 뚫고 피어나는 매화의 의연한 기상은 남자들의 마음을 끌기에 충분하다. 부드러움이 강한 것을 이기듯이 매화는 아름다운 여인처럼 사내의 마음을 사로 잡고 만다. 하여, 매화는 예부터 시인과 묵객들의 사랑을 듬뿍 받아오고 있다.
중국 진나라 때는 문학이 번창하면 매화가 만발하고, 문학이 쇠퇴하면 매화를 구경조차 어렵다는 기록이 있다. 그만큼 매화는 동양에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매화의 매력은 그 아름다운 자태 못지않게 향기에 있다. 매화는 깃털이 떨어지는 소리를 들을 만큼 마음을 가다듬어야 비로소 향기의 진수를 느낄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어떤 이는 매화의 향기를 코로 맡지 않고 '귀로 듣는 향기'라고 말한다. 이는 마치 묵객들이 묵향을 느끼는 것과 같다. 귀로 들어야만 그 향기의 진수를 뼛속까지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섬진강의 매화 이야기는 "밤나무골 김영감"과 그의 며느리"홍쌍리"여사를 빼 놓을 수 없다. 광양의 매실 이야기는 밤나무골 김영감으로 통하는 김오천 선생으로부터 시작되는데, 1902년 다압면 도사리 출생이다. 그는 1918년 일본으로 건너가 13년간 광부생활로 돈을 모아 1931년에 귀국하면서 밤나무 1만주, 매실나무 5천주를 비롯하여 감나무, 배나무 등 양질의 신품종 묘목을 가지고 왔다고 한다.
김씨는 가지고온 묘목을 3년 동안 키우다가 나무를 키우는데 필요한 돈과 기술을 구하기 위해 1934년 다시 일본으로 들어가 10년 동안 일본과 광양 고향을 수없이 오고 가면서 나무를 키우는데 정성을 들여왔다. 그리고 1944년 완전 귀국하면서 매실나무를 키우는 일에 매달려 45만평의 임야에 밤 산을 만들고, 집주변 언덕배기에는 매실나무를 집중적으로 키웠다.
그 와중에 김씨의 아들에게 밀양 출신인 홍쌍리라는 보배 며느리가 들어왔다. 홍쌍리 여사는 1965년 김영감의 아들인 김달웅씨에게로 시집을 와서 7ha의 산비탈에 시아버지가 심은 밤나무와 매실나무를 정성껏 가꾸기 시작했다.그후 30년이 지난 1995년 그녀는 우리나라 최초로 매실전통식품 지정을 받아 매실농축액, 매실장아찌, 매실청(차), 매실잼, 매실사탕, 매실젤리 등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홍쌍리 여사는 시아버지 김오천씨와 시어머니의 매실식품제조 활용법을 예사롭지 않게 보아 넘지기 않고 눈썰미 있게 새겨 두었다가 끊임없이 연구한 끝에 오늘의 결실을 맺게 된 것이다. 오늘날 홍쌍리 매실농원의 결실은 김오천씨와 홍쌍리 여사가 47년 동안 매실을 가꾸고 매실 식품제조에 정성을 쏟아 부은 결과물이다. 돌아오는 길에 매실식품중에 매실장아찌, 매실청(차), 매실사탕, 매실젤리를 사서 가족과 함께 맛을 보았다.
< '청매실농원'의 홍쌍리 명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