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비가 온 탓인지 오늘 날씨는 판이하게 다르다. 바람이 조금 춥게 느껴질 정도로 불었다. 이리저리 흩어진 낙엽들이 갈길 몰라 방황하는 모습처럼 느껴진다. 수원미술관 앞에 있는 ‘꽃길만 걸어요’ 디저트카페로 들어갔다.
수능 보는 친구들의 선물을 마카롱으로 주고 싶어서다. 15가지 맛이 먹음직하게 진열장에서 ‘나를 데려가 주세요. 내가 최고로 맛있는 맛이에요.’ 하고 내게 말을 걸어오는 것 같다.
고민을 하고 있는 중에 아가씨 한 명이 매장으로 들어온다. 나처럼 무엇을 고를까 고민하면서 4가지 맛과 음료를 골라 포장을 해서 나간다. 나의 생각을 단절시키는 여학생 세 명이 또 우르르 들어온다. 뭘 고를지 생각하면서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가방과 소지품을 내려놓았다. 매장 안을 여기저기 훑어보았다. 한쪽 벽면의 테이블에는 머랭 쿠키와 꼬끄가 여러 개 포장되어 바구니에 담겨 있다.
그리고 꽃길처럼 천장에는 색색깔로 말린 안개꽃, 뉴칼립투스, 스틱치스, 장미꽃 등 이름 모를 예쁜 꽃들이 천장을 가득 채워져서 분위기가 한층 고급스러워 보인다. 아기를 데리고 들어오는 엄마, 마카롱과 음료를 시켜서 자리에 앉는다. 호기심 어린 어린아이. 엄마에게 계속 말을 건다. 말괄량이 삐삐처럼 조그맣고 인형 같은 아이. 짧은 고수머리에 손수건으로 턱받이를 하고서 귤을 한 알 입에 넣는다. 오물오물 먹는 모습이 다람쥐처럼 귀엽다. 아이엄마는 음료수를 마시면서 스마트폰 속으로 빠진다. 조금 지나 아이는 의자에서 유모차 안으로 앉혀진다. 가장 편한 곳, 엄마의 자궁 같은 느낌일까? 후후~ 앉아본 기억이 없으니 편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벽에 부착된 거울 밑에는 예쁜 인형들과 꽃들로 장식되어 포토존으로 이용하면 좋을 것 같았고 거울을 정면으로 쳐다보면 왼편 위쪽에 ‘당신은 오늘이 제일 예쁘다.’라는 글귀가 앙증맞게 써 있다. 정말 내가 예뻐 보이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하는 거울이 멋지다.
친구 같은 두 여인이 들어온다. 무얼 먹을까를 고민하며, 어느 자리에 앉을지 테이블을 빙 둘러 보더니 내 옆의 옆자리에 앉는다. 나는 밀크 티 마카롱과 커피를 시켰다. 한 입 크기보다 더 큰 마카롱. 중간에 들어간 샌드 크림이 두툼하다. 보라색과 살구색 머랭의 바삭함과 밀크 티의 얼 그레이 맛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맛은 입안에서 촉촉하게 사르르 녹아든다.
옆자리도 시킨 메뉴가 나온다. 커피와 미니 샌드위치를 앞에 놓고 스마트폰을 열어보면서 “내 사진은 별로 없어.” “왜?” “사진을 잘 안 찍어서 그래.”
이런 대화가 오고가는 중에 차임벨이 울리면서 두 아가씨가 문을 열고 들어온다. 진열장 앞에 서서 마카롱을 가리키며 무슨 맛이냐며 묻는 질문에 매장 직원은 친절하게 알려준다. 한 명은 단발 펌을 한 진보랏빛 가디건을 걸치고 H라인 스커트를 입었으며 긴 머리의 평범한 바지차림의 동행인이 함께 자리에 앉는다.
분위기를 잔잔하게 끌어주는 대중가요가 계속 흘러나온다. 나는 커피를 마시면서 스마트폰을 열어 ‘안녕 네이버’를 실행했다. ‘지금 말해주세요’ ‘이 노래가 무슨 노래야?’하고 말하자 ‘폴킴 노래 Not Over Yet입니다’하고 뜬다.
‘여기서 끝내 그 말 진심 아닌데 그냥 한번 토라진 척 해봤어.’
친절한 네이버다.
금세 서 너 커플의 테이블이 채워지고 주문이 모두 완료되었다 싶었는지 주방에서 들려오는 설거지소리가 제법 크게 들려온다. 소음처럼 들려온다. 시선이 한 쪽에 세워진 북 꽂이에 머문다. MUSINSA, Esquire, 엘르, 다양한 잡지들이 꽂아져 있는데 HAN AD에서 관리하는 잡지라고 쓰여 있다. Esquire에 나오는 주지훈의 커버스토리, 머리는 펑키스타일로 곱슬 거리게 위로 올렸고 목에는 털이 달린 카키가죽 재킷의 질감이 살아나는 듯 선명하고 강렬한 눈빛이 나를 사로잡는다. 뒷면에는 빅 로고 페이크 퍼 아노락의 oioi의 부드럽고 따스한 눈길이 정감이 가는 광고가 실려 있다.
바깥은 여전히 바람이 나부끼고 창밖으로 진열되어 있는 국화들의 향연은 벌써 시들해진 몰골로 바람을 맞으며 마지막을 준비하고 있다. 어느 정도 분위기가 안정되고 있을 찰나에 3~4명의 연세 드신 남녀 분들이 들어온다. 큰 테이블을 차지하고 앉아서 커피를 주문한다.
커피가 나오자 어떤 여자 분이 “언니, 내 것은 왜 하트가 없어요?” 그 다음 말은 묻혀서 듣지 못했지만 직원의 친절한 말로 문제가 해결된 것 같다. 끝인가 했더니 팀원들이 줄줄이 들어오기 시작하더니 이내 분위기는 시장통분위기로 바뀌어버린다. 유모차엄마도 짐을 챙기더니 나가고 이제 가려던 참이었는데, 쫓기듯이 자리를 내어주고 주문한 마카롱 셋트를 들고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