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시편은 유명한 시편 중의 하나입니다. 그리고 역사적인 배경도 매우 분명합니다. 표제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다윗이 밧세바와 동침한 후에 나단이 책망할 때입니다. 사무엘하 12장이지요. 나단이 부하의 아내를 빼앗아 아내를 삼은 것을 책망했을 때 다윗은 바로 회개하면서 이 시편을 짓지 않았나 추측을 합니다. 하지만 이 시편은 단지 그 때의 일을 회상하기 위해서 지은 것이 아니라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시를 짓고 또 계속 불러 왔던 것은 하나님께 범죄한 많은사람들이 다윗과 동일한 심정으로 철저한 회개를 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기 위한 것입니다.
오늘 시편은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면서 시작합니다. 주의 인자와 은혜, 긍휼로 자신의 죄악을 깨끗하게 지워 주시고, 씻어주고, 없애 주시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성품에 호소하면서 자신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하나님께 철저히 매달리고 낮아진 채로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실패하지 않는 사랑과 긍휼하심에 호소하고있습니다. 그리고 시인은 다시 자신에게로 시선을 돌립니다.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고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철저하게 인식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지은 죄와그 결과가 무엇인지 압니다. 그것은 오로지 하나님께만 죄를 범했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밧세바와 우리야에게는 별로 안 미안하고 죄를 짓지 않았다는 말이아닙니다. 오히려 그 죄가 얼마나 심각한 죄였는지 안다는 뜻입니다. 밧세바와 불륜하고 그 죄를 덮기 위해서 우리야를 주였는데, 그들에게 행한 죄악이 결국사람에게 한 일이 아니라 하나님께 한 일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백성이었고, 하나님이 주신 부하였기 때문에 그들에게 범한 죄가 곧 하나님께 범한 죄로 더욱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원리는 단지 밧세바와 우리야의 사건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도 동일한 원리가 적용됩니다. 우리가 이웃에게 형제 자매에게 하는 잘못은 결국 하나님께 하는 잘못인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만이 시인을 재판할 수 있는 권리가 있고 그 재판을받을 때 하나님께서 용서를 선언해 주시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입니다.
5절에서 시인이 자기가 죄악 중에 출생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자기의 죄를 핑계하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죄인으로 태어났으니 어쩔 수 없이 죄를 지었다는 말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 자체가 죄 덩이라서 하나님이 용서해 주지 않고 버리시면 아무런 가망이 없는 존재임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말하지만 자신을구석구석 보니 정말로 하나님 아니면 가망 없는 자임을 더욱 깊이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어지는 구절에서 하나님께서 마음의 신실함을 원하시고, 그런 자기에게 지혜를 주셔서 이 사실을 알게 하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비록 그런 죄 덩어리이지만 하나님만이 자신을 정결하게 하시면 정결하게 될것이고 죄를 씻어주시면 눈보다 더 희게 될 것이고, 이런 즐겁고 기쁜 말씀을 내려 주셔서 주께서 꺾으신 뼈들, 다시 말하면 죄로 인해서 억눌린 마음과 상한심령을 회복시켜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죄를 범하고 나단이 책망한 후에 엄청난 죄책감을 가진 것입니다. 우슬초는 박하과에 속하는 향기나는 풀입니다. 부정한 자가 정결하게 되는 의식을 할 때 우슬초에 정결하게 하는 물을 찍어 뿌리고 옷과 몸을 씻으면 정결의식이 완성이 됩니다(민19:18).
이어서 시인은 자신의 회복을 간청합니다. 죄로 오염 된 자신의 마음에 하나님께서 깨끗한 마음을 주시고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여 달라고 합니다. 이것은 단지 심리적인 안정과 불안에서 해방시켜 달라는 말이 아닙니다. 이런 회복은 하나님께서 죄로 인해서 멀어질 때 느끼게 되는 영적인 단절에서 회복시켜 달라는말입니다. 그래서 이어서 자신을 주님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고 성령을 거두어 가시지 말라고 합니다. 죄가 하나님과 관계를 단절시키기 때문에 다시 회복시켜달라는 것입니다. 자원하는 심령은 제물을 자원하여 드리는 마음을 달라는 말이 아닙니다. 이 말은 죄에 대해서 멀리하고 미워하는 마음을 달라는 것입니다. 시인은 그렇게 다시 구원의 즐거움을 회복시켜 주시고 자신을 붙들어 달라고 하나님께 간곡히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다면 자신과 같이 하나님께 죄를 범한 자들에게 회개하는 이 시를 들려주어 주님께 돌아오도록 하겠다고 다짐합니다. 우리가 이 다짐의 결과로 이 시편을 읽고 묵상하고 있는 것입니다.
14절부터 다시 시인은 하나님을 자신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부르짖으며 자신의 피흘린 죄에서 구원하여 달라고 호소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해달라고 합니다. 이런 죄인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죄악을 용서하시는 그 긍휼의 하나님을 노래 하겠다고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이 시인은 철저히 낮아져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단지 형식적인 제사를 통해서 짐승의 피로 죄를 용서 받았다고 착각하고 살아가는 것이 아님을 잘 압니다. 하나님이 그것이 원한다면진작에 그렇게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시인은 하나님이 그런 번제를 기뻐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제사는 자신을 철저히 살펴서 죄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하고 얼마나 큰 죄를 지었는지 깨닫고 상한 심령과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드리는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죄로 인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지고 멀어진 죄인에게 하나님이 원하시는 마음은 상하고 찢긴 마음으로 통회하는 마음입니다. 통회한다는 것을 가루로 만들다 완전히 부순다는 뜻입니다. 철저히 참회하고 죄에 대해서 미워하며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는 마음입니다. 이러한 마음이 없이 단지 제사만 드리는 것으로 죄가 용서되지 못한다는 것을 시인은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제사를 안 드려도 그런 마음만 있으면 된다는 말이 아닙니다. 바로 이어지는 18절-19절에서 제사를 이야기하기 때문입니다. 철저한 회개의 결론이 바로 상한 심령으로 바른 제사를 드리는 것임을 보여줍니다. 철저히 회개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때 의로운 제사와 번제와 온전한 번제를 기뻐하실것입니다.
오늘 시편을 통해서 우리는 죄의 심각성과 철저한 회개에 대해서 배우게 됩니다. 죄가 심각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깨뜨리고 멀어지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죄를 회개하는 것은 단지 하나님께서 벌을 주시고, 지옥가기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죄가 하나님과 관계를 깨뜨리고 멀어지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그것을 가장 두려워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자신의 죄를 용서해주시고, 자신에게 하나님의 성령을 거두지 말라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 되어 지기를 간절히 기도한 것입니다. 우리가 범하는 죄들은 결국 하나님과의 관계를 깨뜨리고 멀어지게 합니다. 죄를 미워하는 마음은 하나님과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과 비례합니다.
또 우리는 다윗이 자신의 죄를 얼마나 심각하게 생각하며 철저히 회개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 회개의 근거는 자신의 열심이나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긍휼과 인자하심과 은혜에 두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수동적으로 그저 하나님만 바라보고 있지도 않습니다. 동시에 자신이 얼마나 죄인인지, 자신이 지은 죄의 성격이 어떠한 것이지 절저히 인식하고 있습니다. 죄를 인식할 뿐만 아니라 상한 심령과 깨어진 마음으로 하나님과의 단절을 경험하며 그것이 회복되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철저한 회개는 깨어지고 부서진 마음으로 죄를 미워하고 하나님께 더욱 가까이 가고 싶은 열망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원하시는 것은 단지 우리가 교회에 잘나가고 예배에 잘 참석하는 그런 정도가 아닙니다. 물론 이것도 아주 중요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더욱 원하시는 것은 우리의 심령, 우리의 마음입니다.
시편 51편은 저와 여러분을 위한 말씀입니다. 우리가 범죄하였을 때 이렇게 긍휼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께 우리 스스로가 얼마나 죄인인지 깨닫고, 죄가얼마나 하나님과 우리를 멀어지게 만드는지 깨달으며, 죄로 인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멀어진다는 것이 얼마나 두렵고 끔찍한 일인지 생각하고 철저히 회개하는 상한 심령으로 하나님께 나아가 제사를 드리면 회복이 되어 찬송을 부르게 될 것이라고 말입니다. 한 해 마지막을 이렇게 회개의 시편으로 우리에게 주시는 것은 하나님께서 더욱 가까이 우리와 함께 하고 싶으셔서 우리가 정결하게 되길 원하시는 것입니다. 이 시편을 기억하고 회개와 회복의 삶을 누리는 저와여러분이 됩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