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 숭배 / 최미숙
지난 토요일(23. 3. 11.)이 시어머님 2주기 기일이다. 작년에는 시아버지와 큰 시누이가 코로나에 걸려 우리 부부와 둘째 형님네만 산소에 가서 간단하게 끝냈다. 그런데 올해는 집에서 하는 첫 제사로 밤 열한 시에 지낸다며 며칠 전부터 아버님 주문이 많다. 서울과 안양 사는 시누이도 온다고 했다.
집안 행사가 있으면 매번 둘째 동서가 고생이다. 나물과 식혜, 새 김치는 전날 만들고 전과 생선, 탕국만 당일에 하자고 한다. 직장 생활 한답시고 설거지로나 도왔는데 마침 토요일이라 아침에 장에 들러 참꼬막 사고 전 부치는 것은 내가 한다고 했다. 형님은 시누이 남편까지 온다며 반찬에 신경을 많이 썼다.
토요일 오전, 나들이 가기 딱 좋은 날이다. 걸어가려고 아홉 시에 집을 나섰다. 장에 도착하니 싱싱한 해산물이 가득하다. 특히 멍게를 사고파는 사람이 많았다. 지금이 철이라고 했다. 장을 한 바퀴 빙 돌았는데 새꼬막(이곳에서는 똥꼬막이라 부름)은 많아도 참꼬막은 한 군데밖에 없었다. 오만 원어치를 샀는데도 워낙 비싸 양이 많지 않았다.
집에 도착하니 형님들은 먼저 와 음식 준비하느라 바쁘다. 부지런히 한 덕분에 저녁도 되기 전에 모든 준비가 끝났다. 그사이 둘째 시누이가 도착했고 정담도 나눴다. 밤 열한 시까지 꽤 긴 시간 기다려야 하는데 일찍 시작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남편에게 볼멘소리로 여러 번 투덜댔지만 “어떤 말도 통하지 않으니 할 수 없네”라는 말만 돌아왔다. 자식들도 아버지의 독선이 못마땅하지만 마음뿐이다.
올해 97세인 시아버지는 조상님 숭배가 대단하다. 나이가 저 정도면 기가 죽기도 하련만 여전히 목소리도 크고 본인 말이 법이다. 제사 지내는 순서를 적어 장조카에게 코팅해 오라며 매일 확인 전화다. 일하는 아이를 시도 때도 없이 집으로 불러 본인이 죽으면 제사는 어떻게 지내라는 둥 했던 말을 반복해 힘들게 했다. 오죽하면 남편이 지난 구정에 성균관에서 내놓은 추석 차례상 표준안을 보여줬는데도 기본도 모르는 사람들이라며 말도 꺼내지 못하게 했다. 그 고집에 자식들도 입을 닫았다. 그런데 할 때마다 당신 마음대로 조금씩 바꿔 종잡을 수 없는 게 문제다.
열 시가 되자 남자들이 양복으로 갈아입고 상차릴 준비를 했다. 사진, 촛불, 솔잎 꽂은 모래 담은 그릇을 상에 놓기에 제기에 음식을 담았다. 그것을 본 남편은 미리 내가면 큰소리 나니 가져오라고 할때 놓으라고 당부한다. 지난 구정에 그 일로 얼굴 붉힌 일이 있었던 터라 상에 올릴 때마다 일일이 아버님께 묻고 확인까지 했다. 열한 시가 되자 2년 전 암으로 돌아가신 큰아주버님을 대신해 둘째 시숙님이 코팅지를 들고 진행한다. 장손, 아들, 사위, 딸과 며느리 순으로 술 따르고 절하기를 반복하는데 나는 기독교인이라 묵념으로 대신했다. 아버님은 그것도 못마땅했겠지만 강요하지는 않았다. 한가지 귀신이 와서 밥 먹는 시간이라며 8분 동안 불끄고 기다리는 순서가 있었다. 생전 처음 보는 장면이라 놀라고 무서웠다. 아버님은 장조카에게 제사 장면을 동영상으로 찍어 내년에는 모두 감상하는 시간을 갖자고 한다.
요란스런 제사가 열두 시쯤 무사히 끝났다. 설거지까지 하고 나니 한 시가 다 된다. 시아버지 못지않게 조상을 숭배했던 친정아버지도 엄마의 믿음 생활 덕에 나중에는 교인이 됐다. 바늘 하나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단단했던 아버지도 제사 대신 추도식으로 간단하게 예배드리고 밥 먹고 끝났는데 시댁은 변할 것 같지 않다. 음식 놓는 순서가 틀리고 조금 일찍 시작한다고 뭔 일이 나는 것도 아닌데 여러 사람 힘들게 하는 아버님을 이해할 수 없었다. 퇴계 선생 같은 분도 예절과 풍습은 시절에 따른다고 했다니 유교가 뿌리 깊은 그 시절에 앞서가는 분이라는 생각에 부러웠다.
집에 가는 길에 불평이 한 보따리 터져 나오려는 걸 참았다. 남편에게 쏟아봤자 서로 감정만 상할 뿐 아무 소용이 없는 걸 알기에 차에 올라 긴 한숨만 쉬었다. 의자에 기대 눈을 감고 있는데 “오늘 고생했네” 한마디 한다.
이런 의식도 결국은 인간이 만들었을 텐데 퇴계 선생처럼 각자 사정에 맞게 치르면 될 일이다. 아버님에게는 제사와 조상 묘에 정성을 들여야만 후손이 잘된다는 믿음이 절대적인 신앙이 돼버렸다. 100세 가까운 어른의 생각을 바꿀 수는 없을 것 같다. 우리 자식 세대가 제삿날 큰집에 모이고, 많은 돈을 들여 묘 손보는 이가 몇이나 될까? 제사 모시느라 살아있는 사람이 힘들고 괴로우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이 있나 싶었다. 하기 싫은 것이 아니라 간소하게 하자는 것이다. 우리 자식에게는 매년 벌초와 제사에 발 묶여 먼 거리 오가는 힘든 환경은 만들고 싶지 않다.
첫댓글 요즈음은 대부분 제사를 간소하게 지내는데 선생님댁은 특별하네요. 아버님이 살아 계시니 어려워도
당분간은 그렇게 해야 될 것 같아요. 번거롭다고 제례 순서를 다 건너뛰고 지내다 보면 조상께 너무 소홀하다는
생각도 들어요. 우리 집은 조상 숭배의 날을 정해서 같은 날 합동으로 지냅니다.
곽주현 선생님 말씀에 공감합니다. 조상님도 후손이 즐겁게 추모하길 바랄겁니다.
큰 일 치루셨네요. 이제 내 년까지는 마음을 놓으셔도 되나요? 저도 다음 달에 제사가 있어서, 그 생각하면 마음이 조금 무거워집니다.
아이고 정말 고생하셨겠네요.
제 주변에도 성균관에서 나온 상차림으로 명절을 쇤다네요.
가풍에 따라가겠지만 나라에서 그렇게 하라고 한다니까 그집 시어머니도 더이상 뭐라고 안 하셨다고 하네요.
백 세를 눈 앞에 둔 시아버지가 대단하십니다.
지금껏 잘 해 오셨으니, 몇 년만 더 참으시지요.
그 모든 일을 관장하는 형님이 보살이시네요.
고통의 끝에 계시네요. 잘 해결해 내시기를 바랍니다. 지금처럼, 응원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