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직(辭職)하다.
양태사는 더욱 성은이 감격하매 머리를 조아려 사은하고, 가솔을 거느려 취미궁으로 거처를 옮기니, 이 궁이 종남산(終南山) 산속에 있으매 누각과 정자는 장려하고 경치가 아름다워 마치 삼신문의 선경(仙景) 같더라. 태사가 상께서 내린 조칙과 어제하신 글을 봉하여 받들어 모셔두고, 그 밖의 누각을 두 공주와 모든 낭자들에게 나누어 거처를 정하니라.
태사는 날마다 물가에 나아가 달빛을 즐기고 골짜기로 들어가 매화를 찾으며 석벽을 지난즉 글을 짓고 소나무 그늘에 앉은즉 거문고를 안고 타니, 늘그막에 조촐한 복이 더욱 사람들로 하여금 부러워하게 하고, 승상이 한가함을 즐겨 손을 맞지 아니함이 또한 여러 해가 되겠더라.
팔월 열 엿새가 태사의 생일이라 모든 자녀들이 잔치를 베풀고 오랜 삶을 기릴새, 잔치가 십여일에 이르니 그 번화한 광경은 도저히 형언치 못하겠더라 잔치를 파하매 모든 자녀들은 각기 집으로 돌아가니라.
어언 구월이 되니 국화는 꽃봉우리가 벌어지고 수유(茱萸)는 검붉은 열매를 드리우매 하늘이 높아지는 가을을 맞은지라, 취미궁 서쪽에 높은 봉이 있으니, 그 위에 오르면 팔백 리 진천(秦川)이 손바닥같이 보이는지라 태사가 가장 그곳을 즐기는데, 이 낧은 두 부인을 비롯하여 여섯 낭자들과 더불어 그 대에 올라, 머리에 국화 한 송이씩을 꽂고 가을 풍경을 바라보며 서로 마주앉아 술을 마시니, 이윽하여 지는 해는 높은 산봉우리를 넘어가고 흐르는 구름은 그늘 너른 들에 드리우니 가을 빛이 한결 찬란하여 마치 그림폭을 펼친 듯하더라. 태사가 옥통소를 꺼내어 한 곡조를 부니 그 소리가 매우 처량하여, 원망하는 듯, 사모하는 듯, 하소연하는 듯하여 모든 미인들의 가슴을 메우므로 두 부인이 물어보되,
“상공께서는 일찍이 공명을 이루고 부귀를 오래 누리심은 세상 사람이 한가지로 얼컫는 바요,
또한 옛날에도 보기 드문 사실이온데, 좋은 계절에 좋은 날을 맞아 경개를 정히 쫓고, 국꽃잎을 술잔에 띄우며 미인이 자리에 가득하오니 이 역시 인생에 있어 즐거운 일이거늘 퉁소 소리가 너무도 처량하여 첩들로 하여금 눈물을 참을 수 없게 하오니, 오늘의 퉁소 소리가 지난날의 곡조와 다르옴은 어찌 된 일이오니까?”
이 말에 태사가 불현듯 퉁소를 던지고, 자리를 옮겨 앉으며 하는 말이,
“북은 평탄한 들이 사방으로 펼쳐저있고, 나무 없는 고갯마루는 외로이 섰는데, 쇠잔한 태양볕이 거칠은 수풀 사이로 희미하게 비치는 것은 진시황의 아방궁이요, 서에는 바람이 수풀을 스치고 저무는 구름송이가 산을 둘러싸니 이는 곧 한무제의 무릉도원(武陵桃源)이요, 동에 회칠한 담장은 청산에 비치고 붉은 용마루는 하늘로 치솟으며, 또한 밝은 달이 스스로 찾아들고 스스로 물러가매 옥난간 머리에 다시 기댈 사람이 없는 곳은 바로 현종 황제가 양귀비(楊貴妃)와 더불어 노시던 화청궁(華淸宮)이니, 슬프다, 이 세 인군(人君)이 모두 다 만고의 영웅이셨건만, 이제는 어디 계시는고? 소유가 초땅의 미천한 선비로써 은덕을 입고 벼슬이 장상(將相)에 이르고, 또 부인과 낭자 여러분과 더불어 만나 두텁고 깊은 정이 늙도록 친밀하니, 만일 전생에 기억하지 않은 연분이면 능히 이에 이르지 못하리라. 우리 무리가 한 번 돌아간 후면 높은 대는 스스로 무너지고 깊은 연못은 스스로 메워지며, 노래와 춤을 추던 집이 변하여 메마른 풀과 싸늘한 연기를 이루면, 필연 나무하는 아이와 소 먹이는 더벅머리 총각들이 슬픈 노래를 주고 받으면서 이는 바로 양태사가 모든 낭자와 더불어 노니던 곳이라, 대승상의 부귀, 풍류와 모든 낭자들의 아리따운 용모와 고운 태도가 이미 적막하도다 하리니, 이들 초동목수(樵童牧豎)가 우리가 노니던 곳을 보는 것은 바로 내가 저 세 인군의 궁(宮)과 능(陵)을 보는 것과 같을지라, 일로 보건대 사람이 살아있는 것은 순식간이 아니리오? 천하에 세 가지 도가 있으니 유도(儒道)와 불교(佛敎)와 선술(仙術)이라, 이 세가지 중에 오직 불교가 높고 유교는 윤기()倫紀)를 밝히며 사업을 귀히 하여 이름을 후세에 전할 따름이요, 선술은 허망한 것에 가까워 예로부터 하는 자 많으나 경험을 얻지 못하니, 진시황과 한무제와 현종황제의 사적을 보면 가히 알리로다. 소유는 벼슬을 마친 후로 밤마다 꿈속에서 부처님을 배례하니, 이는 필연 불가(佛家 )와 연분이 있음이라, 내 장차 장자방(張子房)이 적송자(赤松子: 옛날의 중국 신선)를 따라서 소원을 이루고 남해에 가서 관세음보살을 찾으며, 오대산(五臺山)에 올라 문수보살(文殊菩薩)을 만나 불사불멸(不死不滅)의 도를 얻어 인간계의 괴로움을 벗고자 하나, 다만 그대들과 더불어 반평생을 상종하다가 장차 멀리 이별 하겠기에 비창한 마음이 자연 퉁소 속에 나왔노라.”
하시매 모든 낭자들이 스스로 감동하여 말하였다.
“상공이 번화한 가운데서도 그런 마음을 가지시니 어찌 하늘이 정하신 바 아니오리까? 첩들 형제 팔인은 마땅히 깊은 규중에 한가지로 거처하여 조석으로 부처님을 뵈옵고, 상공께서 돌아가시기를 기다릴 것이오니, 상공께서 이번에 가시면 반드시 밝은 스승을 만나고, 어진 벗을 만나 큰 도를 이루실 터이온즉 엎드려 바라옴은 상공께서 도를 터득하신 후에 먼저 첩들을 가르쳐 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