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머스 모어가 ‘생계에 대한 걱정 없이 가족, 이웃과 즐겁게 사는 곳’이라고 칭했던 ‘유토피아’(1516), 칼 맑스가 ‘마침내 발견된 정치적 형식’이라고 예찬했던 ‘파리코뮌’(1871), 사이토 고헤이가 성장의 속도를 늦춤으로써 가능하다고 한 ‘탈성장 코뮤니즘’(2021)을 저 역시 지향합니다.
또한, ‘그 곳’으로 어떻게 갈 것인가라는 물음에서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유토피아적인 운동 방식이 아닌 과학적인 운동 방식으로 제시했던 ‘현실에 대한 과학적 인식과 민주주의를 위한 실천’을 지지합니다. 저는 그들의 지향점과 운동 방식을 통해 ‘평등해서 풍요로운 사회’를 꿈꾸며 ‘지금, 여기’를 ‘지양’해 가는 운동을 중요히 여깁니다.
그 운동의 하나로 그들의 ‘문제의식’이 담긴 글들을 공유합니다. 나아가 그들을 둘러싼 논의들을 분석하고 종합하여 ‘평등해서 풍요로운 사회’로서의 ‘국가와 코뮤니즘’에 대한 ‘문제의식’을 키워 ‘책’을 써보려고 합니다.
아래의 내용은 사이토 고헤이의 문제의식이 담긴 것이어서 공유합니다.
왜 마르크스는 미래 사회상을 구체적으로 묘사하지 않았을까
이제 드디어 마르크스가 상상한 미래 사회의 모습을 살펴봅시다. 그런데 이 문제를 고민하다 보면 마르크스가 자본주의를 넘어선 사회의 모습을 애매하게 남겨 두었다는 난제에 곧바로 부딪히게 됩니다.
여기에는 그런 사회를 구체적으로 상상하는 것이 어렵다는 자명한 이유도 있고, 『자본론』이 미완인 채로 끝났다는 이유도 있습니다.
하지만 또 다른 이유도 있습니다. 미래 사회를 상상할 때 현재의 가치관이나 상식을 무비판적으로 투영할 위험이 있다는 것입니다. 즉, 현재 사회의 욕망이나 젠더관 등을 바탕으로 미래 사회의 일하는 방식과 자유·평등을 구상하는 오류를 범할 수 있습니다. 마르크스는 미래 사회는 그때그때 사람들이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굳이 구체적으로 묘사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마르크스에게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어떤 사회를 만들지 여러 시행착오를 거쳐야 합니다.
그런데 마르크스 연구자들은 소련이라는 ‘사회주의’를 표방한 체제가 있었다는 것에 안주해서 포스트자본주의의 가능성을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중에 소련의 붕괴를 맞이했고, 그 뒤 자본주의 이외의 사회상을 상상하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졌습니다. 이리하여 우리는 여태까지 자본주의를 대체할 새로운 사회상을 그려 내지 못했습니다.
이 난제를 회피하려는 듯 2000년 이후 마르크스의 『자본론』은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책으로 읽히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코뮤니즘론과 분리해서 『자본론』을 참조하면서 과로사라든가, 공황이라든가, 환경파괴라든가 하는 자본주의의 문제를 논하게 된 것이죠.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지 않을까요?
마르크스는 자신의 건강과 가족을 희생하면서까지 『자본론』을 집필했습니다. 자본주의사회를 극복하고 새로운 사회를 만들겠다는 필생의 프로젝트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마르크스주의에 편승하는 많은 사람은 더 이상 ‘코뮤니즘’을 내걸지 않습니다. ‘지나친’ 자본주의를 비판할 뿐, 요컨대 신자유주의 비판에서 멈춘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마르크스주의의 독자성은 사라지고, 그 존재 의의가 의문시되어도 도리가 없고, 쇠퇴하고 말 것입니다.
역시 우리는 코뮤니즘이라는 유토피아를 상상하기 위해 『자본론』을 읽어야 합니다. 그래서 마지막 장에서는 이 난제에 감히 도전하려 합니다.
『자본론』에 담지 못한 것들
앞 장에서도 언급했지만, 마르크스의 사상은 시대마다 크게 달라집니다. 따라서 어느 시기에 주목하느냐에 따라 논의 내용도 달라지는데, 필자는 만년의 마르크스에 주목하고 싶습니다.
망명지인 런던에서 『자본론』 집필에 착수한 마르크스는 1867년 제1권을 출간한 이후에도 매일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대영박물관 열람실에 틀어박혀 연구를 계속했습니다. 하지만 건강이 악화되기도 해서 새로 공간(公刊)한 저작은 거의 없었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만년의 마르크스 사상을 제대로 알려면 엥겔스가 편집한 『자본론』을 읽는 것뿐 아니라, 마르크스 자신이 쓴 『자본론』 초고나 준비 노트로 돌아가서 『자본론』 제2권, 제3권을 완성하기 위해 그가 어떤 연구를 했는지를 알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이 최근 들어 비로소 가능해졌습니다.
새로운 전집, MEGA로 간행된 발췌 노트를 검토하면 마르크스가 만년에 무엇을 공부하고 어떤 문제의식을 가졌는지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책 4장에서 언급한 리비히와 프라스에 관한 발췌 노트도 그렇지만, 거기에는 삼림파괴나 자원 고갈과 같은 환경문제에 관심이 깊어지는 것이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MEGA로 분명하게 된 것은 그것만이 아닙니다. 마르크스 자신의 이론을 전환하도록 몰아갔던 심리적 갈등도 새겨져 있습니다. 여기에서도 독해의 열쇠가 되는 것은 마르크스의 물질대사론입니다.
[출처] 제로에서 시작하는 자본론, 사이토 고헤이 지음, 정성진 옮김, arte 2024, 197~2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