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롯의 제목만 보았을 때는 어떤 소설이나 영화, 드라마를 떠올릴 수 있었다. 하지만 막상 내용을 읽어보니, 단순한 이야기 틀을 넘어서 역사와 문화, 인간 본성까지 깊이 파고드는 설명이 숨어 있었다.
● 도주와 추적 플롯
인류의 역사와 함께 발전해온 서사라는 설명은 뜻밖이었다. 단순히 스릴러나 액션 영화의 장르쯤으로 생각했던 이 플롯이, 사실은 인간의 생존이 걸린 원형적 게임—사냥과 전쟁—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술래잡기와 숨바꼭질마저도 ‘도주와 추적’이라는 원형의 변주라는 사실은 새로웠다. 규칙, 인물, 공간의 설정이 이 플롯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도 알게 되었고, 이것이 글쓰기에 직접적인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역시 교과서적인 설명이 주는 탄탄함이 느껴졌다.
● 만남과 엇갈림 플롯
관계를 중심으로 한 유형이라 하지만, 문득 원시 시대에도 ‘관계’가 이렇게 중요한 가치였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상하 관계, 부부, 친구, 선후배, 제자와 스승, 연인, 형제, 가족, 동료 등… 우리는 수많은 관계 속에 얽혀 살지만, 이런 복잡한 관계망은 인간이 정착 생활을 시작하면서 비로소 깊어졌던 게 아닐까.
로미오와 줄리엣이 셰익스피어에 의해 네 번이나 각색된 이야기라는 점은 새로웠다. 또한 sentimentality(감상)와 sentiment(정서)의 차이를 알게 되었지만, 저자의 정의가 절대적인지, 다른 견해는 없는지도 궁금해졌다.
신파로 흐르지 않으려면 관계에 필연성과 설득력, 그리고 인물의 내적 동력이 필요하다고 했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장면이나 구조를 말하는지 머릿속에 선명하게 그려지진 않았다.
● 배신과 헌신 플롯
처음 제목만 보면 ‘만남과 엇갈림’ 속에 들어갈 수 있는 유형처럼 보였다. 저자는 배신이 동물적 본능에서, 헌신이 인간적 이성에서 비롯된다고 했는데, 나는 오히려 그 반대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플롯은 자본주의나 능력주의 사회의 맥락에서 더 두드러질 것 같았다. 배신을 이기심, 헌신을 이타성으로 대응시키는 문학적 표현이라는 설명은 이해가 다소 어려웠다. 예시로 든 『연을 쫓는 아이』가 어떻게 이 플롯과 맞닿는지도 잘 감이 오지 않았다.
결국, 읽을수록 드는 생각은 같다. ‘이대로만 쓰면 참 좋겠다.’ 하지만 동시에 압박감이 따라온다. 알면 쓸 수 있을 것 같은데, 아는 순간 오히려 더 쓰기 어려워지는 역설. 이론이 실제 창작으로 넘어가는 순간, 그 간극은 책이 말해주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이 책은 유용한 지도이자 동시에 두꺼운 안개처럼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