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장
有物混成, 先天地生. 寂兮寥兮, 獨立不改, 周行而不殆, 可以爲天下母. 吾不知其名, 字之曰道. 强爲之名曰大, 大曰逝, 逝曰遠, 遠曰反, 故道大. 天大, 地大, 王亦大, 域中有四大, 而王處其一焉. 人法地, 地法天, 天法道, 道法自然.
(도道는 이미 자리하는 바를 가지는 바가) 있었던 물건이고, (모양이) 어렴풋하고 어슴푸레하지만, (모양이) 어우러지고 아우러진 물건이며, (또렷하고 뚜렷한 모양의 천지만물을) 이루는 물건으로서, 천지(만물)의 생겨남보다 앞선다. (도道는 또렷한) 소리를 가지는 바가 없다! (뚜렷한) 모양을 가지는 바가 없다! (따라서 천지만물은 도道와 더불어 짝할 수 없고, 따라서 도道는) 홀로 서며, (옛날이 가고, 지금이 왔지만, 옛날이나 지금이나 도道는 모두 또렷한 소리와 뚜렷한 모양을 가지는 바가 없는 도道일 따름이다. 따라서 도道는) 바뀌지 않고, (도道는 천지만물에게 나아가 자리하지 못하는 바를 가지는 바가 없고, 천지만물을 품지 못하는 바를 가지는 바가 없다. 따라서 도道는 천지만물에게) 두루 나아가지만, (천지만물에 의해) 위태롭게 되지 않으며, (천지만물의 생겨남과 살아감은 도道를 말미암지 않는 바가 없다. 따라서 도道는) 천하의 어미가 되는 바를 일삼을 수 있다. (따라서) 나는 그 본명을 알지 못하고, (그) 별명을 아는데, 이른바 도道이다. (따라서 나는) 그 본명을 일부러 일삼는데, 이른바 “(무위가) 큰 바.” (무위가) 큰 바는 이른바 “(유위를 떠나)가는 바.” (유위를 떠나)가는 바는 이른바 “(유위에서) 먼 바.” (유위에서) 먼 바는 이른바 “(무위에게) 되돌아가는 바.” 따라서 도道는 (무위가) 크다. (따라서 아주 먼 옛날에는) 하늘도 (무위가) 컸고, 땅도 (무위가) 컸으며, 임금도 (무위가) 컸는데, (이른바 아주 먼 옛날에는) 천하의 가운데가 네 가지의 (무위가) 큰 바를 가지는 바가 있었고, 임금은 그 (중) 하나에 머물렀다. (따라서 지금의 유위한) 세상 사람들은 땅을 본보기로 삼아야 하는데, 땅은 (무위한) 하늘을 본보기로 삼고, 하늘은 (무위한) 도道를 본보기로 삼으며, 도道는 저절로 그러한 바를 본보기로 삼기 때문이다.
荒乎難見之, 謂混. 圓全, 而不分, 亦謂之混. 混成者, 不費人力, 自然而成也.
(도道는 천지만물과 같은 또렷하고 뚜렷한 모양이) 텅 비어 있는데, 따라서 (모양을 또렷하고 뚜렷하게) 살피기 어렵다. (따라서 노자는) 일컬었다. “혼(混; 모양이 어렴풋하고 어슴푸레한 바).” (그러나 도道는 이미 모양이) 두루 어우러진 바가 오롯하고, (이미 모양이 두루 아우러진 바가) 오롯하지만, (아직 만물과 같은 또렷하고 뚜렷한 모양으로 두루 갈라지거나) 나누어지지 않은 바이다. 따라서 (노자는) 일컬었다. “혼(混; 모양이 어우러지고 아우러진 바).” (따라서) 혼성混成은 (모양이 도道는 모양이 어렴풋하고 어슴푸레하지만, 모양이 어우러지고 아우러진 바로서, 일부러 일삼는) 사람의 힘을 쓰지 않은 채, 저절로 그러하게 (또렷하고 뚜렷한 모양의 천지만물을) 이룬다는 뜻이다.
道, 無形, 而天地, 有形. 有形者, 雖天地, 亦不能無成毁. 無形, 則無先後. 亦無生, 與未生, 之, 可言也. 然有是道, 而後有天地. 故曰先天地生.
도道는 (또렷하고 뚜렷한) 모양을 가지는 바가 없지만, 천지(만물)은 (또렷하고 뚜렷한) 모양을 가지는 바가 있다. (그러한) 모양을 가지는 바가 있는 바인 천지(만물)은 따라서 (그러한 모양의 자신을) 이루는 바와 허무는 바를 가지는 바가 없을 수 없다. (따라서 그러한) 모양을 가지는 바가 없는 바(인 도道)는 (그러한 모양의 자신을 이루는) 앞과 (허무는) 뒤를 가지는 바가 (있을 수) 없다. 따라서 “(그러한 모양의 자신을) 생겨나게 하는 (바를 가지는) 바가 없는 바이다”, 따라서 “이미 (그러한 모양의 자신으로) 생겨나 있었던 바이다”, 그것은 (이렇게) 말해질 수 있다. 따라서 그러한 (모양의) 도道가 (이미 자리하는 바를 가지는 바가) 있은 다음에야, (그러한 모양의) 천지(만물)이 (자리하는 바를 가지는 바가) 있게 되었다. 따라서 (노자는) 일컬었다. “(도道는) 천지(만물)의 생겨남보다 앞선다.”
寂兮寥兮, 無聲與形也. 道, 一而已矣. 萬物, 莫能與對. 故曰獨立. 古往今來, 皆是道也. 故曰不改. 無乎不在, 無所不包. 而物, 莫能傷之. 故曰周行而不殆. 萬物之生, 莫不由之. 故曰爲天下母.
적혜요혜寂兮寥兮는 (도道는 또렷한) 소리와 (뚜렷한) 모양을 가지는 바가 없다는 말이다. 도道는 (또렷한 소리와 뚜렷한 모양을 가지는 바가 없는 바가) 오롯한 바(一; 自然·性·德·無爲·命)일 따름이다. (따라서 천지)만물은 (그러한 도道와) 더불어 짝할 수 없다. 따라서 (노자는) 일컬었다. “홀로 서 있다.” 옛날이 가고, 지금이 왔지만, (옛날의 도道나 지금의 도道는) 모두 (또렷한 소리와 뚜렷한 모양을 가지는 바가 없는) 그러한 도道(일 따름)이다. 따라서 (노자는) 일컬었다. “바뀌지 않는다.” (도道는 천지만물에게 나아가) 자리하지 못하는 바를 가지는 바가 없고, (천지만물을) 품어 안지 못하는 바를 가지는 바가 없다. 따라서 (천지)만물은 (도道) 그것을 해칠 수 없다. 따라서 (노자는) 일컬었다. “(천지만물에게) 두루 나아가지만, (천지만물에 의해) 위태롭게 되지 않는다.” (천지)만물의 (생겨남과) 살아감은 (도道) 그것을 말미암지 않는 바가 없다. 따라서 (노자는) 일컬었다. “천하의 어미가 되는 바를 일삼는다.”
名者, 正稱也. 字者, 名之貳也. 近乎名, 而非名也. 道之, 爲言以天地萬物, 所共由而得. 然近之, 而不足以盡也. 故曰字之.
(오부지기명吾不知其名의) 명名은 참된 이름(正稱; 본명本名)을 뜻한다. 자字는 (참된 이름 외의) 다른 이름(貳名; 별명別名)을 뜻한다. (따라서 별명은) 본명에 가까운 이름이지만, 본명은 아닌 이름이다. (본명인) 도道는 ‘천지만물이 더불어 하는 바로서, (본래 저절로 그러하게) 말미암는 바(由; 性·道·自然)와 얻는 바(得; 命·無爲·德)를 더불어 하는 바’를 일삼고 뜻한다. 따라서 (별명인 도道·字는 본명인 도道·名에) 가까운 바이기는 하지만, (본명인 도道의 의미를 오롯하게) 다하기에는 부족한 바이다. 따라서 (노자는) 일컬었다. “(내가 아는 그) 별명은.”
以其, 無所不包. 則謂之大. 以其, 無所不及. 則謂之遠. 行而不滯. 故謂之逝. 雖逝, 而未嘗去是也. 故謂之反. 是, 皆形容. 其, 近似者而已. 終不足以至其實. 故曰强爲之名.
(도道) 그것은 (천지만물을) 품어 안지 못하는 바를 가지는 바가 없다. 따라서 (노자는) 그것을 일컬었다. “(무위無爲가) 큰 바.” (도道) 그것은 (천지만물에게 두루 나아가) 미치지 못하는 바를 가지는 바가 없다. 따라서 (노자는) 그것을 일컬었다. “(유위有爲에서) 멀어진 바.” (도道는 천지만물을) 일삼지만, (유위有爲에게) 치우치지 않는다. 따라서 (노자는) 그것을 일컬었다. “(유위有爲를 떠나)가는 바.” (천지만물을 일삼는 데 있어서, 도道는 유위有爲를) “(떠나)가는데”, 따라서 (아주 먼 옛날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도道는 무위無爲) 이것을 떠나간 적이 일찍이 (한 번도) 없었다. 따라서 (노자는) 그것을 일컬었다. “(무위無爲에게) 되돌아가는 바.” (그런데 “무위無爲가 큰 바”, “유위有爲에서 멀어진 바”, “유위有爲를 떠나가는 바”, “무위無爲에게 되돌아가는 바”) 이것은 모두 (도道를 일부러 일삼아) 형용한 바들(일 따름)이다. 이것은 (도道의 실상에) 가깝고 비슷한 바들일 따름이다. (따라서 이것은) 끝끝내 그 (도道의) 실상에 이르기에 부족하다. 따라서 (노자는) 일컬었다. “강위지명(强爲之名; 그 본명을 일부러 일삼는다).”
道之, 所寓者. 唯天地, 爲大. 參天地. 而立者. 人, 爲貴. 而人, 莫存乎王. 王者, 有天下之, 號也.
도道는 (본래 저절로 그러하게 천지에) 자리한다. 따라서 천지는 (무위無爲가) 큰 바를 일삼게 된다. (도道는 본래 저절로 그러하게) 천지와 (더불어) 어우러진다. 따라서 (천지는 무위無爲가 큰 바를) 펼치게 된다. (도道는 본래 저절로 그러하게 만물에 자리하고, 만물과 더불어 어우러진다. 따라서) 세상 사람들은 (무위無爲를) 귀하게 여기는 바를 일삼게 된다. 따라서 (세상 사람들은 유위有爲한) 임금에게 자리하는 (바를 가지는) 바가 없게 된다. (따라서 무위無爲한) 임금은 천하가 불러들여지는 바를 가지는 바가 있게 된다.
法, 猶言準也. 易大傳曰, 易, 與天地準, 是也. 人, 有心. 而天地, 無心. 天地, 有形, 而道, 無形. 然其, 所以爲法者.
법法은 본보기로 삼는다는 말과 같다. 『역경易經』 「계사상繫辭上」은 “역易은 천지가 본보기로 삼는 바를 더불어 한다”라고 일컬었다. (따라서 본보기로 삼는다) 이것(이 법法의 뜻)이다. (노자가 살았던 당시의) 세상 사람들은 (일부러 일삼는) 마음을 가지는 바가 있었다. (그러나) 천지는 (일부러 일삼는) 마음을 가지는 바가 없다. (그런데) 천지는 (또렷하고 뚜렷한) 모양을 가지는 바가 있지만, 도道는 (또렷하고 뚜렷한) 모양을 가지는 바가 없다. (따라서 천지는 도道를 본보기로 삼는다) 따라서 (노자) 그는 (인법지人法地) 이른바 (당시의 세상 사람들이 땅을) “본보기로 삼아야 한다”(라는 문장)를 일삼았다.
則一也. 一者, 何也. 自然而已矣. 自然, 故無爲. 無爲, 故不殆. 內蘊自然之體, 而外溥無爲之用. 此, 王者, 所以與天地, 同其大也.
(도道는) 하나一이다. 하나一는 무엇인가? 저절로 그러한 바自然일 따름이다. (도道는) 저절로 그러한 바(일 따름)인데, 따라서 (도道는) 무위無爲하게 된다. (도道는) 무위無爲하는데, 따라서 (천지만물에게 두루 미치지만, 천지만물에 의해) 위태롭게 되지 않는다. (도道는) 안으로 저절로 그러한 본체(體; 性)를 쌓고, 밖으로 무위無爲한 작용(用; 命·德)을 넓힌다. 이것이 (아주 먼 옛날의) 임금이 천지가 더불어 하는 그 (무위無爲가) 큰 바(大; 道·德·自然·性·命·魂·魄)를 더불어 했던 까닭이다.
此章, 形容道之至大, 而貴重於王者, 盖欲履天位者, 以自然無爲之道, 治天下也.
이 장은 (다음을) 형용한다. “아주 먼 옛날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도道는 (천지만물을 일삼는 데 있어서, 무위無爲가) 큰 바에 이르렀다. (따라서 아주 먼 옛날 사람들은 무위無爲한) 임금을 귀하게 여기고 무겁게 여겼다, (따라서 지금의 임금은) 하늘이 자리하는 바(位; 無爲)를 일삼는 바를 일삼고자 해야 하고, 저절로 그러한 바(自然; 道)와 무위(無爲; 德)로써 천하를 다스려야 한다.” 〔홍석주는 치인治人의 입장에서 노자의 무위無爲를 이해하고 있다〕
첫댓글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모두 저의 부족함 탓입니다.
여름을 재촉하는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평안하고 행복한 주말, 휴일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