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여행기 1
류인혜
* 이십여 년 전의 원고를 다시 꺼냈다. 글쓰기의 마무리를 잘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묵은 원고를 들추는 과정에서 이 여행기를 찾았다. 파리 한국문화원에서 가진 한국수필가협회의 <제9회 해외심포지엄> 후 2003년 10월 16일부터 24일까지 파리의 주변과 이탈리아를 돌아본 이야기다. 내가 생전에 가볼 수 있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던 곳들이다. 상상하던 유럽의 도시들을 직접 본 우물 안의 개구리의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충격이었다. 아무 준비 없이 갑자기 떠난 여행이라서 좁은 시선이라는 게 아쉽다. 세월의 간격이 크지만, 오래된 수필을 대하는 감성으로 읽어주었으면 감사하겠다. 책으로 엮어내지 못하는 대신 한국수필작가회 카페에 올린다.
* 드디어 출발이다
2003년 10월 16일(목) 의정부에서 8시 지나서 출발한 공항버스는 일산 뉴코아 앞에 선다. 송추를 지나고 김포공항을 거쳐서 인천공항에는 10시 10분 전에 도착했다. 늦지 않아서 다행이다. 큰아이의 것인데, 커서 번거롭지는 않을까 걱정하며 끌고 간 여행 가방은 지금까지 사용하던 것에 비하면 무척 편리하다. 그래서 크기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약속한 10시가 지나도 이번 ‘파리 심포지엄’을 주관하는 박영혜 교수가 보이지 않는다. 급해진 마음에 주최 측에서 전화를 걸었다. 오후 4시에 출발이라고 알았다는 내용이다. 입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한마디씩 한다. 10시 30분에 집에서 출발한다는 전화가 왔다. 일행이 출발 게이트 앞에서 나갈 시간만 기다리고 있는데 박 교수가 다행히 늦지 않게 도착했다. 우리와 합류가 안 되면 다른 비행기를 타고서라도 파리까지 가려고 했단다. 모든 일에 확인 또 확인이 필요하다.
걱정거리가 없어졌으니 여행의 즐거움이 다시 솟아난다. 면세구역으로 나가서 시세이도 콤팩트 2개를 샀다. 여행비를 보태준 며느리에게 줄 선물을 먼저 챙긴다. 짐을 줄이기 위해서 간단하게 포장해 달라고 했다. 따로 있는 내용물을 곽에 넣는 과정에서 표면에 손톱자국이 났다며 직원은 작은 손가방을 덤으로 준다. 모두 부탁받은 물건이나 선물을 먼저 챙겨서 면세점 비닐 가방을 하나씩 들고 떠났다.
우리의 단체석은 뒤편이다. 김병권 선생이 사모님과 앉기를 원하고, 조한숙 선생이 서종남 선생과 가까이 앉기를 원해서 자리 바꾸느라 잠시 어수선했다. 또 다른 일행은 이 숙 사무국장과 김상희 간사, 강원도에서 온 이정자씨, 수필을 배우고 있다는 양순태씨와 이성애씨, 한국수필작가회의 임승렬, 김희선, 허정자 선생이 동행했고 주영준 선생은 옆자리에 앉으셨다. 파리여행사의 서울지사장이 우리를 이끌고 간다.
주 선생님은 이탈리아를 소개하는 책을 준비해오셨다. 여행에 동참하기를 떠나기 일주일 전에야 결정한지라 ‘안내서를 한 권 사야지’ 생각은 하면서 덤벙거리며 보냈기에 반가워서 얼른 얻어보았다. 인터넷으로 자료를 찾는 것보다 체계적이고 자세하게 나와 있다. 그러나 제대로 읽어지지 않는다. 뚱뚱한 흑인 여자가 우리 뒤의 마지막 자리에 혼자 앉아서 의자를 젖히면 밀어버리면서 싫어한다.
우리가 탄 에어프랑스 267편은 인천공항을 12시 40분에 출발하였다. 시차가 7시간이라는 프랑스 파리의 드골 공항 도착은 현지시간으로 오후 3시 35분이다. 파리까지는 10시간 이상이 걸린다고 하여 느긋하게 기내에서의 생활을 즐겼다.
다리를 펴려고 일어나 주방 쪽에 있는 창으로 밖을 내다보았다. 구름 위 멀리 지평선이 펼쳐져 있다. 광활한 초원처럼 넓은 구름 밭이다. 비행기를 탈 때마다 당연히 보는 광경이 해외여행이라니 하늘도 더 넓게 보인다. 생각까지 제멋대로 떠다녀 구름 밭이 흡사 설원을 보는 느낌이다. 영화 <닥터 지바고>에서 주인공이 지친 다리를 끌고 한없이 광활한 설원을 걸어가던 장면이 떠오른다. 가슴 저리던 아픔이 되살아나는 듯 마음이 어수선해지며 미지의 세계로 다가가는 흥분이 좀처럼 가시지 않는다.
되돌아와서 자리에 앉아 있는데, 누군가 “우랄산맥이다” 한다. 재빨리 달려갔다. 비행기는 군데군데 눈이 덮인 회색의 거대한 산맥 위를 한없이 날아간다. 북경을 지나고, 중앙아시아를 거쳐서 러시아와 북유럽을 통과하여 파리로 향해 가고 있다. 바다 위를 지날 때는 구름 밑으로 푸른색이 펼쳐졌다. 3만8천 feet 높이를 유유히 날아가는 하늘 배다. 눈에 보이는 길이 없는 하늘을 날아가는 비행기가 가장 안전한 이동수단이라니 이해가 되지 않는다.
잘생긴 남자 승무원의 ‘마담’이라는 발음이 듣기 좋다. 비행시간 동안 두 번의 식사가 나왔는데 기내식의 내용은 다양하여 다 먹기 힘들도록 양이 많다. 과일주스는 사과와 도마도, 오렌지주스다. 프랑스 비행기라서 그런지 작은 병에 담긴 포도주도 있다. 무심히 지나쳤는데 나중에는 소화에 도움이 되라고 그 포도주를 주문해서 조금 마셨다. 허 선생은 얼큰한 국물 생각이 난다며 라면을 청했다. 라면과 샌드위치도 간식으로 제공되고 있다. 벽 쪽으로 음료수를 놓아서 자유롭게 마시게 한다. 그런데 주방이 화장실 옆이라서 좀 뭐하다.
도착이 가까워지는지 입국신고서를 쓰라고 한다. 가이드는 안 써도 된다고 하지만 일단 준비는 해놓고 보자고 영어로 쓰는데, 쓰는 게 아니라 그려진다. 내가 사는 동네를 영어로 표기하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일인지 진땀이 났다. 그냥, 발음대로 쓰라던 친절한 한국인 승무원이 대신 적어 주었다. ChuagHak Jukug apt, Bulnemun, NamYangJu, KyungKiDo, KOREA 그냥… 그냥이 잘 안되니 걱정이지.
첫댓글 류인혜 선생님! 저는 우물 안 개구리라 실토합니다. 현재 여행이라면 제주도 두 번 인도네시아 일본 몽골이 전부입니다.
그래도 아름다운 추억이었습니다. 이제 앞으로 저도 유럽 쪽으로 눈길을 돌려 보려고 합니다. 제일로 가고 싶은 곳은 이탈리아
입니다. 르넹상스의 그 곳에 가고 싶어집니다. 감사합니다.
임재문 선생님, 댓글 감사합니다.
20년 전에 여행했던 기행 얘기가 또다시 빛을 보게 되는 군요.
임재문선생님처럼 저도 우물안 개구리였습니다. 작년에서야 몽골과 올 봄에 라오스를 다녀왔더으니 저로선 많이많이 부럽습니다.
정말이지 그때 여행했던 걸 맛갈스럽게 썼군요. 끝까지 읽어보려고 다짐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