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문이 없는 집
어릴 때 우리 집 대문은 사립문으로 만들었다. 도리깨 만들 때 사용하는 물푸레나무 회초리로 엮어서 만든 대문이라 무게도 매우 무거웠다. 무게가 버거운 만치 여닫기도 불편하고 힘이 약한 사람은 대문을 여닫기도 힘들었다. 시대의 변천으로 사립문 재료도 비싸 비용이 많아 만들기도 어렵다. 소년가장이던 내가 가벼운 철판 문으로 개조한 일이 있었다. 그러나 생각해보니 농촌에는 대문이 필요 없는 일로 느껴진다. 도둑도 없는 농촌에 불편한 대문을 구태여 사용하는 일이 소용 없는 짓이라 느꼈다. 1975년도 내가 번 돈으로 목재 한옥을 새로 지으면서 대문도 없애버렸다. 여닫기도 불편한 대문이 필요 없다는 생각이 옳았다. 대문은 스스로 자기 감옥을 만드는 일이나 다름없다. 마음대로 자유롭게 드나드는 생활에 오히려 방해되기 때문이다. 언제나 우리 집에 오는 사람도 도움을 주려는 사람이지 괴롭히려고 오는 사람은 극히 드문 일이다. 방문자도 불편하지 않고 편리하게 드나들어야 사람 사는 집이다. 한옥 새로운 주택을 만들고 대문은 없이 살고 있으니 어떤 사람은 이상하게 생각했다. 집은 좋게 지어 놓고 대문은 없는 것이 흠처럼 보인다는 말이다. 대문을 설치하는 돈이 아까워서가 아닌데도 말이다.
이웃 친구도 내가 지은 한옥을 보고 나와 같이 기역자 한옥으로 지었다.집터가 넓어 우리 집보다 한 칸 늘려 6곡을 멋지게 만들었다. 거창한 한옥 새집을 마련하고 대문도 철 대문으로 세우려고 가져다 놓았다. 친한 친구라 주저하지 않고 이렇게 말했다. 철 대문은 꼭 필요해서 세워야 하는 일이 아니면 그만두라고 했다. 철 대문 여닫는 소리가 마치 감옥에 사람 가두고 여닫는 소리같이 들리기 쉽다고 말이다. 그 친구는 내 말을 알아듣고 망설이지 않고 철 대문을 반품해 버렸다. 친구도 나와 같이 아직도 대문 없는 집에 살고 있다. 우리 뒷집은 나이 많은 부부가 살고 있었는데 매일 철 대문을 잠그고 들일 하러 간다. 가난한 집이라 훔쳐 갈 물건도 없고 도둑 걱정할 처지도 아니다. 습관이 되어 대문을 자물쇠로 철저히 잠그고 나간다. 도둑이 두려운 일이라면 오히려 도둑의 심리는 대문의 자물쇠를 힌트로 이용한다. 이 집은 주인이 멀리 갔다는 신호로 보일 것이다. 도둑에게 집이 비어 있으니 안심하고 뒤져도 된다는 힌트다. 도둑은 허술한 울타리를 넘어 이용하기 때문이다. 다른 집의 사람들은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 없고 관심도 없다. 대문의 자물쇠가 모든 의문을 안심권으로 묶이기 마련이다. 도둑이라면 이웃 모르게 내부에서 마음 놓고 도둑질하는 누림이다.
마을을 쭉 둘러봐도 대문 있는 집이 부자집이거나 평화로운 가족 환경이 아닌 듯 보인다. 마을의 대문 있는 집은 하나같이 궁핍한 집들이다. 즉 대문을 철창살로 든든하게 만든 집일수록 행복의 빈도가 멀게 느껴진다. 대문을 반납한 친구도 대문을 달아서 부럽게 사는 이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깨달은 일이다. 우리 뒷집은 노인 부부가 돌아가시고 철 대문은 망가져 녹아내려 집은 폐가로 수풀이 덮혀진다. 창고 채는 이미 무너지고 말았다. 뜻밖에도 수풀 속에서 산소가 만들어지고 있어서 공기는 늘 맑은 공기를 만들어 내고 있다. 대문은 생활의 치장이 아니고 편리해야 할 생활에 지장물이었다. 자가용 자동차가 드나들려면 불편하기 짝이 없다. 우리 마을에 대문을 만들어 사용하는 집은 손가락 수 안에 든다. 가정에 행복이 들어오려다가 대문 때문에 망서리고 되돌아간다는 비유 말을 친구처럼 알아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몇 농가만 빼면 대문 없는 마을이라고 자랑할 일인데 말이다.
미신은 아니지만 농촌에는 사람이 걸어 다니는 길을 막는 사람이 간혹 보인다. 뉴스에도 자기 땅이라고 포장길을 막아 주민들 불편을 조장하는 일도 사진까지 보도한다. 필자가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길을 막아 망한 사람들을 많이 보아왔다. 지금도 사람이 별로 다니지 않는다고 길을 막아버리려는 사람이 있으면 길을 막아 망한 사람들을 열거해 보인다. 내 말을 들은 여러 사람이 길 막을 생각을 멈추고 그만둔 일을 경험했다. 마치 미신처럼 길을 막고 망한 사람들은 하나도 잘 된 사람이 없다. 다니던 길을 막으면 불편을 감당 못하게 느끼는 고역이다. 대문 만들어 자기 감옥처럼 불편한 생각이다. 반가이 맞아야 할 이웃 많은 사람들의 원성을 사기도 한다. 그 원성은 결코 그냥 잊히지 않는 원수 갚음의 기회로 재생산되기에 알맞다. 누구나 원한을 가지면 보복의 생각이 생기는 이치다. 많은 사람에게서 이런 보복성의 화살이 겨누어오면 마음도 괴롭고 생활의 안정도 위태롭다.
제주도 여행에서 대문 없는 마을의 정경을 유심히 관찰해본 일이다. 이웃 사이의 인정이 생활의 이용 방법에서 나타나는 표현이다. 서로 믿고 사는 사람들의 자유로운 마음은 좋은 생각을 불러낸다. 남을 의심하기 시작하면 한도 없고 끝도 없는 일이다. 집을 장기로 비우는 경우가 아니면 현관문을 잠그지도 않는다. 수 시간 내로 귀가하는 출타는 TV도 끄지 않는다. 만약 도둑이 와도 그 심리가 주인의 귀가 시간을 예측하지 못하게 하는 방법이다. 귀가 시간이 길어지면 아예 라디오를 켜두고 나간다. 간덩이가 어지간히 큰 도둑은 TV나 라디오 혹은 조명등이 켜진 집안을 침범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방법보다는 대문 없는 농촌 마을이 자연스럽고 훨씬 자랑스러운 모양이다. 동양화가 여백의 여유로 돋보이는 이치와 통한다. 사랑하는 마음에는 너그러운 여유가 생긴다. 그 여유가 사람을 사랑하게 하는 무게를 지니는 일이다. ( 글 : 박용 202112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