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 어머니의 영수증 관리
어머니는 언제나 자식 교육을 입으로 가르침보다 행동 자세 보임으로 가르친다. 회초리 같은 매를 드는 교육도 아니고 매서운 꾸중이나 욕설은 더욱 아니다. 욕설은 아예 입에 담지도 않았다. 그래서 나는 친구와 다투어도 욕설 재주가 달려 말싸움에서 언제나 진다. 어머니도 욕설을 배우지 못했나 욕설은 절대로 없었으니 말이다. 내가 저지른 일이 뉘우쳐 후회가 심각하도록 심리적인 부담이 생기게 하는 교육이다.
저지른 후에 어머니 표정에서 읽히듯 시간이 지나도 나의 잘못을 스스로 깨닫게 한다. 사건을 지나고 보면 언제나 어머니의 생각이 옳았고 후회하는 내 마음 뉘우침이 들게 마련이다. 같은 내용의 잘못은 두 번 다시 저지르지 않기를 속으로 맹세하게 된다. 그래서 어머니의 생각이 옳았고 내 생각을 늘 이겼다. 어머니처럼 생각하고 그렇게 행동해야 하는 일인데 그게 실천되지 않았다. 어머니 치부책 생각이 자주 떠오른다.
어머니가 32살에 정치 분란의 소용돌이로 남편을 저세상으로 보내고 3남매를 키우며 어렵게 살았다. 말라비틀어진 내 배총이 걸린 문고리 장롱에는 치부책이 있다. 학교 다닐 적 갖고 다닌 신발주머니처럼 천으로 만든 주머니에 치부책을 담아 구석에 걸어 놓았다. 치부책은 금전출납부로 가계 수입 지출이 기록으로 세밀히 적힌다.
치부책에는 중요한 영수증을 담고 있어 영수증 증거 역할이 확실했다. 영수증이라야 법적 효력을 가진 법례로 작성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확실한 증거를 남기기도 한다. 특히 누구에게 돈을 지불할 적에는 돈을 받는 사람에게 돈 받는 명목의 수령액을 적어 달라고 한다. 받는 사람의 직접 쓴 친필이라 법적으로도 명확한 증거 자료다.
마을 이장의 세곡을 주면서도 받는 사람에게 돈의 명목과 금액을 적어 달라 요구한다. 그날의 날짜도 반드시 먼저 기록하게 되어 있다. 수리조합 도감이 수세를 받으러 와도 꼭 기록을 받아둔다. 반장이 산림조합비를 받아 갈 때도 반장의 글씨로 기록을 남겨 치부책에 적도록 한다. 온통 세상이 믿을 수 없어 속지 않기 위해서 어머니만의 방법이다. 모든 지출하는 돈은 다시 억울하게 거듭 당하는 일을 없애는 일이다. 보호자 없는 여인이라고 업신여기는 세상이기에 말이다.
윗덤에 사는 이장이 밀린 마을 분전 받으러 왔다가 어머니에게 당하는 꼴을 보았다. 분전의 돈만큼은 반장이 아닌 꼭 이장이 직접 받으러 다닌다. 마을 분전이란 호세 등급에 따라 매겨지는 마을 경비다. 분전에는 상이군경회비, 적십자회비, 산림조합비, 장례 때 쓰는 상려 수리비, 당산나무 제사 비용, 줄다리기 행사 비용 등이며, 지서나 상부 손님 접대비도 포함된다. 마을 공동으로 지출하는 돈은 모두 여기에 포함한다.
마을 총회 때 세대마다 등급이 매겨져 사는 형편과 경제 수준에 따라 순위를 정하여 차례로 나누어 놓았다. 이것이 호세 등급이다. 마을 분전을 나누면 집집이 분전 비용은 정해지고 이장이나 반장이 받으러 다닐 때도 있다. 이장이 지난번 분전 미납이라고 달라는 독촉이다. 어머니가 지난번에 다 내었다고 말했다. 그래도 믿지 않고 우기며 빨리 달라고 조른다. 어머니는 안방의 장롱에 보관한 치부책을 가지고 나왔다.
이장의 코앞에 치부책을 들이미니 이장이 치부책을 펼치고 자세히 읽어본다. 자기가 쓴 글로 목록과 금액이 그대로 적혀 있었다. 할 말이 없어진 이장이 마침 지나가던 이웃 아저씨에게 이거 보라고 부른다. 그 아저씨가 읽어보더니, 지급했다고 기록이 되어 있다고 한다. 돋보기를 가져오지 않아서 그런다네 하고 슬그머니 도망가기 위해 바빠졌다. 변명의 여지가 없어진 모양이다.
내가 글을 배우기 전의 일이라 속고 당한 손실을 보상받기 위한 어머니 생각이 간절했다. 그래서 나를 앞집 4종 아저씨에게 천자문 배우도록 보냈나 보다. 다섯 살부터 배운 한문 공부는 초등학교 입학할 나이까지 계속되었다. 나중에는 4종 아저씨 주선으로 중덤 서당에 입학하여 정식 한문을 배우게 되었다. 아들을 공부시켜 남에게 속는 일을 예방하기 위해 간절한 소망인 듯했다.
우리 아버지가 일본에서 사업해 돈을 많이 벌어왔다고 한다. 귀국하여 친구와 사업을 동업으로 경영하기도 했단다. 그런데 갑자기 돌아가시니 동업했던 재산은 흔적 없이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태평양전쟁 직후 사회 혼란과 좌우익 정치적인 불안 사태로 찾을 수도 없게 되었다. 한국전쟁까지 덤으로 겪으며 사람 만나기도 불가능해진 시절이다.
친하게 함께하던 아버지 친구도 사라지고 빚쟁이들만 찾아오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어머니는 설상가상으로 생계마저 위협을 당하던 일이다. 할머니가 구해오는 양식에 의존하며 자식 키우기도 어려웠다. 할머니는 점도 보아주고 다급한 환자가 생기면 푸닥거리도 해 주는 일로 이웃에 믿음을 받아온 처지다. 그러던 할머니마저 돌아가시니 그저 생계가 막막하기만 했다.
어수선한 세태 속에 어렵게 살아온 생활이 가족의 생계 걱정과 남에게 속지 않는 방법이 우선이다. 5일마다 열리는 읍내 시장에 다녀오려면 하루가 걸린다. 이십 리 신작로 자갈길을 걸어 다니기 때문이다. 시장 가는 길에는 곧은 골 물나들이 이름난 부잣집 사과밭이 있다. 부잣집 주인은 누구와 소송을 해도 지는 일이 없는 사람으로 소문난 세력가다. 시장길 중간에 부잣집 사과밭에는 사나운 셰퍼드 개가 사람을 위협한다.
그날도 도둑을 지키는 셰퍼드 개가 묶인 줄을 끊고 지나가는 어머니를 공격했다. 어머니는 다리를 물리고 등에도 개의 이빨 자국이 있었다. 어머니가 엎어지니 셰퍼드가 쓰러진 사람의 등을 문 일이다. 그래도 두꺼운 옷 때문에 덜 다친 것이다. 마침, 사과밭 주인이 나타나서 개를 붙잡았기에 더 다치지는 않았다. 개털을 태워서 고약으로 발라주었다. 그래도 어머니는 개 주인을 원망하지 않았다. 고의성이 없고 우연한 사고였기에 그런 생각이다.
값비싼 사과 열매 도둑을 지키기 위한 일이려니 그럴 것으로 생각한다. 개 단속을 방심한 사과밭 주인이 괘씸하기도 하지만, 본의 아닌 일로 남을 너무 탓하는 일도 옳지 않다는 어머니 생각이다. 무엇보다 크게 다치지 않은 일만도 다행이다. 이런 일은 영수증이 될 기록조차 필요가 없는 일이다. 개에게 물린 상처가 더 재발하지 않으니 그냥 잊어버리는 것이다.
어머니가 원수도 용서하는 마음은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었던 내 생각이다. 우리 아버지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그자의 원수를 갚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은 항상 못마땅했다. 사나운 개를 방심하여 다치게 한 곧은 골 물나들이 사과밭 주인도 미워하지 않으니 특별한 생각의 마음이다. 도대체 어머니는 미워해야 할 일을 미워하지 않는 이유를 모르겠다. 나에게 보이려는 듯이 그런 태연한 내색을 드러낸다.
어머니 치부책에도 아버지 원수 갚아야 한다는 내색의 글은 일언반구도 없다. 아예 비슷한 단어도 기록되어 있지 않았다. 남에게 항상 당하기만 하고 원수 갚음을 하지 않으면 더 당하는 수모가 있기에 말이다. 내 생각 같아서는 목숨을 걸고라도 원수 갚음이 마땅할 일이다. 생각할수록 분통 터지게 하는 울분이 참을 수 없다. 그래도 어머니가 허용하지 않는 일이니 어쩔 수가 없었다. 늘 어머니의 생각이 지나고 보면 옳았으니 말이다.
나중에 세월이 지나고 생각하니 어머니의 깊은 뜻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내가 원수를 갚으면 또 다른 원수가 발생한다. 원수의 자식이 또 원수 갚음의 이유로 등장하는 일이다. 원수 갚음의 인연은 끝없이 악순환의 연속이 되는 일이다. 원수 갚음할 때는 속 시원하고 통쾌하지만, 후유증 유발은 참을 수 없이 분해도 되돌아오는 이치다. 참기만 하고 견디는 어머니 마음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사이지만, 원수진 사람을 용서해야 한다는 진리가 어머니 생각에 알뿌리처럼 들어 있다. 그 일이 바로 나를 보호하는 일이라 믿은 것이다. 외 아들이 원수 갚는 일에 바빠지면 얻을 것이 없다는 이치다. 원수가 또 다른 원수를 낳는 일이 되니 말이다. 그런 일로 자식을 위험에 빠지게 할 수는 없다는 어머니 마음이다.
마치 폭군 연산군의 외할머니가 연산군에게 원수 갚을 빌미를 제공하는 일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폐비 윤씨의 죽임을 받은 흔적인 피 묻은 적삼을 주어 연산군을 분노케 한 일이 비극의 씨앗이다. 연산군에게 그런 외할머니 생각이 없었다면 연산군도 폭군은 면할 수도 있다는 것이 어머니 생각이다.
역사의 한중록처럼 쌓인 비극은 어머니 가슴에 살을 찢는 고통으로 남는 흔적이다. 그래서 내가 목숨 걸 일을 저지르지 않고 지금도 살아있다는 증거다. 지금의 나는 어머니 마음 쓰는 방향 덕택에 온전하게 산다. 어머니의 치부장에는 나에게 가르치는 무언의 글자 없는 교훈이 아름답게 기록되고 있었다. 형체를 나타내지 않는 어머니 교육이 성인의 그림자로 아름답다는 생각이다. 어머니의 손가락 지문이 나의 동그라미 지문과 꼭 닮았었다. 열 손가락 지문이 모두 이렇게 닮았다니 동그라미 지문처럼 어머니 마음처럼 닮아진 듯하다. 곁에서 보던 아내가 나도 지문이 동그라미라고 한다. 자세히 살펴보니 아내도 열 손가락 지문이 모두 동그라미였다.(계속)
첫댓글 해방공간 민초들의 삶을 생생하게 보는것 같습니다. 80여년이 흐른 지금 우리는 많이 풍족해졌습니다. 팍팍한 세월을 건너는 옛사람들에 대해 생각해보게 됩니다.
어려웠던 시절 견뎌온 기록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