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도와 영적전투. / お祈りと霊的な戦い。( 2023년 10월 15일 주일예배)
본문; 다니엘서 9:19-23
단 9:19 주님, 들어 주십시오. 주님, 용서하여 주십시오. 주님께서 들어 주시고, 이루어 주십시오. 나의 하나님, 만민이 주님께서 하나님이심을 알아야 하니, 지체하지 마십시오. 이 도성과 이 백성이 주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20 ○내가 아직 아뢰어 기도하면서, 나의 죄와 이 백성 이스라엘의 죄를 자백하고, 나의 하나님의 거룩한 산 성전을 다시 회복시켜 주시기를 주 나의 하나님께 간구할 때에, 21 내가 이렇게 기도드리면서 아뢸 때에, 지난번에 환상에서 본 가브리엘이, 내가 있는 곳으로 급히 날아왔다. 저녁 제사를 드릴 때였다. 22 그가 나에게 와서 설명해 주었다. "다니엘아, 내가 이제 너에게 지혜와 통찰력을 주려고 한다. 23 네가 간구하자 마자, 곧 응답이 있었다. 그 응답을 이제 내가 너에게 알려 주려고 왔다. 네가 크게 사랑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말씀을 잘 생각하고, 그 환상의 뜻을 깨닫도록 하여라.
19. 主よ、聞いてください。主よ、お赦しください。主よ、耳を傾けて、お計らいください。わたしの神よ、御自身のために、救いを遅らせないでください。あなたの都、あなたの民は、御名をもって呼ばれているのですから。」20. こうしてなお訴え、祈り、わたし自身とわたしの民イスラエルの罪を告白し、わたしの神の聖なる山について、主なるわたしの神に嘆願し続けた。21. こうして訴え祈っていると、先の幻で見た者、すなわちガブリエルが飛んで来て近づき、わたしに触れた。それは夕べの献げ物のころのことであった。22. 彼は、わたしに理解させようとしてこう言った。「ダニエルよ、お前を目覚めさせるために来た。23. お前が嘆き祈り始めた時、御言葉が出されたので、それを告げに来た。お前は愛されている者なのだ。この御言葉を悟り、この幻を理解せよ。
지난 주일에는 우리의 기도를 통해 우리의 현실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방식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긍정적으로 응답되거나, 거절로 응답될 때, 그리고 기다림의 응답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뜻이 우리의 삶에 현실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단순한 소원빌기의 기도의 차원에서 벗어나, 하나님께서 이 땅에 이루어 내실 놀라운 약속에 동참하는 주인공으로 살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창조주 하나님께 구하는 우리의 기도는 우리의 현실의 결과들을 좌우하는 놀라운 영적인 권능이며 권세인 것을 믿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저와 여러분은 육신의 현실에서 맞닥뜨리고 있는 여러가지 사실과 진실을 위해서 기도하며 순종하는 삶으로 주님과 동행할 수 있는 것이지요.
또한 우리는 눈에는 직접 보이지 않는 영적인 환경과 여건을 위해서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기도는 우리의 육신적인 감각으로는 느껴지지 않는 영역에서 일어나는 이런저런 일들을 위해서 필수적인 헌신이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눈에 직접 보이지 않는 문제를 위해서도 우리가 기도하는 사명을 감당하기를 주님께서는 원하신다는 뜻이지요. 그래서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권면합니다. 끊임없이 기도의 고백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지요.
그런데 주님께서는 중언부언하며 주문을 외우듯이 기도의 말을 반복하면서 분량을 많이 채우듯이 기도하는 것은 이방인이 기도하는 소원빌기라고 하셨습니다. 이 두 가지의 권면이 모순처럼 느껴집니다. 우리가 항상 기도하려면 어쩔 수 없이 말을 많이 하게 될 것 같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명령하시는 것은 기도의 분량을 많이 채우기 위한 목표를 달성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로 주님과 연결되어서 주님과의 대화와 소통이 멈추지 않게 하라는 가르침인 것을 믿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의 기도는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기 앞서 먼저 영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도하며, 영적전투에 임하는 군사가 가진 무기를 사용하듯 기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사도 바울은 교회가 영적전투에 임할 때 갖추고 있어야 할 갑옷에 대해 에베소서 6장 11-18절에서 설명하는데요. 그리고 마지막에 이렇게 그 전투를 치르는 태도에 대해서 이렇게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엡 6:18)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성도는 기도를 통해 이 땅에서 영적인 전투에 임해야 할 영적 전사와도 같은 존재인 것을 믿습니다. 다시 말해 구원받은 성도가 기도를 한다는 것은 이제 영적전투가 벌어지는 영적 전쟁터에서 악한 영들의 방해와 유혹, 그리고 그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한 최선의 대비 태세를 갖추는 것임을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물론 눈에 보이지 않는 전쟁과 전투이기 때문에 실감이 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영적 세계의 영향력에 대해서 가벼이 여겨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 땅에서 영적 전투에 대해서 말해 줄 수 있는 곳은 오직 교회밖에 없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교회 이외의 다른 인간공동체와 사회들은 물질적이고 현실적인 이익을 위한 다툼이나 혹은 정서적인 승리를 위해서 경쟁이라는 이름으로 애쓰고 노력합니다.
회사들이 많은 매출과 높은 수익을 위해서 경쟁합니다. 학교들이 우수한 학생들을 교육하기 위해서 경쟁을 하지요. 프로팀의 운동선수들도 승리를 위해서 애쓰고 수고하고 노력합니다. 그래야 자신의 몸값을 올릴 수 있기 때문이지요. 우리 주위의 거의 모든 사람들은 뭔가 자신에게 물질적으로 그리고 육신적으로 유익하거나, 이익이 되지 않으면 노력하고 수고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우리의 환경이 그러하다보니 우리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물질적이고 육신적인 이익을 위해서만 기도하고 구하는 것에 익숙해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기도는 영적인 차원의 권세인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물론 영적인 차원에서 기도한 결과와 응답이 우리의 현실에 기도했다는 증거로서 나타납니다. 그것이 바로 기도응답의 결과인 것이지요. 그러니 우리의 복된 삶과 아름다운 일상을 방해하는 영적인 대적과의 다툼에 있어서 필수적으로 기도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성경에는 영적전쟁과 현실의 전투가 실질적으로 맞물려 나타난 예가 많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여호수아가 이끄는 이스라엘 군과 그들을 저지하려는 아말렉 군과의 전투에서 있었던 일인데요. 출애굽기 17장 8절~16절에 기록된 내용입니다. 이스라엘과 아말렉의 전투가 벌어지는 전쟁터가 보이는 산에서 모세가 하나님께 향하여 손을 들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때 모세가 손을 올리고 기도하고 있으면 이스라엘에게 전세가 유리하고, 팔이 아파 손을 내리면 아말렉에게 전세가 기우는 것입니다. 이 모습을 본 아론과 훌이 모세의 팔이 내려오지 않도록 붙들어 주자, 결국 전투에서 싸워 이기게 됩니다. 성경은 그날의 역사를 이렇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모세가 제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여호와 닛시라 하고 이르되 여호와께서 맹세하시기를 여호와가 아말렉과 더불어 대대로 싸우리라 하셨다 하였더라 (출 17:15-16)
실제 육신으로 싸운 이들은 여호수아와 그가 이끄는 이스라엘 군인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기도로 그 승패가 갈렸던 것을 체험했던 모세는 하나님께서 자신들의 적들과 싸우셨다고 고백했던 것이지요. 다시 말해 모세는 기도하면서 받은 현실적인 응답을 통해 아말렉과의 전투에 영적인 배후와 배경이 있었음을 알았던 것입니다. 우리의 현실에서도 영적인 방해로 인해 하나님의 뜻에 저항하고 반하는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경험할 때가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하나님의 일과 그의 백성이 복된 삶을 사는 것을 방해하는 영적 존재가 있기 때문인데요. 바로 사탄과 그 졸개들인 귀신들입니다. 여전히 사탄(마귀)가 역사하고 있기에 하나님의 뜻이 곧바로 두드러지게 나타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는 일을 방해하는 마귀의 존재에 대해서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
이제 이 세상에 대한 심판이 이르렀으니 이 세상의 임금이 쫓겨나리라 (요 12:31)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엡 2:2)
사탄과 그 졸개들인 귀신들은 하나님의 나라와 그 뜻이 부흥하는 것을 방해합니다. 그리고 한 사람이라도 더 지옥에 떨어뜨리기 위해서 매일 일하고 있습니다. 자신들은 결국 심판을 받아 지옥 불에 떨어질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마지막 심판 때에 마귀에게 속한 자들은 마귀와 함께 지옥에 떨어져 멸망할 것이라고 예언하셨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계 21:8)
여기서 말씀하시는 둘째 사망은 곧 영원한 멸망을 뜻하는 것이며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은 지옥의 모습을 표현한 것입니다.
사탄과 귀신들은 하나님의 형상인 사람들을 불신자가 되게 하고, 악을 행하게 하며, 우상을 숭배하여 거짓과 위선으로 살도록 지금도 우리 주위에서 어슬렁거리며 영적인 방해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우리에게 경계하고 있습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벧전 5:8)
한 사람이라도 더 지옥, 즉 둘째 사망에 사탄의 무리와 함께 연결되어 던져지게 하려고 힘쓰고 있는 것이지요. 그러니 깨어 있어야 한다고 베드로는 말하는데요. 여기서 근신하고 깨어 있다는 것은 곧 기도하며, 영적전투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고 마귀의 세력을 대적하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도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알게 되는 유익을 누리고, 현실에서는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되기도 하지만, 영적으로는 깨어나서 정신을 차리고 하나님 나라와 그 뜻에 합당하게 살아가는 태도와 자세를 갖춘다는 말이기도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하자고 할 때, ‘나는 기도할 것이 별로 없어요.’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지요. 나는 특별히 해결할 문제나 고민은 많지 않아요... 라고 말할 수는 있어도 기도할 것이 없기에 기도할 것이 없다고 기도할 수 없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사무엘은 기도하지 않는 것을 죄 짓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여기며 고백합니다.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하지 아니하고 선하고 의로운 길을 너희에게 가르칠 것인즉 (삼상 12:23)
이 말씀은 단지 사역자들이나 교회 리더들에게만 적용되는 말씀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기도하는 것은 1차적으로 영적인 전투에 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영적 전쟁터에 있는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은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모두 하나님의 나라와 그 뜻을 위해서 기도하는 일을 쉬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자신의 필요와 욕구를 위해서는 때때로 기도하지 않을 수는 있어도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기도하지 않는 것은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매일 정해진 시각에 말씀과 함께 그 말씀을 통해 주신 감동을 제목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과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최소한 감사의 마음이 있다면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교회를 부흥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또한 함께 교회의 지체가 된 성도들이 영적으로 풍성한 삶을 누리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아직 믿지 않는 우리의 이웃들과 친구들과 또한 가족들의 죄사함과 거듭남, 그리고 영생에 속한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나라와 이 지구의 안녕을 위해서도 기도해야 합니다.
자신의 현실적인 문제만을 위한 기도만이 아니라, 이렇게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 곧 영적인 전투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우리의 고백과 선포를 통해 마귀의 활동은 꺾이게 됩니다.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 (요일 3:8)
둘째 사망에 던져지는 심판이 하나님의 형상인 사람들에게까지 일어나지 않도록 우리가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는 영적인 전투에 동참하는 것임을 잊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우리의 실질적인 삶에서도 기도를 통한 영적인 대비가 없어서 현실적인 어려움을 겪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사람과의 관계라든가, 혹은 어떤 일이나 계획을 추진하고 중요한 선택을 해야 하는 경우에 복되고 아름다운 결과를 위해서, 그리고 무탈하여 순조롭기를 위해서 미리 반드시 기도해야 하는 것이지요.
그저 자신의 인생경험이나 여러 가지 전문가들의 의견과 지식만을 가지고 결정하고, 선택하고, 계획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도하며 추진하는 일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습니다. 그래서 뜻하지 않은 변수나 혹은 방해하는 일들을 만나게 되더라도 가장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지난 주일에 나누었던 말씀처럼 거절을 통해서도 가장 선한 열매를 맺을 수 있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자신의 지식과 정보, 혹은 경험과 판단만으로 추진하고 선택하는 일들은 인간적인 생각과 지식의 한계를 벗어나는 변수를 만나면 계획이 실패하거나, 좋지 않은 결과를 얻게 되는 것이지요. 게다가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에 현실적인 어려움을 겪으며 믿음을 회복하는 기회를 얻기보다 오히려 문제 속에 더 휘말려 믿음을 저버리게 하는 마귀의 속임수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기도하며 영적으로 깨어 있는 이들은 마귀의 속임수가 있어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피할 길을 발견하지만, 기도하지 않아 영적으로 깨어 있지 못하면 그 속임수의 덫에 걸리게 됩니다. 결국은 {믿음 없는 자}가 되어 마귀와 함께 지옥으로 던져지게 되는 지경에 이르게 되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기도하며 깨어 있는 것은 현실의 문제를 해결할 가장 최선의 방책이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나라와 그 뜻을 완성해 가는 가장 온전한 순종의 모습인 것을 믿습니다.
지난 주일에도 함께 나누었던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기도하는 성도들의 기도를 통해서만 역사하시겠다고 결정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와 동역하시겠다고 하시며, 우리의 삶에 거하시며 일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함께 계시겠다고 약속하시는 말씀이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말씀은 우리에게 용기를 주시는 말씀이기도 하지만, 또한 하나님께서 당신 스스로를 제한하셔서 우리와 함께 해 주신다는 뜻이 되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들어오시려면 우리의 내면만큼 작아지셔야 하고, 또한 그만큼 제약을 경험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지금 그 일을 하셔서 우리 안에 와 계시고, 동행하고 계시며, 심지어 우리와 동역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기도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뜻이 분명한 것임에도 성취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이 역사하십니다. 그러나 기도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도 일을 멈추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는 교회의 부흥을 위해서, 영적으로 충만한 성도의 삶을 위해서, 충분히 열매맺는 삶을 위해서 기도하기를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특히 가장 먼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그리고 하나님의 뜻이 이 땅의 현실에 드러나기 위해서 기도해야 하는데요. 요즘 미디어를 통해 들리는 소식을 보면, 정말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기도할 것이 산처럼 쌓인 시대인 것을 느낍니다. 갈등과 폭력과 전쟁이 끊이지 않고, 심지어 최근에 새로운 전쟁이 시작되는 시대입니다. 내가 사는 곳과 멀리 있어서 실감나지 않을지 모르지만, 반드시 평화를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평화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모든 전쟁이 멈추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이지요.
그가 열방 사이에 판단하시며 많은 백성을 판결하시리니 무리가 그들의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들의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리라 (사 2:4)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계에 전쟁과 분쟁을 일으키는 자들은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됩니다. 특별히 그 불의한 전쟁으로 인하여 원하지 않는 고통과 비극을 겪게 되는 이들을 구원하시도록 기도해야 하고, 이 땅에 전쟁과 다툼과 갈등이 사라지는 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이기에 우리는 반드시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하실 일도 마찬가지 전쟁과 다툼과 분열을 멈추시는 일이었습니다. 원수된 것과 갈라진 것을 하나되게 하시는 사명을 십자가에서 이루셨습니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엡 2:14)
우리의 현실에 일어나고 있는 모든 악한 일들과 문제들과 고통, 그리고 환난과 염려에 대해서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친히 역사하시고 돌보시고 인도하실 것을 믿습니다. 단지 나의 개인적인 어려움을 극복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기도가 아니라, 영적인 전투에서 승리하여 하나님 나라가 현실이 된 삶을 위해서 기도하는 우리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도는 영적인 전쟁터에 사는 우리에게 주신 권능입니다. 단지 소원을 빌고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서만 기도한다면, 쉬지 않고 기도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거듭난 그리스도인의 기도는 살아계신 주님과 쉬지 않고 소통하며 연결되어 끊임없이 영적인 생명력을 공급받는 사명입니다. 예수님께 붙어있어 살아있는 가지에는 물과 양분이 쉬지 않고 공급되어 열매를 맺습니다.
우리가 기도로 주님과 연결되어 영적인 전투에 임하면 우리는 안심하고 일상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기도하지 않으면 영적인 패배를 맞이하게 됩니다. 그로 인해 일상의 문제에 휘말려 버리게 됩니다. 결국은 믿음을 잃어버린 자가 되어버립니다. 믿음을 잃으면 하나님의 나라를 방해하는 마귀가 원하는대로 마귀와 함께 지옥의 심판을 면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어 버리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우리는 영적인 전투에서 승리하는 삶을 위해 먼저 기도함으로써 현실에서도 풍성하고 풍요로운 열매맺는 일상을 살게되는 것을 믿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주님과의 행복한 동행으로 영적전투에서 승리한 주인공의 삶을 마음껏 누리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