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는 명나라 초기 작가 나관중이란 자가 쓴 중국 고전 소설이다.
이와는 달리 <삼국지>는 제3세기 진나라 사학자 진수가 쓴 역사서이고, <삼국지연의>는 제 14세기에 쓰인
민간 설화와 야사를 엮어 만든 역사 소설이다. 정사 <삼국지>는 조조를 냉철하고 능력있는 정치가며 군사
전문가로 묘사하지만 <삼국지연의>는 한나라의 왕족 유비를 덕망 있는 자로 묘사하는 것에 반해 조조를
난세의 간웅(奸雄)으로 묘사한다. 위나라, 촉나라와 오나라 세 나라를 일으키고 호령했던 조조, 유비와
손권만 아니라 세기의 책사라고 불리는 제갈량도 삼국을 다스리지 못하고 허무하게 생을 마무리하는 것을
보면서 인생사 새옹지마(塞翁之馬)이지 않을 수 없다. 유비는 관우의 장비의 죽음에 분노하여 무리하게
정벌을 감행하다가 죽고 말고, 조조는 중국의 2/3을 차지했지만 황제에 이르지 못하고 병마와 두통으로
외롭게 죽고, 손권은 후계자 문제로 정국이 어지러워지는 것을 보면서 슬프게 죽고 만다. 그렇게 힘차고
영웅적으로 의리를 지키면서 살았지만, 남는 것은 영악한 자가 차지한다는 것이다. 바로 사마의이다.
세 영웅, 즉 조조, 유비와 손권이 피 흘려 세운 삼국의 균형은 사마의 손에 넘어가고 만다.
하지만 역사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사마의가 온갖 음모와 배신으로 차지한 진나라(서진)는 삼국을
통일한 지 불과 30~40년 만에 ‘팔왕의 난’이라는 참혹한 집안싸움으로 무너졌고, 이어진 5호 16국 시대의
대혼란 속에서 멸망에 가까운 비극을 맞이한다. 사마의 다음으로 정권을 잡은 것은 사마의의 두 아들과
손자(사마염의 진나라)였으나, 자멸과 이민족의 침입으로 나라는 산산조각 났다. 그 긴 혼란을 끝내고
중국의 주인이 된 것은 훗날 수나라를 세운 양견과 당나라를 세운 이 씨 가문이었다. 오랜 세월을 통해 볼 때
자신이 사는 난세에서 영웅으로 살았지만 결국 지난 후엔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돌아간다. 누구를 위해,
정의를 위해, 정통을 위해 생을 바치고 헌신하더라도 결국 무의미하고 만다. 세대가 지나면, 다른 자가 세대를
책임진다. 지난 영웅을 내세우는 것은 자신의 정통성이나 대중의 마음을 얻고자 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아니다. 언젠가 하나님 앞에서 받는 심판만이 숙제로 남기고 영원한 세계로 쓸쓸히 잊히고 만다.
우리 각자는 뭔가를 위해 산다고 하지만 자신을 위해 사는 것이고, 무의미한 결과만을 남기고 만다.
환갑이 되면 인간 본연의 모습을 찾을 것 같기에 머나먼 세월이라고 하지만 누구든 항상 무엇에든
후회하면서 지날 따름이다. 이것이 허무한 인생이라면, 젊을 때나 여유가 있을 때 즐기고 싶은 자도 있지만,
심판을 준비하지 못했으니 가장 불쌍하고 미련한 망상이 아닐 수 없다. 이 가운데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자녀라고 확고한 확신을 지녀야 한다. 불행하고 슬프게도 이 또한 그분의 자녀라는 사실 증명도 게으른
인간이다. 먹고 마시고 입는 것이 눈앞에 어른거리기에 신기루를 좇다가 낭떠러지에 위태롭게 서고 만다.
개혁신앙인의 최고의 고백은 하나님 안에서 찾은 인간됨과 인간의 할 일을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세속 철학이나 문화를 기준으로 삼기보다 자기 증명을 위해 허송세월을 보내지 말고 그분의 규례
안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야 한다. 이 찾음은 옛 부터 신앙의 선배들이 걸어갔던 길이다.
간접의 지식이라고 이것을 깨닫는 것에서부터 자기 정체성을 찾아 적게 후회하며 사는 인생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