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여지승람에 있는 이야기다. '금정산은 동래현의 북쪽 20리에 있다. 산마루에 큰 돌이 있는 데 그 위에 샘이 있다. 둘레가 10여 척이고 깊이가 7촌 가량으로 가뭄에도 물이 마르지 않는다. 한 마리 금빛 고기가 오색구름을 타고 하늘에서 내려와 그 샘에서 논다.' 그래서 금빛 샘이 있는 산이라고 금정산(金井山)이라고 부른다.
금정산의 제일 높은 봉우리는 고당봉(姑堂峰·801.5m). 금정산 고당봉 바로 아래에 보면 고모당이라는 당집이 있다. 이미 수백 년은 된 것이다. 고모당은 고모산신 즉 할미산을 모신 당인데, 이는 우리나라의 산신 사상과 깊은 관련이 있다. 지리산 성모상이나, 한라산의 설문대할망이 그렇듯 금정산 할미도 인간 세상에 생산과 풍요를 안겨다주는 오랜 민간신앙을 반영하는 증표이다.
백두대간이 태백산에서 갈래쳐 낙동정맥이라는 큰 산줄기를 생성했다. 낙동강의 동쪽에 있고, 동해의 서쪽에 자리 잡아 내륙과 동해를 나누는 분수령이다. 그 낙동정맥이 크게 이어져 마침내 금정산에서 한번 솟구치고, 몰운대에서 바다와 만난다. 금정산은 그렇게 백두의 기세가 둥지를 튼 곳으로 대륙의 기운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산이다.
▶ 사람과 자연을 보듬다
부산의 금정산은 부산의 정신을 태동한 산이라고 말한다. 금정산성에서 일본의 침략에 맞서 싸웠다. 그래서 금정산 정신은 곧 불굴의 의지와 강건한 기운을 자랑하는 '부산의 정신'이다.
이 산의 둘레는 동쪽으로는 부산 금정구 장전동과 남산동이고, 서쪽으로는 북구 화명동과 금곡동, 남쪽으로는 동래구 온천동이며 북쪽으로는 양산시 동면으로 뻗어 있다. 백양산과 금정봉(쇠미산)이 그 뿌리가 다르지 않아 부산진구와 사상구까지 확장돼 있으니 가히 부산의 든든한 기둥이다.
금정산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호국사찰인 범어사가 있다. 신라가 왜적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기 위하여 창건한 범어사는 국청사, 해월사와 더불어 이 땅을 지켜내는 훌륭한 수호신장이라고 한다. 산세가 아름다운 금정산은 다양한 동식물도 보듬고 있다. 북문 고산습지에는 하늘산제비난, 방울고랭이가 자생하고 있고, 끈끈이주걱과 땅귀개 같은 식충식물이 사는 등 101과 271속 538종의 식물들이 있다천연기념물인 수리부엉이는 물론 붉은배새매와 동박새 등 12목 34과 89종의 조류가 사는 것으로 조사됐다. 멧돼지와 고라니 삵 등 포유류도 24종이 살고 있는 곳이어서 사람과 자연이 공존하는 곳.
▶ 둘레길은 인생이다
길은 인생이라고 했다. 늘 평탄하고 쉬운 길만 있다면 인생이 무에 그리 재미있냐고 이야기 한다. 실은 힘들지 않은 탄탄대로만 있는 길이 좋긴 하지만, 사람의 삶은 그리 녹록치 않은 것이다. 진창도 만나고, 끊어진 길에서 헤매기도 하고, 비가 오고 눈이 오는 길을 걸어야 할 때도 있다.
높은 곳을 지향하여 정상에 서야 할 필요도 없다. 먼저 앞서가거나, 느릿하게 걸어도 아무도 비난하지 않는다. 둘레길은 어쩌면 낮은 곳으로 향하고, 욕심을 버리는 무욕의 길인지도 모른다. 금정산 둘레길은 꼭 예쁘지만은 안다. 폐허가 되어버린 재개발지역을 지나기도 한다. 모든 길이 예쁘지만은 않지만, 이것이 인생길이라면 금정산둘레길을 꼭 한 번 걸어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