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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남산 둘레길
매화가 선홍색으로 피고, 개구리 알집이 꿈틀거리는 계곡으로도 봄바람이 불어댄다. 창틀은 한껏 햇볕을 받아 마음의 창까지 열어 제치며 밖으로 유혹한다. 안방까지 들이닥치는 봄기운을 외면하고 들어앉아 있을 수만은 없다. 어디로든 나가야 할 심사가 며느리 궁둥짝까지 들썩이게 하는 봄이다. 이왕이면 역사문화 이야깃거리 풍성한 서라벌로 가보자.
경주 남산 둘레길에는 역사문화유적뿐 아니라 다양한 먹거리와 예술인들이 문화예술을 꽃피우고 있다. 박혁거세가 알에서 깨어난 자리, 김유신 장군이 천관녀와의 사랑을 단칼에 베어버린 천관사지, 박혁거세를 왕으로 세운 육부촌장들을 제사하는 양산재, 신라 최초의 궁궐터 창림사지와 같은 사적지를 돌아봐도 좋다. 어차피 봄바람은 어디든 불기 마련이다. 같은 값이면 오늘의 우리를 있게 한 과거지사가 뚜렷한 공부의 자리라면 더욱 의미가 깊을 것이다.
서남산 둘레길을 돌아보는 첫 자리도 월정교로 잡아본다. 약속 장소로도 쉽고, 남천 건너편 교촌마을 주차장은 주차하기도 좋을 뿐 아니라 남쪽으로 가는 걸음이 가볍고 쉽기 때문이다. 남남산의 열암곡 입구까지 사적지를 둘러보며 들거니 나거니 하면 20㎞ 거리는 충분히 된다. 모두 걸어서 돌아보기에는 먼 거리다. 자전거 하이킹으로 좋은 코스다. 자동차로 돌아가면서 주차하고 사적지를 둘러보고, 또 다른 사적지로 옮겨가면서 역사인물들의 흔적을 더듬어보는 것도 행복한 힐링의 시간이 되지 싶다.
비파계곡의 봄
◆서남산 가는 길
신라 왕의 화려한 나들이 길에 궁궐을 나서면서 건넜을 월정교, 거창한 누각을 뒤로하고 남산의 남쪽으로 가는 서남산 둘레길 첫 걸음에 만나는 곳이 천원마을 천관사지다. 황량한 벌판에 천관녀가 놀란 표정으로 바라보는 가운데 김유신 장군이 말의 목을 내리치는 그림을 그린 현판이 천관사지임을 알게 한다. 천관사지에 대한 본격적인 발굴조사가 진행되고 있다. 한편에 석탑 부재와 주춧돌 등의 석재 30여점이 오랜 시간의 흔적을 고증하고 있다.
오릉 쪽으로 나와 남쪽으로 직진하게 되면 첫 번째 남사마을이 나오고 박혁거세가 탄생했다는 나정의 터전이 소나무 숲에 둘러싸인 공터로 남아 있다. 바로 옆에는 박혁거세를 왕으로 추대했던 육부촌장들을 제사하기 위한 양산재가 삼중 문을 달고 여러 동의 한옥으로 터를 잡고 있다. 봄철 향사를 올리는 날 외에는 대문이 굳게 닫혀 있다.
마을 안으로 들어가면 남쪽으로 날렵한 돌기둥 두 개가 나란히 하늘을 향해 솟아 있다. 보물 909호 남간사지 당간지주다. 당간지주 동쪽을 올려다보면 우람한 자태의 창림사지 삼층석탑이 사방을 살피고 있다. 남산에서 가장 규모가 큰 석탑으로 1층 몸돌에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은 팔부신중상이 새겨져 있다.
다시 남쪽으로 논둑을 따라 마을안길을 지나가면 신라 55대 경애왕이 잔치를 벌이다 견훤의 칼에 치욕을 당한 포석정이 옛날 모습 그대로 누워있다. 주변의 풍광은 아름답게 섬세한 조경이 되어 있지만 구불구불하게 물길 따라 술잔이 떠 다녔을 포석정의 돌은 물기가 없다.
다시 남쪽으로 산책길을 따라가면 지마왕릉이 고목이 된 소나무 숲에 둘러싸여 있고, 다시 남쪽으로 이어진 길을 따라 걸으면 태진지가 이색적인 풍경을 선사한다. 태진지를 지나면 남산에서 가장 오래된 석불 중의 하나로 손꼽히는 삼존불이 서 있는 삼불사가 나온다. 더 걸으면 삼랑사, 다음에 소나무 숲으로 이름난 삼릉과 울창한 삼릉숲이 나타난다.
삼릉숲과 작은 개울을 사이에 두고 아담한 경애왕릉이 엎드려 있다. 휘어진 소나무가 마치 경배를 드리는 모습 같아 신기한 느낌을 준다. 천년사직을 끝내는 견훤의 칼 끝에서 목을 늘여야 했던 왕의 처지를 생각하면 비통함을 넘어 원인 모를 울분이 치솟는다.
다시 남쪽으로 걸음을 옮기면 불상의 머리, 몸통, 다리부분이 따로 전시되고 있는 입곡 석불두가 있다. 지방유형문화재로 지정 관리되고 있지만 훼손 정도가 심해 안타깝게 한다. 남산 어디를 가도 그러하지만 특히 서남산에서 국도를 따라 내려가면서도 많은 문화유적들을 감상할 수 있다. 경주내남교도소 옆에서 시작되는 약수곡을 따라 올라가면 석불좌상과 남산에서 키가 가장 큰 마애석불입상을 만날 수가 있다. 비파곡 입구를 지나면 용장1리 주차장이 넓은 광장으로 조성돼 있다. 주차장 안쪽에는 금속공예와 꽃심기 체험을 할 수 있는 금오신화가 있는 갤러리가 카페와 함께 운영된다. 남남산쪽으로 가는 길에는 용산서원이 있고, 남남산 입구에는 노곡마을로 백운곡과 열암곡 등으로 이어지는 갈림길과 전체 둘레길이 연결된다.
약수곡 석불좌상
◆약수골과 비파골
약수곡 마애석불
삼릉에서 남쪽으로 조금만 운전하다보면 왼쪽 남산기슭에 월성대군이라는 이름이 크게 눈에 들어온다. 월성대군은 신라 제54대 경명왕(景明王)의 제8왕자로 기록되어 있다. 월성박씨는 웘어대군을 시조로 삼아 묘소가 실전된 후손 박구, 박간, 박휘, 박신겸, 박호겸, 박홍중 등 11위의 묘비를 세워 제사하고 있다. 남산 속으로 깊숙하게 잔디밭이 형성돼 있고, 월성 박씨 11위를 모신 사당이 전통 한옥으로 자리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그 뒤편에 월성대군 후손들의 묘비 11기가 세워져 있다. 사적지로 지정 관리되고 있다.
월성대군의 기념비를 끼고 남산으로 오르는 길이 약수곡이다. 약수곡 계곡을 따라 이어지는 등산로를 따라 오르면 1시간이 못되어 머리가 없는 석불좌상이 땅바닥에 털썩 앉은 모습을 만난다. 석불 옆으로는 절이 있었다는 것을 암시라도 하듯 석탑의 옥개석이 분명한 층계를 드러내고 비스듬하게 기울어 있다. 조금 더 오르면 남산에서 가장 키 큰 석불입상이 머리는 없지만 긴 옷자락을 드리우고 서 있다. 여름이면 담쟁이가 푸른 가사인양 석불의 가슴께부터 길게 띠무늬를 입힌다.
비파곡 삼층석탑
약수곡에서 다시 남쪽으로 내려오다 보면 용장4리 마을표석이 서쪽 방향에 서 있다. 남산쪽으로는 새로 건축물이 근사하게 지어지고 있다. 계곡을 끼고 산으로 이어지는 등산로를 따라 오르면 4월이 오기 전에도 풀향이 짙다. 진달래는 이미 꽃망울을 터트리고 붉게 흔들린다. 계곡은 바위가 울퉁불퉁하게 놓이고, 가끔 폭포를 이뤄 봄비에 물소리가 제법 우렁우렁 들린다.
산길은 우람하지 않은 알맞게 자란 소나무들이 숲을 이뤄 시원한 공기를 불어내고, 곳곳에 절이 있었던 터전임을 암시하는 넓은 공터와 무엇엔가 쓰였을 법한 맞춤한 돌들이 동글동글하게 앉아 있다. 계곡을 건너 산길을 오르면 다소 가파른 등산로가 형성되면서 바위들이 마치 이름 난 석공이 빚어놓은 듯 예술작품처럼 조형미를 자랑한다.
울산으로 이어지는 국도변에서 보통걸음으로 30분 정도만 걸어 올라도 전망이 시원하게 트인 비파곡 제2사지 삼층석탑에 이른다. 삼층석탑은 최근 복원돼 지방유형문화재 448호로 지정됐다. 석탑에서 서남쪽을 바라보면 멀리 들판과 마을이 포근하게 안기듯 다가온다. 이곳에 절이 있었을 것인데 아무것도 모르는 눈에도 명당으로 인정하고도 남는다.
◆용산서원
오릉에서 울산 방향으로 줄곧 차를 달려 남남산으로 연결되는 사차선이 나오기 직전 내남면사무소로 갈라지는 지점에서 남산 쪽으로 좌회전하면 이내 용산서원이 나온다. 용산서원 입구에는 최진립 장군신도비각이 있다. 용산서원은 조선 중기 최진립 장군을 향사하기 위해 건립한 서원으로 고종 7년 서원철폐령으로 철폐되었다가 1924년 다시 건립됐다.
최진립 장군은 현곡면에서 태어나 임진왜란 때 동생 최계종과 의병을 일으켜 울산에서 경주로 진격하는 왜병들을 지형지물을 이용해 크게 무찔렀다. 경주읍성 수복전투에서도 많은 공을 세웠다. 노곡전투에서는 김호 장군과 함께 싸우며 적을 무찔렀고, 영천성 복성전투에도 참여해 큰 성과를 올렸다. 정유재란 때는 권율 장군과 함께 울산 서생포전투에서 공을 크게 세우기도 했다.
장군은 또 1636년 청나라군사들이 침략해 인조가 남한산성으로 피난해 있을 때 나이 들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내가 늙었다고 군사를 맡기지 않는다면 나 혼자라도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쳐 싸우겠다”며 전장터로 말을 달려 나갔다. 아군들이 무너졌지만 장군은 끝까지 물러서지 않고 활을 당기다 온몸에 고슴도치처럼 적의 화살을 맞고 전사했다. 장군은 인조 15년에 병조판서에 증직되고 3년 이후 정려각이 세워졌다. ‘정무공 최선생 정려비’는 지금도 신도비각 안에 우뚝 서있다. 효종은 ‘정무공’이라는 시호를 내렸고, 숙종 25년 1699년에 ‘숭렬사우’라는 사액이 내려와 용산서원이 창건됐다.
용산서원은 옥산서원, 서악서원과 함께 경주에서 사액서원으로 이름이 알려지고 있다. 용산서원은 지금까지 출입문을 지나 넓은 마당을 두고 강당, 뒤편의 향사 그리고 남쪽에 포사와 유사실 등의 전통 사원의 구조를 갖추고 있다. 용산서원 입구에는 수령 300년을 넘긴 은행나무 두 그루가 높은 키를 자랑하며 가을이면 노란단풍으로 색다른 풍경을 선물한다.
용산서원 입구에는 박미숙 한식요리연구가가 운영하는 ‘수리메’ 한식전문점이 자리하고 있다. 입구에 옹기들이 햇살을 받으며 줄을 지어 서 있는 모습이 식당으로 들어서는 손님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수라상은 1인분이 10만 원, 15만 원씩 단가가 적혀 있다. 일반밥상도 1만5천 원에서 3만5천, 5만5천, 7만 원까지 네 단계로 구분해 메뉴를 적어 식당 입구에 떡 적어놓고 있다. 모두 예약으로 운영한다는 방침도 적어두고 있다.
◆남산에 사는 사람들
남산 둘레길을 돌아보는 일은 누구나 무작정 행복하게 한다. 풍부한 역사문화 이야깃거리와 함께 다양한 먹거리들이 길을 따라 늘어서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요즘시대 흐름에 맞게 아기자기한 꾸밈과 읽을거리 등을 준비하고 있는 다목적 카페들도 들어서 있다. 거기에다 누구나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체험거리들이 늘어서 있고, 여러 취향을 만족시키게 하는 문학과 조각, 공예 등의 예술인들이 반갑게 탐방객들을 맞이해 주기 때문일 것이다.
용산서워누입구 식당
천관사지
서남산에서 남남산으로 내려가면서 우선 시내에서도 손님들이 예약을 하고 찾아드는 메운탕집과 한정식으로 알아주는 식당들이 즐비하다. 주말이면 등산객들로 붐비는 칼국수집, 영양보충하려는 이들이 문전성시를 이루는 오리요리집, 백선생의 메뉴를 따라하는 TV에 소개되면서 유명하게 된 주물럭구이식당, 궁중요리전문박사가 운영하는 수리메 등등 특이한 메뉴도 많다.
유명식당도 많지만 소설을 쓰는 작가, 토기를 구워내는 도예가, 신라왕들이 썼던 금관도 뚝딱 만들어내는 금속공예가, 어디에서도 만나기 어려운 상여소리꾼, 다보탑이든 석불이든 못만드는 것이 없는 석공명장 등의 예술인들도 남산기슭에 모여 산다.
태진지
첫댓글 하나만 해도 엄청난 관광객을 유치할 수 있는 국보급 문화재들이 산재해 있다.
흘러간 시간이 아쉽고 안타깝게 느껴지기도 한다.
아름다운 경주 역사문화도시 경주
경주라는 말이 자꾸 따뜻해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