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노태구 경기대 교수
Ⅰ. 서언 : 東개념의 인식
동학의 창시자 水雲(崔濟愚,1824-1864)이 西學에 대하여 “말에 차례가 없다” 고 비판한 논리적 근거는 무엇인가? 그의 논리는 바로 不然其然1)이다. 수운은 반대일치의 E형 논리를2) 가지고 있었다. 관념론과 유물론, 합리론과 경험론, 창조와 진화는 결코 둘로 나눌 수 있는 별개의 것이 아니었다. 하나가 기연이면 다른 것은 불연일 뿐이다. 肉眼으로 보면 둘이지만 心眼으로 보면 둘이 아니다. 그러므로 육안과 심안은 둘이면서 하나이다. 불연기연은 바로 한국사상의 ‘통논리(trans-logic)’에 해당한다. 통논리적 입장에서 볼 때에 서양사상이라는 서학은 도무지 말에 차례가 없어 보인다. 물질을 배격한 정신만을 어떻게 말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더 합리적이라고 한다. 진화와 창조는 開闢이라는 말로 분리할 수 없는 성격의 것인데도, 서양에서는 진화론은 창조론을, 창조론은 진화론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수운의 ‘동학’은 단순히 ‘서학’에 대립하는 배타적인 개념이 아니다. 이를 孤雲(崔致遠)의 ‘東人’의식을 알면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고운은 중국에 유학해 있더16년 동안 민족주체의식을 느끼고 신라로 돌아왔으며, 그의 글에는 유난히 ‘東’이라는 말이 많이 나타난다. 그가 한국으로 다시 돌아와 한국문화의 우수함과 위대함을 보고 새삼 놀랐다는 말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중국에 배움을 위해 건너갔지만 ‘중국적 균열’현상에 실망하고 되돌아온 고운은 자문화에 대한 새로운 자각을 하고 있다. 하동 쌍계사 <진감선사 대공탑비문>와 봉암사 비문에는 놀라움에 대한 구체적인 표현이 있다.
“아름다운 동쪽 나라의 유순한 성격으로 하여 … 하물며 동방 제후의 나라도 우리와 같이 큰 것이 없고, 인걸지령은 생명을 사랑하므로 근본으로 삼고, 풍속은 서로 사양하므로 그것으로 먼저 하니, 밝고나 태평의 봄기운이 은은하구나.”
고운의 이 말 속에는 풍류도의 삼교정신이 다 포함되어 있으며 결국 <난랑비서>에서 말하는 ‘풍류도’야말로 동토의 자랑이라는 것이다. 즉
“생명사랑은 부처의 교훈을, 사양하는 풍속은 공자의 교훈을, 그리고 자연스런 우주의 변화는 노장의 교훈을 지칭했다.”
그는 끝 구절에서 ‘上古之敎化’라고 함으로써 동토에 오래 전부터 있어왔던 교훈임을 암시하고 있다. 三敎包含정신이 분명해진다.
고운은 역사적 현실 속에 살고 있는 동인의식을 고취하는 면도 있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가 ‘東’이라는 자연현상 그 자체가 위대함을 노래하고 있다는 점이다.
<백월보광지탑비문>에서 고운은
“빛나고 성대하고 또 실다워서 팔방의 형질에 비치는 것은 새벽 해처럼 고른 것이 없고, 기운이 화평하고 포근하여 확실히 만물의 효력이 있는 것은 봄바람처럼 넓은 것이 없으니 오직 동풍과 뜨는 해는 모두 동쪽에서 나오는 것이다”라고 했다.
어느듯 고운은 ‘동’을 우주자연의 것으로 돌린다. 그래서 그의 동인의식이란 반드시 역사 현실적인 것으로, 서토의 중국에 대립하는 개념만이 아니라는 사실이 분명해진다. 우리는 아마도 고운의 이런 동인의식을 고려한다면 수운의 ‘동학’이라는 개념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고운의 ‘동’개념은 ‘생명(life)’,‘창조(creation)’,‘평화(peace)’가 깃들어 있는 곳이다. 동은 맑고 깨끗하며 상쾌한 곳이다. 새로운 생명이 잉태되어 창조의 여명이 시작되는 곳이다. 그래서 그는 서방에 반대되는 동방이 아니라, 생명의 보금자리와 평화가 가득한 곳으로 ‘동’을 보고 있음이 여기서 분명해진다. 고운과 수운이 말하는 ‘동’은 바로 이러한 가치관을 지닌 보편적 의미로 쓰였다.3)
이와 같이 고운이 동인의식을 가졌다고 할 때에 서방·중국에 대한 한갓 상대적인 개념이 아니라, 그것은 인간본성의 ‘仁’에 통하고 우주의 본원적 성격과 연결되는 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이러한 고운의 동인의식에서 유래하여 그의 27대손인 최수운의 ‘동학’이 나오게 됨을 알 수 있게 되었으며, 수운의 동학의식 역시 고운에서 발견되는 것과 같은 특수성과 보편성을 동시에 지녔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21세기 종교와 민족주의의 시대를 맞이하여 교정쌍전의 동학의 通論理로 평화통일을 주도해갈 수 있지 않을까 사료하는 것이다.
Ⅱ. 과정철학(過程哲學)을 통해
19세기는 누적된 사회적, 역사적 모순 때문에 역사의 반항아들이 동·서양에서 일제히 탄생하던 시기였다. 이른바 대반역의 시기이다. 동학이 출현한 19세기는 세계적으로도 의미있는 시기였다. 칼 야스퍼스에 따르면 인류문명은 기원전 8∼2세기, 즉 그가 말하는 차축시대(axial age)에 형성되었다. 서양의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그리고 동양에서도 공자, 노자, 붓다를 비롯한 여러 철학자들이 모두 이 차축시대에 일제히 태어난다. 현재까지 인류가 가진 제반 철학과 종교의 중요 가치관들은 모두 이들 차축시대 인물들이 만들어 놓은 것에서 별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쿤(Thomas Kuhn)이 말하는 ‘기틀(paradigm)’이 변한 것이 없다.
그래서 과정철학자 화이트헤드는 “서양철학은 플라톤 철학의 주석에 불과하다”고 말할 정도로, 철학도 차축시대의 유산 정도를 넘지 못하고 있다. 맑스는 이들 차축시대의 전통은 모두 ‘관념론’이라고 규정한다. 19세기란 바로 차축시대의 가치에 대하여 대반격 혹은 대반전이 일어나던 세기였다. 그래서 맑스는 반관념론적인 유물론으로 줄달음치게 된다. 프로이트는 관념에 대해 인간의 ‘본능’이라는 기치를 든다. 그리고 다윈은 인간이란 생물학적 진화과정에 나타난 존재에 불과하다고 했다. 이들 프로이트, 맑스, 다윈은 19세기 반역아들의 대표격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19세기는 수학을 비롯한 자연과학에서도 기틀이 변하고 있었다. 유클리드 기하학에 대한 비유클리드 기하학의 등장, 그리고 칸도로의 집합론에 대한 새로운 이해 등은 획기적이라고 할 만하다. 과정철학자 화이트헤드는 수운이 처형당할 무렵에 태어나 수운과 매우 유사한 사고유형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3명의 반역아들이 차축시대의 가치들을 전면적으로 뒤집어엎는 경향을 보여주는데 반하여 화이트헤드와 수운은 두 측면을 모두 통일시키는 경향을 보여주었다.
서양의 지성은 문예부흥을 통해 차축시대로 되돌아가 이성적 인간의 자아를 다시 찾았으며, 그 이후 19세기까지 서양사상은 이성적 자아를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이 방향이 곧 ‘모더니즘’의 방향이다. 그러나 19세기에 이들 3인에 의해 대반격을 받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이들은 차축시대의 가치를 반대로 뒤집은 것일 뿐이다. 그러나 화이트헤드와 수운은 양쪽을 관류시키는 기틀을 마련했다.
우리는 19세기 말부터 서양에서 등장하는 이러한 일련의 사상적 경향을 ‘신서학(新西學)’이라고 보았다.4) 유클리드 기하학에 대한 비유클리드 기하학은 20세기 들어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만드는 기초가 되었으며 칸토르의 집합론은 수학의 기초를 다시 만들게 했다. 그리고 최근에 등장하는 퍼지 및 카오스과학은 모두 이들 신서학의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신서학은 결국 동학사상과 기틀이 같다는 것이다. 물론 신서학의 대표격은 화이트헤드의 사상이라고 본다. 그의 논리형은 A형에서 E형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Ⅲ. 동학의 신관에 대해
이스라엘 민족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정복하는 ‘역사적’ 행위를 통하여 인격신 야훼를 발견한다. 그리고 인격적 자아의식을 갖게 된다.
개신교 신자들은 태모의 땅 북미의 인디언 땅을 정복하는데, 이것은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정복한 것과 같다고 청교도들은 믿고 인디언의 땅을 ‘신의 새 이스라엘(God's New Israel)’로 자처한다. 이것이 미국 역사의 시작이고 또한 이스라엘 민족사의 시작이다. 즉 남성의 여성정복사이다. 서양의 동양정복도 같은 차원이다. “수운은 서양이 공략하면 빼앗지 못하는 것이 없다”고 했다. 이러한 침략적이고 공격적 자아는 서학의 신관과 자아의식에서 비롯한다.5)
이들은 남달리 前自我-母系에서 일찍 눈뜨고, 自我-父系로 이행할 수 있었다. 그래서 가나안 정복이라는 前인격적 - 물질적 단계에서 로고스 - 정신적인 의식구조로 대전환을 일으키는 행위를 단행한다. 이 때부터 맑스가 혁명을 선언하기까지 물질적 -전자아의식은 정신적- 자아의 밑에 무의식적으로 눌려 있게 된다. 그래서 역사의 중심위치에 서게 되었으며 역사무대에서 홀로 각광을 받게 된다. 전자아 - 태모는 악마화되기 시작했으며 이 악마는 신약에 들어와 ‘적그리스도(anti-Christ)’가 되었다.
그래서 기독교 역사에서 여성은 악마요 적그리스도적인 것으로 전해지게 되었다. 동양적인 것도 마찬가지이다. 여기에 진정한 의미의 동양적인 것의 슬픔이 있고 그 슬픔의 한을 수운은 동학으로 풀려고 했던 것이다.6) 서양역사에서 불행한 일은 전자아가 악마화 됨으로써 초자아마저 설 땅이 없어져 버렸다는 점이다. 자아는 전자아와 초자아의 양상을 구별할 수 있는 힘마저 없어져 서양사상사는 전자아와 초자아를 혼동하는 범주오류를 범한다. 자아-역사가 지배하는 서양역사는 숙명적으로 로고스-정신적 자아로 점철되는 역사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데리다의 로고스 중심문화에 대한 비판은 여기서 출발한다.
초인격 심리학의 3원적 의식구조를 통해 캅이 말하는 존재구조를 대별해보면, 원시적인 것과 호머적인 것은 전분별-전자아로, 차축시대는 분별-자아로, 기독교와 불교는 초분별-초자아로 분류할 수 있다. 호머는 ‘태모’층에 넣어 분류된다. 소크라테스와 예언자는 모두 차축시대 속으로 분류된다. 캅은 초인격 심리학에 대한 이해없이 다만 시기적으로만 분류했기 때문에 불교를 차축시대로 분류한 것같다. 그러나 윌버도 그렇게 생각했던 것처럼 불교는 이미 초인격적 단계에 이르렀으며, 유대교에 대하여 예수의 의식구조도 초인격적이었다. 물론 중세교회는 기독교를 차축시대의 논리에 집어넣었기 때문에 기독교는 초인격적인 성격을 상실하여 차축시대의 존재구조로 되돌아가고 말았다. 이런 결손된 신관의 실패로 ‘서학’이란 이름으로 조선에 소개되었다. 그러나 중세교회에 오염되지 않은 서학이 바로 ‘신서학’이다.7)
삼원적 의식구조로 볼 때에 수운의 동학사상은 완벽하게 3원적 틀을 갖추고 있다. 캅은 기독교 역시 원시적인 것과 차축시대적인 것이 결합된 존재구조가 원래의 기독교적인 존재구조로 보았다. 프랙탈 이론에 의하면 기독교는 원시와 차축이 되먹임되어 나타난 것이고 이런 점에서 동학도 마찬가지이다. 여기서 말하는 ‘신서학’이란 이렇게 되먹임된 경우이며 이런 점에서 동학의 존재구조와 신서학은 일치한다. 기독교는 원시적 존재구조와 차축시대의 존재구조를 통일시켜냈다. 마찬가지로 동학도 동양의 차축시대의 유산인 유·불·선(초인격적인 것으로)과 원시적 존재구조인 샤머니즘을 합일시키는데 성공한다. 구한말에 전달된 기독교는 서양의 차축시대의 철학에 의해 주조된 기독교였으며 수운은 이를 ‘서학’이라 했다.
이러한 서학의 신관은 19세기 니체에 의해 이미 사형선고를 받았다. 니체는 차축시대의 종언을 두고 “필요한 것은 우리의 부정·부패한 세계를 부르는 최후의 나팔소리이다”라고 했다. 금세기에 들어와 서학의 신관은 틸리히나 ‘신 죽음의 신학자’들에 의해 새로운 도전을 받았고, 또한 최근의 페미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에 의해 그 설자리를 잃고 말았다.
Ⅳ. 한국의 선맥
선층의 성격에 따라서 원시와 차축의 관계를 긴장시키거나 완화시키기도 한다. 왜냐하면 차축시대는 선이란 중간층의 성격으로 보고 언제든지 원시시대를 억압하거나 박해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선층은 이와 같이 감시자 역할을 한다. 뇌의 중간뇌 또는 뇌량같은 역할을 한다. 이러한 선층의 중요성을 무시한 것은 역사이해의 큰 결함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적어도 선맥의 종주국이 한국이고 이것만은 자신있게 자처해야 할 것이다. 야스퍼스는 역시 선층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말았다.8)
한국의 선층은 시베리아의 무속이나 샤먼의 무층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유교나 불교같은 차축시대의 유산들이 들어왔을 때에도 이를 선층과 균열시키지 않고 연결시켰다. 그래서 한국의 선사상은 무적 측면과 철학적인 측면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9)
철학자 박종홍 역시 한국의 주도적 사상을 무적으로만 볼 수 없으며 선적인 요소를 포함시켜야 한다고 했다.10) 한국 선층의 이러한 양면적 성격은 바로 원시적 존재구조와 차축시대의 존재구조를 매개시켜 양자 사이의 긴장을 완화시키고 한국적 화합으로 가는 길잡이가 된다.
단군신화에서도 단군이 신선으로 화해버리는 것도 다름 아닌 무층에서 선층으로의 자연스런 변화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무층과 선층의 균열, 그리고 선층과 차축시대의 균열이 서양 역사의 병폐이고 결국 수운이 서학을 비판하는 근거도 바로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무와 선을 연관시켜 그것을 차축시대와 관련시키는 대존재 연쇄고리(the great chain of being)를 만드는 것은 사상사를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하다. 11)
선맥의 종주국은 동이족이 살던 지역이라는 것은 중국 선의 특징과 문헌을 통해서도 분명해진다. 우선 先秦시대(기원전 3세기) 이전의 중국의 신선사상을 알아보면 다음과 같다. 신선사상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사기(史記)』의 기록이다. 齊의 위왕(기원전 356-320)과 선왕(기원전 319-301년), 燕의 소왕(기원전 311-279년) 시대에 신선사상이 유포되었다는 것이다. 이들 왕들은 사람들을 시켜 바다에 들어가 삼신산을 찾게 했는데 이는 발해 속에 있었다는 것이다. 거기에는 선인들이 살고 있으며 불사약이 있고 만물과 금수는 모두 희고 황금 궁궐 속에 살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세상의 군주가 동경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는 것이다.(『사기』 봉선서 제6)12)
또 중국 문헌에서 ‘바다 한가운데’라고 할 때는 한국을 두고 하는 말이라고 한다. 『사기』의 기록은 동이지국(東夷之國)을 두고 “군자가 죽지 않는다”는 말과도 일치하며, 나중에 진시황제가 불사약을 구하기 위해 한반도 제주도까지 사람들을 보낸 경우를 보아도 『사기』에서 말하는 신선국은 동이족이 살던 한반도와 발해지역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제와 연이 동이족의 은왕조와 가까운 지역에 있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 이외에 『사기』의 직접적인 표현인 선의 연원이 동이족에 있었음이 분명하다는 것이다.13)
한편 제나라는 공·맹의 고향과 가까운 곳이다. 동북아시아 일대에서 차축시대의 맥락이 무와 선층과 이어지면서 등장하는 것을 반영한다. 이는 마치 올림포스 신전이 있는 아테네에서 차축시대의 철학이 등장하는 것과 같다. 여기서 무·선층과 차축시대의 연속성 및 비영속성의 문제가 제기될 수밖에 없다. 중국, 인도, 그리스의 세 곳에서 차축시대가 등장했다는 야스퍼스의 주장과 차축시대와 함께 인류보편적 가치인 이성이 등장했다는 주장은 재고되어야 할 때이다. 왜냐하면 상대적으로 차축시대가 등장하지 않은 문명권을 야만시하고 열등시하는 경향이 있는 것이 야스퍼스의 이론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고운이 중국에서 목격한 차축시대가 지난 1천년 쯤의 그 폐단 때문이었다.
최치원이 말하는 풍류도가 바로 신선사상이다. 차축시대의 유·불·도의 폐단을 극복하는 방법은 그 종합에 있으며 풍류도가 그것을 종합해낼 수 있다고 보았다. 동학의 창시자 최수운은 최고운의 27대 손인 것이다.14)
Ⅴ. 인내천사상과 통논리
이리하여 수운은 구한말의 한국이 내단적 인내천 통논리의 전통을 통해서만 보국안민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 길만이 살 길이라고 본 것이다. 예를 들어 김시습의 생육신으로서의 삶도 결국 내단적 전통에서 유래한다.
그러나 이러한 내단적 전통에 역행하는 곰이나 뱀을 통해 養生과 補身을 하려는 전통은 자기애에 대한 지나친 집착이라 할 수 있으며, 중국에서는 이러한 양생과 보신에 반대하는 공자의 ‘살신성인’과 ‘사생취의’가 나오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균열적 양상을 초인격 심리학은 바람직하지 못한 것으로 본다. 그래서 우리는 김시습의 지나친 내단의 강조와 함께 탈속적인 그의 행각에 비판적이며 최수운에게서 초인격의 통논리의 회복된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15)
지금 미국에서 벌이고 있는 ‘마약과의 전쟁’은 내단을 통해서만 극복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동양으로부터 배워야 하고 동학이 그들에게 주는 의미도 여기에 있다. 그런데 외단을 서양은 타자신앙의 기독교에서 배운 것이다. 그래서 수운은 서교를 자기 몸만 위한다고 했다. 수운은 내단과 외단을 통논리로 아울렀다.
굴 속에서 곰과 호랑이가 내단을 겪어야 하는 자기와의 싸움에서 호랑이로 대표되는 외단적 전통과 곰으로 대표되는 내단적 전통은 갈라지며 한국의 내단적 전통은 그대로 신라의 화랑, 고구려의 선인으로 이어진다. 화랑들의 자기버림 정신은 바로 이러한 내단적 전통에서 유래한다. 자기 죽음과 자기 버림이 없는 자기 비틀림은 파괴적이 되며 문명의 퇴화를 가져온다.
이러한 새 문명건설을 위한 인내천주의의 통논리는 한국의 ‘통불교(Buddhism of total interpenetration)’을 통해서도 발견된다. 중국이나 인도의 불교는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예외는 아니다. 인도의 용수는 어느 정도 불교에 ‘무’의 개념을 도입하여 비시원적인 불교를 만들려고 했으나 성공적이지 못했고, 이것이 중국으로 들어와서는 더욱 더 시원적인 것으로 심화되었을 뿐이다. 이런 불교는 한국으로 들어와 비시원적인 불교로 완성될 수 있었다.16) 이러한 한국불교의 동태적 특징은 최치원이 지적한 현묘한 풍유도라는 한국의 고유사상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E형 논리가 고유하게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동학은 E형 논리로 유·불·선을 대격으로 하여 그것을 모두 아우르는 품격(메타적)으로서의 성격을 지니면서 등장한다. 이는 마치 고대의 풍류도가 조화론적 통논리(通論理)로 작용했던 것과 같다. 동학은 다른 도와도 성격이 3교 가운데 그 어느 것도 아니라고 자기 정체성을 밝힌다. 자기의 ‘정체성’을 밝히는데는 타자와 자기의 차이점을 말하는 것이 가장 쉬운 방법이기 때문이다.
동학은 유교도 아니고, 불교도 아니고, 선교도 아니지만 유·불·선을 합일한 것이다. 천도는 3교가 아니로되 3교는 천도의 한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유교의 윤리와 불교의 본성을 깨달음과 선교의 기를 기르는 것은 천도의 한 부분이다.17) 동학은 이러한 순도 - 대격적인 성격과는 같지 않다. 그러나 이러한 잔도를 통일·조화시키면 잔도들과 같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옛 성인들은 다만 지엽적인 것을 말하고 근본을 말하지 못했으나, 만고에 없는 무극대도가 동학이라면 동학에 와서 다 이루어졌다는 것이다.18)
수운은 시대와 지역의 풍토에 따라 다른 도가 나타나 발생하고 발전하여 소멸한다고 보았다. 그래서 각 지역에 따라 부분적인 진리만 나타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각 도는 제한된 기간 안에서만 효력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원시시대는 무가 지배적인 종교였으며, 그래서 무당이 최고의 영적 지도자 노릇을 했다. 지금 차축시대 이후 유·불·도와 서양의 종교와 철학, 그리고 인도와 종교의 철학이 한 때 지배적인 노릇을 했다. 그러나 모두가 한 때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유도 불도 누천년에 그 운이 역시 다했다고 한 말의 의미가 여기에 있다. 동학은 메타도이며 동학으로서만 아류격이 된 다른 것들을 포함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수운은 기원전 2000년 제1기 차축시대보다 훨씬 뒤로 그네를 뛰어 무와 선층에서부터 진액을 뽑아내오기 시작했다. 이것은 마치 기독교가 유대인들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그리스인들에게는 미련한 짓이라는 비아냥을 받으면서도 무층의 병고침과 방언·주술을 도입하여 독특한 존재구조를 창출해내는 것과 같다. 그리고 선층의 산 자의 승천과 신의 현현같은 요소도 서슴없이 도입한다. 이는 기독교적 존재구조 속에 있는 무와 선층의 살려냄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동학은 기독교의 존재구조와 같다. 그러나 중세교회는 기독교의 존재구조를 차축시대의 그리스적 존재구조로 바꾸어놓고 말았다. 신서학은 바로 예수의 초기존재로 회귀하는 것이다. 그러면 신서학과 동학은 그 존재구조에서 동일성을 발견하게 된다.
동학은 뒤로 그네 뛸 수 있는 만큼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이것이 동학의 특징인 동시에 힘이다. 동학이 그 속에 고유한 운수관, 무속, 귀신사상, 도참사상, 음양오행사상, 기철학, 그리고 유·불·도, 심지어는 서양의 기독교까지 포함할 수 있었던 근본원인은 문명의 근원자리까지 뛸 수 있기 때문이다. 실로 동학사상은 포괄적이다. 그 속에 인류문명의 여러 정신적 유산을 거의 빠짐없이 포함할 수 있었던 이유는 선층에서 나오는 인내천정신의 조화의 통논리(通論理)의 위력 때문이다.
Ⅵ. 결론 : 세계사적 의의
우주 전체가 하나의 큰 도이고 유·불·도란 거기서 분광된 殘道에 불과하다는 것이 수운의 생각이다. 여기서 도가를 ‘선도’라고 한 점이 특이하다. 그만큼 선가와 도가를 일치시켜 본 것이다. 왜냐하면 유와 불은 이미 균열을 조장하고 선층에 나왔지만 오직 도가만은 선층을 그대로 물려받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과 도를 같이 쓴 것이라 볼 수 있다.
차축시대의 균열이 일어나지 않은 것이 선이기 때문이다. 수운은 하늘의 천체에 비교하여 3교는 마치 일·월·성신의 3체와 같다고도 했다. 이렇게 천지인 속에도 3교가 있고, 천체 속에도 3교가 있다고 함으로써 3교는 마치 소용돌이 속의 소용돌이가 형성되는 카오스-프랙탈 현상으로 본 것이다.19)
이를 《천부경》의 천·지·인 3才에 비교하면 3재는 하나의 우주 속에 있는 잔상이기 때문에 3교를 3재에 비교하여 종교간의 내밀적 통일을 쉽게 시도할 수 있다. 수평선의 위로 향할 때에는 정점에서 만나게 된다.
천부경의 “天一一, 地一二, 人一三”을 3교에 비교하여 다시 다음과 같이 배열해놓고 생각할 수 있다.20)
仙 天 一 一
佛 地 一 二
儒 人 一 三
A B C D
3교 3재 同 異
칼럼 A에는 3교를, 그리고 B에는 3재를 적어놓았다. 칼럼 C가 말하는 것은 3재가 모두 하나(一)로 같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으며, 칼럼 D는 순서에 차이가 있어서 다르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그렇다면 3교 역시 같으면서 서로 다름이 있음을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슈온의 말을 빌려서 설명하는 3재는 내밀적인 경우(칼럼 C)에는 초월적 통일을 하여 하나로 같고, 외양적인 경우(칼럼D)에는 서로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우리는 수운이 유·불·선 3교를 천·지·인 3재에 비교한 것은 종교의 교조주의를 피하는 것일 수도 있다. 교주같은 외양을 버리고 진리 그 자체인 내밀로 지향하게 된다. 우리는 여기서 동학이 오늘날의 통일사상이 되는 이유를 알 수 있다. 냉전으로 분열되어 있는 남·북의 좌·우 이데올로기를 동학의 인내천사상의 通論理로 얼마든지 포함시킬 수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러한 이유로 우리는 이 동학의 통논리를 통해 이는 인류의 화합을 위해서 ‘문명충돌론’의 수준에 머물고 있는 새 천년의 문명사관을 두고 그 세계사적 의의도 발견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