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컴 투 마이 월드
김창식
처음부터 항공사에서 직장 생활을 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졸업을 앞둔 어느 날 아르바이트 집에서 점보기(BOEING-747)가 세계지도 위로 비스듬히 날아오르는 신문 광고를 보았다. '세계를 그대 품 안에!' 그러자 조급해졌다. 집안 형편 상 당장 취직을 할 수밖에 없기도 했다. 살다 보면 잠시 들른 곳에 오래 눌러 있게도 된다지만 20년은 짧은 시간이 아니다. 잠시 다니러간 곳에서라면 더욱.
노래「웰컴 투 마이 월드(Welcome to My World)」를 여느 때보다 감명 깊게 들은 것은 1970년대 회사에 입사한 후 첫 새내기 출장길에서였다. 서울을 떠난 비행기가 열 몇 시간의 비행 끝에 호놀룰루 공항 상공에 이르러 착륙 모드로 하강하기 시작했다. 기내 스피커를 통해 아니타 커 싱어스(The Anita Kerr Singers)의 천사 같은 화음이 흘러 나왔다. 그때 그 노래가 다가와 마음에 꽂혔다. '웰컴 투 마이 월드(나의 세계로 오세요)~'
창을 통해 내다본 밝은 태양빛과 바람결에 흔들리는 키 큰 야자수가 애수를 자아냈다. 그때 느꼈던 긴 여행 끝 피곤한 그리움과 신비스런 경건함은 지금도 손에 잡힐 듯하다. 마음속에 물결이 일고 알지 못할 용기가 솟아났다. 노래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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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세계로 오세요/기적처럼 신비한 일도/때때로 일어나요/내 마음속으로 들어오세요/근심 걱정은 뒤로 하고/그대를 위해 지은 나의 세계로~'
회사생활은 순조로운 편이었다. 최소한 뒤처지지는 않았다. 세계를 무대로 하는 회사의 특성 상 어학을 전공한 것이 도움이 되었다. 국제회의에 참석할 때는 회사를 대표한다는 자부심도 있었다. 가난한 학생이었던 나에게 ‘지갑 속 지폐 몇 장’은 은밀한 기쁨을 주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언제부터인가 '이게 아닌데?' 하는 회의가 드는 것은 이상한 일이었다. 물질적으로 어려움이 없던 그 시절이 정신적으로는 황폐한 불모의 시기였던 듯하다. 승진과 경력추구가 유일한 관심사였으니까. 돌이켜보니 그때는 '가장 구체적이면서도 가장 허구적인 나날'이었다.
노래「웰컴 투 마이 월드」는 원래 컨트리 음악(C&M, Contry & Western)의 으뜸 가수인 짐 리브스(Jim Reeves)의 곡이다. 하지만 일반대중에겐 오리지널 가수의 백 보컬로 활동한 적이 있는 5인조 혼성보컬 아니타 커 싱어즈의 꿈꾸는 듯 감미로운 버전으로 더욱 친숙하다. 항공사에서 사용한 CM송과 보딩송(이‧착륙 시 들려주는 음악)도 아니타 커 싱어즈가 부른 것이다.
그때를 결코 잊을 수 없다. ‘세계를 그대 품 안에!’ 새로 개설한 프랑크푸르트 공항의 지점장으로 부임하던 참이었다. 도시 상공에 이르러 비행기가 하강하기 시작했다. 시내가 손에 잡힐 듯 다가왔다. 기내 어나운스먼트가 들렸다. "아흐퉁, 마이네 다멘 운트 헤렌!(승객여러분 안내말씀 드리겠습니다!)" 그때 그 증세가 나타났다. 돌연한 공포감, 호흡곤란. 암흑시야. 머릿속 쇠구슬 구르는 소리. 툭툭 투둑 투투둑.
쇠구슬이 삽시간에 여러 개로 불어나더니 서로 부딪히며 굴렀다. 머릿속은 곧 쇠구슬들의 조야(粗野)한 울음소리로 가득 찼다. 검은 운석들이 비행기의 동체를 뚫고 의식의 천막 속으로 포탄처럼 쏟아져 내렸다. 땅이 출렁거리며 돌진해왔다. 비행기가 추락하고 있었다. 뚜뚜뚜뚜, 이머전시! 승무원들이 달려왔다. 옆 승객의 황급한 목소리.
“바스 이스트 로스(Was ist los‧왜 그래요)?”
그 판국에 독일 국적의 항공기임에 생각이 미쳤다. 나는 북소리 같은 심장의 박동소리를 들으며 필사적으로 외쳤다.
“힐페!(Hilfe‧도와줘요)! 힐페!”
「웰컴 투 마이 월드(Welcome to my world)」노래에는 믿기지 않는 이야기기 얽혀 있다. 아니타 커 싱어즈는 짐 리브스가 비행기 사고로 타계한 후 이 노래를 리메이크해 헌정했다. 그런데 나중에 이 그룹 멤버 한 사람이 또 비행기 사고로 죽는 불행을 겪는다. 노래를 작곡하고 부른 짐 리브스가 젊은 나이에 비행기 사고로 죽고, 노래를 헌정한 가수 중 한 사람이 또 비행기 사고로 횡액을 당하고, 항공회사에서는 이를 모른 체 오랫동안 이 노래를 로고송으로 사용하다니!
독일에서의 언뜻 화려해 보인 4년은 기나긴 추락과 붕괴의 과정이었다. 임기가 끝나 귀국할 무렵 의사가 주의를 환기했다. 지나친 완벽추구와 인정욕구로 인한 스트레스가 병의 원인이라고. 병으로 인한 고통보다 감추는 것이 더 힘들었다. 주위 동료들에게 눈치 채지 않게 하는 방법은 증세가 나타나려는 기미를 낚아채 미리 약을 복용하는 것이었다. 위험을 회피하려는 과다복용이었지만 당장을 견디어 내는 일이 급했다. 주머니 속에 작은 송곳을 갖고 다닌 것은 그 때부터였다. 나를 찌르려고. 육체의 고통으로 정신의 아픔을 이겨내려고.
사람의 마음을 부드럽게 어루만져주어 마냥 높은 곳으로 인도하는「웰컴 투 마이 월드」가사를 들으면 '문을 두드리면 열릴 것이요, 구하고 찾으면 얻을 것이니(Knock and the door will open, Seek and you will find)~'라는 내용이 있다. 치과병원에서 들으면 좋을 법한, 더 할 수 없는 평화로움을 주는 복음성가 같은 노래가 비운의 노래가 된 것이다. 이를 뒤늦게 알게 된 항공사가 이 음악을 더 이상 사용치 않았음은 물론이다.
나는 의사의 진단과 조언을 마음에 담지 않았다. 그렇다면 세속에의 꿈을 꾼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로 병에 걸려야 하는 것이 아닌가. 몸은 점점 나빠져 갔다. 나중에서야 알았다. 과일 속처럼 단단한 몰락의 씨앗이 훨씬 오래 전부터 자라고 있었음을. 추락은 날아오르기 전에 이미 시작된 것이었을까? 모든 시작은 ‘끝의 시작’이었다. 남들은 의아해했지만 '일신상의 사유', 그러니까 ‘나만이 아는 이유’로 사표를 제출했다. 귀국 후 일 년여가 되었을 무렵이었다.
회사를 나와서도 몸은 좋아지지 않았고 마음은 더욱 피폐해갔다. 어느 날 밤늦게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이었다. 낯선 얼굴이 보여 깜짝 놀랐다. 차창에 비친 저 수상한 존재가 누구인가? 그 것은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것을 좇느라 페르소나로서의 분식된 삶을 살아온 사내의 모습이자 ‘거울단계(Mirror Stage)’를 벗어나지 못한 슬픈 중년의 자화상이었다. 차창에 되비친 얼굴은 나를 들여다보게 했다. 허허로운 실존의 인식이 글을 쓰게 된 직접적인 동기가 된 것이다.
아내가 아이를 가지자 임산부만 보이고, 아이가 군대에 가니 온통 군인만 눈에 띈 경험이 있다. 마음 가는 곳에 길이 있다더니, 일단 글을 쓰기로 마음을 굳히니 어디서 그렇게 쓰고 싶은 일들이 생겨나는지 신기하기만 했다. 온갖 상념이 지그재그로 뻗어나가고, 갖가지 이미지들이 형형색색의 나비처럼 날아오르며, 지하 토굴(土窟)에 봉인해놓았던 지난날의 기억들이 저마다 먼저 꺼내달라고 아우성을 쳤다.
글을 쓸 때 염두에 두는 것은, ‘지금, 여기, 이곳’의 문제이다. 사회적 이슈나 문화 현상, 일상의 체험이나 옛날의 기억, 추억의 명화, 오래된 팝 명곡을 다룰 때도 현시성(現時性)을 떠올린다. 인간에게 내재한 원형의 정서도 짚어본다. 보편적이고 근원적인 주제야 말로 절박한 관심사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인간성을 고양(高揚)하는 글, 지적인 성찰의 단초를 주는 글, 치열한 사유와 시적 서정이 어우러지는 글, 마음을 움직여 변화를 이끌어내는 글을 쓰고 싶다.
가끔 왜 글을 쓰는가를 자문한다. 삶의 숨은 뜻을 찾아서? 지나간 형적(形跡)을 더듬어 보려고? 방황하는 한 노력하니까? ‘그냥, 그저, 대책 없이!’라는 표현이 오히려 더 와 닿는다. 남을 위로하려 쓴 글이 사실은 나를 위로하는 것에 다름 아니었다. 그렇더라도 글을 안 쓰면 불안하고 다른 일을 하면 초조하다. 글 쓰는 일이 존재의 이유가 된 셈이다. 참으로 알 수 없는 것은, 글을 쓰면서 조금씩 건강을 되찾게 되었다는 것이다. 오랜 방황 끝에 진정한 ‘나의 세계로 들어선’ 것일까? 천상의 화음이 귓가에 날아와 앉는다. ‘웰컴 투 마이 월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