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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펠로(Manoppello) 베로니카 손수건,성면 –페스카라-
마노펠로의 성면(예수님 얼굴)
전승에 따르면,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골고타 언덕을 오르실 때 한 여인이 예수님의 얼굴을 닦아드렸는데 그 얼굴이 천에 찍혔다고 합니다.
토리노 성의와 함께 그리스도교에 가장 값진 유물은 바로 '마노펠로의 성면(Holy face)'입니다. 상대적으로 우리 나라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는데요. 400여년 전부터 카푸친 성당에 보관되고 있는 유물입니다.
이 천(베일)은 족사(조개에서 얻어지는 섬유)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그 위에 그림을 그릴수 없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천에는 예수님의 얼굴의 형상 분명하게 찍혀져 있고 더 놀라운 것은 너무 얇아 마치 투명한 것 같은 이 천 뒤면에도 똑같은 그림이 정확하게 찍혀있답니다. 이는 현대의 기술로도 그렇게 규현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얼굴이 토리노 수의에 찍힌 예수님의 얼굴과 한 치의 어긋남 없이 똑같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최첨단 장비로 조사한 결과, 천은 1세기 때의 것의 예수님의 활동하던 시기와 동일하며 사람이 손으로 그린 흔적이 전혀 없다고 합니다. 하지만 더 과학적으로 조사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는데, 이 천을 보관되어 있는 유리관에서 꺼내면 그림이 사라져버린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다시 제자리에 넣으면 그림이 다시 생기는 기적이 두번이나 일어났다고 합니다.
이것이 정말 예수님의 얼굴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믿음을 회복시켜주고 하느님을 더욱 사랑하게 이끄는 귀중한 성화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아래에 필요한 정보들을 번역해서 올려놨으니 읽어보시고, 예수님을 더욱 사랑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마노펠로의 성면(Holy face) 유래
1506년, 예수님의 얼굴이 그려진 베일이 마노펠로(이태리의 작은 마을)에 도착했다. 어떤 낯선 사람이 지아고모 리오넬리(Giacomo Lionelli)라는 사람에게 그 베일을 전했다. 그 사람은 그것 때문에 혜택을 볼 것을 장담하며 잘 보관하라고 당부했다.
1618년 리오넬리의 후손중의 한 여인이 판크라지오(Pancrazio)라는 자신의 남편의 몸값으로 어느 공증인에게 그것을 팔았다. 그녀의 남편은 군인이었고 감옥에 갇혀있었다.
1638년, 그 공증인은 카푸친들에게 그 베일을 주었고, 그들은 그것의 너덜한 부분을 잘라내고 액자 속에 넣었다. 그것은 아직까지 성지(마노펠로의 카푸친작은형제회)에 보관되어 있다.
1646년, 그 베일이 진품임이 확인되었다. 그 베일은 잠금 보관되었고, 당시 신자들을 위해 일 년에 한 번 전시되었다.
1999년, 파이퍼 신부(로마의 그레고리안 대학의 교수)는 전문가로의 자신의 명성에 흠이 될 수도 있음에도, 마노펠로에서 발견된 이 베일이 성녀 베로니카의 수건이며, 그것이 고대 카물리아(Camulia)의 것이라고 공표했다.
그는 왜 이렇게 주장했는가?
1. 성면(거룩한 얼굴)이 찍힌 그 베일은 고대 카물리아 지역의 천임이 확인되었다.
2. 천의 앞뒤에 그림이 동일하다. 천의 앞쪽에만 그림이 찍힌 것이 아니다.
3. 수난을 받은 흔적이 있다. 코에 막대기로 구타를 당한 흔적, 수염이 뜯겨졌고, 이마에 피 얼룩이 있다. 눈은 뜨고 있고 그의 눈빛은 매우 차분하고 마치 미소를 띠고 있는 듯하다.
4. 얼굴의 치수는 토리노 성의의 얼굴의 치수와 정확히 일치한다.
5. 시간이 흐른 만큼 색깔과 밝기가 변해있다.
6. 지금 우리는 누가, 언제, 어떤 기술로 그것을 그렸는지, 또 어떻게 베일의 앞, 뒷면에 그렇게 대치되는 그림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거의 투명하다시피 한 천 위에 투과되는 빛의 방해를 받지 않는 채 그렇게 정확하게 그릴 수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거룩한 얼굴 (by Renzo Allegri)
신비한 천 조각을 시골의 카푸친 성당에서 몇 세기동안 보관하고 있다. 그 지역 사람들은 그 천에 예수님이 얼굴이 기적적으로 찍혔다고 믿고 있다.
부활기간 동안, 우리의 생각은 예수님의 시신을 감싼 신비한 아마포, 토리노의 성의에 쉽게 이끌린다. 불가사의한 사실 중에 하나는 토리노의 성의에 어떻게 예수님께서 겪은 수난의 모든 흔적이 새겨졌는지 설명이 불가능 하다는 것이다. 그것은 그려진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에는 물감의 흔적이 전혀 없다. 또한 스케치 한 것도 아니고 그을림의 방식으로 그려진 것도 아니다.
어쨌든 그 성의가 구세주의 몸을 덮은 유일한 천이 아니라는 것이다. 요한 복음에 보면 두 개의 천이 거론된다. ‘시몬 베드로가 뒤따라와서 무덤으로 들어가 아마포가 놓여 있는 것을 보았다. 예수님의 얼굴을 쌌던 수건은 아마포와 함께 놓여 있지 않고, 따로 한곳에 개켜져 있었다.’ (Jn 20: 6-7) 여기에 요한은 몸 전체를 감쌌던 큰 아마포와 얼굴을 감쌌던 작은 천을 명확하게 구분 짓고 있다.
진짜 천은 어느 것인가?
토리노의 성의는 거의 세계적으로 성서에 나온 큰 아마포로 여겨지고 있다. 하지만 작은 천은 두 개가 서로 예수님의 얼굴을 덮었던 천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 중 하나는 스페인의 오비에도(Oviedo) 주교좌 성당에 보관되어 온 성녀 베로니카의 수건인데, 거의 33 x 21인치의 크기에 예수님의 이미지는 없고, 육안으로 확인 가능한 얼룩뿐이다.
다른 하나는 차원이 완전히 다르다. 굉장히 얇고 손상되기 쉬운 이 베일은 이태리 아브루찌 지역, 마노펠로의 카푸친 성당에 보관되어 있다. 이는 ‘성면(Holy face)’으로 유명하다. 왜냐하면 이 천에는 사람의 얼굴이 찍여 있기 때문이다.
부활의 모습?
마노펠로의 성면은 과학계에로부터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그림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두 번째 토리노의 성의로 주목하기 시작했다. 난 1978년에 처음으로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상세하게 그 베일을 살펴볼 수 있었다. 그것은 아직까지 과학적인 검토가 이루어지고 있는 상태여서 의문스러운 점이 많이 남아있다. 루치아노 안토넬리 신부님(수호자)은 나를 친절하게 맞아주었고, 단독으로 나를 그 베일이 모셔져 있는 메인 제대로 안내해 주었다. 그 베일은 신자들을 위해 전시되어 있다.
아주 얇고 약한 아마포 천(약 14 x 16인치)에서 나는 사람의 얼굴 그림을 보았다. 색깔은 부드럽게 바래있었고, 비록 멍들고 찢어지고 부은 흔적이 있었지만 얼굴은 커다란 고요함을 발하고 있었다. 난 그 그림을 여러 각도로 오랫동안 살펴보았다.
베일 속의 남자는 유대인 스타일의 수염을 하고 있다. 그의 코는 무언가에 의해 맞은 자국이 있고, 오른쪽 뺨은 부어있고 수염은 부분적으로 뜯겨졌다. 이마와 입술에는 상처가 아문 것으로 보이는 핑크색 흔적이 있고, 응시하는 두 눈에는 설명하기 힘든 평화가 가득하다. 놀랍고 경이롭다. 온화한 연민이 있을 뿐, 절망도 아픔도 분노도 없다. 아침에 금방 잠에서 일어난 남자의 얼굴 같다.
그의 입은 치아가 보일 정도로 반쯤 열려져 있다. 그 입 모양새에서 나온 단어를 추측해보자면, 아마 그것은 부드럽게 ‘아~’라고 발음하는 것 같다.
(마노폴로의 성면을 널리 알린 카푸친 형제, 하느님의 종 도미니코 형제, 현재 시복절차 중)
과학적인 수수께끼
“베일은 두 겹으로 봉인된 유리관에 보관되었습니다.” 루치아노 신부님이 나에게 말했다. “베일은 너무 얇아서 거의 투명할 정도입니다. 베일 뒤에 신문을 놓고 읽을수 있으니까요.” 루치아노 카푸친 수도자는 계속 말을 이었다. “자연히, 다양한 가설들이 이 신비로운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제기되어 왔습니다.
첫 번째, 이것은 매우 재주가 탁월한 예술가에 의해서 그려졌다는 가설입니다. 하지만 이 가능성은 곧 과학자들과 미술가들에 의해 철회되어버렸습니다. 사실 몇몇 예술가들이 이와 비슷한 천 위에 똑 같은 그림을 그리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모두 처참하게 실패를 맛보았습니다.
이 천은 정말 과학적으로 수수께끼입니다. 게다가 천의 투명도 자체가 불가사의하며, 또 그림이 마치 얇은 슬라이드 같다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하면, 그림을 앞에서 보나 뒤에서 보나 똑같다는 점입니다.” 루치아노 신부님이 그 베일을 돌려보였는데 그림이 동일하게 보였다. “이 현상은 신중하게 연구되고 있습니다. 엄청난 성능을 자랑하는 현미경으로 살펴본 결과, 앞 뒤 양면이 완벽하게 한 치도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것이 증명된 상태입니다.
만일 이 그림이 그려진 것이라면, 최첨단 마이크로 현미경으로 봤을 때 한쪽 면의 그림으로 인해서 다른 면의 그림이 조금 다르게 나타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것이지요. 이 점은 이 베일이 가진 독특한 특징입니다.”
이탈리안 저널리스트
난 이 불가사의한 베일에 대한 정보를 더 모으려고 사베리오 가에타를 만나기로 결정했다. 그는 ‘또 다른 성의’ 라는 마노펠로의 성면에 대한 책을 쓴 작가이자 가톨릭 기자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그 책은 아직 영어로 번역되지 않았다.
“그 베일에 관한 역사적 부분들은 아직 명확하지 않습니다. 아마도 그것은 오랫동안 해결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발견된 정보만으로도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큽니다.” 가에타는 더 확실히 강조하며 덧붙혔다. “그것에는 이제 더 이상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 그림은 초창기 그리스도교 이래 엄청난 존경을 받고 있습니다. 그것이 로마의 베드로 대성당에 있었을 때에도, 마노펠로에 있기 전에도, 그것은 유럽 전역의 모든 순례자들의 마음을 끄는 대상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모든 예수님의 초상화의 청사진이었습니다.”
처음부터 거슬러 가보자. 그 베일에서 우리는 어떤 기본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는가?
그렇게 많지는 않다. 마노펠로의 베일의 역사는 복잡하고 이리저리 분산되어 있다. 우리는 오직 그 기원에 대한 정황적인 증거만 가졌을 뿐이다. 그것은 모두 전승에 근거한다. 전도사들과 초기 교회의 사제들은 자주 예수님에 관련된 유적에 대해 이야기했다. 2세기에서 4세기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이 예수님의 시신을 감쌌던 천을 발견하고 경배했다는 많은 증거자료들이 있다. 이 천들은 매우 조심스럽게 보호되고 있는데, 왜냐하면 그것들이 예수님의 부활의 증거라고 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자료에는 그 천이 한 개 이상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 중 몇몇 자료에는 그것이 토리노의 성의와 성녀 베로니카의 수건이라고 구체적으로 명시한다. 마노펠로의 베일은 아마포로 만들어진 것으로 드러났다. 아마포는 비써스(Byssus)라는 특수 섬유를 이용해 만든 매우 값비싸고 질 좋은 실크이다. 이 원단은 고대의 파라오나 유대 고위층 사제들을 위한 최고급 옷을 만드는데 쓰였다.
전승에 의하면, 이 베일은 니코데모가 성모님께 선물한 것이고, 정통 유대식 장례식 관례에 따라 성모님이 당신 아들 얼굴에 이 천을 덮었다고 한다. 이것은 1세기 그리스도교 안에 존재했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그 기록은 예루살렘에, 멤피스에, 그리고 터키에도 있다. 매우 오래된 고대 전통에 따르면, 예수님은 당신의 그림을 갈바리아 언덕을 함께 따르던 신실한 여제자들 중 한 사람에게 선사했다고 한다. 그 여자가 바로 베로니카이다. 그 전승은 십자가의 길 6번째와 14번째에 포함되어 있다.
1세기 이후 이 베일은 어떻게 되었는가?
574년에 이 베일은 코스탄티노폴로 이동되었다. 그리고 전쟁에서 군인들에게 용기를 복돋아 주기 위한 깃발로 이용되었다. 8세기 초기에 우상파괴자들이 모든 종교적 이미지를 부수기 시작하자 그 베일도 위험에 처하게 됐다. 그래서 콘스탄티노의 총대주교 칼린쿠스 1세는 비밀스러운 통로를 통해 그 베일을 로마로 보냈다. 그러다가 그것이 갑자기 사라졌다. 조사에 따르면, 성베드로 성당의 약탈 때 누군가에게 도난당한 것으로 보고 있다. 클레멘스 7세 교황의 편지를 보면, 그 베일이 도난당하여 로마의 여관에서 팔렸고, 그러다가 사라져버렸다는 것이다.
최근에 난 매우 흥미로운 자료들을 우연히 생각해냈다. 스페인 군인들이 ‘카스텔 산안젤로(Castel Sant'Angelo)’ 지역을 포위했을 때가 있었다. 이 지역은 ‘마노펠로’라는 작은 마을을 포함하고 있었다. 그 일이 있기 1년 전에 로마(성베드로 성당) 약탈이 일어났는데, 그 스페인 군대의 지휘관이 주범으로 지목되었다. 당시 이곳은 나폴리 제국의 구역이었고 바티칸에 속해 있지 않았다. 로마 약탈 때, 그 지휘관은 아주 귀중한 물건들을 아브루쪼의 시칠리안 벨리(Sicilian Valley in Abruzzo)로 이동시켰을 것이고, 그의 후손들은 그것을 당시 마노펠로에 성당을 짓고 있던 카푸친 수도자들에게 기증했을 것이다. 이 일은 1609년 즈음에 일어났다.
그렇다면 1506년에 그 베일이 그 지방 어느 귀족이 기증했다고 기록된 자료는 진실인가?
그렇다. 그 기록은 존재한다. 그런데 그것은 마노펠로로 그 천을 가져간 사건을 ‘다시 쓴 것(복원한)’이다. 1645년의 기록에 의하면, 그것은 1506년이 아니라 139년 후(1645년)에 도착했다고 한다. 아마도 그 물건이 무척 중요하다는 것을 인지한 카푸친 형제들이 교황이 그것을 가져갈까봐 두려워서 1506년부터 마노펠로에서 자신들이 그것을 소유하고 있었노라고 주장했을 것이라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성면’에 대해 과학적인 연구는 무엇이 있는가?
그렇게 많지는 않다. 하지만 그 연구는 그 그림이 사람의 손으로 그려질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을 증명했다. 실제 천에 대해서는 아직 조사가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왜냐하면 봉인된 유리 액자가 오픈된다면 분명 그 천이 손상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사실 이 일은 예전에 발생한 적이 있었다. 1703년에 보니파시오 형제가 그 천을 나무 액자로 옮기려고 시도한 적이 있었는데, 그 천을 옮기자마자 그림이 사라져 버렸던 것이다. 이 사건은 몇일 동안 지속되었다. 이는 여러 증인들이 사인한 보고서에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다. 그 천을 다시 원래의 자리로 되돌려 놓자 그림이 다시 나타났고 이를 본 모든 사람들이 경악했다. 이 불가사의한 현상은 11년 후에 다시 나타났다. 은액자로 옮기려 두 번째로 그 천을 옮겼을 때 그림이 다시 사라져 버렸고, 원래의 액자로 옮기자 그 그림이 또 나타난 것이다. 이 때문에 그 누구도 그것을 본래의 유리액자에서 떼어놓을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다.
(토리노의 성의의 예수님 얼굴과 합친 얼굴, 정확하게 일치한다)
토리노의 성의와 비슷한 점이 있는지 없는지 알아보려 했는가?
토리노의 성의 속 예수님 얼굴과 마노펠로의 예수님의 얼굴은 매우 다르게 표현되어 있다. 토리노의 성의는 죽은 남자로 표현되어 있는 반면 마노펠로의 베일에서는 살아 있는 남자의 모습이다. 하지만 매우 비슷한 모습이다. 전문가들은 두드러진 여러 유사점을 말하고 있다. 눈과 코, 입과 얼굴의 크기가 일치한다. 형태학적으로 두 얼굴은 완벽하게 일치하고 있다. 찢어진 상처, 멍든 상처, 부은 곳들, 피부아래 혈전 또한 일치한다.
과학자들이 ‘성면’을 면밀하게 연구했는가?
지금까지 3명의 연구자들이 중요한 연구를 지휘하고 있는 상태이다. 첫 번째 사람은 헤인리치 피에퍼 신부(Fr. Heinrich Pfeiffer)인데, 그는 로마의 그레고리안 대학의 '그리스도교 예술사' 교수이다. 다음으로 안드레아스 신부(Fr. Andreas Resch)이다. 그는 구세주회 회원이고 대학 교수이다. 마지막으로 블란디나 수녀(Sister Blandina Paschalis Schloemer)이다. 트라피스트 회원이며 화가이다.
피에퍼 신부는 마노펠로의 성면에 관한 수많은 출판물의 저자이고, 심도있는 역사적 연구를 지휘했다. 블란디나 수녀는 다음과 같은 연구를 하고 있다. 만일 토리노의 성의와 마노펠로의 성면이 예수님이 주신 선물이라면, 당신 스스로 우리에게 선사한 이 기념품은 두 개가 서로 동일한 것이어야 하고, 두 개를 겹쳐놓았을 때 서로 일치해야 한다. 그래서 그녀는 여러 테스트를 시작했고 레스 신부(Fr. Resch)에게 과학적인 도움을 받고 있다.
레스 신부는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 요점을 정리했다.
1. 두 얼굴은 완벽하게 일치한다.
2. 그러니까 두 얼굴은 한 사람의 것이다.
3. 두 그림 다 사람의 손으로 그려진 것이 아니다.
4. 그것들의 형성과정은 아마 광화학 과정(빛에 의해 일어나는 화학반응)인 것으로 추정된다.
5. 두 그림의 '기원'과 '일치'는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초자연적인 것이다.
과학적인 조사는 세심한 역사적인 연구와 함께 지금까지 계속 되어오고 있다. 따라서 우리가 경배하는 마노펠로의 성면은 하늘에서 온 표지임을 암시하는 것이다.
(베네딕토 16세 교황님이 마노펠로를 방문하심)
출 처 : 카푸친 작은 형제회 자료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