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법가" 바로 알기 (옛 인연을 잊도록 새 인연을 맺도록)
불교에서 설법을 듣고자 하면, 먼저 스승께 예배한 후 간절한 마음으로 '법을 설해주십시오'라고 세 번 청하는 것이 관례로 되어 있다. 스승은 제자 혹은 대중의 청법(請法)을 받고서야 비로소 법을 설한다. 이러한 청법의식(請法儀式)은 다른 종교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불교만의 고유한 전통이다.
이러한 전통은 부처님이 처음 깨달음을 이룬 직후, 자신이 깨달은 진리를 다른 사람들에게 설할 것인가를 망설이고 있을 때, 범천이 부처님께 법을 설해주시기를 간청하였기 때문에 비로소 법을 설하기로 결심하였던 것이다. 이것이 그 유명한 범천권청(梵天勸請)의 설화이다. 불교의 청법의식은 이 범천권청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러한 청법의 전통은 한국불교에서도 그대로 지켜지고 있다. 현재 일반법회에서 실시되고 있는 청법의식은 두 가지가 병행되고 있다. 하나는 한문 게송으로 된 청법게(請法偈)이고, 다른 하나는 현대음악으로 작곡된 청법가(請法歌)이다. 요즘은 후자의 청법가를 주로 부르고 있는 실정이다. 먼저 청법게의 내용부터 살펴보자.
차경심심의(此經甚深意) 이 경의 깊고 깊은 뜻을
대중심갈앙(大衆心渴仰) 대중들은 목마르게 갈구합니다.
유원대법사(唯願大法師) 오직 원컨대 대법사님께서는
광위중생설(廣爲衆生說) 중생들을 위해 널리 법을 설해주소서
다음은 청법가의 가사 1절을 여기에 옮겨 본다.
덕높으신 스승님 사자좌에 오르사
사자후를 합소서 감로법을 주소서
옛인연을 잊도록 새인연을 맺도록
대자비를 베푸사 법을 설하옵소서.
이 청법가는 춘원 이광수가 짓고, 이찬우씨가 곡을 붙인 것이다. 춘원은 원래 기독교 신자였는데, 뒤에 불교로 개종하였다. 그래서 그의 초기 작품에는 기독교 사상이 많이 들어 있고, 후기 작품에는 불교사상이 저변에 깔려 있다. 특히 {원효대사}와 같은 소설은 그가 불교로 개종한 이후 터득한 불교의 심오한 사상을 담고 있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청법가는 춘원이 효봉 스님으로부터 불교를 배울 때, 재래 불가의 청법게를 본받아 지은 것이다. 필자는 청법가의 가사가 재래의 청법게보다 더 잘 다듬어진 훌륭한 글이라 믿고 있으며, 이보다 더 좋은 청법가는 앞으로도 나오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처럼 훌륭한 청법가의 가사 일부를 최근 바꿈으로써 본래의 뜻이 크게 훼손되고 있다.
원래의 가사는 "옛 인연을 잊도록 새 인연을 맺도록" 인데, "옛인연을 이어서 새인연을 맺도록" 으로 누군가가 고쳤다.
아마 표현을 부드럽게 한다고 '잊도록'을 '이어서'로 바꾼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이것은 큰 과오를 범한 것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옛 인연과 새 인연이 상징하는 의미를 무시하였기 때문이다. 청법가에서 말하는 옛 인연은 춘원이 과거에 믿었던 기독교를, 새 인연은 새로 귀의한 불교를 상징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옛 인연을 이어서'라는 것은 절대로 성립될 수 없다.
사실 청법가의 핵심 구절인 "옛 인연을 잊도록 새 인연을 맺도록"은 불교의 근본 사상을 현대어로 표현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불교의 정의(定義)로 알려져 있는 칠불통계게(七佛通誡偈)의 내용을 살펴보면 곧바로 알 수 있다.
제악막작(諸惡莫作) 모든 나쁜 짓을 저지르지 않으며
중선봉행(衆善奉行) 모든 착한 일을 받들어 실천하고
자정기의(自淨其意) 스스로 자기의 마음을 청정하게 하라
시제불교(是諸佛敎) 이것이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이 게송의 앞부분 제1구 제악막작(諸惡莫作)은 옛 인연을, 제2구 중선봉행(衆善奉行)은 새 인연에 비유할 수 있다. 이럴 경우 옛 인연은 잊어야 하는 것이고, 새 인연은 맺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예는 소심경(小心經)에 나오는 삼시게(三匙偈)에서도 찾을 수 있다.
원단일체악(願斷一切惡) 일체의 악은 모두 끊기 원이며
원수일체선(願修一切善) 일체의 선은 모두 닦기 원합니다
원공제중생(願共諸衆生) 원컨대 모든 중생이 다함께
동성무상도(同成無上道) 위없는 도를 함께 이루어지이다
이 게송의 제1구 '원단일체악(願斷一切惡)' 즉 '일체의 악을 끊는다'는 것은 곧 옛 인연을 끊는다는 것이고, 제2구 '원수일체선(願修一切善)' 즉 '일체의 선을 닦는다'는 것은 새 인연을 맺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옛 인연을 잊도록 새 인연을 맺도록"은 사정근(四正勤)의 가르침을 간단 명료하게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사정근이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선(善)을 생하게 하고, 이미 일어난 선은 늘게 하며, 아직 일어나지 않은 악(惡)을 생하지 않게 하고, 이미 일어난 악은 멸하게 한다"는 것이다.
의상(義相)스님이 지은 '화엄일승발원문'에 나오는 "제악일단일체단(諸惡一斷一切斷) 제선일성일체성(諸善一成一切成)"도 옛 인연과 새 인연으로 비유될 수 있다.
이처럼 불교에서는 옛 인연이라고 하면, 과거의 나쁜 습관·악우(惡友)·악업(惡業)·번뇌 등을 상징하고, 새 인연이라고 하면, 현재와 미래의 좋은 습관·선우(善友)·선업(善業)·열반 등을 상징한다. 따라서 옛 인연은 마땅히 끊어야 하고, 새 인연은 마땅히 새로 지어야만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