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형굴삭기 면허를 따고 / 탄의 귀농일지 14
밭의 돌은 초기에 굴삭기로 한 번 걸러냈는 데도 끝없이 나온다. 큰 비가 내린 뒤나 겨울 눈이 녹고난 뒤엔 빼꼼히 형체를 드러낸다. 인력으로는 도저히 안되고 장비를 부르자니 하루 8시간에 40-50만원이다. 비용도 감당이 안되지만 하루 이틀 일은 일량이 적다고 불러도 제 때 오질 않는다. 소형굴삭기는 군 농업기술센터에서 빌려주는데 임대료가 하루 4만원. 운반비 왕복 3만원에 기름값을 부담해도 하루 10만원이 안되니 면허증만 있다면
그렇게 사용하는 게 좋다.
소형 굴삭기 면허를 따기로 했다. 20시간의 이론과 실기를 더운 날 경기도 안성까지 사흘을 오가며 배웠다. 그 수료증을 가지고 군에 가서 국가공인의 조종사면허증을 취득했다. 취득한 날 바로 군 농업기술센타에 장비를 3일간 임대신청했다. 장비가 현장으로 도착하여 기계영농의 역사적인 첫 작업에 돌입했다.
약간은 불안한 마음으로 올라타고 시동을 걸고 밭 어귀에서 시험작동을 해본다. 어 생각보다 잘되는데... 자신감에 생겼다. 돌무더기 앞으로 갔다. 하나 둘 돌을 오른 쪽에서 왼쪽으로 옮기는 작업을 하는데 밭이 경사지라 돌을 실은 삽을 경사진 쪽으로 돌릴 때마다 차체의 중심이 흔들린다. 이번엔 돌이 좀 크지만 용케 들어올렸다. 소형 장비로는 좀 무리인 놈을 들어 좌로 90도 턴하여 내려놓으려는 순간 앗차, 차체가 왕창 기울어지면서 내 몸은 앞으로 미끄러졌다. 무의식 중 두 손은 운전석의 기둥을 잡아 몸을 지켰으나 다리는 기둥의 아랫부분을 내리쳤다. 차체는 굴삭기 삽에 의존하여 60-70도 각으로 기울어진 상태. 자칫하면 차가 넘어갈 판이라 엔진을 끄고 조심하여 운전석에서 내려왔다. 어떻게 해야하나, 우선 마을의 트렉터라도 불러서 바로 세워보려했으나 다들 일나가고 없다. 부끄럽지만 기술센터에 사고보고를 하고 기술자들이 쫓아와서 차체를 바로 세웠다. 점검을 했는데 차체엔 이상이 없다. 일단 빌려온 3일 간은 계속 사용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고, 센터직원들은 무리하지 말라는 말을 남기고 돌아갔다.
안전 수칙을 지키지 않은 조작이 사고의 원인 이었다. 경사진 지형에서 차체를 제대로 고정하지 않은 체 너무 큰 돌을 들어올린 것. 돌을 담은 삽을 경사 아랫쪽으로 돌린 것 등, 전체적으로 메뉴얼을 무시한 결과였다. 약을 바른 두 다리를 끌고 퉁퉁 붓고 멍이든 손으로 굴삭기에 다시 오려려니 엄두가 나지않는다. 올라가나 마나를 두고 한참 고뇌를 했다. 아내는 당연히 과부만들지 말고 그만 두라고 한다. 그냥 3일 세워두었다가 반납하라고.
여기서 그만 두면 나와 굴삭기는 영영 이별하고 만다. 처음으로 내 차를 출고받은 그날의 시험운전에서도 나는 사고를 낸 기록이 있다. 아슬아슬하게 대형 사고를 피해 버스 뒷범퍼를 들어박았지만. "모든 시작은 어려운 법이다." ( Alle anfang ist schwer. All beginnings are difficult.) 고등학교 독일어 시간에 배운 말 중 유일하게 기억하는 니체의 말이다. "그러나 시작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되지 않는다. " 다시 조종대를 잡았다. 죽기야 하겠나.
캄캄해질 때까지 땅을 파고 고르며 다친 손과 다리의 원한을 풀었다. 밤이 되니 시퍼렇게 부어오른 엄지가 움직여지지 않는다. 미안하다 손가락아. 주인을 잘못만났으니 어쩌겠니.
|
출처: 숲속의 기쁨 원문보기 글쓴이: 탄
첫댓글 조심하셔요 용기는 대단하심...
감사합니다.
조심하겠습니다. 오래전 일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