丙戌七月 日本渡海船淹沒 百餘人死之 惟一梢工 見船磔然將解 急入艙底 負造果樻纏於肩 而已舟拆 遂乘一板而浮 詳見舟覆始末 譯官玄某與其孫一僕一 又有同行數人 同乘一板 玄某之孫忽墜水死 年十七也 玄某大叫一聲 仍氣絶 其僕被髮發喪 擗踊大哭 繫玄某尸於板上 恐其沉也 同載人 以其板窄難容 割其繫 推尸于海 僕力弱不能挽 梢工板風引急過 不見其畢竟之如何 梢工連飡造果 凡幾日 還泊東萊 噫 玄氏之僕 忠而知禮也 梢工亦有智也
병술년 7월 일본으로 향하여 바다를 건너가던 배가 침몰하여 1백여 명이 죽은 일이 있었다. 오직 키잡이[梢工] 한 명만이 배가 쪼개지려는 것을 보고 급히 배 밑으로 들어가 조과(造果) 궤짝을 짊어지고 나와 어깨에 메었다. 조금 있다 배가 부서지자, 드디어 한 조각 널판을 타고 물에 떠 있었으므로 배가 침몰될 때의 시말(始末)을 자세히 볼 수 있었다. 역관(譯官) 현모(玄某)가 그의 손자 한 명과 종 하나를 데리고 있고, 또 동행인 몇 명이 있어 한 널판지에 함께 동승하였다. 그런데 현모의 손자가 갑자기 물에 떨어져 죽었는데, 그때 나이 17세였다. 이에 현모는 크게 소리를 지르더니 곧 기절하여 죽고 말았다. 그러자 그의 종은 머리를 풀고 발상(發喪)하여 가슴을 치며 대성통곡하였다. 그리고 그 종은 그의 상전인 현모의 시체를 널판지 위에 얽어 묶고, 그것이 가라앉을까봐 걱정하였다. 그러나 함께 탄 사람들은 수용할 수 없다고 하여 그 맨 것을 끊고 시체를 바다에 밀어 넣어 버렸는데 그 종은 힘이 약하여 끌어당길 수가 없었다. 그 키잡이가 탄 널판이 바람에 밀려 순식간에 지나쳐 버렸으므로 마침내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 없었다. 키잡이는 계속해서 조과를 먹으면서 며칠을 지낸 후에 동래(東萊)로 돌아와 정박하였다. 아! 현씨(玄氏)의 종은 충직하고도 예(禮)를 알았고, 키잡이 또한 지혜가 있었다.
淹沒(엄몰): 물속에 가라앉음.=침몰.
梢: 나뭇가지 끝 초
磔: 찢을 책
造果(조과): 유밀과나 과자 따위를 이르는 말.
纏: 묶을 전
發喪(발상): 상례에서, 죽은 사람의 혼을 부르고 나서 상제가 머리를 풀고 슬피 울어 초상난 것을 알림. 또는 그런 절차.≒거애
擗踊(벽용): 몹시 슬퍼함. 어버이의 상사(喪事)에 상제가 가슴을 치고 발을 구른다는 뜻이다.
朴鵬逵 吏曹書吏之子也 早孤 有志於學 甞假病藥之說 以自箴曰
박붕규(朴鵬逵)는 이조(吏曹) 서리(書吏)의 아들이다. 일찍 고아가 되었는데 학문에 뜻을 두고 있었다. 일찍이 병약(病藥)의 설(說)을 인용하여 자신의 잠(箴)을 이렇게 지었다.
賤疾心狹而多窒 氣躁而不固 陽溢而亢 貌峭而乖 智昏而有蔽 神滯而露拙 或銳進而鮮根持 或溺玩而喪本實 重以行僻而趍險 自眩於神奇 自稍長 微有其祟 不至甚矣 自勝冠以後 諸症漸增 動靜語嘿之間 種種發作 已成痼疾 及今不治 將不可復爲 伏願良師 特發奧訣 調溫凉之劑 適平峻之性 君臣佐使補瀉惟宜 快去病根 以成完人 千萬幸甚
“나의 병통은, 마음은 좁아서 막힘이 많고, 기(氣)는 조급해서 견고하지 못하고, 양(陽)은 넘쳐 거만하고, 모습은 못생겨 일그러지고, 지혜는 혼미해서 가려짐이 있으며, 정신은 막혀서 졸렬함을 드러낸다. 혹 용기 있게 나아가다가도 끈기 있게 유지하기가 드물고, 혹은 놀이에 빠져 근본을 잃으며, 거듭 괴벽한 행동을 하여 위험한 데로 향하여 스스로 신기한 것에 현혹되고 만다. 점점 자라면서는 약간 빌미가 있었으나 심한 지경에 이르지는 않았었다. 약관(弱冠)이 된 후에는 여러 증세가 점점 증가하여 움직이거나 가만히 있거나 얘기하거나 안 하거나 간에 때때로 발작하여 이미 고질이 되어 버려 지금에 이르러서도 고치지 못하였으니 앞으로 회복할 수 없을 것 같다. 바라건대, 훌륭한 스승은 오묘한 비결을 특별히 발하시어 온량(溫涼)의 약을 조제하고, 평준(平峻)의 성품에 맞추어 군(君)․신(臣)․좌(佐)․사(使)․보(補)․사(瀉)로 빨리 병의 뿌리를 제거하여, 완전한 인간이 되게 해 주시면 천만 다행이겠습니다.”
[주-D007] 군(君)……사(瀉) : 약을 조제하여 병을 치료하는 방법. 주된 병을 치료하는 성분을 군(君), 합병증을 치료하는 성분을 신(臣), 기운을 보(補)하는 것을 좌(佐), 약의 성분을 병 부위까지 가게 하는 것을 사(使), 병기운을 씻어 내는 것을 사(瀉)라 한다.
露拙: 옹졸하고 못남을 드러내 보임.
祟: 빌미 수
自命藥曰矯氣反性丸 弘毅,恭和,通鍊,敦樸,平易各五兩 右五材采于無極之中 和以浩然之氣 方寸器 鍊養大膽一部 江漢水陶濯 去滓糊丸 麤拳大 秋陽曝乾 淸明湯嚼下不拘時 吾家心溪 甞遇於宮村金直齋家
또 스스로 그 약을 교기반성환(矯氣反性丸)이라 명명(命名)하였는데, 홍의(弘毅)․공화(恭和)․통련(通鍊)․돈박(敦樸)․평이(平易) 각 5냥으로 짓되, 위의 5가지 재료를 무극(無極) 가운데에서 채취하고, 여기다가 호연지기(浩然之氣)를 조화시켜 방촌기(方寸器)에다 담고 대담(大膽) 일부(一部)를 넣어 달인 다음 강수(江水)․한수(漢水)에다 씻어 찌꺼기를 제거하고 짓이겨 큰 주먹만하게 환(丸)을 만들어 가을볕에 말린 뒤 청명탕(淸明湯)에 씹어먹되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다고 하였다. 우리가 심계(心溪)에서 살 때 일찍이 궁촌(宮村) 김직재(金直齋) 집에서 만난 적이 있다.
糊丸: 약 가루를 풀에 반죽하여 환(丸)을 만듦. 또는 그런 환약.
麤: 거칠 추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참고.
첫댓글 '박붕규'의 이야기를 안대회 교수님께서 인용하신 글이 있어 소개합니다.
<원문보기>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2081701033737191004
“나는 약의 이름을, 기운을 바로잡고 본성을 회복하는 환약, 곧 교기반성환(矯氣反性丸)이라고 짓는다. 넓고 굳셈과 공손하고 온화함과 트이고 훈련함과 돈독하고 소박함과 평이함의 약재를 각각 5냥씩 넣는다. 이 다섯 가지 약재를 무극(無極)에서 채취하여 호연지기(浩然之氣)와 조제한다. 심장이란 그릇에 대담함 한 가지를 넣어 달인 다음 큰 강물에 씻어 찌꺼기를 제거한다. 이를 짓이겨 큰 주먹만한 환약을 만들어 뙤약볕에 잘 말린 다음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씹어 먹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