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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715. 성 보나벤투라 주교 학자 기념일. 호명환 가롤로 신부님. 숨영성 묵상글 참된 "나"는 "나는 있는 '나'다" 하시는 하느님과는 물론이고 모든 존재와 깊이 연결되어 있음을 아는 "나"입니다.
어제 성무일도 저녁 기도를 바치기 전에 조금 일찍 성당에 들어가 묵상을 하였습니다. 묵상을 하는 동안 주님께서 저의 불안한 마음을 위로해 주십사고 청했습니다. 저의 불안한 마음을 꼭 껴안아 주십사고요. 처음에는 그렇게 다정히 끌어안아 주시는 주님의 손길을 몸으로 느낄 수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하다가, 이런 기도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주님 제가 당신께서 저를 끌어안아 주시는 당신의 손길과 다정한 품을 몸으로는 느끼지 못하더라도 영으로 느낄 수 있게끔 해 주십시오..."라고요. 그런데 늘 그렇듯이 별 감응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성무일도를 바치는 동안 성무일도의 찬미가와 시편을 바치면서 마음이 편안해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주님과 친밀한 관계 안에서 그분께 의탁하고자 마음이 아마도 그런 편안한 마음을 갖게 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성무일도 뒷부분에 바치는 청원 기도에 이런 내용이 나오더군요. "우리 힘에 겨운 유혹을 당하도록 버려 두지 않으시는 주님, 약한 이들에게 힘을 주시고 넘어진 자들을 일으켜 주소서!" 이 기도를 바치면서 우리 죄를 "벌"의 대상이 아니라 "용서"와 "치유"가 필요한 아픔과 상처로 여기시며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온 정성으로 끌어안아 주시는 주님을 깊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주님께서는 이렇게 내 기도를 이렇게 들어주시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의탁하고자 하는 마음이 바로 오늘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철부지 어린 아이들의 마음이 아닐까 합니다. '나' 혼자로는 안 되니 누군가와의 연결 고리를 찾고자 하고 의탁할 마음을 갖는 것! 이것이 바로 철부지 어린이이들의 마음이 아닐까 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오늘 이렇게 선언하십니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드러내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 세상의 많은 진실은 어린이들의 입을 통해 드러납니다. 그 진실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존재가 하느님과는 물론이고 우리 서로에게 연결되어 있다는 진실 혹은 진리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기에서 어린이, 그리고 청년기를 거치고 어른이 되면서 점점 더 편을 가르기 시작하고 거기서부터 이 진실은 멀어지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마태 18,3) 하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요한바오로 2세 성인이 말했듯이 하늘 나라는 어떤 물리적인 장소가 아니라 "관계성"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내 존재가 다른 모든 존재와 연결되어 있고, '나'와 '너'가 결국은 모두 '나'요, "나는 있는 나다" 하시는 하느님과 일치되어 있음을 깊이 인식하며 살아가는 이들이 있는 곳이 바로 하늘 나라인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사용하시는 '철부지'라는 말은 영어에서 'infant'(갓난아기)로 쓰이는데, 이 단어는 라틴어 in-fans, 곧 "말을 하지 못하는 사람"에서 나온 말입니다. 언어는 구별을 가능하게 하는데, 이것은 곧이어 분리로 이어지고, 결국 대립으로 변합니다. 가장 큰 분열을 초대하는 단어는 아마 "나"일지도 모릅니다. "나"라는 1인칭 대명사는 영어에서 가장 자주 쓰이는 대명사이며, 대문자로 쓰입니다. 심지어는 다른 인칭 대명사들과는 달리 유일하게 "I"(나)는 God(하느님)처럼 언제든 대명사를 씁니다. 이처럼 언어는 '내'가 모든 것과 분리되어 있고, 세상이 나를 대적한다고 믿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면 나는 평생 이 "나"라는 1인칭을 지키고 방어하는 데 에너지를 쓰게 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산소, 물, 집과 같은 "나 아닌 것들" 없이는 단 5분도 버틸 수 없습니다. "나"는 진실의 가장 큰 적이 될 수 있습니다. 문법적으로조차 나를 하느님과 분리시키며, 그 길을 따라가면 하느님이 계시지 않다고 믿게 될 수도 있는 것이지요!… 우리가 내려놓아야 할 에고, 즉 "나"가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 에고가 지켜야 한다고 고집하는 "나" 때문에 우리는 불안과 두려움을 안고 살아가는 것이겠지요?! 그러나 지킬 것이 없다면 우리는 불안과 두려움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 참된 "나"는 거짓 자아인 에고와는 다르게 존재의 근원이신 하느님과는 물론이고 서로 깊이 연결되어 있는 존재의 현실을 깊이 인식하는 자아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철부지들(작은 이들)은 단지 어린 아기들이나 어린이들만이 아니라, 겸손한 이들, 무거운 짐을 진 이들, 하느님의 말씀을 들을 준비가 된 이들, 그래서 분리보다는 연결을 간절히 원하는 이들, 즉 당신의 제자들을 뜻하는 말입니다. 그들은 하느님과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모든 것의 필요를 아는 이들입니다. 이 지혜는 세상의 지식이나 지혜처럼 보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논리적 증거도, 학문적 지식도 없지만, 바오로 사도가 말했듯이 "이 세상의 우두머리들(이 시상의 지혜 있는 자들) 절대 깨닫지 못하는 하느님의 지혜"(1코린 2,8 참조)입니다. 곧 예수님 안에 육화된 하느님의 지혜가 바로 이 지혜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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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715. 성 보나벤투라 주교 학자 기념일.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양 한 마리 프로젝트!
드디어 8박 9일의 몽골 자연 피정을 끝내고 귀국합니다. 처음 시도하는 피정이라 시행착오도 참 많았습니다. 그러나 숱한 부족함과 다양한 결핍조차 선으로 결론 맺으시는 주님, 항상 순례 여정을 동반하시는 성모님의 현존에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어젯밤에는 숙소 근처에 있는 몽골 살레시오회 지부를 찾았습니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묵묵히 아이들 사이에 현존하고 있는 형제들을 만났습니다. 수도원에 막 도착했을 무렵 살레시안들이 운영하고 있는 생활 시설 청소년들이 신나게 축구 시합을 하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참 좋았습니다. 독일에서 온 자원봉사자 여자 청년 한 분은 골문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다른 한 분은 심판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신나게 뛰어놀고 있는 아이들 사이에 낯익은 분, 살레시오회 몽골 지부장 최원철 티모테오 신부님이 세상 행복한 얼굴로 공을 몰고 다녔습니다. 지부장이면서도 마치 철부지 어린이처럼 신나게 뛰어다니는 모습과 오늘 예수님의 말씀이 묘하게 교차되었습니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마태 11,25) 우리 모든 살레시안들이 해맑은 철부지의 얼굴로 언제나 아이들 사이에 굳건히 현존하기를 기도했습니다. 어제는 밤늦도록 지부장 신부님과 지부 재정 담당 수사님을 만나서 대화를 나누다 보니, 현지의 재정 상황이 심각했습니다. 최근 몽골의 물가가 고공행진하고 있답니다. 저희가 고용하고 있는 교사나 직원들의 임금 인상도 불가피해졌답니다. 정부나 지역 교회의 후원이 전무한 상황에서 30년 이상, 초중고등학교, 공업학교, 오라토리오, 방과 후 교실, 본당 등에서 아이들 사이에 현존하느라 우리 살레시오 형제들이 감내해야 할 고통이 혹독했습니다. 안타깝게도 초대 지부장은 뇌출혈로 인한 충격으로 거동이 불편하게 되어 본국으로 귀국해 요양 중입니다. 슬프게도 다음 지부장은 거듭되는 과로로 고생하다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한 형제는 구안와사로 죽을 고생을 하고 있습니다. 순례자들을 안내해주신 수사님도 걸음이 불편해서 물어보니 요르단강을 거의 건너갔다고 왔답니다. 이런 와중에 작년부터 한국 관구에서 몽골 지부 운영을 맡게 되었고, 최초의 한국 지부장으로 최원철 신부님이 임명되었는데, 앞으로 그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 다들 걱정하고 있습니다. 저는 몽골 살레시안들을 만나면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선교사들을 위한 후원은 2차적인 부분이로구나. 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 위한 보다 적극적이고 열렬한 기도로구나. 머나먼 타국에서, 물설고 낯선 곳에서의 선교지에서의 생활이 결코 만만치 않고, 육체적인 어려움은 물론이고 영적, 정서적, 심리적 메마름에 수시로 노출되니, 기도가 제일 중요하겠구나.’ 인생 여정을 걸어가는 길에서 직면하게 될 이런저런 고통과 시련 앞에 설 때 마다 선교지에서 묵묵히 헌신하는 선교사들 떠올리며 그들을 위한 기도를 아끼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작은 불편함과 고통을 기쁘게 참아내야 하겠습니다. 그분들의 노고와 희생을 생각하며 기꺼이 희생하고 감내해야 하겠습니다. 그런 노력을 통해 우리 역시 선교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지부 경리 안드레아 수사님은 베트남 출신인데, 23년간 몽골에서 헌신하고 계신답니다. 몽골 지부의 어머니요 보물같은 존재로 형제들로부터 존경을 한몸에 받고 있습니다. 최근 안드레아 수사님이 현지 아이들을 위해 기획한 프로젝트가 하나 있습니다. 이른 바 ‘양 한 마리 프로젝트’입니다. 통상 목자 한 명이 양 100마리 정도를 이끌고 다닌답니다. 성장한 암양은 1년에 1~2마리의 새끼를 낳습니다. 어린 숫양들은 겨울이 다가오면서 통통해지는데, 도축된 친구들은 겨우내 먹을 아이들의 양식으로 저장됩니다. 현재 160마리의 양들을 키우고 있습니다. 양 한 마리의 가격은 10만원입니다. 꽤 큰 금액이지만, 양 한 마리만 후원해주신다면, 심각한 경영난에 휘청거리는 몽골 지부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서 점심을 건너뛰는 기술학교 청소년들, 학비를 감당할 수 없어 주변에서 서성거리는 방과 후 교실 아이들에게 큰 격려와 기쁨이 될 것입니다. 양 한 마리 후원하기 양 한 마리 가격: 10만원 살레시오회 몽골지부 후원 계좌 국민은행 090-01-0323-505 예금주: (재) 천주교 살레시오회 선교국 *송금시 반드시 ‘양 한 마리’라고 명기해주시기 바랍니다. 양 한 마리 후원 문의 및 연말 기부금 영수증 신청 살레시오회 선교국 02) 828-3524, 010-8983-3524(월~금, 09:00~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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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715. 성 보나벤투라 주교 학자 기념일. 송영진 모세 신부님 <하느님 아버지와 아들> <그때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 “나의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나에게 넘겨주셨다. 그래서 아버지 외에는 아무도 아들을 알지 못한다. 또 아들 외에는, 그리고 그가 아버지를 드러내 보여 주려는 사람 외에는 아무도 아버지를 알지 못한다.”(마태 11,25-27)> 1)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을, 원하는 대로 출세하고, 성공하고,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재산을 많이 모은 사람들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남부러울 것 없는’ 인생을 살고 있고, 아쉬운 것도 없이 살고 있어서, 하느님을 찾을 필요를 못 느끼고, 그래서 종교와 신앙 없이 살고 있는 사람들, 또 자기는 대단히 잘난 사람이라고 우쭐거리면서 잘난 척 하고, 그러면서 다른 사람들을 못난이 취급하고, 멸시하고...... 부모 덕분에 태어날 때부터 그렇게 사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본인이 열심히 노력해서 그렇게 된 사람도 있을 텐데, 어떤 과정을 거쳤든지 간에 지금 자신이 누리고 있는 부귀영화를 자랑하는 사람들...... 예수님께서 꾸짖으시는 것은 그들의 ‘교만’입니다. 교만한 자들이 하느님 없이, 또는 하느님을 외면하고 살면서 누리는 부귀영화는 ‘바벨탑’일 뿐입니다. 바벨탑은 반드시 무너지는 허무한 것입니다. 구약성경 코헬렛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나 이전에 예루살렘에서 통치하던 모든 분들보다 더 크고 부유하게 되었으며, 나의 지혜 또한 내 앞에 서 있었다. 내 눈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나 뿌리치지 않았고, 내 마음에게 어떠한 즐거움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렇다, 내 마음은 나의 모든 노고에서 즐거움을 얻었으니, 그것이 나의 모든 노고에 대한 몫이었다. 그러고 나서 내 손이 이룬 그 모든 위업과 일하면서 애쓴 노고를 돌이켜 보았다. 그러나 보라, 이 모든 것이 바람을 잡는 일. 태양 아래에서는 아무 보람이 없다(코헬 2,9-11).” 이사야 예언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한 소리가 말한다. ‘외쳐라.’ ‘무엇을 외쳐야 합니까?’ 하고 내가 물었다. ‘모든 인간은 풀이요, 그 영화는 들의 꽃과 같다. 주님의 입김이 그 위로 불어오면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든다. 진정 이 백성은 풀에 지나지 않는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들지만, 우리 하느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 있으리라.’(이사 40,6-8)” 그런데 사실, 그런 사람들도 인생이 어떻게 끝나는지를 모르지는 않습니다. 온 세상을 다 소유한다고 해도 결국 빈손으로 떠나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 알면서도 그것을 생각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 그들의 문제입니다. 교만은 항상 그렇게 어리석음과 짝을 이룹니다. 그 사람들은 자기들이 지혜롭고 슬기롭다고 자처하지만, 실제로는 어리석은 자들입니다. 2)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이라는 말을 뒤의 27절에 연결해서 생각하면, 이 말은 하느님과 예수님을 잘 안다고 주장하면서 유식한 척 하고 잘난 척 하는 자들을 가리키는 말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7장에 나오는 바리사이들이 좋은 예가 됩니다. “성전 경비병들이 돌아오자 수석 사제들과 바리사이들이, ‘왜 그 사람을 끌고 오지 않았느냐?’ 하고 그들에게 물었다. ‘그분처럼 말하는 사람은 지금까지 하나도 없었습니다.’ 하고 성전 경비병들이 대답하자, 바리사이들이 그들에게 말하였다. ‘너희도 속은 것이 아니냐? 최고의회 의원들이나 바리사이들 가운데에서 누가 그를 믿더냐? 율법을 모르는 저 군중은 저주받은 자들이다.’(요한 7,45-49)” 이 이야기에 나오는 바리사이들은, 성경도 잘 알고 하느님도 잘 안다고 자처하는 자들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눈에 보이는 성전 경비병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들입니다. 바리사이들은 자신들의 교만 때문에 보면서도 보지 못하고, 들으면서도 듣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진짜로 아무것도 모르는 자들은 바리사이들입니다. 3) “이것을 감추시고”에서 ‘이것’은, 인간 구원에 대한 하느님의 뜻과 계획, 예수님의 복음 등을 가리킵니다. ‘감추시고’는, 하느님께서 감추셨다는 뜻이 아니라, 교만한 자들이 구원과 생명을 외면하고, 예수님과 예수님의 복음을 안 믿는다는 뜻입니다. ‘철부지들’은 일차적으로는 예수님의 제자들을 가리키고, 넓은 뜻으로는 소외계층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사도행전에, 최고의회 의원들이 사도들을 보고 놀랐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들은(최고의회 의원들은) 베드로와 요한의 담대함을 보고 또 이들이 무식하고 평범한 사람임을 알아차리고 놀라워하였다. 그리고 이들이 예수님과 함께 다니던 사람들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사도 4,13).” 최고의회 의원들이 놀란 것은, 자기들의 생각과 다르게 사도들이 무식하지도 않고 평범하지도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유식함과 비범함은 성령에게서 온 것입니다.> 지금 예수님의 감사기도는, 모든 사람이 차별 없이 구원받는 것에 대한 감사기도입니다. 인간 세상에서의 위치와는 상관없이 모든 사람을 똑같이 구원하는 것이 하느님의 뜻입니다. 그러나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누구든지 하느님 앞에서 ‘어린이’가 되어야 한다는 조건입니다(마태 18,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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