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환의 문향 만리 시조 52 황만성
돌담장
황만성
커다란 돌은 밟고/조그만 돌을 이고//돌 가운데 버티고서/돌담장이 되고만 나//사는 건/보이지 않는/돌덩이와의 마주침//부대끼면 안아주고/간간이 업어도 주면//등지고 앉았어도/느끼는 너의 체온//그렇게/나를 주면서/돌담장이 되고만 나 //보잘 것 없었지만/너를 맞아 둘이 되고//어설픈 꿈도 꾸며/돌담장 된 나를 본다//세상은/돌들이 만나/담장 쌓는 곳이다
시조집, 『세상은 돌들이 만나』(작가, 2019)
황만성 시인은 경북 포항 출신으로 2015년 《시조시학》신인상 당선으로 등단했다. 시조집으로『세상은 돌들이 만나』가 있다. 첫 시조집의 표사에서 이숙경 시인은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살아가다 그 치열함에 지쳤을 때 사람들은 가끔 자연의 위안을 받으러 찾아가는 것이 일반적인 삶의 모습인데 황만성 시인은 이와는 반대로 자연에서 살며 시의 텃밭에 삶을 일구고 시의 집으로 거둬들이는 사람이다. 그가 마침내 가야할 산이었던 가야산 자락에서 봄에는 뻐꾸기 울음을 허공에 매어놓고 여름에는 바랭이와 싸워가며 삶의 당위성을 깨닫는다. 가을이면 바람이 내려와 이르는 소리를 듣고 겨울에는 물동이에서 튕겨 나온 얼음가시를 볼 수 있는 일에서 보듯 그의 말과 글은 모두 가야산을 매개로 이루어진 소통의 산물이다. 삶을 시지프스에게 내린 형벌로 생각하지 않고 조그만 돌을 이고 사는 삶, 돌들이 만나 담장 짓는 이야기로 생각하는 시인의 긍정은 결국 내 안의 나를 만나 둥글둥글 초 두루미가 되는 과정에서 자연스러운 시를 생산하게 만들었다.”라고 말했다. 또한 김양희 시인은 “돌이 사람이고 사람이 돌이다. 돌 속에 사람이 살고 사람 속에서 돌이 사는 걸 이미 알아버린 시인은 돌로 노래한다. 돌의 노래는 부드러운 리듬이며, 아름다운 선율이다. 시인의 손에서 돌이 위치를 바꾸거나 자리를 이동하며 뛰어논다. 어떤 돌을 만지든 손에는 돌의 세포가 떨어지고 세포가 번식하면 글을 만든다. 돌가루가 시조로 태어났다. 가루는 시인의 본성이다. 그 결정체가 『세상은 돌들이 만나』이다.”라고 평했다.
‘돌담장’은 읽을수록 맛이 난다. 자연스럽게 전개되어 읽는 이로 하여금 시속으로 푹 빠져 들게 하는 묘한 매력이 있다. 시인은 번잡한 도회지를 떠나 가야산 자락에 둥지를 틀면서 새로운 청록파를 개척 중이다. 흙과 더불어 온몸으로 살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커다란 돌은 밟고 조그만 돌을 이고 돌 가운데 버티고서 돌담장이 되고만 나라는 표현에서 나와 돌담장의 합일을 읽는다. 그런 뒤 사는 것은 보이지 않는 돌덩이와의 마주침임을 제시한다. 부대끼면 안아주고 간간이 업어도 주면 등지고 앉았어도 너의 체온을 느낀다. 보잘 것 없었지만 너를 맞아 둘이 되고 어설픈 꿈도 꾸며 돌담장 된 나를 보면서 종국에 이르러 세상은 돌들이 만나 담장 쌓는 곳임을 깨닫는다.
그는 또 ‘도읍지’라는 시조에서 철든 남자는 가슴으로 꿈꾼다고 노래한다. 또한 하늘 아래 서 있든 땅위에 누워 있든 어쨌든 그 꿈을 키우려고 하루해를 지운다고 본다. 그러다가 남자는 자신만의 도읍지를 꿈꾼다, 라고 내심을 드러낸다. 배포가 큰 서슴없는 발언이다. 눈높이나 뼘에 맞춰 작고 낮든 크고 넓든 가슴에 하늘땅 담아 별빛 가득 안는 꿈이라는 결구에서 그만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시인은 여러 해 전 그만의 도읍지를 열고 스스로를 시를 쓰는 농부 즉 시농이라고 부르면서 농장을 돌보고 시의 텃밭을 일구는 일에 땀을 흘리고 있다. 더불어 시조 창작을 통해 도읍지에 의미를 더하고 있다.
돌담장이 한 가정의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 그만의 도읍지에서 영원복락을 꿈꿀 수 있다면 이보다 더한 행복이 또 어디 있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