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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섭리(1)
2015년 1월 11일 / 대예배 / 에스라 2:64-65
에스라 2:64-65 / 귀향 공동체의 총인원은 4만 2,360명이었다. 그 밖에도 남종과 여종이 모두 7,337명, 노래하는 남녀와 연주자들이 200명, 말이 736필, 노새가 245마리, 약대가 435마리, 당나귀 6,720마리가 함께 왔다. 그토록 많은 사람과 짐승이 대거 귀환을 할 때에 많은 연주자들이 즐거운 노래로 동행하여 마치 영광의 출애굽을 다시 경험하는 듯한 사건이 되었다.
<역대하>는 찬란했던 솔로몬 왕 때의 이스라엘에서부터 시작해서 솔로몬의 죽음 이후 북왕국 이스라엘과 남왕국 유다 두 나라로 갈라진 이스라엘 민족이 점차로 쇠락의 길을 걸은 끝에 북왕국 이스라엘이 먼저 앗수르에게 멸망을 당하고 한 세기 반도 못 가서 남왕국 유다도 바벨론에게 멸망당하고 만 역사를 유다의 역대 왕들에 대한 기록을 중심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대하 36:5-23).
역대기하를 유다 왕국의 쇠락과 멸망의 역사라고 한다면 이어지는 <에스라>서는 멸망했던 유다 민족을 하나님께서 다시 세우시는 역사를 기록한 책입니다. 이방 나라에 끌려가 살던 유다 백성을 제 땅으로 돌아가게 하시고, 유다 백성에게 파괴된 하나님의 성전을 새로 건축하게 하시며, 잊어버렸던 예배를 회복시키시며, 잃어버렸던 신앙의 순수성을 되찾게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증언하는 책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거룩하시고 의로우신 심판주 하나님이십니다. 죄와 불의를 결코 묵과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당신의 택하신 백성을 영원한 형벌과 고통 속에 내버려두지 않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들의 슬픔과 통한을 외면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당신의 백성을 다시 세우시는 하나님을 보여주는 것이 에스라와 그 뒤를 잇는 <느헤미야>서입니다.
하나님은 참으로 모든 역사의 주인이십니다. 인류의 역사에는 한 시대를 주도했던 인물들이나 한 세기를 호령했던 나라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사람과 나라는 한 시대로 끝나고 지나갈 뿐 영원히 남으시는 이는 오직 하나님뿐이십니다. 하나님은 그 모든 사람과 나라를 당신의 역사의 도구로 사용하셨음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역사 속에서 하나님은 항상 당신의 뜻과 의를 함께 세우십니다. 따라서 이 세상에서 한 시대를 살고 지나가는 우리 인생이 영원하기 위한 유일한 길은 하나님의 뜻과 의를 따르는 것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뜻과 의를 따르도록 당신의 나라와 그 백성을 세우셨습니다. 그런데 아담 이후로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저버림으로 하나님의 나라로부터 멀어져갔고 하나님은 끊임없이 당신의 백성을 당신에게로 돌이켜 데려오는 노력을 기울이셨습니다. 그 역사의 압축본이 이스라엘 백성입니다. 북왕국 이스라엘이 먼저 주전 722년 경 멸망했습니다. 역대 왕들이 줄줄이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기에 하나님께서 앗수르 제국에 의해 망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앗수르 제국을 북왕국 이스라엘을 징치하시는 도구로 사용하셨을 뿐 앗수르 제국을 하나님께서 크게 높이신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이 멸망한 후 1세기를 조금 넘기고 하나님께서는 앗수르 제국을 결국 바벨론에 의해 역사에서 사라지게 하셨습니다. 앗수르를 무너뜨린 바벨론을 하나님께서 그 다음에는 남왕국 유다를 징치하시는 도구로 사용하셨습니다. 바벨론으로 하여금 유다를 멸망시키게 하신 것입니다. 북왕국 이스라엘이 멸망한지 135년 쯤 뒤인 주전 587년에서 586년 경 바벨론 왕 느브갓네살은 예루살렘을 함락시키고 예루살렘 성전을 파괴해버렸습니다. 유다 왕국은 없어졌고 많은 유다 백성이 바벨론으로 끌려갔습니다. 성전이 파괴되어 버렸으므로 하나님께 바르게 예배드릴 처소가 없어졌습니다. 바벨론으로 끌려간 백성에게나 남은 백성에게나 자연히 그들의 신앙을 바르게 지켜가는 일이 어려워지게 되었습니다. 선택받은 민족의 혈통을 순수하게 유지하는 일도 쉬운 일은 아니게 되었습니다. 특히 그런 여건 속에서 오랜 세월 레위족이나 제사장계층을 계속 유지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 하나님은 이러한 여건을 누구보다도 안타까워하셨습니다. 바벨론이 예루살렘을 함락시키고 하나님의 성전을 파괴한지 오십 년도 채 안 되는 주전 539년 페르시아의 고레스 대왕으로 하여금 바벨론을 붕괴시키게 하신 것입니다. 바벨론과 그 제국은 별다른 저항 없이 고레스의 손에 떨어졌습니다. 고레스는 사리에 밝고 관용적인 군주였습니다. 그는 바벨론을 점령하자 곧바로 바벨론의 지배하에 있던 모든 나라의 백성에게 각각 자기들 나라로 돌아가서 자기들의 성전들을 재건할 권리를 약속하는 조서를 내렸습니다. 이것은 바벨론이 추구하던 정책과는 정반대되는 것이었고 페르시아의 지배하에 놓이게 된 모든 나라들에게 최대한의 만족을 주는 현실주의 정책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벨론에 잡혀왔던 유다 백성에게도 고국 땅에 돌아가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할 수 있는 놀라운 기회가 되었던 것입니다.
고레스 대왕이 내린 조서 가운데 유다 백성에 관한 내용에 해당하는 부분이라고 <에스라>서의 기자가 옮긴 것이 에스라 1:2-4입니다.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는 고레스라는 자가 페르시아라는 제국의 왕이 되어 바벨론을 무너뜨리고 그런 조서를 내릴 것을 아시고 그보다 한 세기 전에 태어난 예언자 예레미야를 통해 그 사실을 말씀하셨습니다(렘 29:10 /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니라.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돌보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성취하여 너희를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그 하나님의 말씀대로, 그리고 예레미야가 전한대로 이루어졌다고 에스라 1:1-3은 기록하였습니다. 이러한 일들은 오직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었습니다. 약속하신 대로 친히 당신의 백성을 다시 돌아오게 하시고 성전을 다시 세우게 하시며 신앙을 회복시키셨습니다. 사실 이러한 일들 모두는 기적과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누가 감히 이러한 일을 진행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였다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 ‘한 나라가 없어졌다가 다시 세워졌다’는 것이 하나님의 섭리였었다고 말하지만, 왜 없어졌으며 어떻게 하여 세워졌는지를 분명히 알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 유다왕국의 멸망의 원인을 살펴봅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여 세우신 백성의 나라이며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약속하시기를 영원히 견고한 왕조가 되게 해주시겠다고 하신(대상17:10-14) 왕국이 왜 이렇게 되었는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요시야가 죽은 후의 유다 왕국의 마지막 네 왕에 관한 역대하의 기록은 다른 왕들을 관해서 기록할 때보다 훨씬 생략된 형식으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거의 한 묶음으로 처리하다시피 합니다. 마치 별로 기록할 가치가 없는 사람들이라는 듯이 대충 처리하고 맙니다. 이미 유다 왕조는 그 기운을 다 잃었고 벌써 다 망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투입니다. 사실이 그랬습니다. 어떻게 했기에 그렇게 됐습니까? 마지막 네 왕에 관한 언급만 골라서 읽어봅니다. ① 먼저 여호아하스에 관해서입니다. <역대하>는 그의 행실에 관해 아무런 언급도 없습니다. 그러나 <열왕기하>는 “여호아하스가 그의 조상들의 모든 행위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다”고 쓰고 있습니다(왕하 23:32). ② 여호야김에 관해서 역대기하 36:5에서는 “여호야김이 왕위에 오를 때에 나이가 이십오 세라 예루살렘에서 십일 년 동안 다스리며 그의 하나님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더라.” 하고 열왕기하 23:37에서도 “여호야김이 그의 조상들이 행한 모든 일을 따라서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더라.” 합니다. ③ 여호야긴에 관해서도 역대하 36:9에서는 “여호야긴이 왕위에 오를 때에 나이가 팔 세라 예루살렘에서 석달 열흘 동안 다스리며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더라.” 하고 열왕기하 24:9에서는 “여호야긴이 그의 아버지의 모든 행위를 따라서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더라.” 합니다. 하나같이 하나님 앞에 악을 행했다는 평가뿐입니다. ④ 마지막 시드기야에 관해서도 열왕기하 24:19에서는 “그가 여호야김의 모든 행위를 따라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한지라.” 합니다. 그런데 시드기야에 관한 역대하의 기록에는 한 가지 주목할 만한 언급이 있습니다. 역대기하 36:11-12을 봅니다: “시드기야가 왕위에 오를 때에 나이가 이십일 세라 예루살렘에서 십일 년 동안 다스리며 그의 하나님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고 선지자 예레미야가 여호와의 말씀으로 일러도 그 앞에서 겸손하지 아니하였으며” 합니다. 또 15-16절에서는 “그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과 그 거하시는 곳을 아끼사 부지런히 그의 사신들을 그 백성에게 보내어 이르셨으나 그의 백성이 하나님의 사신들을 비웃고 그의 말씀을 멸시하며 그의 선지자를 욕하여 여호와의 진노를 그의 백성에게 미치게 하여 회복할 수 없게 하였으므로”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유다의 왕들과 백성이 악을 행하는 것을 가만히 보시기만 하다가 소리 없이 징벌하시고 멸망시키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선지자를 보내어 말씀으로 일러주셨지만 그들이 겸손히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과 예루살렘 성전을 아끼셔서 부지런히 당신의 사신들을 백성에게 보내시며 말씀하셨으나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하며 회복할 수 없도록 하나님의 진노를 쌓아갔던 것입니다. 그 결과가 하나님의 백성의 나라의 치욕스럽고 비참한 멸망이었던 것입니다.
드디어 유다 왕국은 완전히 멸망했습니다. 유다 백성의 삶의 터전인 땅과 수도 예루살렘은 바벨론 군대에 의해 점령되었습니다. 유다 백성의 신앙의 요람이고 정신적 구심점인 하나님의 성전은 더럽혀졌고 파괴되었습니다. 유다 왕국의 정치적 중심인 왕권은 이방 적국에 의해 유린되고 박탈되었습니다. 그리고 백성은 포로로 먼 남의 나라에 끌려갔습니다. 한 나라의 완전한 해체입니다. 이제 남은 것은 황폐한 땅, 나라 잃은 백성, 남의 나라에서 희망 없이 살아가는 백성뿐입니다.
그런데 역대기하 36장 마지막 절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21절입니다. “이에 토지가 황폐하여 땅이 안식년을 누림 같이 안식하여 칠십 년을 지냈으니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더라.” 나라 잃고 이방 땅에서의 포로생활의 기간을 칠십 년이라 한 것입니다. 치욕의 세월의 끝이 있음을 말한 것입니다. 희망을 보인 것입니다. 게다가 토지가 황폐했던 그 기간을 안식의 기간이라 한 것입니다. 재기를 위한 준비의 기간으로 본 것입니다.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에게 가능성이 아직 남아있음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그 남은 희망은 어디에 있는 것입니까? 그 희망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왕국의 영원한 근거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폐기되지 않은 언약이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언약이 영원하리라 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것 다 없어도 하나님의 은혜가 있는 것입니다. 조건 없는 은혜의 하나님이 계신 것입니다. 그 하나님께로 돌아가면 되는 것입니다. 통회하며 긍휼과 용서를 빌며 두 손 들고 하나님께로 가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 남북전쟁이 한창 격렬하던 당시, 링컨 대통령이 출석하던 교회의 목사님이 예배 시간에 이렇게 광고를 했습니다. “오늘을 마지막으로 우리 교회에서는 더 이상 모임을 갖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전쟁터에서 실려오는 부상자들이 너무 많아 교회를 병원으로 개조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이 전쟁에서 이기는 것만이 미국의 희망이었고, 그것은 정의가 승리하는 길이었습니다. 그래서 교회부터 자기를 희생하며 봉사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예배가 끝난 후 링컨 대통령이 목사님께 말했습니다. “목사님, 이 전쟁에서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하나님께 기도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을 멈춘다면 이 전쟁에서 희망을 가질 수 없습니다. 제발 이 교회에서 기도와 예배가 계속되게 해 주십시오.” 그래서 결국 교회를 병원으로 개조하려던 계획은 취소되었다고 합니다.
▶ 본문을 통해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이러한 사실이 있기 전까지 예레미야를 포함한 수많은 신앙인들이 하나님께 울부짖었고, 고국으로 귀환하는 이들 모두는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해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믿고 순종하였기에 얻어진 결실들이라는 점에서 본문을 택한 것입니다.
■ 본문의 이해를 위해 기적과 같은 일을 일구어낸 영동농장 김용복 회장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이분은 사업에 성공하고 잘 살았지만 하나님도 예수도 믿지 않고 자기 힘으로 살아간다고 생각한 것이 문제였습니다. 오래지 않아 사업이 망하여 빚더미에 올라앉았습니다. 그 후 답답하니 술만 자꾸 마셔 술독이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전도를 받아서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믿고 나니까 어찌나 마음이 기쁘고 좋은지 말로 다 할 수 없었습니다. 기도생활도 열심히 하였습니다. 어느 날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저 더운 지방 아라비아 사막에 가서 배추 농사를 지어라.”, “네? 온도가 50도나 되고 모래판이고 사람도 살기 힘든 곳에 배추를 어떻게 짓습니까.”, “시키는 대로 해라.” 아무리 생각해도 어려울 것 같고 안 될 것 같은데도 시작은 했습니다. 그동안 아라비아 사막에서 배추를 심겠다고 시도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지만, 하나님이 말씀하시니 순종하기로 하고, 1975년 4월 성남 지하 단칸방에 식구들을 남겨두고 옷가방 1개와 7달러만 가지고 어렵게 여권을 얻어 한국 농부 4명과 삽 네 자루만 들고 사우디 아라비아로 떠납니다. 사막에서 배추를 길러 김치를 담근다고 하니 많은 이들이 코웃음을 쳤습니다. 그들은 무모한 도전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나는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가야만 성공할 수 있다고 확신했습니다. / 그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배추를 재배할 생각을 하게 된 것은 1970년대 당시 15만여 명의 한국 근로자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일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동아건설, 현대건설, 한신공영, 경남기업 등이 새로운 공사를 시작하는 중이었습니다. 이 사람들이 가장 그리워한 것은 한국의 김치였지만 신선한 김치를 먹을 수 없었습니다. 서울에서 배로 김치를 실어오는데 40일, 부두에서 현장으로 가져오는데 30일, 운반에만 70일이 걸렸습니다. 그 기간에 김치는 삭아버렸습니다. / 또 그는 사막에 농장을 세우면 사우디아라비아 정부가 모든 경비의 80%를 지원한다는 새로운 사실도 알게 됐습니다. 무이자 대출이 아니라 그냥 주는 것입니다. 적은 투자로 그의 꿈을 실현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입니다. 사료 작물을 재배하는 알팔파라는 현지 농장을 방문하고 그는 더욱 확신을 갖게 됐습니다. 사료 작물 사이에서 파릇파릇한 잡초들이 얼굴을 내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잡초가 자란다는 것은 곧 무와 배추도 자랄 수 있다는 징표였습니다. / 한국에 잠시 돌아가 제주도에서 강원도까지 돌아다니며 8명의 야채재배 전문 농사꾼을 모집했습니다. 파종에서 수확을 훤히 아는 농부, 씨앗만 봐도 건강상태를 한눈에 아는 농부로 농사 드림팀을 구성했습니다. 하루하루 진전사항을 체크했습니다. 노하우와 테크닉을 모두 공유했습니다. 온도가 높고 물이 적은 사막에서도 견딜 수 있게 특수비료 배합, 관수시설도 연구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싹이 텄고 사막에서 1979년 4월 20일, 이날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수확한 배추 500㎏를 처음 판 날입니다. ‘중동 사막에 배추, 고추, 무를 기르는 농장을 만들자. 신선한 김치를 직접 만들어 일꾼들을 먹이자.’는 그의 엉뚱한 꿈이 4년 만에 실현된 된 날이기도 합니다. / 그렇지만 수많은 어려움도 겪었습니다. 땅을 찾고, 사고 빌리고, 농부들을 데려다가 배추를 심고, 정성껏 길렀습니다. 그러다 첫해는 심기는 심었으나 다 타버려서 죽어 버리고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너무 힘들어 ‘포기해야 하나?’하며 수많은 갈등을 느꼈지만 그래도 믿고 순종하니 기도 중에 이런 말씀이 들렸습니다. “너는 내 백성이니 너의 일은 모두 나에게 맡기라.”, “맡기는데 왜 안 되는 것입니까?”, “잔소리 말고 맡겨라!” 맡기니까 하나님은 점점 노하우를 주셔서 사막에 심은 배추가 자라기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 일단 수확하고 보니 한국보다 좋은 점이 있었습니다. 중동은 1년에 4모작이 가능했습니다. 노하우를 살려 4년 후에는 미나리 재배도 성공했습니다. 미나리와 무를 썰어 넣어 홍어무침을 개발했습니다. 그곳에서는 홍어와 비슷한 물고기가 많이 잡혔습니다. 시험 삼아 재배한 딸기는 사우디아라비아 왕궁에 선물했습니다. 왕자와 관리들은 그를 초청해 감사의 뜻을 표했습니다. 밀 농사도 지었습니다. 그들이 시작하자 원래 중동 농부들보다 수확량이 더 많아졌습니다. 농업 일꾼으로 인정받으면서 중동에서도 내게 큰 관심을 보였습니다. 사막에서 배추가 잘되니까 엄청난 주문이 쏟아져 들어오는데 말로 다 할 수 없자 아라비아의 대지주들이 수십만 평의 땅을 개발해 달라고 주문을 하여, 농장 2개를 더 개발하게 되었고, 사우디 정부에서는 그에게 ‘녹색혁명 기수’로 명명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100만 평의 농장주가 되었을 뿐 아니라 엄청난 달러를 벌어들여 개인 외화 송금 1위로 한국에서 산업 훈장도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는 하나님께 받은 은사와 은혜를 나눔으로 실천하기 위해 장학 사업에 전력하고 있습니다. 이게 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 본문으로 돌아갑니다.
먼저 역대기 36장과 에스라 1장을 보면서 그 당시에 하나님께서 어떻게 역사하셨던 지 살펴봅니다.
● 대하 36:22-23 / 고레스왕의 통치가 시작된 첫해(BC 538년)에 이미 예언자 예레미야가 선포한 여호와의 말씀이 이루어지니, 여호와께서 고레스왕의 마음을 감동시키시어 그의 온 제국에 다음과 같은 선언을 공포하고 문서로 널리 알리게 하셨다. 23) “바사 왕 고레스가 알린다.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온 땅의 나라들을 모두 내 손에 넘겨 주셨다. 그리고 그 분은 유다 땅 예루살렘에 그분의 성전을 지을 임무를 내게 맡겨 주셨다. 그러므로 내가 지시하노니, 너의 백성들 가운데 하나님께 속한 자는 누구든지 자기 하나님의 보호를 받으며 너희 나라로 돌아가거라.”
● 라 1:1 / [고레스왕의 조서] 바사 왕 고레스가 즉위한 그 해에, 여호와께서 이미 예언자 예레미야를 시켜서 알려 주셨던 약속을 성취해 주셨다. 여호와께서 세계의 통치권을 잡은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움직이시자 그가 자기의 온 제국에 다음과 같이 선포하고 그것을 문서로도 적어 공포하였다.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서 역사하십니다. 고레스 자신은 몰랐겠지만, 그가 태어나기 200년 전부터 하나님은 고레스를 향한 뜻을 품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고레스를 ‘하나님의 목자, 기름부음을 받은 자’라고 불렀습니다(사 44:28; 45:1). 물론 이 말은 고레스의 신앙을 가리켜 한 말이 아니라 그가 하게 될 일의 성격을 두고 한 말입니다.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될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예레미야가 이스라엘 백성의 바벨론 포로 기한을 70년으로 예언을 받았고(렘 25:11-12; 29:10), 다니엘도 예레미야의 글을 읽고 민족의 죄를 회개하며 귀환을 준비하였습니다(단 9:2). 포로가 된 지 정확히 70년 후인 주전 536년에 1차 귀환이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역사하십니다. 그리고 가장 필요한 때에 가장 적절한 사람을 일으켜 좋은 역사를 이루십니다. 이때에 여러 사람이 하나님이 주시는 선한 마음으로 사용될 것입니다.
● 라 1:2 / “바사 왕 고레스가 공고한다.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세상의 모든 나라들을 내 손에 맡기셨다. 그리고 유다 나라의 예루살렘에 자신의 성전을 짓도록 분부를 내리셨다. 그러므로 내가 지금 이렇게 조서를 내린다. 3) 너희들 중에서 이 신을 섬기는 백성이 있으면 누구든지 이제 유다 땅에 있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성전을 지어라. 그 하나님이 그들 하나하나와 함께 계셔서 그들이 돌아가는 길도 보호해 주시고 성전 짓는 일도 도우시기를 바란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는 예루살렘에 계시며 거기서 섬김 받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4) 이 포로생활 속에서 살아남은 사람이면 누구든지, 또 그가 어느 곳에 살고 있든지, 그 이웃에 사는 사람들은 그들에게 금과 은도 주고 여행에 필요한 물건들과 타고 갈 짐승도 주고 예루살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을 위하여 바칠 자원제물도 주어서 그들이 영광스럽게 떠나가도록 도와주어라.”
바사 왕 고레스는 비록 유일신 신앙을 가진 사람은 아니었지만 자신이 전 세계를 다스리는 황제가 될 수 있었던 이유를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자신이 왕이 된 목적도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하기 위한 것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이를 위해서 행정적인 조취를 해 줄 뿐 아니라 재정적인 도움도 열어주고 있습니다. 그 어느 누가 감히 바사 제국에서 이런 일들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왕인 고레스뿐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시면 누구를 통해서라도 약속하신 것을 반드시 이루시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빌 4:6 / 걱정에 싸여 지내지 말고 무슨 일에 있어서든지 기도하십시오. 필요할 것을 하나님께 아뢰고, 여러분의 기도에 응답해 주시는 하나남께 감사드리는 일을 잊지 마십시오.).
라 1:5-6 / [귀환 준비] 이리하여 유다와 베냐민 지파의 가장들과 제사장들과 레위 지파의 사람들, 그리고 수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함께 떠날 차비를 하였다. 그들은 모두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에 여호와의 성전을 짓도록 마음을 감동시켜 주셔서 떠날 준비를 하였던 것이다.
때가 차매 하나님께서 선한 일의 문을 여셨습니다. 비록 이방인 왕을 통해서 시작된 일이었지만 그 뒤에는 하나님이 계셨습니다. 이 때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선한 일을 시작하실 때에 동참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선한 일을 하실 때에 우리도 감동을 받아 그 뜻에 동참해야 합니다.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고자 하는 선한 일에 가장 먼저 반응을 보인 사람들은 유다와 베냐민에 속한 사람들입니다. 이들 역시 지난 70년 동안 바벨론에 살면서 자신들의 처지도 있고 생각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선한 일에 동참하겠다는 의지입니다. 이들은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며, 먼저 구할 것이 무엇인지를 알았습니다.
라 1:6-11 / 그러자 사방의 이웃들이 그들에게 예루살렘 성전도 짓고 그들 자신의 생활을 위해서도 쓰도록 금과 은그릇, 먼 여로에 타고 갈 짐승, 기타 귀중품과 필요한 물건들을 많이 주었다. 7) 이때에 바사 왕 고레스가 예루살렘 성전의 기구들도 돌려주었는데 그것은 전에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이 여호와의 성전에서 약탈해다가 자기 신전의 보물 창고에 보관하였던 거룩한 물건들이다. 8) 그때에 바사 왕 고레스는 그것들을 모두 자기의 재무장관인 미드르닷에게 넘겨주고 미드르닷은 그 물건을 유다 백성의 지도자인 세스바살에게 모두 정확하게 세어서 넘겨주었다. … 11) 금과 은으로 만든 물건들은 모두 5,400개였다. 유다 백성의 지도자 세스바살이 석방된 동족들을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다시 데리고 올 때에 그 모든 물건을 함께 가지고 왔다.
자신이 반포한 칙령에 유대인들이 적극적인 반응을 보이자 고레스도 그들의 호응에 화답을 합니다. 그래서 바벨론 제국 시절에 전리품으로 가져왔던 예루살렘 성전의 그릇들을 돌려줍니다. 이 그릇들은 하나님의 성전에서 거룩한 예식에 쓰이던 것들이었으나 바벨론 제국 때에는 술자리의 술과 안주의 그릇이 되기도 했습니다(단 5:3-4). 하나님의 백성이 온전하지 못하면 하나님의 성물(聖物)들도 추해집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모든 것을 되돌리셨습니다. 이에 대하여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는 고레스가 이사야 44:28의 말씀을 우연히 접하고 이 말씀을 성취하려 애썼다고 밝힙니다. 이러한 사실을 성경을 통하여 보는 우리들은 오늘날에도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목격해야 합니다.
▶ 에스라 2장에는 귀환 포로들의 명단이 나옵니다. 중요한 것 같지 않지만 우리는 여기에서 많은 것을 얻게 됩니다.
라 2:1-2, 64 / [포로 귀환자들의 명단] 다음은 전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유다 지방에서 포로로 끌어 간 사람들의 후손들이다. 이제 포로생활에서 벗어나 예루살렘과 유다 땅으로 돌아와 저마다 자기의 고향 마을로 돌아간 것이다. 2) 그들을 데리고 고국으로 돌아온 지도자들은 온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12명이었고 …
고레스의 칙령에 대한 유대인의 전체적인 호응은 사실 뜨겁지 못했습니다. 열 두 지파 중에서 유다와 베냐민 지파에 속한 족장들만 반응했고 나머지 열 지파는 마음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어떤 일이든 자원하여 솔선수범(率先垂範)하는 마음으로 먼저 시작하는 사람들이 있어야 합니다.
라 2:36-39 / 제사장 가문들 중에서는 다음과 같은 사람들이 귀환하였다. 예수아의 후손 여다야 가문 973명, 임멜 가문 1052명, 바스훌 가문 1247명, 하림 가문 1017명.
이스라엘 회복의 첫 번째 그림은 여호와 신앙의 복원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제사장의 복귀는 중요한 요건이 됩니다. 에스겔서에 의하면 이스라엘의 멸망이 성전의 타락으로 인해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을 떠나 동편 감람산으로 옮겨지면서 남 유다가 망하기 시작했습니다(겔 11:23). 역시 이스라엘의 회복의 환상을 보여주실 때에도 예루살렘을 떠났던 하나님의 영광이 동편으로부터 돌아오는 것으로 시작되었습니다(겔 43:1-5). 그렇다면 성전이 재건되고 그 역할을 온전히 담당하게 될 때에 중요한 사람들이 제사장들입니다. 이들은 여다야, 임멜, 하림의 자손으로 모두 다윗 시대의 제사장들이었습니다(대상 24:7-14). 선조의 선행이 후손들을 인도하는 좋은 지침이 되고 있습니다.
라 2:40-42 / 레위 사람으로는 예수아 가문에서 갓미엘과 빈누이와 호다위야의 가족들이 74명 돌아왔다. 41) 성전에서 찬양하는 이들은 아삽 가문에서 128명이 돌아왔다. 42) 성전 문지기들 중에서는 살룸 가문과 아델 가문과 달문 가문과 악굽 가문과 하디다 가문과 소배 가문에서 모두 139명이 돌아왔다.
제사장들에 비해서 적지만, 레위인도 귀환했습니다. 오히려 제사장들에 비해 레위인의 숫자가 훨씬 더 많아야 할 터인데 그 반대가 되었습니다. 추측컨대 성전으로 돌아가 봐야 성전의 주변 일들로 뒤치다꺼리나 할 것으로 여겼기에 생활이 안정된 바벨론에 머문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인지 본문에 등장하는 이름들이 더 귀하게 보입니다. 이들에게 주어지는 일이 노래하는 일이나 성전의 문지기였습니다. 모두 하나님 앞에서 귀하고 복된 일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 헌신을 기억하십니다.
▶ 라 2:64-65 / 귀향 공동체의 총인원은 4만 2,360명이었다. 그밖에도 남종과 여종이 모두 7,337명 …
70년을 한 곳에 살게 되면 삶의 기반이 잡히고 나름대로 평온한 일상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더 소중한 것을 위해 길을 떠났습니다. 당시 돌아온 사람의 숫자를 42,360명이라 기록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포로로 잡혀가기 시작한지 70년, 예루살렘이 완전히 멸망한지는 약 50년 정도가 지났습니다. 유대인들의 귀환을 허락하는 페르시아 왕 고레스의 칙령(주전 539년, 역대하 36:23)이 선포되었고, 유대인들은 바벨론의 통치에서 벗어나 본국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대부분의 유대인들이 본국으로 돌아갈 것을 희망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단지 5만 명의 정도의 유대인만이 본국으로의 귀환을 결정을 했을 뿐입니다(느 7:66, 에 2:64-65). 그들은 이미 바벨론에서 집을 짓고 바벨론과 함께 만족스러운 삶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바벨론에 사는 이스라엘 사람들 중 대부분은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하나님의 집과 민족을 재건하는 사명 대신에 자신들이 포로생활 중 쌓아놓은 재정적인 안정을 택하였을 것입니다.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재건사업을 펼치는 것은 자신들이 가진 많은 것을 포기해야 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이들이 본국으로 귀환했을 때에 자기네들이 바라는 대로 모든 일들이 순조롭게 풀리리라는 보장이 없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4만 2,360명이 귀환을 자원하였고, 또 그들을 따라 남종과 여종이 모두 7,337명이 함께 하였던 것입니다.
여기에서 특이할 것은 귀환자 중에 전체 인구의 1/6이나 되는 노비가 등장합니다. 이 사실은 2가지 점을 시사해줍니다. 지난 70년 동안 이스라엘 사람들이 바벨론 각지에서 정말 열심히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포로의 신분이었지만 70년이 흐른 뒤에는 노비까지 두고 사는 윤택함을 누리는 은혜를 얻었습니다. 그리고 노비들이 주인을 따라 이역만리 예루살렘까지 동행했다는 것은 노비들이 주인을 잘 따르고 섬기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갖게 되자 모든 일들이 풀리기 시작하였습니다.
룻기에 나오는 시어머니 나오미를 따르겠다는 결단을 하고 베들레헴으로 가는 룻의 아름다운 마음씨를 이들 노비에게서도 느껴집니다. 노비들까지 신앙으로 무장되었다면 고국으로 돌아오는 사람들의 신앙은 어떠했겠습니까?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하였다고 말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 결 론
유다백성들은 바벨론에서 70년 동안 포로생활을 했습니다. 그런데 70년을 포로생활 한 이유가 역대하 36장 21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에 토지가 황무하여 안식년을 누림 같이 안식하여 칠십년을 지내었으니’라고 기록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6년간 토지를 쓰면 1년은 안식년을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490년 동안 한 번도 지키지 않았습니다. 490년을 7로 나누면 70년이 됩니다. 그러므로 그동안 지키지 않은 안식년을 한꺼번에 다 지키는 것입니다. 백성들은 바벨론에 포로가 되었지만 땅은 70년 동안 안식을 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한데 대한 형벌(punishment)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측면에서 본다면 유다백성이 70년 포로 생활한 것은 형벌의 의미도 있지만 하나님의 훈련(discipline)이라는 더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70년 포로생활을 통해 유다백성들에게 많은 은혜를 주셨고, 여러 훈련을 받는 동안에 유다백성들은 많은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➊ 우상숭배로부터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가나안 땅에 있을 때에는 가나안 일곱 족속들이 섬기는 우상숭배에 끊임없이 미혹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섬기라 해도 풍요와 다산의 신인 바알과 아세라를 섬겼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우상을 섬기니 결국은 나라가 망해 포로가 된 것을 깨닫고 더 이상 우상을 섬기면 안 되겠다고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우상의 본거지인 바벨론에 가서 우상을 보니 우상이 지겨워지고 암탉이 병아리를 품듯이 언제나 자신들을 품어 돌보아 주셨던 살아계신 하나님을 그리워하게 되었습니다. 탕자처럼 하나님 아버지 집을 그리워하여 예루살렘에 돌아가 하나님을 경배하기를 간절히 소망하게 되었습니다. 예루살렘에 있을 때에 하나님을 잘 섬겼더라면 좋았을 것을 말입니다.
➋ 하나님 말씀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와 예레미야 선지자가 외쳤을 때는 듣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말한 대로 결국 나라가 망해 포로가 되자 하나님 말씀은 일점일획도 떨어지지 아니하고 그대로 실현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어떤 세력도 그들을 포로에서 해방시킬 수는 없었습니다. 그들이 포로생활 가운데 의지할 것은 포로생활은 70년이 될 것이고 70년 후에는 해방될 것이라는 예레미야를 통한 하나님의 약속뿐이었습니다. 이처럼 보통 때는 하나님 말씀의 귀중함을 모르다가 어려움에 처하니 말씀의 귀중함을 알게 된 것입니다.
➌ 성전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시편 137편 1절에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시온은 예루살렘입니다. 예루살렘에 있을 때에는 성전이 있어 자유스러운 예배가 있었어도 그것이 그렇게 소중한 줄 몰랐는데, 이제 모든 것을 잃고 나니 눈물이 날 정도로 그립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➍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일체감과 책임감을 알게 되었습니다. 과거에는 열두지파로 나뉘어 서로 미워하고 싸웠으나 그들이 포로로 잡혀가 공통의 고통을 겪다보니까 미움이 사라지고 그들은 하나라는 일체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부부싸움이 해결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녀가 옆집 아이에게 맞아서 얼굴에 코피라도 흘린 것을 보게 되면 부부간의 싸움은 자동적으로 멈추게 되고 옆집 부모와의 싸움을 위해 힘을 합치게 됩니다.
유다백성은 공통의 고통을 겪으면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일체감도 겪게 되었고 그들의 시각도 넓어졌습니다. 그동안 유다백성 대부분은 예루살렘에서 태어나서 거기서 죽는 우물 안 개구리 같은 생활을 했으나 이제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 바벨론 문화와 문물을 보고 세상이 넓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넓은 세계 속에서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책임감과 정체감과 일체감을 확고하게 정립하게 되었습니다. 고통이 삶 가운데 나쁜 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시편 119편 71절에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라고 기록되었습니다. 고난당하면 하나님 말씀이 얼마나 귀하고 하나님이 얼마나 크신 분인지 알게 됩니다.
다시 한 번 우리가 해야 할 사명을 되새겨 보십시다.
출 19:3-6 / 모세가 하나님이 계신 곳으로 올라가자 여호와께서 산에서 모세를 불러 말씀하셨다. “너는 야곱의 자손들에게 이렇게 말하여라.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이 일러라. 4) ‘내가 애굽 사람들을 어떻게 다루었는지 또 내가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어떻게 내게로 데리고 왔는지 너희는 다 보았다. 5) 온 누리가 다 나의 것이 아니냐?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가 세워 준 계약을 잘 지키면 너희는 뭇 민족 가운데에서 나의 소유가 되리라. 6) 너희야말로 나를 섬기는 제사장 나라가 되고 거룩한 민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반드시 일러주어라.”
마 5:13-16 / 너희는 세상을 맛있게 만드는 소금이다. 그런데 만일 너희가 그 맛을 잃어버린다면 어떤 일이 생기겠느냐? 너희는 아무데도 쓸모없게 되어 밖에 버려져 사람들에게 짓밟히게 될 뿐이다. 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즉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도록 밤에 불을 밝혀 둔 언덕 위의 마을과 같다. 15) 등잔에 불을 밝히고 됫박으로 그 등잔을 덮어두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방안을 환하게 밝히려면 누구나 그 등불을 등잔대 위에 얹어 놓지 않느냐? 16) 너희 빛을 가리지 말고 모든 사람들에게 환하게 비추어라. 모든 사람에게 착하게 행동하라. 그래서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