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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월절에 준비할 것(2)
2018년 11월 25일 / 창 15:13-15, 출 12:11-13 / 265장
이스라엘 사람들이나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지시를 반드시 믿고 따라야 한다.
▶ 창 15:13-15 / 그러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다 `아브람아, 잘 들어 두어라. 네 후손들이 이제 이방 땅에서 나그네 신세가 되리라. 그 이방 땅에서 식객 노릇하면서 종살이를 하게 될 것이다. 그 이방나라 사람들은 400년 동안 네 후손들을 혹독하게 부려먹고 마구 짓누를 것이다. 14) 하지만 네 후손들을 못살게 군 그 나라를 내가 내리치리라. 네 후손들은 엄청난 재산을 가지고 그곳을 나오게 될 것이다. 15) 아브람아, 너는 오래도록 살다가 평안히 세상을 떠나 땅에 묻힐 것이다.
우리는 모든 것이 요동하고 바뀌는 불확실성의 세계 속에 살고 있다. 정치가 불확실하고 경제도 불확실하고 국제정세도 불확실하다. 현재의 삶도 내일의 삶도 불확실하다.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는 수많은 일들을 당하고 겪고 있기에 저마다 인생관이 달라지고 깨닫고 판단하는 일도 다를 수가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귀한 것인가? 그러기에 부귀영화를 최대로 누렸고 하나님께 구한 지혜로 희로애락을 다 경험하고 생의 황혼기에 지난날을 뒤돌아보며 기록한 솔로몬의 전도서야말로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깨닫게 한다.
그 중심 주제가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전 1:2), “내가 해 아래서 행하는 모든 것을 본즉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라”(전 1:14)고 말함으로 하나님을 떠난 세상의 모든 것이 다 헛된 것임을 깨닫게 하여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는 삶이 진정 복되고 만족스러운 삶임을 고백하는 원숙한 지혜를 담고 있다. 그러므로 결론으로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문이니라”(전 12:13)고 하였다.
이 말은 이스라엘백성만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모든 이에게도 해당되는 결론으로 믿어야 한다.
▶ 사실 인간은 장래 일을 알지 못한다.
그리고 알지 못하는 것이 유익하다. 만약 장래에 잘되고 형통한 일만 일어날 것을 미리 알게 된다면 자만하여 노력하지 않는다. ‘어차피 잘 될 것인데 왜 노력해야 하느냐 하지 않겠는가?’ 반대로 만약 장래에 곤고한 날이 온다는 것을 미리 알게 된다면 지레 겁을 먹고 낙담한다. 그러므로 인간에게 장래 일이 감추어져 있는 것은 인간의 유익을 위해서이다. 하지만 인간에게 미래가 감추어져 있다고 해서 하나님에게도 감추어져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장래는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다.
인간은 장래를 미리 아는 일에 큰 흥미를 갖고 있다. 점쟁이들이 많아지고, 미래의 일을 예언하는 책들이 잘 팔리는 것은 인간이 그만큼 자신의 미래에 대해서 알고 싶어 한다는 것을 뜻한다. 하지만 장래를 미리 알기 위해 하는 모든 시도는 다 헛된 일이다. 왜냐하면 장래 일을 아는 존재는 하나님 한 분밖에 없기 때문이다. 귀신들도 장래 일을 알지 못한다. 무당들이 가끔 장래 일을 맞추는 것은 1%의 확률도 못된다. 아니 나 자신도 하나님께서 앞일에 대하여 알려주시지 않으면 1%도 모른다.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이 인간의 미래를 아시고 미래를 계시하실 수 있다. 그리고 하나님은 미래의 일을 예언하실 수 있으실 뿐만 아니라 미래를 만들어 가시는 섭리의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것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미래를 아시기도 하고 우리의 미래를 만들어가기도 하신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미래를 말씀하지 않지만 경건한 삶을 사는 사람에게는 미래를 계시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 아브람의 경우(창 12:1-4; 15:13-15) ▶ 출 12:31-41 /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오다] 그날 밤 바로가 모세와 아론을 불러들여 말하였다. `너희는 어서 이스라엘 사람들을 데리고 이 땅을 떠나거라. 너희가 요구한 대로 서둘러 여호와를 섬겨라. 32) 그리고 너희가 그토록 몰고 가려던 소 떼와 양 떼도 다 몰고 가거라. 어서 떠나거라. 다만 너희가 섬기는 신에게 나를 위해서 복을 빌어 다오.' 33) 애굽 사람들은 `이제 우리는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다'고 말하면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거기서 빨리 떠나 주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34) 이스라엘 사람들은 부풀지 않은 반죽이 들어 있는 그릇을 옷에 싸서 어깨에 메고 나섰다. 35) 그들은 모세가 말한 대로 행하였다. 곧 애굽 사람들에게 은붙이 금붙이 등 패물과 여러 옷가지를 달라고 요구하였다. 36) 여호와께서는 애굽 사람들이 그들에게 호감을 갖게 하셔서 요구하는 대로 다 주게 하셨다. 그들은 이렇게 애굽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여러 가지 물품들을 털었다. 37) 이스라엘 사람들은 마침내 라암셋을 출발하여 숙곳으로 향하였다. 이때 떠난 사람들은 어린아이들을 빼놓고 모두 60만 명쯤 되었다. … 40) 이스라엘 사람들은 430년 동안 애굽에서 살았다. 41) 430년이 끝나던 그날 여호와의 군대는 애굽에서 빠져 나왔다.
◼ 야곱의 미래를 약속해 주시면서 야곱으로 하여금 서원케 하심(창 28:13-14 / 또 그 위에는 여호와께서 서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나는 여호와이다. 네 할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네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이다. 네가 지금 누워 있는 이 땅을 내가 네게 그리고 네 후손에게 주리라. 네 후손이 엄청나게 불어나 땅의 먼지만큼 많아지리라. 동서남북 어디를 가든지 네 후손들이 그곳에서 가득하게 살리라. 또한 너와 네 후손으로 말미암아 뭇 나라들이 복을 받으리라.) ▶ ❶ ‘지금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겠다’는 약속이다. 지금은 도망자 신세지만, 지금은 잠만 자고 가는 땅이지만, 지금은 잠깐 거쳐 가는 땅이지만 이 땅을 차지할 날이 올 것이라는 것이다. ❷ ‘자손을 땅의 티끌처럼 많게 만들겠다’는 약속도 해 주셨다. 지금은 홀로지만 수많은 후손을 주시겠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 약속을 역사 속에서 그대로 이루어졌다. 애굽의 왕 바로의 인구 억제 정책으로 모두가 죽을 뻔하였다(출 1:15이하). 앗시리아의 포로(BC 722), 바벨론의 포로(BC 586)를 통해 영원히 잃어버릴 것 같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후손이 큰 민족과 나라로 발전하여 큰 민족을 이루어(민1-2장) 하나님의 약속은 성취되었다(수 23:14). 현재 이스라엘의 인구는 8,051,200명(2013년에 추산)로 그 중 6,045,900명은 유태인이며, 아랍인(드루즈파와 동예루살렘 포함)은 1,663,400명으로 집계되었다.
◼ 요셉의 경우(창 37:1-11) 요셉의 형들이 해와 달과 열 한 별이 요셉에게 절을 하리라는 꿈 이야기를 듣고 “우리는 죽어도 요셉에게 절하지 말자”고 결심까지 했지만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났다. ▶ 창 42:6-9 / [형들이 요셉을 알아보지 못하다] 애굽의 총리인 요셉은 세계 각지에서 몰려든 사람들에게 곡식을 팔았다. 요셉의 형들도 곡식을 사려고 요셉에게 나아가 무릎을 꿇고 얼굴을 땅바닥에 대고 절하였다. 7) 요셉은 자기에게 절을 하는 형들을 알아보았다 `아, 형들이 곡식을 사러 여기까지 내려왔구나' 하고 속으로는 무척 반가웠으나 겉으로는 일부러 모른 체하고 시침을 뚝 떼고는 형들에게 엄한 목소리로 물었다. `너희는 어디서 왔느냐?' `예, 가나안에서 왔습니다. 먹을 양식이 떨어져 이곳까지 곡식을 사러 왔습니다' 하고 형들이 대답하였다. 8) 요셉은 자기 형들을 알아보았어도 형들은 요셉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9) 요셉은 이러한 형들을 바라보자 오래 전 가나안에서 살 때 형들에 대해서 자기가 꾸었던 꿈이 생각났다.
◼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열 번째 재앙과 이스라엘이 지켜야 할 것에 대하여 말씀하셨고, 모세는 장로들을 모두 불러 명령을 하달하였다(출 12:12-13, 21-22 / 그날 밤, 내가 애굽 땅을 두루 다니며 애굽에 딸린 것이면 사람이건 짐승이건 가릴 것 없이 처음 태어난 맏아들이나 맏배는 모조리 죽이리라. 그리고 애굽에 있는 신이라는 신에게는 모조리 벌을 내리리라. 나는 여호와이다. 13) 내가 애굽 땅을 돌아다니면서 칠 때 너희가 바른 피를 보면 너희가 살고 있는 집을 그냥 건너뛰어 넘어가리라. 그러면 너희가 재앙을 피하여 죽지 않으리라. ▶ 출 12:29-30 / [열 번째 재앙] 한밤중에 여호와께서 애굽에서 처음 난 것들을 모조리 죽이셨다. 곧, 왕위에 앉아 있는 바로의 맏아들이나 감옥에 갇혀 있는 사람의 맏아들이나 또는 짐승의 맏배나 할 것 없이 처음 태어난 것은 모조리 죽이셨다. 30) 그러자 그날 밤 바로와 그의 신하들과 모든 애굽 사람들이 잠자리에서 일어났다. 애굽 사람들의 집집마다 통곡 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초상 당하지 않은 집이 한 집도 없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명령은 몇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유월절 어린 양을 잡으라는 것과 그 피를 내어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라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그 집에서 나가지 말라, 그날 밤부터 아침까지 그 집 문 밖에 나가지 말라는 것이다. 멸망시키는 하나님의 사자가 그 밤에 두루 다닐 때에, 그를 치실 것이기에 피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어느 집에 양을 잡아 피를 뿌렸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밖으로 나간 사람이 있다고 하면 그의 장자 역시 죽음에 처해진다. 파멸시키는 하나님의 사자가 애굽 사람과 이스라엘 사람을 구별할 줄 몰라서 그런 명령을 내리신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안전은 이스라엘 사람이라는 것에 있지 않고, 피를 뿌림에 있었던 것이다. 죽음의 천사는 피가 있느냐, 아니냐를 보는 것이다.
▶ 이스라엘 사람들은 집밖에는 피를 발랐고, 집 안에서는 애굽을 출발하여 장기간에 걸친 여행을 위하여 양고기를 불에 구워 먹고 즐기며 안전하게 보냈다. 옷을 입고 신을 신고 지팡이를 잡고 양고기를 먹으며 날만 새면 그 지긋지긋한 애굽을 떠난다는 기쁨으로 심판의 밤을 보냈다. 앞뒷집에서 비명 소리가 나면서 애굽 전역이 장자를 잃은 통곡 소리로 덮였다.
‘피를 발랐어도 혹시 죽을지도 모르지 않느냐?’고 생각한 사람도 있었을지 모르지만 피를 바른 집의 장자는 모두 죽지 않았다. 왜냐하면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재앙이 너희에게 내려 멸하지 아니하리라’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이 피가 발라 있으면 죽음의 재앙은 넘어가고, 그렇지 않았으면 그 집에 재앙이 내렸다.
▶ 성경은 예수님을 가리켜 ‘유월절 양’이라고 하였다. ‘우리의 유월절(逾越節)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고전 5:7). 이스라엘 장자 대신 양(羊)이 죽임을 당했듯이, 인류에게 쏟아질 저주와 심판을 위해 예수님이 대신 죽임을 당함으로써 예수님이 유월절 양이 되셨던 것이다. 실제로 예수님이 돌아가신 것도 유월절 날이었습니다.
아브람에게 창세기 12:1-4; 15:13-15에서 약속하셨던 것이 출애굽기 12:31-41에 성취되었다. 이처럼 하나님은 사람의 미래를 알려주기도 하신다. 사람의 미래를 알려주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시다. 본문은 아브람과 아브람의 후손들의 장래를 계시해주신 말씀인데 이 약속이 유월절에 그대로 이루어진 것이다.
유월절에 그대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계속 이스라엘 뿐 아니라 우리에게도 주어지는 약속이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며, 그 말씀에 따라 순종하며 말씀을 통해 약속하신 모든 것이 성취된다는 것이다.
사실 이스라엘이 모세와 장로를 통해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주목하며 믿고 어린양의 피를 좌우 문설주와 인방(引枋)에 바르고 집안에 있었던 것은 그동안 있었던 9가지 재앙을 목격하였기 때문이다. 만일 첫 재앙부터 혹은 중간쯤에 장자를 멸하는 재앙이 내렸다면 과연 하나님의 지시하심을 따르는 사람이 몇 사람이나 되었을까? 이런 점에서 본다면 하나님의 초점은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려는 깊은 뜻이었지 저들을 심판하려는 의도는 아니었다.
이에 예수님은 이러한 의도를 이렇게 잘 설명해 주시며 우리에게 믿고 따라 달라고 하셨다.
요 3:14-16 / 모세가 광야에서 구리뱀을 사람들 위에 쳐든 것 같이 인자도 나무 위에 높이 들려야 한다. 15) 그것은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16) 하나님이 이처럼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보내주셨으니 이는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요 3:17-21 /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심판하시려고 아들을 보내신 것이 아니라 구원하시려고 보내셨다. 18) 그 아들을 믿는 사람은 영원히 어둠에서 벗어난다. 그러나 그를 믿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의 외아들의 이름을 믿지 않는 것만으로도 이미 죄인으로 판단을 받은 것이다. 19) 죄인으로 판단받았다는 것은 곧 빛이 하늘로부터 세상에 들어왔는데도 그들이 빛보다는 어둠을 더 사랑하였다는 것을 뜻한다. 그것은 그들의 행위가 악하기 때문이다. 20) 그들은 어둠 속에서 죄짓기를 즐기고 하늘의 빛을 싫어한다. 자기들의 죄가 드러나서 수치를 당할까봐 빛을 멀리한다. 21) 그러나 올바른 행실을 하는 사람들은 즐겨 빛으로 나아간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행하고 있다는 것을 모든 사람이 보게 하기 위한 것이다.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직접 약속하신 것이 아닐지라도 우리에게는 이미 성경을 통하여 약속되어진 수많은 약속들이 있다. 이러한 약속을 믿고 따르는 자의 하나님이 되심을 믿어야 한다.
■ 주후 70년 예루살렘이 로마의 디도장군에 의해 멸망하던 당시 두 명의 이스라엘의 랍비가 폐허가 된 예루살렘 길을 걷고 있었다. 참담한 광경에 두 랍비의 마음은 착잡하기만 했다. 그런데 한 랍비는 울었고, 한 랍비는 웃었다. 울던 랍비가 웃는 랍비에게 물었다. “자네는 우리의 거룩한 예루살렘 성이 폐허가 되었는데, 어찌 웃을 수가 있는가?” 웃던 랍비가 되물었다. “내가 오히려 자네가 왜 우는지 묻고 싶네. 자네는 왜 우는가?” 울던 랍비가 대답했다. “예루살렘과 하나님의 성전이 이렇게 처참하게 무너졌네. 이제 다시 볼 수 없지 않은가?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을 보며 어찌 울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이때 웃던 랍비가 말했다. “나도 하나님의 심판이 얼마나 확실하고 무서운지를 보고 있네. 그러나 나는 이로 인하여 하나님의 약속이 참되심을 또한 보네.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을 멸망시키겠다고 하셨고, 그렇게 하셨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을 재건하신다고도 하셨네. 나는 그 말씀을 믿지. 그래서 다시 세워질 아름다운 예루살렘을 생각하고 웃는 것일세.”
■ 세계 제 2차 대전 시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유대인들 가운데 깊은 절망의 고통의 긴 터널을 견디고 이겨낸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은 수용소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리라는 것을 굳게 믿는다네. 단지 조금 늦을 뿐이라네." 하는 노래를 부르면서 마음과 육체를 단련시켰다. 이 수용소에 한 젊고 유능한 외과 의사가 수용되어 있었다. 매일처럼 가스실과 인체실험실로 끌려가는 동족들의 죽음의 행렬을 바라며 머지않아 자신도 가스실의 제물이 되고 말 것이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감방에서 밖으로 나가 작업하는 시간이 되면 흙 속에 몰래 파묻어 둔 날카로운 유리조각을 꺼내 그것으로 면도를 하며 얼굴을 단정히 하였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극한 상황 속에서 그의 외모를 가꾸는 일은 정말 어리석은 일인지라 남들은 손가락질했지만 그는 하루도 빠짐없이 얼굴을 다듬었다. 나치들은 면도질로 말끔한 그의 모습을 보고 그를 일찍 죽이기에는 너무 아깝다고 생각하고 죽을 차례를 자꾸 뒤로 미루었다. 그러다가 나치가 패망하는 날을 맞았고 그는 죽지 않고 살아남게 되었다. 그가 죽음의 수용소인 아우슈비츠를 떠나던 날 그의 소지품은 단 한 가지는 바로 깨진 푸른 유리 한 조각이었다. 이 사람이 나중에 스웨덴에서 병원을 개업하여 성공하였다. 그는 유월절이 올 때면 그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부르던 노래의 가사를 다음과 같이 약간 수정하여 불렀다고 한다. "하나님의 구원은 결코 늦는 법이 없다네. 다만 우리가 너무 성급할 뿐이라네." 그는 이 노래를 부르며 수용소의 깊은 절망의 밤 한 복판에서도 자기와 함께 하시고 자기를 돌아보셨던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렸다.
우리도 때로 인생의 고통스러운 밤을 보낼 때가 있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지금 나를 돌아보고 계시며, 내 부르짖음을 듣고 계시고, 나를 위해 이미 일을 시작하셨다는 사실이다.
결 론
첫 유월절 밤은 애굽 전역에 심한 공포와 두려움과 절규와 통곡이 휩쓸고 지나가는 무서운 밤이었다. 그런데도 그날 밤에, 양을 잡아서 피를 뿌린 집안에 있던 사람들은 아주 평안했다. 왜냐하면, 어린양의 피를 바른 집에는 죽음이 임하지 않는다는 말씀을 믿었기 때문이었다.
만약, 그 밤에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어린양을 잡아서 그 피를 문에 뿌렸는데도, 그렇게 순종한 사람들 중에 단 한명이라도 죽임을 당했더라면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헛되다는 것을 증명하거나, 어린양의 피가 아무 쓸데없다는 증명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날 밤에 피 뿌린 집에서 죽임을 당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마 5:17-18 / 내가 모세의 율법과 예언자들이 쓴 책을 없애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없애러 온 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왔다. 18)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천지가 없어지더라도 율법은 일점일획도 없어지지 않고 다 이루어질 것이다.
하나님은 말씀하시고 그 말씀하신 것은 그대로 이루어진다. 그렇다고 한다면 우리는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할까? ❶ 먼저 하나님을 경외해야 한다. 하나님 말씀을 업신여기지 말고 두려움으로 지켜야 한다. ❷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을 100% 신뢰해야 한다. 지금 우리는 하나님께서 약속해 주신 구원의 희망을 가지고 기다리자. 우리는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아야 한다(히 10:23).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그대로 실행하시리라는 것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❸ 하나님의 약속하신 것이 물 건너간 것처럼 보이는가? 당장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하나님을 의심하지 말라. 약속하신 말씀을 믿고 의지하고 기대하고 기도하며 인내하며 살자.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우리의 장래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다. 하나님 외에 다른 존재가 우리를 지배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우리는 몇 살까지 살다가 죽을지도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다. 애굽이나 광야와 같은 세상일지라도 우리에게 주어진 귀한 시간들을 금과 같이 사용해야 한다. 죽은 후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 우리의 미래가 하나님 손에 달려있다는 것을 믿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아가면 하나님께서 최상의 것으로 우리를 위해 보상해 주실 것이다.
천사가 동정녀 마리아에게 한 말씀을 기억하자. “주께서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지리라고 믿은 그 여자에게 복이 있도다.”(눅 1:45) 신실하신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 없이 믿고 순종하는 자가 복이 있는 자이다. 이런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신실한 성도들이 다 되어서 복 있는 성도들로 살아가시기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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