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明泉和尚頌證道歌事實卷第三
師在本國以知見力,破彼六宗異見法師,令其捨小歸大。一有相宗,二無相宗,三定慧宗,四戒行宗,五無得宗,六寂靜宗。各封已解,別展化源,聚落崢嶸,徒衆甚盛。’大師乃喟然歎曰:‘彼之一師,已陷牛迹,況復支離繁盛,而分六宗。我若不除,永纏邪見。’一一詰其宗旨,各自知無所歸,然後返本悟入。大師學該三藏,尤專定業,非不知也。師自南天竺,泛海經涉三年,時普通八年九月二十一日,至廣州。剌史蕭昂表聞,武帝詔迎,至金陵。帝問:‘朕卽位已來造寺寫經度僧不可勝紀,有何功德?’師曰:‘此但人天小果,有漏之因,如影隨形,雖有非實。’帝曰:‘如何是眞功德?’師曰:‘淨智妙圓,體自空寂。如是功德不以世求。’帝問:‘如何是聖諦第一義?’師曰:‘廓然無聖。’帝曰:‘對朕者誰?’師曰:‘不識。’帝不領悟,師知機不契,是月十九日潛迴江北,十一月二十五日,屆于洛陽。當後魏孝明帝,大和十年,寓止于嵩山少林,面壁而坐,終日默然,人莫惻之。卽禪宗初祖也。
『남명천화상송증도가사실』 3권(ABC, K1500 v45, p.42b20-43a18)
달마대사(達摩大師)가 본국에 있을 때 지견의 힘[知見力]으로 견해를 달리하는 여섯 종사의 법사(法師)를 논파해서 소승을 버리고 대승으로 귀의하게 하였는데, 첫째는 유상종(有相宗)이고, 둘째는 무상종(無相宗)이고, 셋째는 정혜종(定慧宗)이고, 넷째는 계행종(戒行宗)이고, 다섯째는 무득종(無得宗)이고, 여섯째는 적정종(寂靜宗)이다. 이들은 각각 자기의 견해에 갇혀 있으면서 교화의 근원을 따로 전개하였는데, 마을이 번성하여 따르는 대중들이 매우 많았다. 대사가 이에 크게 탄식하면서 말하였다.
“저 한 사람의 삿된 스승만 해도 이미 소발자국에 고인 물에 빠져 있는데, 하물며 지리만연하게 번성해서 여섯 종파로 나누어진 경우임에랴. 내가 만약 제거하지 않으면 영원히 사견에 얽매이리니, 하나하나 그 종지(宗旨)를 힐난해서 각자 돌아갈 곳이 없음을 스스로 알게 한 연후에 근본을 돌이켜 깨달아 들어가게 하리라.”
대사는 학문이 삼장(三藏)을 총괄하였고 정업(定業)에 더욱 전념해서 모르는 것이 없었다. 대사가 남천축(南天竺)으로부터 배를 띄워 바다를 항해한 지 3년, 때는 보통(普通) 연간 8년 9월 21일에 광주(廣州)에 이르렀다. 자사(刺史)인 소앙(蕭昻)이 무제(武帝)에게 표문(表聞)을 올리니, 무제의 초청을 받아 금릉(金陵)에 이르렀다. 무제가 질문하였다.
“짐이 즉위한 이래 절을 짓고 경을 베껴 쓰고 스님에게 계(戒)를 준 것이 이루 다 기록할 수 없을 정도인데, 어떤 공덕이 있습니까?”
대사가 말하였다.
“이것은 다만 인천(人天)의 소과(小果)라서 유루(有漏)의 원인이 될 뿐입니다. 마치 그림자가 형체를 따르는 것과 같아서 비록 있다 해도 실답지는 않습니다.”
무제가 말하였다.
“어떤 것이 진실한 공덕[眞孔德]입니까?”
대사가 말하였다.
“청정한 지혜는 오묘하고 완전해서 그 체(體)가 저절로 공적하니, 이와 같은 공덕은 세간법으로는 구할 수 없습니다.”
무제가 질문하였다.
“어떤 것이 성제제일의(聖諦第一義)입니까?”
대사가 말하였다.
“확연해서 성스러움이 없습니다.”
무제가 말하였다.
“짐을 마주하고 있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대사가 말하였다.
“모르겠습니다.”
무제가 깨달아서 알아차리지 못하자, 대사는 임금의 근기가 최상의 도리에 계합(戒合)하지 못함을 알고 그 달 19일에 몰래 강북(江北)으로 돌아갔다. 11월 25일에 낙양(洛陽)에 이르렀는데, 당시는 후위(後魏) 효명제(孝明帝) 대화(大和) 10년이었다. 숭산(崇山)의 소림사에 우거(寓居)하면서 면벽하고 앉아 종일토록 침묵하고 있으니, 사람들이 그를 헤아릴 수가 없었다. 이 사람이 바로 선종의 초조(初祖)이다.
『남명천화상송증도가사실』 3권(ABC, K1500 v45, p.41a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