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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마누엘의 신앙
2024년 12월 25일 / 마태복음 1:18-25
‘임마누엘’이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뜻인데, 그런데 ‘임마누엘’이란 말을 많이 하다 보니까 별로 감격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그러나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은 너무나 놀랍고 감격적인 일이다.
■ 자전속도 : 지구의 자전속도가 지금보다 더 빨라지면 지구만 빨리 도는 게 아니고 지구를 감싸고 있는 공기도 빨리 돌게 되며, 그 결과 태풍이 매일 같이 불게 된다. 매일 같이 태풍 부는 지구에서 누가 살아남겠는가? 또 지구가 천천히 돌게 되면, 지구가 크니까 비열 때문에 낮에는 너무 뜨겁게 되고, 밤에는 너무 추워진다. 그 대표적인 예가 달이다. 달은 대단히 느리게 돌기 때문에 낮과 밤의 일교차가 몇백 도가 된다. 낮에는 영상 200도까지 올라가고, 밤이 되면 영하 150도까지 떨어진다. 지구가 천천히 돌다가는 일교차가 너무 심해서 생명체가 멸종하게 된다.
■ 태양과의 거리 : 태양과 지구까지의 거리도 지금보다 더 가깝거나 더 멀어지면 너무 뜨겁거나 너무 추워져서 생명체가 살 수 없게 된다. 지구보다 조금 더 가까운 행성이 금성인데, 너무 뜨거워 불덩어리 같이 되어 있다. 지구보다 조금 더 멀리 있는 것이 화성인데 너무 추워 얼어붙어 있다. 이 두 곳 모두 생명체가 생존할 수 없다. 이와 같이 지구는 아무렇게나 ‘뻥’ 터져서 나온 흙덩어리가 아니고. 그 크기와 회전 속도와 태양과의 거리, 기타 등등이 생명체가 살기에 가장 적합하게 설계된 정밀한 우주선임을 알 수 있다.
■ 기울기 : 지구는 23.5도 기울어져 있기 때문에 태양 빛이 지구에 골고루 잘 비침으로써 농작할 수 있는 면적이 최대가 되도록 설계되어 있다. 이것이 기울지 않고 바로 서 있으면 태양이 비치는 부분은 너무 뜨겁고, 그렇지 않으면 너무 추워져서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자리가 적어진다.
■ 조그마한 고치에서 나비가 나오는 광경을 한 소년이 신기한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고치에 난 조그마한 구멍으로 나비가 비집고 나오느라 필사의 노력을 하다 힘에 겨운 듯 잠시 잠잠하다. 죽은 것은 아닌가하고 소년이 손으로 살며시 건드리자 또 필사적인 탈출을 시도하지만, 도무지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보다 못해 소년이 안타까운 마음에 가위로 구멍주위를 조심스레 잘라 구멍을 넓혀주자 예상대로 나비는 쉽게 고치 밖으로 나왔다. 그러나 이게 웬일인가? 나비는 날 줄을 모르는 것이 아닌가. 이 나비는 결국 날개가 발달할 기회를 놓쳐 평생 날지 못하게 되고 만 것이다. 나비는 좁은 고치의 구멍을 뚫고 나오기 위해 오랜 시간 힘을 쓰는 동안 날개에 있는 혈관으로 충분한 양의 혈액이 흘러 들어가게 된다. 결국, 사투 끝에 고치 밖으로 나온 나비는 날개 속의 혈액이 굳어 평생을 마음대로 날아다닐 수 있는 날개를 갖게 되는 것이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고 하셨으니 너무나 큰 감격이 아닌가! 그러면 어떠한 사람에게 하나님은 함께 하실까? 오늘 본문에서 배우고자 힌다.
1. 하나님은 약속을 믿는 자에게 임마누엘하신다.
성탄절에 제일 먼저 등장하는 인물은 아무래도 마리아라는 처녀이다. 마리아는 요셉이라는 청년과 정혼한 사이였다. 정혼은 요즈음 식으로 말하면 약혼과 같은데, 유대인의 정혼은 약혼보다 더 구속력이 있었다. 그래서 정혼한 사람이 죽으면 그 처녀는 법적으로 과부로 간주하였다. 율법적으로는 ‘과부 처녀’라는 명칭이 부쳐졌다. 마리아는 비록 가난하였지만, 신앙이 좋고 예의가 바른 요셉과 정혼하고 나서 결혼할 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큰 기대로 부풀어 있었을 것이다. 정혼한 기간에 해야 할 일은 혼수품을 준비하는 것이다. 요즈음은 혼수품 준비를 백화점이나 혼수방에서 사면 되지만 예전에는 손수 다 만들어야 했다. 마리아는 이불도 꾸미고 수를 놓아서 방석 커버도 만들고 요리와 살림도 열심히 배웠다. 때로 요셉과 둘이 만나서 이야기하는 내용도 미래에 대한 설계가 대부분이었을 것이다.
비록 지금은 가난하지만 앞으로 지을 주택도 설계해 보았을 것이요, 요셉도 자기의 포부를 이야기하기를 지금 자기의 목공소는 초라하지만, 앞으로 예루살렘 같은 큰 도시로 진출하여 큰 가게를 차릴 것이라면서 흥분하는 모습을 보일 때 마리아는 깊은 행복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들은 빨리 결혼해서 그러한 장밋빛 꿈들이 실천되기를 목마르게 기대하였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 빛나는 인간적인 꿈은 산산조각으로 깨어지고 말았다.
누가복음 1:26-38에서 어느 날 밤 마리아에게 가브리엘 천사가 나타나 너무나 충격적인 소식을 전했다. ‘은혜를 받는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마리아야, 무서워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얻었느니라. 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저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을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위를 저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에 왕 노릇할 것이요, 그 나라가 무궁하리로다.’라고 했다. 한마디로 ‘네가 처녀로서 아이를 가질 것이라’라는 너무나 충격적인 전언(傳言)이었다.
마리아는 아주 순결한 처녀요, 한 남자와 정혼한 사이지만 동정녀였다. 그런데 만약에 처녀가 정혼한 남자도 모르는 아기를 잉태했다면 큰 불행이 닥쳐온다. 그 남자는 이러한 여자를 거부할 것이요, 마리아의 부모들도 수치를 당할 것이며, 더 나가서는 모세의 율법에 따라 돌로 맞아 죽을지 모르는 노릇이다. 사랑하는 남자와 작은 집에서라도 행복하게 살려는 기대로 한껏 부풀어 있던 마리아에게 너무나 청천벽력같은 소리였다.
마리아도 처음에는 단호했다. ‘나는 사내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까?’(눅 1:34)라고 했다. 마리아는 지금까지 자기 순결을 최대의 자존심으로 알고 있는데, 아기를 잉태함으로 그 순결을 의심받는다는 것은 최대의 수치가 된다. 마리아는 하나님의 명령인 줄 알지만 당장 가정과 부모, 교회와 친척들, 동네 사람들에게 당할 조롱과 핍박이 두려워서 ‘절대 안 됩니다. 다른 것은 다 순종할지라도 그런 일은 죽을지언정 순종할 수 없습니다.’라고 했다. 약혼남 요셉의 아이가 아닌, 다른 아이를 잉태한다는 것은 마리아에게 죽으라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에게 잉태할 아기에 대해 말했다.
눅 1:30-33 / 천사가 말하였다. ‘마리아여, 두려워하지 말아라. 하나님께서 너에게 놀라운 은혜를 내리셨다. 31) 너는 이제 곧 임신하여 아들을 낳게 될 것이니 그 아기의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32) 그는 위대한 분이 될 것이며 하나님의 아들이라 불릴 것이다. 주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조상 다윗의 왕위를 주실 것이다. 33) 그는 이스라엘을 영원히 다스리고 그의 나라는 끝이 없을 것이다.’
이에 마침내 마리아는 순종하면서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주께서 원하시는 대로 기꺼이 따르겠습니다. 이 모든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라고 했다.
즉 ‘망신을 당하든지, 요셉에게 버림을 받든지, 돌에 맞아 죽든지, 내 뜻대로 마옵시고 주의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라는 결단을 한 것이다. 참으로 위대한 신앙이요 결단이었다.
▶ 한편 요셉에게 큰 절망이 찾아왔다. 정혼녀인 마리아가 아기를 잉태했다는 고백을 들은 것이다. 세상에 아무도 믿을 수 없을지라도 마리아만은 믿을 수 있는 여자였다. 요셉은 그러한 마리아와 결혼하여 단란한 가정을 꾸밀 것을 생각하면, 일하다 말고도 그저 빙긋빙긋 절로 웃음이 났다. 하나님께서 자기 같은 가난뱅이에게 저렇게 순결하고 믿음이 좋고 아름다운 여인을 허락하신 것을 생각할수록 정말 감사했다. 그런데 그 여인이 난데없이 자기가 아닌, 다른 이의 씨를 잉태하다니, 더욱이나 하나님의 능력으로 아기가 잉태했다고 주장하니, 세상 말로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다.
만약, 교회 청년 중에 곧 결혼하려는 여인이 ‘내가 밤에 자는 데 천사가 나타나서 너에게 성령으로 아기를 잉태하리니, 그 아이는 앞으로 한국을 살릴 큰 인물이 될 것이다’라는 예언을 했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말할 것인가? 아마 대부분은 이 여자가 너무 기도를 많이 하다가 머리가 돈 것으로 생각하고 그 여자와 관계를 끊을 것이다. 요셉도 온갖 의심으로 며칠 동안 밤잠을 설치며 고민 끝에 마리아와 관계를 끊기로 결단했다. 그래도 요셉은 한때 전심으로 사랑했던 여인의 한 번의 실수를 공개적으로 비난하여 큰 해를 입히는 것을 원치 않았기에 조용히 헤어지기로 했다.
그런 육신적인 결심이 굳어가고 있는 어느 날 밤에 꿈에 주의 사자가 나타나 저에게 생생하게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구원할 자이심이라.’라고 했다.
이때 요셉은 어떻게 했을까? ‘나는 믿을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성령으로 아이를 잉태할 수 있습니까? 불가능합니다.’라고 거절했을까? 아니다. ‘요셉은 잠에서 깨어 일어나서 주의 사자가 분부한 대로 그 아내를 데려왔다’라고 성경은 기록하였다.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약속대로 믿고 순종한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자기의 의심이나 자존심을 버렸다. 요셉의 순종은 칭찬할 만하다. 이렇게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순종한 마리아와 요셉에게 하나님은 일생동안 임마누엘하셨다.
2. 임마누엘의 체험이 있어야 예수님을 믿고 따를 수가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가? 왜 영적 경험들이 그리 부족한 것일까? 왜 신앙이 자라지 않는 것일까? 무엇이 부족한 것일까? 한가지 실례를 성경을 통하여 본다.
눅 18:9-14 / [바리새파 사람과 세관원의 기도] 자기들만 옳다고 생각하며 다른 사람을 경멸하는 이들에게 예수께서는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10)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갔다. 한 사람은 자기가 옳은 사람이라는 것을 뽐내는 바리새파 사람이었고, 다른 사람은 남의 것을 빼앗는 세관원이었다. 11) 바리새파 사람은 서서 이렇게 기도하였다. ‘하나님, 나는 다른 사람들과 같은 죄인이 아닙니다. 더욱이 저기 있는 세관원과 같은 죄인이 아닌 것을 얼마나 감사한지요! 나는 절대로 남의 것을 강제로 빼앗은 일도 없고 간음한 일도 없습니다. 12) 나는 한 주일에 두 번씩 금식을 하고, 내가 얻은 모든 것의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리고 있습니다.’ 13) 그러나 세관원은 멀리 서서 감히 하늘을 우러러볼 생각도 못 하고 슬픔에 잠겨 가슴을 치며 ‘하나님, 이 죄인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소서.’ 하고 눈물로 기도를 드렸다. 14)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용서를 받고 집으로 돌아간 사람은 그 바리새파 사람이 아니라 세관원이었다.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사람은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높아질 것이다.”
▶ 하나님께서는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인 사울을 임마누엘하여 개종시키셨다.
행 9:1-7 / 한편 사울은 모든 그리스도인을 다 잡아 죽일 작정으로 살기가 등등해서 예루살렘에 있는 대제사장을 찾아갔다. 2) 그는 다메섹에 가서 그리스도인이면 남녀를 가릴 것 없이 눈에 띄는 대로 모조리 예루살렘으로 붙잡아 올 테니 다메섹에 있는 여러 회당에 보내는 공문을 써달라고 요구하였다. 3) 사울이 이 용무를 띠고 다메섹 가까이 갔을 때였다. 갑자기 하늘에서 눈부신 빛이 번쩍이더니 그를 내리비추었다. 4) 사울은 그만 땅에 엎드러지고 말았다. 그때 한 음성이 사울에게 들렸다. ‘사울아, 사울아,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5) ‘당신은 누구십니까?’ 사울이 물었다. 그러자 곧 대답이 들려왔다.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다. 6) 자, 일어나 시내로 들어가서 내 명령을 기다려라.’ 7) 사울과 같이 가던 사람들은 놀라서 말도 못 하고 서 있었다. 그들에게는 음성만 들려 올 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 이렇게 사울에게 예수님께서 임마누엘로 나타나신 것은 결코 특혜만이 아닌 의인은 간구하는 힘이 있다는 말씀(약 5:16)처럼 사울의 친구였던 스데반 집사의 순교 기도가 있었다.
행 7:54-60 / [스데반의 순교] 유대인 지도자들은 스데반의 말을 듣고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 이를 부드득 갈았다. 55) 그러나 스데반은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보았다. 그때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 오른편에 서 계시는 예수의 모습이 보였다. 56) 그가 소리쳐 말하였다. ‘보시오! 하늘이 열리고 메시아이신 예수께서 하나님 오른편에 서 계십니다!’ 57) 그러자 사람들은 손으로 귀를 틀어막으면서 스데반을 향해 욕설을 퍼부었다. 58) 그러고는 돌로 쳐 죽이려고 그를 성 밖으로 끌어냈다. 공증인들, 곧 사형집행인들이 겉옷을 벗어서 사울이라는 청년의 발 앞에 놓았다. 59) 그러나 돌들이 우박처럼 날아오는 속에서 스데반은 ‘주 예수님, 제 영혼을 받아주소서’ 하고 기도를 드렸다. 60) 그리고 무릎을 꿇고 ‘주님,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소서.’ 하고 큰소리로 부르짖었다. 그 말을 남긴 뒤 그는 눈을 감았다.
▶ 또 한 사람의 의인을 소개하자면 다메섹에 사는 아나니아라는 사람도 있었다.
행 9:10-22 / 다메섹에는 아나니아라는 한 신도가 살고 있었다. 주님이 신비로운 환상으로 그에게 나타나 ‘아나니아야!’ 하고 부르셨다. ‘예, 주님!’ 하고 그가 대답하자 11) 주님이 말씀하셨다. ‘곧은 거리로 가서 유다라는 사람의 집을 찾아라. 그 집에 다소 사람 사울이 와서 지금 기도를 하고 있다. 12) 내가 환상 가운데 그에게 나타나서 아나니아라는 사람이 와서 손을 얹으면 다시 보게 될 것이라고 일러두었다.’ 13) 아나니아가 말하였다. ‘하지만 주님, 저는 그가 예루살렘에 있는 신도들에게 얼마나 끔찍한 짓을 저질렀는가를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14) 게다가 그는 이 다메섹에 있는 신도들을 모조리 체포할 권한이 있는 영장을 대제사장에게서 받아 왔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15) 그러자 주님이 말씀하셨다. ‘가서 내가 시킨 대로 하여라. 사울은 내 복음을 이스라엘 사람들뿐만 아니라 다른 민족과 그 왕들에게 전파시키고자 내가 택한 그릇이다. 16) 그가 나를 위해서 얼마나 많은 고난을 받아야 할 것인가를 일러주겠다.’ 17) 그래서 아나니아는 사울을 찾아가서 그에게 손을 얹고 말하였다. ‘사울 형제여, 당신이 이곳으로 오는 도중에 나타나셨던 주께서 나를 보내셨습니다. 당신이 충만히 성령을 받고 또 눈을 뜨게 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18) 그러자 그 순간에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떨어지면서 다시 보게 되었다. … 사울은 다메섹에 있는 신도들과 며칠을 함께 지낸 뒤에 20) 회당에 가서 모든 사람에게 예수의 복음을 전하기 시작하였다. 그가 예수께서는 참으로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것을 전파하자 21) 이 말을 듣는 사람들은 모두 귀를 의심하였다. ‘이 사람은 예루살렘에서 예수를 믿는 사람들을 박해하던 바로 그 장본인이 아닌가? 우리가 알기로는 그가 여기 온 것도 신도들을 붙잡아 고랑을 채워서 대제사장들에게 끌고 가려고 했던 것이 아닌가?’ 하고 수군거렸다. 22) 그러나 사울은 더욱더 열심으로 전도하고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하여 다메섹에 사는 유대 사람들을 감복시켰다.
▶ 여기까지는 임마누엘의 되시는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와 먼저 임마누엘의 체험을 가진 형제들의 도움도 있었지만 이에 못지않게 바울 자신도 마음과 정성과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했던 모습은 지금도 우리에게 교과서로 남아있다.
빌립보서 3장에서 사도 바울은 자기를 털어내는 작업을 철저히 했음을 상세히 설명하였다.
빌 3:1-15 /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어떤 일이 일어나든지 주님 안에서 기뻐하십시오. 이미 여러 차례 한 말입니다만 여러분을 위해 또다시 당부하는 것이니 내 말을 단단히 들어 두십시오. … 3) 몸의 한 부분을 잘라낸다고 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게 아닙니다. 우리의 영으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려야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그 예배만이 참할례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이 자랑할 일은 오직 그리스도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서 하신 일뿐입니다. 우리가 자신을 구원할 수 없다는 것은 너무도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4) 그러나 만일 스스로 구원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기에 충분한 사람이 있다고 하면 그것은 바로 나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인간적인 면만을 본다면 확실히 나도 구원받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5) 나는 순수한 유대인 혈통을 이어받아 오랜 전통의 베냐민 가문에 태어났으며, … 나는 어디 한군데 흠잡을 데 없는 진짜 유대인입니다. 게다가 유대교의 모든 율법과 관습을 지키기를 가장 엄격하게 요구하는 바리새파 회원이었습니다. 6) 얼마나 그악스러웠던지 교회를 모조리 핍박했고 유대교의 모든 규칙과 규정을 빠짐없이 지키려고 온 힘을 쏟았습니다. 7) 그러나 한때 대단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던 이런 것들을 지금에 와서는 모조리 내던졌습니다. 그리스도만을 의지하고 그분에게만 소망을 두기 위해서입니다. 8) 나의 주님 그리스도 예수를 알게 된 것이 너무도 존귀해서 이것과 비교하면 다른 것은 다 무가치하게 여겨질 뿐입니다. 나는 그리스도 외에는 다 쓰레기처럼 여기고 모두 내버렸습니다. 그리스도를 얻기 위해 그렇게 한 것입니다. … 10) 나는 지금 모든 것을 다 내던졌습니다. 내가 바라는 것은 다만 참으로 그리스도를 알고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신 전능한 능력을 체험하고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을 당하고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아는 일입니다. 11)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분이 가지는 신선하고 새로운 생명 가운데서 사는 자가 되기 위해서라면 어떤 일이라도 감수할 것입니다. 12) 내가 완전한 인간이 되었다고 말하려는 게 아닙니다. 나는 아직도 배워야 할 것이 많습니다. 다만 나는 그리스도께서 왜 나를 구원해 주셨는가를 깨달아 그리스도께서 내게 바라는 사람이 될 그날을 향해서 계속 노력할 뿐입니다. 13) … 아직 나는 그 목표에 이르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그 일을 이루는 데 내 모든 힘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과거의 것에 집착하지 않고 앞에 있는 것을 바라보며 14) 목적지까지 달려서 상을 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 15) 나는 여러분이 모두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서 이 점에 대해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지기 바랍니다. 혹시 여러분이 생각을 달리하는 점이 있더라도 하나님께서는 그 점을 분명히 지적해 가르쳐 주실 것입니다.
▶ 야곱이 아버지 이삭과 형 에서에게서 장자권을 얻은 후 먼 길을 갈 때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이삭의 하나님뿐만 아니라 야곱의 하나님이 되어주셨다. 욕심꾸러기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고국으로 돌아올 때까지 장장 20년을 하나님께서 함께 해 주셨다.
창 28:10-15 / 야곱은 브엘세바를 떠나 하란을 향하여 길을 떠났다. 11) 해 질 무렵 야곱은 어떤 곳에 이르러 밤을 지낼 채비를 하고 그곳에 있던 돌 하나를 주워다가 베개 삼아 잠자리에 들었다. 12) 그가 잠을 자면서 꿈을 꾸는데 땅바닥에서 하늘까지 맞닿는 큰 사다리가 보였다. 그런데 하나님의 심부름꾼들이 그 사다리를 타고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이 아닌가? 13) 또 그 위에는 여호와께서 서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나는 여호와이다. 네 할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네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이다. 네가 지금 누워있는 이 땅을 내가 네게 그리고 네 후손에게 주리라. 14) 네 후손이 엄청나게 불어나 땅의 먼지만큼 많아지리라. 동서남북 어디를 가든지 네 후손이 그곳에서 가득하게 살리라. 또한, 너와 네 후손으로 말미암아 뭇 나라들이 복을 받으리라. 15) 나는 늘 너와 함께 있을 것이다. 네가 어디를 가든지 지켜 주리라. 분명히 말한다만 그렇게 이리저리 돌아다닌다고 하더라도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내가 네게 약속한 것을 다 이루기 전까지는 내가 절대로 네 곁을 떠나지 않으리라.’
2. 하나님은 자기 고난에 동참하는 자들과 임마누엘하신다.
마침내 마리아와 요셉은 하나님의 뜻에 동참하기 위해 고난의 길을 선택했다. 아기 예수님을 잉태함으로 마리아의 일생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다른 남자처럼 아기자기한 가정이 못되었다. 부부가 되었으나 아기를 낳기까지 형식적인 부부에 불과했다. 아기를 낳기까지 아내와 성적인 관계를 가지지 않았다. 한참 펄펄 힘이 넘치는 나이에 성적으로 참아야 한다는 것은 견디게 힘들었다. 그리고 만삭이 된 산모를 데리고 베들레헴까지 호적하러 갔다가 객지에서, 그것도 마구간에서 아기를 출산하는 고난을 겪어야 했고 또한 아기가 두 살 때는 멀리 애굽까지 피난을 가야 했다. 그러나 마리아와 요셉이 하나님 때문에 그 모든 고난을 참아냈다는 사실에 감동을 금할 수가 없다.
그러한 그들에게 하나님은 임마누엘 하심으로 생생한 체험을 할 수 있게 하셨다. 육체적으로는 많은 고난이 따랐으나 영적으로는 남들이 누리지 못한 많은 보람과 기쁨을 누리었고 많은 기적도 체험했다. 아니, 마리아와 요셉은 육신을 입으신 하나님 곧 예수님과 함께 동고동락하는 최고의 낙을 누린 것이다. 그들은 예수님이 어릴 때부터 자라는 모습을 보면서 큰 기쁨과 위로를 받았다.
멀리 떨어진 동방에서 별을 보고 찾아온 박사들이 아기 예수님을 만나 예물로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다. 요셉과 그 가족들은 부자가 아니었기에, 그 예물들은 요셉과 그의 가족들이 애굽으로 피신해서, 헤롯이 죽기까지 생활비로 썼다고 한다.
임마누엘의 경험이 있는 마리아가 가나의 혼인 잔칫집에서 하인들에게 권면하는 것도 감동이다.
요 2:1-9 / 이틀 후 갈릴리 가나 동네에 결혼잔치가 있었다. 그 잔칫집에는 예수의 어머니도 계셨고 2) 예수도 제자들과 함께 초대를 받아 와 계셨다. 3) 그런데 잔치를 하는 도중에 포도주가 떨어지자 예수의 어머니가 이 문제를 예수께 의논하였다. 4)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지금은 하는 수 없습니다. 아직 내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 5) 그러나 예수의 어머니는 하인들에게 ‘무엇이든지 그분이 시키는 대로 하게.’ 하고 일렀다. 이에 물이 너덧 말 들어가는 돌항아리 여섯 개가 놓여 있었는데 예수님께서는 하인들에게 ‘항아리마다 물을 가득 채우라’하고 하셨다. 하인들이 그 말씀대로 물을 다 채우자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이 물을 떠서 잔치를 주관하는 사람에게 가져다주어라.’ 잔치를 주관하는 사람이 그 물을 맛보았을 때는 이미 물이 포도주로 변해 있었다.
임마누엘의 경험이 있었던 마리아이기에 남들에게도 그동안 목격했던 예수님께서 행하신 이적에 근거하여 권면할 수 있었다. 잔칫집에 있었던 모든 사람 그리고 이런 말을 들은 모든 사람이 놀라며 예수님을 따랐을 것이고, 제자들 역시 예수님이 메시아이심을 굳게 믿을 수 있었다.
3. 임마누엘 하나님은 여러 사람을 통해 마리아와 요셉에게 큰 확신하게 하셨다.
1. 눅 1:39-45 / 며칠 뒤에 마리아는 발길을 서둘러 사가랴가 사는 유대 산간 동네로 엘리사벳(친척)을 찾아갔다. 41) 마리아의 문안 인사를 받을 때 엘리사벳의 태중에 있는 아기가 뛰놀았고 엘리사벳은 성령이 충만하였다. 42) 엘리사벳이 큰소리로 말하였다. ‘마리아는 모든 여자들 가운데서 가장 큰 복을 받았고 태중에 있는 아기도 복받은 분이다. 43) 내 주님의 어머니가 나를 찾아 주다니 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인가! 44) 마리아의 인사하는 소리를 들을 때 내 태중의 아기가 기뻐서 뛰놀았다. 45) 하나님이 이루겠다고 말씀하신 것을 믿은 마리아는 참으로 복된 여인이다.’
2. 눅 2:8-19 / 그날 밤 동네 밖에 있는 들판에서는 목자들이 양을 지키고 있었다. 9) 그런데 갑자기 주님의 영광이 그들을 두루 비추더니 천사가 그들 가운데 나타났다. 그들이 몹시 두려워하자 10) 천사가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나는 지금까지 너희가 들어 보지 못할 가장 기쁜 소식을 전하러 왔다. 이 소식은 모든 백성에게 큰 기쁨이 될 것이다. 11) 오늘 밤 베들레헴에서 너희 구주가 나셨다. 그분은 그리스도요, 주님이시다. 12) 너희가 어떻게 그분을 알아보겠는가?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 그분이 너희가 뵙게 될 주님이시다.’ 13) 갑자기 많은 천군이 나타나 그 천사와 함께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주님이 기뻐하시는 사람들에게 평화로다.’ 15) 그 많은 천군 천사들이 하늘로 되돌아가자 목자들이 말하였다. ‘자, 어서 베들레헴으로 갑시다. 가서 주님이 우리에게 일러주신 그 놀라운 일이 일어난 것을 봅시다.’ 16) 그들은 서둘러 동네로 달려갔다. 그리고 마리아와 요셉을 찾아냈다. 과연 아기는 구유 안에 누워있었다. 17) 목자들은 자기들에게 있었던 일과 천사가 이 아기에 대해서 말한 모든 것을 사람들에게 알렸다. 18) 목자들의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모두 깜짝 놀랐다. 19) 그러나 마리아는 조용히 이것을 마음속에 담아 두었다.
3. 눅 2:25-33 / 그날 성전에는 예루살렘에 사는 시므온이라는 사람이 와 있었다. 그는 바르고 경건한 사람으로서 성령이 충만하여, 메시아가 곧 오실 것이라고 늘 기다리고 있었다. 26) 그는 하나님이 기름을 부으신 왕을 보기 전에는 죽지 않을 것이라는 성령의 계시를 받은 일이 있었다. 27) 그날도 그는 성령의 인도로 성전에 가게 되었는데 그때 마침 마리아와 요셉이 율법이 정한 대로 아기 예수를 주께 드리려고 들어왔다. 28) 시므온은 아기를 품에 안고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29) ‘주여, 주께서 제게 약속하신 대로 이 종은 평안히 눈감게 되었습니다. 30) 주께서 세상을 위하여 보내 주신 구주를 내 눈으로 보았습니다. 31) 이분은 모든 나라를 비추는 빛이시며 32)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십니다.’ 33) 곁에 서서 이 말을 들은 요셉과 마리아는 놀랄 뿐이었다.
4. 눅 2:36-38 / 여자 예언자 안나도 그날 성전에 있었다. 그 여자는 아셀 지파에 속하는 바누엘의 딸로 나이가 매우 많았다. 결혼한 지 일곱 해 만에 남편이 죽었으나 그 후 여든네 살이 되도록 과부로 살았다. 그 여자는 성전을 떠나지 않고 밤낮으로 기도하며 때로는 금식하면서 하나님을 섬겨 왔다. 38) 그 예언자는 마침 들어오다가 시므온이 마리아와 요셉에게 하는 말을 듣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 후 구주를 기다리는 예루살렘의 모든 사람에게 메시야가 드디어 오셨음을 알렸다.
성탄절에 감동할 수 있는 예화로 말씀을 맺는다.
■ 메리 크리스마스 / 나는 성탄절이면 생각나는 헤프닝이 있다. 독일 남부 뮌헨에서는 대강절이 되면 시청 앞에 첫 성탄 모습을 재현한다. 그게 중세 때부터라고 하니 수백 년 된 것이다. 아마 1989년이었던 것 같다. 오픈 세트를 만든 지 이틀 만에 누군가 아기 예수님을 훔쳐 갔다. 뮌헨과 그 시가 속한 바이레른 주가 난리가 났다. 어린아이가 울며 예수님 돌려달라고 하고, 시장도 방송에 나와 아기 예수님 돌려달라고 하고, 주지사가 처벌하지 않을 테니 아기 예수님만 돌려달라고 특별담화까지 발표했다. 다행히도 성탄 이브에 아기 예수님이 무사히 돌아왔습니다. 훔쳐 간 사람이 시청 근처 건물 옥상에 아기 예수님을 갖다 놓고 전화해서 가져가라고 해서 찾았다. 그 사건을 통해 뮌헨 시민들이 깨달은 게 있다. 아무리 성탄절을 화려하게 준비했다 하더라도 주인공이신 주님이 없으면 그게 다 무의미하다는 사실이다. 반면에 아무리 환경이 열악하더라도 성탄하신 주님만 모시면 그곳이 가장 아름답고 복된 처소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 오직 예수 / 이탈리아의 한 화가가 도자기에 ‘최후의 만찬’을 그렸다. 그녀는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하셨던 최후의 만찬을 그려서 그것을 통해 사람들에게 전도하고자 했다. 그중에서도 온갖 정성을 들여 예수님의 얼굴을 그렸다. 정말 영감 있는 주님의 모습, 빛나는 주님의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 한 친구가 그 집을 방문했다. 그런데 그림이 그려진 도자기를 본 친구는 그녀가 그린 예수님의 모습은 본 척도 않고 도자기의 아름다움만을 칭찬했다. 그 화가는 친구의 말을 듣고 마음에 큰 충격을 받았다. 자기는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려고 그림을 그렸는데, 그 그림 속에 있는 그리스도의 얼굴은 가려지고 도자기만 아름답게 보였기 때문이다. 그녀는 친구가 떠난 뒤, 그림을 붓으로 다 지워 버렸다. 예수 그리스도의 아름다움이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엉뚱한 도자기만 아름답게 보여, 주객이 전도되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도 이와 같은 용기가 필요하다. 우리의 마음속에서 예수님 외에 아름다워지려고 하는 것, 예수님 외에 찬란하게 빛나 보이는 것, 예수님 외에 앞장서 나타나 보이는 모든 것을 지울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예수님이 우리의 삶에 처음 되시고 먼저이시기 때문이다. 우리가 따르고 전해야 할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이다. 예수님 중심의 뜨거운 마음으로 마음을 돌이키는 단호한 결단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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