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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남편만 죽여라 위소보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 사람은 아첨 대왕이군.) 홍부인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황룡사는 그래도 대국적인 형세를 살필 줄 아는구려. 청룡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시오?" 한 오십여 세 되는 키가 크고 비쩍 마른 사내가 옆에 둘러선 여덟 명의 청의 소년을 노려보며 꾸짖었다. "비켜라. 교주께서 나를 죽이시려고 한다고 내 스스로 손을 쓸 수 없다 고 생각하느냐?" 여덟 명의 소년은 장검을 앞으로 살짝 밀었다. 검의 끝은 어느덧 그의 옷에 닿게 되었다. 그 사내는 싸늘히 몇 번 냉소를 흘리더니 눈을 천천 히 들어서는 자기의 가슴팍 앞의 옷자락을 잡고서는 입을 열었다. "교주, 부인, 과거 속하와 적, 백, 흑, 황 등 사문(四門)의 장문사와 형제의 의리를 맺고 신룡교를 위해 목숨을 바치리라고 결심을 했는데 오늘 이런 일이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습니다. 부인께서 이 허(許) 모를 죽이려고 하는 것은 별로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상한 것은 황룡사 은(殷) 형님이 삶을 탐내고 죽음이 두려워 그와 같이 비열 하기 짝이 없는 말을 해서 같은 형제를 모함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순간이었다. 짝 하는 소리가 급하게 울려 퍼졌다. 그 사내는 두손을 밖으로 질풍같이 나누었다. 어느덧 몸에 걸치고 있던 장포를 두 쪽으로 찢어서는 손과 팔을 한번 펼치는 사이 두 조각의 장포를 옆으로 쓸어내었다. 그 순간 어느덧 여덟 명의 청의 소년들이 쥔 장검을 밀어 내면서 두 자루 한자 반이나 되는 푸른 광채가 번뜩이는 단검이 그의 손바닥에는 어느덧 들려져 있었다. 삭삭 하는 소리가 잇달아 울려 퍼지 는 가운데 여덟 명의 청의 소년들은 가슴팍에 검을 맞고는 모조리 땅바 닥에 쓰러지고 말았으며 상처에서는 선혈이 곧장 뿜어져 나왔다. 여덟 명의 시체는 바로 그의 옆에 원을 그리듯 쓰러졌는데 매우 정제하 게 줄지어져 있었다. 이 몇 수의 수법은 정말 재빨라 급격히 울려 퍼지 는 천둥소리에 미처 귀를 막지 못하는 형국이었다. 홍부인은 깜짝 놀라서는 손바닥을 잇달아 쳤다. 그러자 이십여 명의 청 의 소년들이 검을 들고는 청룡사의 앞을 가로막았으며 또 겹겹이 그를 에워쌌다. 청룡사는 껄껄 웃으며 낭랑히 입을 열었다. "하하하, 부인, 부인이 가르친 이 꼬마들은 정말 밥통 같구려. 교주께 서 이 나이 어린 녀석들에 의지하여 공을 세우고 적을 제압한다는 것은 너무나 거북살스럽지 않겠소이까." 일곱 명의 소년이 종지령을 찔러 죽인데 대해서 홍교주는 여전히 못본 척했다. 청룡사가 여덟 명의 소년을 찌르고 죽였는데도 그는 전혀 무표 정했으며 가만히 의자에 앉아서는 시종 아랑곳하지 않았다. 홍부인은 남편을 한번 쳐다보았다. 약간 미안한 듯 방긋 웃었다. 그리 고 똑바로 의자에 앉더니 웃었다. "청룡사, 그대의 검법은 고명하기 짝이 없군요. 오늘..." 갑자기 챙그랑챙그랑 하는 소리가 크게 일었다. 대청 안의 수백 명이나 되는 소년 소녀들의 손에 들린 장검이 다투어 땅바닥에 떨어졌다. 뭇사 람들은 크게 의아하게 생각했다. 그런데 뭇소년들은 하나같이 맥없이 땅바닥에 쓰러지는 것이 아닌가. 그러자 여러 사람들도 자기의 눈이 어 질어질해지고 제대로 서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공력이 조금 뒤떨어지는 사람들은 먼저 쓰러졌으며 곧이어 나머지의 사 람들도 휘청휘청 하더니 쓰러지고 말았다. 삽시간에 대청에는 어지럽게 사람들이 잔뜩 쓰러지게 되었다. 홍부인은 놀라 부르짖었다. "어..... 어째서 이런 일이......" 그러나 그녀의 몸 역시 맥이 풀린 듯 대나무 의자에서 미끄러져 내렸 다. 청룡사는 우뚝 버티고 선 채 흉칙한 웃음을 띄우고 입을 열었다. "교주, 그대는 잔인하게 형제들을 죽였는데 오늘이 있으리라고는 생각 지 못했겠죠?" 그리고 두 자루의 단검을 서로 마주치게 했다. 챙 하는 소리가 나는 가 운데 그는 땅바닥에 쓰러져 있는 사람들의 몸을 딛고는 교주에게 다가 갔다. 홍교주는 싸늘히 코웃음을 쳤다. "흥, 꼭 그렇다고는 할 수 없을걸?" 그리고 손을 뻗쳐 대나무 의자의 팔걸이를 잡았다. 우지끈 뚝하는 소리 와 함께 그는 그 팔걸이를 분질렀다. 청룡사는 그만 안색이 변해서는 뒤로 두 걸음 물러서며 입을 열었다. "교주, 이렇게 커다란 신룡교를 지리멸렬하도록 만든 것은 도대체 누가 심은 화근입니까? 어르신께서는 이제 알아차렸겠지요?" 홍교주는 음 하고 신음소리를 내더니 갑자기 의자에서 미끄러져 땅바닥 에 주저앉았다. 청룡사는 크게 기뻐하면서 앞으로 달려들었다. 별안간 휙 하는 소리와 함께 한 물건이 맹렬하기 이를 데 없는 세찬 바람을 일 으키며 그의 가슴팍으로 날아들었다. 청룡사는 오른손의 단검을 들어 힘주어 베어 내었다. 그러자 날아 들던 그 물건은 두 토막이 나고 말았다. 그것은 홍교주가 대나무 의자에서 비틀어서 잘라 낸 팔걸이였다. 그런데 그가 던지 힘은 엄청났다. 한토 막의 대나무가 절단되었는데 앞쪽 부분은 여전히 그 기운이 쇠퇴해지지 않고 팍 하는 소리와 함께 청룡사의 가슴팍으로 날아와 꽂히는 것이 아 닌가. 이 바람에 대여섯 개의 늑골이 분질러졌고 팔걸이 앞쪽 부분은 폐까지 찔려 들어가게 되었다. 청룡사는 크게 한 소리 부르짖더니 우뚝 멈추어 섰다. 숨이 제대로 이 어지지 않았다. 대뜸 말문이 막히고 몸을 두번 흔들흔들하였다. 손에 들고 있던 두 자루의 단검도 아래로 떨어지게 되었는데 그 것은 두 명의 소년의 몸에 꽂히게 되었다. 이 두명의 소년은 사지가 마비되 고 맥이 풀려 움직일 수 없었다. 그러나 정신은 아직도 말짱했고 입으 로 말도 할 수 있었다. 단검이 위에서 갑자기 떨어지면서 그들 몸을 찌르게 되자 아파서 크게 비명을 내질렀다. 수백 명이나 되는 소년소녀들은 교주가 크게 위세를 떨쳐서 청룡사를 쳐서 쓰러뜨리자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그런데 홍교주는 오른손을 땅바닥을 딛고는 버둥거리며 몸을 일으키려 고 했다. 그러나 오른쪽 다리를 제대로 세우기도 전에 두 무릎이 맥없 이 꿇었고 그 바람에 그는 몇 번 바닥에서 몸을 뒹굴면서 나가떨어지고 말았다. 그야말로 낭패한 모습을 보이게 된 것이다. 이렇게 되자 모든 사람들은 교주도 자기네와 같이 중독되어 근육에 맥이 풀리고 마비되었다는 사실 을 알게 되었다. 교주는 평소 지극히 장엄했다. 교의 무리들 앞에서는 한마디도 말도 더하지 않았고 한번 더 웃지도 않았다. 그런데 이때에 그토록 창피스럽 게 나가떨어진 것으로 보아 전신의 기운을 깡그리 상실할 것이 틀림없 지 않겠는가. 대청의 수백 명이나 되는 사람들은 모조리 쓰러지고 한 사람만이 똑바 로 서 있다. 이 사람은 본래 키가 무척 작은 편이었다. 그러나 수백 명 이나 되는 사람들이 땅바닥에 쓰러져 일어나지를 못하자 군계학립(群鷄 鶴立)과 같은 모습으로 보였다. 이 사람은 바로 위소보였다. 그는 코로 담담히 풍기는 그윽한 향기를 맡을 수 있었는데 그 냄새를 맡자 마음이 넓어지는 것 같았고 정신이 나른해지고 기분이 좋아지는 것이 뭐라고 형용할 수 없었다. 그러나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땅바닥에 쓰러지는 것을 보고도 어째서 이와 같은 변고가 생겼는지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는 멍청하니 서 있다가 손을 뻗쳐서는 반두타를 잡아끌며 물었다. "반존자, 모두 무엇하는 것이오?" 반두타는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그대는..... 그대는 중독되지 않았소?" 위소보는 의아하게 말했다. "중독? 나는...... 나는 모르겠는데요." 그는 힘주어 반두타를 부축해 일으키려고 했다. 그러나 반두타는 다리 에 전혀 기운을 쓸 수 없어 다시 기우뚱하니 쓰러지고 말았다. 육선생이 갑자기 물었다. "허형, 그대..... 그대는 무슨 독을 썼소?" 청룡사는 몸을 휘청거렸다. 마치 술에 흠뻑 취한 사람 같았다. 그러다 가 한손으로 기둥을 붙잡고 끊임없이 기침을 해대며 말했다. "애석하군..... 애석하게도 성공하려는 찰나에 그만 좌절을 당하여 공 이 수포로 돌아가게 되었구나. 이제 나는..... 나는 쓸모가 없게 되었 다." 육선생은 여전히 질문을 던졌다. "칠충연근산(七蟲軟筋散)이오? 아니면 천리소혼향(千里소魂香)이오? 아 니면...... 화..... 화혈(化血)... 부골분(腐骨粉)이오?" 그는 잇달아 세 가지 극독의 이름을 들먹였다. 그런데 화혈부골분이라 는 이름을 들먹이면서 음성이 떨리는 것으로 미루어 매우 두려워하는 눈치가 분명했다. 육선생은 말했다. "위공자, 그대는 어째서 중독되지 않았소? 아, 그렇군!" 갑자기 그는 깨달은 듯 아, 그렇군! 하는 소리를 크게 내질렀다. 그리고 곧이어 말했다. "그대는 단검에다가 백화복사고(白花腹蛇膏)를 발라 놓았군. 정말 묘책 이오. 위공자, 그대는 청룡사의 그 단검에서 냄새를 맡아 보시오. 그 단검에서 향기 같은 냄새가 풍기지 않는지." 위소보는 속으로 생각했다. (검에 독이 묻혀 있다고? 그럼 나는 맡을 수가 없지.) 그리고 그는 말했다. "이곳에 서 있어도 매우 향긋한 냄새를 맡을 수 있소이다." 육선생은 얼굴에 기쁜 빛을 띠었다. "그렇군. 백화복사고는 선혈을 보면 더욱더 짙은 향기를 내뿜지. 본래 향료를 만드는 한 가지 비약인데 보통 사람이 맡으면 정신이 쾌적해지 죠. 그러나..... 그러나 우리들은 이 영사도에 살고 있는 만치 모두 다 독사를 피하기 위해 웅황약주(雄黃藥酒)를 마시는 습관에 젖고 말았소. 이 향기는 웅황약주를 마신 사람으로 하여금 근골이 마비되고 기운이 빠져 열두시진 안으로 풀리지가 않죠. 허형, 정말 묘책이외다. 백화복 사고는 본래 이 섬에서 금지된 물품이 아니오. 그런데 원래 그대는 이 미 몰래 준비를 하고 있었구려. 그대는 아마도 삼사 개월간 웅황약주를 마시지 않았겠구려." 청룡사는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런데 두 명의 몸위에 걸터앉게 되었 는데 고개를 흔들며 그 말을 받았다. "사람이 도모하는 것은 하늘이 헤아리는 것보다 못하다고 결국에는 홍 안통(洪安通)의 독수에 걸려들고 말았다네." 몇 명의 소년이 호통을 내질렀다. "대담하고 당돌한 녀석 같으니, 네가 감히 교주의 거룩하신 이름을 마 구 부르는구나." 청룡사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장검을 하나 집어들더니 한 걸 음 두 걸음 홍교주에게 다가가며 입을 열었다. "홍안통의 이름을 왜 부를 수 없다는 것이냐? 어험, 어험...... 내가 이 악적을 죽인 이후..... 어험, 어험..... 부를 수 있는지 부를 수 없 는지 두고 볼까?" 수백 명의 소년소녀들이 놀라 부르짖었다. 잠시 후 황룡사의 늙수그레한 음성이 들려왔다. "허형제, 그대가 홍안통을 죽인다면 모두들 그대를 신룡교의 교주로 모 시겠네. 모두들 발리 읊어 보게. 우리들은 허교주의 호령을 받들겠으며 충성을 다하되 두 마음을 갖지 않겠소이다." 대청에는 잠시 침묵이 감돌았다. 그러나 곧이어 수십 명의 사람이 똑같 이 읊기 시작했다. "우리들은 허교주의 호령을 받들겠으며 충성을 다하되 두 마음을 갖지 않겠소이다." 이 소리들 가운데 어떤 소리는 굳건했으며 어떤 소리는 망설이는 빛을 보여 합창하듯 일제히 울려퍼지는 것이 아니고 이곳저곳에서 뒤죽박죽 이 되어 흘러나왔다. 청룡사는 두 걸음 옮기더니 기침을 했다. 그리고 몸을 휘청거렸다. 그 는 매우 심한 상처를 입었으나 애서 버티고 있었다. 어떻게 해서라도 먼저 홍교주를 죽여 보자는 심산인 것 같았다. 홍부인이 갑자기 깔깔거리고 웃으며 입을 열었다. "호호호, 청룡사, 그대에게는 기운이 없어졌어요. 그대의 다리에도 전 혀 기운이 없어요. 그대의 가슴팍에 선형이 흘러나오는군요. 곧 모조리 흘러내리고 말 것 같군요. 그대는 틀렸어요. 앉으세요. 피곤하기 이를 데 없죠? 앉아요. 맞았어요. 앉아 쉬도록 해요. 그대는 장검을 내려놓 고 내곁으로 다가와요. 내가 그대의 상처를 치료해 드리지. 맞았어요. 비스듬히 눕도록 하세요. 그리고 장검을 내려놓으세요." 그녀의 음성은 갈수록 부드러워져서 교태가 뚝뚝 떨어졌다. 청룡사는 다시 몇 걸음 나아갔으나 끝내 땅바닥에 천천히 주저앉았다. 그리고 찡 하니 장검도 그의 손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황룡사는 청룡사가 다시 일어설 기미를 보이지 않자 큰 소리로 부르짖 었다. "허설정(許雪亭), 너 이 간악한 자가 헛되이 빌어먹을 교주가 되고자 하는 망상을 품었겠지. 너는 오줌을 싸고 네 얼굴에 비쳐 보도록 해라. 그 몰골로 되겠는가 말이다." 적룡사 무근도인은 호통을 내질렀다. "은금(殷錦), 이 비열하고 몰염치한 소인아! 바람부는 대로 따라서 동 쪽으로 흔들하고 서쪽으로 기웃하더니. 이 늙은 도사가 손발을 움직일 수 있게 된다면 첫번째로 너를 죽이고 말 것이다." 황룡사 은금은 말했다. "웬 발악이냐? 나는..... 나는....." 그는 반박을 하려고 했다. 그러나 청룡사 허정이 다시 휘청거리며 몸을 일으키려고 하는 것을 보자 이번 싸움이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는 생각 이 들어 그만 입을 다물고 말았다. 일시 대청의 수백 명이나 되는 눈초리가 허설정의 몸에 집중되었다. "허 오라버니, 그대는 무척 피곤해지셨군요. 역시 앉으세요. 저를 바라 보세요. 제가 작고 고운 노래를 들려 드리겠어요. 그대는 푹 쉬도록 하 세요. 이후 나는 매일같이 노래를 들려 드리겠어요. 그대가 보기에 제 가 예쁘지 않나요?" 허설정은 음음 하더니 말했다. "그대는..... 그대는 정말 예쁘오. 하지만.... 나는..... 나는 감히 더 쳐다볼 수가 없구려." 그러면서 그는 다시 주저앉았다. 이번에 그는 다시 몸을 일으키지 못했 다. 그러나 마음속으로 자기가 앉아서 일어나지 못하고 또 교주를 찔러 죽 이지 못하면 수백 명이나 되는 사람들 가운데 교주의 공력이 가장 심후 하니 중독된 독도 그가 반드시 먼저 풀리게 되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따라서 그렇게 된다면 늙은 형제들은 한 사람도 요행을 바라볼 수 없게 되고 모조리 교주의 독수에 죽음을 당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 여 그는 말했다. "육...... 육선생, 나는 움직일 수가 없다네. 그대는 방법을...... 어 험, 어험, 방법을 강구해 주시게." 육선생은 말했다. "위공자, 저 교주는 매우 악독하오. 나중에 그의 몸에 중독된 독이 풀 어지면 모두를 죽일 것이고 그대마저도 살아남지 못하게 된다오. 그러 니 빨리 교주와 부인을 죽여 없애시오." 그가 이렇게 말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위소보는 이미 알고 있던 참이었 다. 그는 즉시 검을 뽑아 들고는 천천히 교주 쪽으로 다가갔다. 육선생은 다시 말했다. "그 홍부인은 백여우와 같은 여인으로 사람을 잘도 속인다오. 그러니 그대는 그녀의 얼굴은 물론 그녀의 눈동자를 보지 않도록 하시오." 위소보는 대답했다. "네." 그리고 그는 검을 들고서 앞으로 몇 걸음 나아갔다. 홍부인은 부드러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소형제, 그대는 내가 아릅답다고 생각하지 않아?" 그 소리에는 사람의 혼을 녹일 것 같은 기운이 잔뜩 서려 있었다. 위소 보는 마음속으로 움직이는 바가 있어 고개를 돌려 그녀를 쳐다보려고 했다. 이때 반두타가 호통을 내질렀다. "사람을 해치는 마녀이니 빠져서는 안 돼." 위소보는 흠칫해서는 눈을 꼭 감았다. 홍부인은 나직이 소리내어 웃으 며 말했다. "호호호, 소형제, 눈을 뜨고 나를 봐요. 나를 향해 눈을 뜨라구요. 자, 내 눈동자에 그대의 모습이 비치고 있네." 위소보는 눈을 떴다. 그러고 보니 홍부인은 방실방실 웃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는 크게 마음이 설레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그는 곧 검을 가슴팍가지 들어올리고 홍교주 쪽으로 다가가며 속으로 생각했다. (그대와 같은 미인을 나로서는 정말 아까워 죽일 수가 없구만. 그러나 그대의 지아비는 반드시 죽여야 해.) 별안간 왼쪽에서 맑은 음성이 들려왔다. "위 오라버니, 죽여서는 안 되요." 그 소리는 매우 귀에 익숙했다. 위소보는 속으로 흠칫해서는 소리가 나 는 곳을 바라보았다. 한 명의 홍의 소녀가 땅바닥에 쓰러져 있었는데 이목이 준수했다. 바로 소군주 목검병이 아닌가. 그는 깜짝 놀랐다. 이 곳에서 그녀와 만나게 되리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녀가 적룡문 소녀들이 입고 있는 홍의를 걸치고 있다는 사실 에 대해서는 별로 놀라워하지 않았다. 그는 재빨리 다가가 몸을 굽히고 그녀를 부축해 일으키며 물었다. "그대가 어찌하여 이곳에 있소?" 목검병은 그의 묻는 말에 대답하지 않고 말했다. "그대는..... 그대는 절대 교주를 죽여서는 안 돼요." 위소보는 의아하여 물었다. "그대는 신룡교에 투신했구려. 어찌..... 어찌 그럴 수 있단 말이오?" 목검병은 전신의 뼈가 없는 사람처럼 맥이 빠져 있었다. 그녀는 머리를 그의 어깻죽지에 기대고 조그만 입을 위소보의 귓가에 갖다대고는 나직 이 말했다. "그대가 만약 교주와 부인을 죽인다면 나는 살아남지 못하게 돼요. 저 늙은이들은 우리들을 죽도록 미워해요. 그리하여 우리 젊은 사람들은 모조리 죽이려 들거에요." 위소보는 말했다. "내가 그들에게 그대를 해치지 말라고 한다면 그들은 응낙을 할 것이 오." 목검병은 급히 말했다. "아니에요. 아니에요. 교주는 우리에게 독약을 먹였어요. 다른 사람은 풀 수 없단 말이에요." 위소보와 그녀는 오랜만에 만난 터이라 그렇지 않아도 매우 기뻤다. 더 군다나 부드러운 그녀를 품속에 안고서 그녀가 귓가에 속삭이는 말을 듣고 있으니 그녀의 청을 거절할 도리가 없었다. 더군다나 그녀는 이미 교주의 독약을 먹었는데 다른 사람은 풀 수 없다 고 하지 않는가. 그렇게 된다면 교주를 죽이게 되었을 때 바로 이 품속 의 작은 미녀를 죽이는 꼴이 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위소보는 결코 그럴 수 없다고 생각했으나 한가지 일만은 난처했다. 그 리하여 그는 나직이 말했다. "내가 만약 교주를 죽이지 않는다면 교주의 몸에 독이 풀리게 되었을 때 나를 죽이려 할 것이오." 그는 목검병을 꼭 껴안다시피 하고 있었고 그 말은 바로 그녀의 귓가에 대고 한 말이었다. 목검병은 말했다. "그대가 교주와 부인을 구하게 되는데 그들이 어찌하여 그대를 죽이겠 어요." 위소보는 속으로 그 말도 맞다고 생각했다. 홍부인은 그야말로 정말 아름답고 요염해서 어떻게 하더라도 손을 쓸 수가 없을 것 같았다. 따라서 지금이 바로 큰 공을 세울 좋은 기회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반두타, 육선생, 무근도인 이 사람들은 교주에게 죽음을 당하는 것을 피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무근도인은 매우 호걸다운 인물이라 그를 죽인다는 것은 너무나 애석한 노릇이라는 생각 도 들었다. 가장 좋은 것은 교주와 부인을 죽이지 않고 반두타 등의 목 숨을 보호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그는 말했다. "맞았소. 우리 착한 마누라. 설사 교주가 나를 죽이려고 한다 하더라도 나는 반드시 그대를 구하지 않을 수 없구려." 그리고 그는 그녀의 왼쪽 뺨에다가 입을 맞추었다. 목검병은 크게 부끄러워 그만 온 얼굴이 시뻘개지고 말았다. 그러나 눈 가에 기쁜 빛을 띄우고 나직이 말을 하였다. "그대가 큰 공을 세운다면 나이 어린 사람이니 만큼 교주가 어찌 그대 를 죽이겠어요?" 위소보는 목검병을 가만히 땅바닥에 내려놓고는 고개를 돌리고 입을 열 었다. "육선생, 교주는 죽일 수가 없소이다. 부인 역시 죽일 수가 없소이다. 그 이유는 교주와 부인께서 영원히 선복을 누리게 되며 수명은 하늘처 럼 높다고 하지 않았소? 그러니 어찌 내가 그들의 목숨을 해칠 수 있겠 소? 그들 두 분 어르신은 그야말로 신통력이 광대하니 설사 해치려 한 다 해도 해칠 수 없을 것이오." 육선생은 크게 초조해셔서는 부르짖었다. "비석의 글은 가짜인데 어찌 근거로 삼을 수 있단 말이오? 쓸데없는 생 각 하지 말고 두 사람을 빨리 죽이시오. 그렇지 않을 땐 모두들 죽어 뼈를 묻힐 곳이 없게 될 것이오." 위소보는 연신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육선생, 그대는 그와 같이 윗사람의 위엄을 거슬리고 배반하는 듯한 말을 함부로 하지 마시오. 그대에게 해약이 없소? 우리 빨리 교주와 부 인의 중독된 독을 풀어 드리도록 합시다." 홍부인은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맞았어. 소형제, 그대의 견식은 정말 뛰어나군. 하늘이 그대와 같은 젊은 영웅을 이 세상에 내려보내 교주를 보좌토록 한 것이야. 신룡교에 서 그대와 같은 젊은 영웅을 맞아들이게 된다며 정말 타고난 복이라고 할 수 있겠지." 그 몇 마디의 말은 정말 폐부에서 우러나온 듯 놀람과 한탄의 뜻으로 가득했다. 위소보는 그와 같은 말을 듣고 그만 기분이 좋아져서는 웃으며 말했다. "부인, 저는 신룡교의 사람이 아닙니다." 홍부인은 웃었다. "그거야 더 말할 나위 없이 수월한 일이지. 그대는 즉시 지금 입교하도 록 해요. 내가 그대의 안내자가 되겠어요. 교주, 이 소형제가 본교를 위해 이토록 큰 공을 세웠는데 우리는 그에게 어떤 직책을 맡겨야 옳겠 어요?" 교주는 말했다. "백룡문 장문사 종지령이 교를 배반했다가 벌을 받고 죽었으니 우리는 이 소년에게 백룡사라는 직책을 맡기면 되겠지." 홍부인은 웃었다. "정말 잘 되었어요. 소형제, 본교에서는 교주가 가장 윗사람이고 그 아 래에 청, 황, 적, 백, 흑의 오룡사(五龍使)가 있어요. 그대와 같이 교 에 들어오자마자 오룡사 가운데 일인이 된 사람은 일찌기 없었던 일이 에요. 이로 미루어 볼 때 교주가 그대에 대해서 얼마나 의지하고 중시 하는가를 알 수가 있어요. 소형제, 그대의 성은 위씨죠? 우리가 다 알 고 있어요. 그런데 이름은 뭐라고 하나요?" 위소보는 말했다. "저는 위소보라고 합니다. 강호에서 불리는 별호가 있는데 그것은 소백 룡이라고 한답니다." 그는 옛날 모십팔이 그에게 지어 준 별호를 생각해 낸 것이었다. 그는 별호가 없으면 위풍스럽지 못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소백룡이란 별호는 오늘의 일고 공교롭게도 맞아 떨어지는 별호이기도 했다. 홍부인은 기뻐서 말했다. "저것 봐요. 저것 봐요. 이것이야말로 하느님이 안배하신 거예요. 그렇 지 않으며 이토록 공교로울 수가 있나요? 교주께서는 한번 내뱉은 말을 결코 저버리지 않아요." 육선생은 다급해져서는 말했다. "위공자, 그들의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도록 하시오. 설사 그대가 백룡 사라는 지위에 올랐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그대가 싫어지면 그대를 죽이 는 것은 손바닥 뒤짚기보다 쉬운 노릇이 아니겠소. 백룡사 종지령이 바 로 그 본보기이외다. 그대는 빨리 교주와 부인을 죽이시오. 모두들 그 대를 신룡교의 교주로 삼도록 하겠소이다." 그 말이 떨어지자 뭇사람들은 모두 다 깜짝 놀라고 말았다. 반두타, 허 설정, 무근도인 등도 그 말이 너무 지나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니 만약 그를 교주로 모시지 않는다면 교 안에서는 다시 백룡 사보다 더 높은 지위가 없었다. 지금은 형세가 매우 위급한 상태가 아 닌가. 뭇 사람들의 목숨이 그의 손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고 이렇게 함으로써만이 그로 하여금 교주와 부인을 죽이도록 유인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이 난관을 넘기게 된다면 나이 어린 소년이 설사 교주가 된다고 하더라도 뭇사람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 이라고 판단했다. 그리하여 뭇사람들은 일제히 말했다. "맞았소. 맞았소. 우리들은 모두 위공자를 신룡교의 교주로 모시겠으며 모두들 그대에게 충성을 다하겠소이다." 위소보는 마음속으로 움직이는 바가 있어서 곁눈질로 홍부인을 바라보 았다. 이때 홍부인은 반쯤 기댄 자세로 대나무 의자에 등을 의지하고 앉아 있었다. 전신은 마치 뼈가 없어진 듯한 모양이었으며 가슴이 미미하게 오르락내 리락 했다. 그리고 두 뺨이 불그레 했으며 두 눈에서는 정이 똑똑 떨어 지는 듯했다. 위소보는 생각했다. (교주가 된다는 것이 뭐가 재미있어서 그래. 그러나 이 교주 부인은 정 말 사람을 죽여 주게 아름답구나. 내가 교주가 된다면 이 교주 부인이 여전히 교주 부인으로 남아 있을까?) 그러나 이와 같은 생각은 그의 뇌리에서 번쩍 떠올랐다가 사리지게 되 었고 모든 것을 환히 깨달을 수 있었다. 이 사람들은 하나같이 무공이 고강하다. 몸의 독성이 풀어지면 재가 어떻게 그들을 관리 할 수 있겠 는가. 이것이야말로 다리를 지난 이후 판대기를 뜯어서 다리를 무너뜨 리는 형국이 되지 않겠는가?) 다리를 지난 후 판자대기를 뜯어서 다리를 무너뜨리게 한다는 것을 그 는 천지회의 청목당에서 이미 받았던 느낌이기도 했다. 그러나 천지회 의 형제들은 모두 영웅호걸이기 때문에 다리를 지난 이후에도 서둘러 판자대기를 뜯어내고 다리를 무너뜨리려고 하지 않았지만 이 신룡교의 녀석들은 신이나서 무너뜨리려고 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교주 부인이 아름답기는 했으나 역시 자기의 목숨이 더 소중했다. 그리하여 그는 혓바닥을 쭉 내밀었다가는 웃으며 입을 열었다. "교주, 교주는 내가 감당할 수 없소이다. 그대들이 그와 같은 말을 한 다는 것은 그야말로 나의 타고난 복을 꺽는 길이 될 것이며 어느 정도 대역무도한 일이 될 것 같구려. 이렇게 합시다. 교주, 부인, 모두들 서 로 좋게 지내도록 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오늘의 일은 쌍방에서 모두 없었던 일로 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육선생과 청룡사 등이 교주의 위엄 을 거슬렸지만 교주께서는 넓으신 아량으로 그들의 죄를 다스리지 말았 으면 합니다. 그리고 육선생, 육선생은 해약을 꺼내서는 모두에게 먹이 도록 하시오. 그리하여 서로 잘 지낸다면 좋은 일이 아니겠소?" 홍교주는 육선생이 입을 버리기 전에 즉시 입을 열었다. "좋아. 그렇게 하기로 하지. 백룡사가 우리들에게 사이좋게 지내라고 권고하고 기왕 지나 일을 따지지 말라고 했으니 본좌는 그 충언을 받아 들이기로 하고 오늘 대청에서 위사람의 위엄을 거슬리고 배반을 했던 행위를 본좌는 일절 너그럽게 용서하여 다시 따지지 않기로 하겠네." 위소보는 기뻐서 말했다. "청룡사, 교주께서는 응낙을 하셨소. 이것이야말로 더욱 잘된 일이 아 니겠소?" 육선생은 위소보가 어떻게 하더라도 교주를 죽일 것 같지 않는지라 길 게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그렇다면 교주와 부인, 두 분께서는 아무쪼록 맹세를 해주십시오." 홍부인은 말했다. "이 소전(蘇전)은 결코 오늘의 일을 따지지 않기로 하겠소이다. 만약 이 말을 어긴다면 나의 몸뚱아리는 용담(龍潭)에 들어가 만마리의 뱀에 물려 죽게 될 것이외다." 홍교주는 나직한 음성으로 말했다. "신룡교 교주 홍안통은 이후 만약 여러 늙은 형제들에게 오늘의 일을 따지려고 든다면 이 홍모의 몸뚱아리는 용담에 떨어져 만 마리나 되는 뱀에게 물어 뜯겨 뼈도 남기지 못할 것이외다." 몸이 용담에 떨어져 만 마리의 뱀에게 물어뜯기는 벌은 신룡교에서 가 장 무서운 형벌이었다. 교주와 부인이 여러 사람들 앞에서 이와 같은 맹세를 한 것은 형세에 영향을 받아 불가피하여 한 맹세라고 할 수 있 으나 결코 그 맹세를 저버릴 수는 없으리라. 육선생은 물었다. "청룡사, 그대의 뜻은 어떠하오?" 허설정은 다 죽어가는 소리로 입을 열었다. "나는...... 나는 어쨌든 살아날 수 없을 것이오." 육선생은 다시 물었다. "무근도장,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시오?" 무근도인은 큰소리로 말했다. "그렇게 합시다. 홍교주는 원래 우리와는 옛형제간이 아니겠소. 문무에 쌓은 공은 다른 사람보다 십배나 뛰어나오. 모두들 본래 그를 우두머리 로 삼았으며 두 마음을 품지 않았지 않소. 그런데 그가 부인을 맞아들 인 이후 성격이 크게 변해서는 소년소녀들을 끌어올리기만 좋아했고 우 리 늙은 형제들은 하나하나 잔혹하게 죽여 없앴소. 청룡사가 이번에 이 와 같은 짓을 한 것도 목숨을 건지기 위한 것이지 다른 뜻은 없소. 교 주와 부인께서 뭇사람들 앞에서 맹세를 하여 오늘의 일을 따지지 않고 다시는 함부로 늙은 형제들을 살해하지 않겠다면 모두들 어째서 그를 배반하려 들겠소? 더군다나 신룡교에서는 원래 이 교주님이 없어서는 안 되게 되어 있소이다." 뭇소년소녀들은 일제히 소리 높이 외쳤다. "교주께서는 영원히 선복을 누리게 될 것이고 수명은 하늘처럼 높을 것 입니다." 육선생은 말했다. "위공자, 그대는 웅황약주를 마시지 않았기 때문에 백화복사고의 독에 중독되지 않아 오늘의 공을 세우게 되었소. 이것이야말로 하늘의 뜻이 있는 것이외다. 이 독을 푸는 것은 쉬운 일이오. 그대는 밖으로 가서 차가운 물을 떠서는 여러 사람들에게 먹이면 되는 것이오." 위소보는 웃었다. "이 독은 원래 그토록 쉽게 풀리는 것이군요." 그리고 그는 대청 밖으로 나갔으나 냉수를 찾을 수가 없었다. 그는 대 청 뒤로 돌아갔다. 그러고 보니 이십여 개나 되는 칠석항(七石缸)이 한 줄로 놓여 있었는데 그 안에 맑은 물이 잔뜩 들어 있었다. 원래는 대나무로 만든 대청에 불이 나게 되었을 때 사용하려고 준비해 두었던 물이었다. 그는 즉시 한통의 맑은 물을 떠서는 대청으로 돌아가 먼저 한 바가지를 떠서 교주에게 먹였다. 그리고는 다시 홍부인에게 먹 였다. 그리고 세 번째에는 무근도인에게 먹이고 말했다. "도장, 그대는 영웅호걸이오." |
첫댓글 잼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