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0일(월) 예레미야 26:1-7 찬송 200장
1. 유다의 왕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김이 다스리기 시작한 때에 여호와께로부터
이 말씀이 임하여 이르시되
2.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는 여호와의 성전 뜰에 서서 유다 모든 성읍에서
여호와의 성전에 와서 예배하는 자에게 내가 네게 명령하여 이르게 한 모든 말을 전하되
한 마디도 감하지 말라
3. 그들이 듣고 혹시 각각 그 악한 길에서 돌아오리라 그리하면 내가 그들의 악행으로 말미암아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려 하던 뜻을 돌이키리라
4. 너는 그들에게 이와 같이 이르라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가 나를 순종하지 아니하며
내가 너희 앞에 둔 내 율법을 행하지 아니하며
5. 내가 너희에게 나의 종 선지자들을 꾸준히 보내 그들의 말을 순종하라고 하였으나
너희는 순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6. 내가 이 성전을 실로 같이 되게 하고 이 성을 세계 모든 민족의 저줏거리가 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7. 예레미야가 여호와의 성전에서 이 말을 하매 제사장들과 선지자들과 모든 백성이 듣더라
(개역 개정)
- 성전 설교 -
25장으로 예레미야가 범죄한 유다를 향해 직접 심판을 경고하는
12편의 설교로 구성된 본론 제 1부(제2-25장)가 마감되고
26장부터는 본론 제 2부(제26-45장)가 전개된다.
이러한 본론 제 2부는 예레미야의 행동을 주격으로 하여
예레미야의 전기(傳記) 형식으로 유다를 향한 하나님의 예언을 기록하고 있다.
그중 오늘 말씀은 예레미야의 성전 설교와 그 결과를 언급하는
제 26장의 전반부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유다의 형식적인 성전 예배를 책망하고 악행에서 돌이킬 것을 촉구하는
소위 ‘성전 설교’라 불리는 내용을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본문에 언급된 성전 설교는 렘7:1-15에 언급된
성전 설교와 동일한 내용으로 그 요약이라 할 수 있다.
다만 렘7:1-15이 성전 설교의 내용에 치중하여 기록하고 있다면
본문은 다음 단락과 연결하여 설교의 결과에 대해 치중하여 기록하고 있다.
본문의 내용을 간략하게 요약하면,
1-2절은 성전 설교가 선포된 시대적 배경과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로 하여금
그에게 전하게 한 예언의 내용을 성전 뜰에서 가감없이 전하도록 명한 사실을
3-7절은 예레미야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선포한 예언의 내용을 각각 기록하고 있다.
유다는 므낫세(주전697-642년) 통치 55년과
아몬(주전642-640년) 통치 2년에 걸쳐 극심한 우상 숭배에 빠졌다.
이때에는 성전에서도 우상 숭배가 행해지는 등
유다는 그야말로 우상 숭배의 절정에 이르렀었다.
그리고 이는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 일으켜
유다를 멸망케 하는 결정적 원인이 되었다.(왕하 23:26-27)
물론 의로운 왕 요시야(주전640-609년)의 종교 개혁은
유다에서 여호와 신앙을 어느 정도 회복케 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요시야의 종교 개혁은
강퍅해진 백성들의 심령까지 개혁시키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백성들은 성전 예배 등을 통하여 겉으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듯했지만
실제로는 여전히 우상을 숭배하며
하나님의 율법을 거스려 온갖 악행을 다 저질렀다.
그러면서 백성들은 잘못된 성전 이해를 갖게 되었다.
즉 그들은 온갖 죄악을 다 행하면서도 성전에서 제사만 드리면
용서받고 구원을 얻게 된다고 생각함으로써
성전을 행악자의 도피처와 행악의 온상으로 만들어 버림은 물론
지극히 위선적이고 형식적인 성전 예배를 드림으로써 하나님을 모독하였다.
이에 예레미야는 유다 백성들에게 회개할 것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것을 촉구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
하나님께서 성전과 예루살렘 성을 파괴하여
유다 백성들을 열방의 조롱거리로 만들 것이라는 경고를 줌으로써
유다 백성들에게 근본적인 심령의 개혁을 촉구하였다.
2절)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는 여호와의 성전 뜰에 서서
유다 모든 성읍에서 여호와의 성전에 와서 예배하는 자에게
내가 네게 명령하여 이르게 한 모든 말을 전하되 한 마디도 감하지 말라」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향하여 당신이 그에게 전하라고 주신 말씀을
‘여호와의 성전 뜰에 서서 유다 모든 성읍에서
여호와의 성전에 와서 예배하는 자에게’ 전하라고 지시하신다.
이 말씀을 통하여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은 여호야김 시대에도 유다 사람들은
유다 각지로부터 예루살렘 성전으로 와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다는 사실이다.
여호야김 시대가 어떤 시대인가?
그 시대는 여호야김이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한 두루마리를
소각한 사실이 보여주듯이 유다의 타락이 극에 달한 때였다.
유다가 결정적으로 타락의 길을 걷기 시작한 것은 므낫세 때부터였다.
므낫세는 유다의 왕들 가운데 가장 오래 통치한 왕이면서
동시에 가장 악한 왕이기도 하였다.
그리하여 그의 시대에 유다는 신앙적으로 거의 돌이키지 못할 길로 가고 말았다.
므낫세를 이어 요시야가 왕위에 올랐는데
그는 므낫세와는 달리 지극히 경건한 왕이었다.
그래서 그는 철저한 종교 개혁을 통하여
다시금 유다에 구원의 소망을 불어넣고자 하였다.
하지만 그의 그러한 노력도 유다를 신앙적으로 돌려놓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리하여 그가 애굽의 느고와의 전투에서 패하여 39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하고 나자
유다는 다시금 영적으로 곤두박질하기 시작하였다.
요시야가 제거한 모든 우상이 곳곳에 세워지게 되었고
우상 숭배가 다시금 재개되었으며 백성들의 영적 타락은 날이 갈수록 심각해져만 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나님을 향한 제사만큼은 중단하지 않았다.
그들은 유다 각지에서부터 예루살렘 성전에 나아와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다.
적어도 그들은 형식적인 면에서 즉 그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의 겉모습만으로 평가한다면 분명 열정적인 사람들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의 그러한 열심은 하나님과 무관한 종교적 열심일 뿐
결코 하나님께 대한 신앙적 열심은 아니었다.
그들이 만일 하나님께 대한 신앙적 열심이 있었다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측면에서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일에 있어서도 최선을 다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4-5절 말씀이 보여주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에는 전혀 순종하지 않았다.
이것은 그들의 열심이 하나님께 대한 신앙적 열심히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들의 하나님께 대한 제사는 우상 숭배자들이나 미신 숭배자들이
자기들의 신에게 보이는 종교적인 열심에 지나지 않는다.
유다 사람들은 신앙적인 사람이 아니라 종교적인 사람이었다.
신앙적인 사람과 종교적인 사람이라는 말은
언뜻 보면 같은 말인 듯 하지만 사실을 전혀 다른 말이다.
하나님과 무관한 사람,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불신자들도
다 종교적인 사람들이 될 수 있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하나님과 상관없는 자들이 신앙인들보다 더 종교적일 수도 있다.
그 예로 불교에서 세 걸음 걷고 한 번 절하는 삼보일배(三步-拜),
아침 저녁으로 올리는 오분향례(五分香禮),
몸을 불태워 부처에게 자신을 공양한다는 소신공양(燒身供養) 등을 들 수 있다.
이외에도 이방 종교를 가진 사람들 가운데서 참 하나님을 섬기는
우리들보다 더 종교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그들의 종교적 행위는 보는 이들의 감탄을 자아낼 정도이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하나님과 아무 상관없는 것이며 영적으로 아무런 유익을 없다.
그렇다면 진정 유익이 되는 신앙적인 삶은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고
하나님을 진심으로 경외하고 그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러한 사람을 기뻐하시고
그러한 사람들과 더불어 당신의 뜻을 이루어 가신다.
그리고 그러한 삶을 사는 이들에게 구원의 은혜와 축복을 선사해 주신다.
우리는 종교적인 사람이 아닌 신앙적인 사람이 되어야 한다.
종교 행위에 열심내기보다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지키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그것이 어떠한 종교 행위보다 위대하며 고귀하며 축복된 것이다.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邪神)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삼상15:22-23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