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필재집(佔畢齋集) 김종직(金宗直)생년1431년(세종 13)몰년1492년(성종 23)자계온(季昷), 효관(孝盥)호점필재(佔畢齋)본관선산(善山)시호문충(文忠)
佔畢齋集卷之十八 / 詩 / 鄭正在芸閣西廳。讀劉賓客金陵懷古詩。使金正字 延壽 問余以鐵鎖沈江之江是何江也。書二十字以答。
江出岷山下。其源才濫觴。石頭城底海。萬斛載龍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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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계집(㵢谿集) 유호인(兪好仁)생년1445년(세종 27)몰년1494년(성종 25)자극기(克己)호뇌계(㵢溪)본관고령(高靈)특기사항김종직(金宗直)의 문인
㵢谿集卷之四 / 七言古風 / 秣陵懷古
鍾山蒼蒼雲嵽嵲。石城周遭沿江矗。龍盤虎踞壯方隅。王氣肯爲嘉政厭。關間鼎足霸圖窮。五馬南渡隨煙滅。天分地裂三百年。靑山一片開紫極。黃屋左纛甘宴安。江南擬作囊中物。不將仁義重扶持。區區可笑眞隍鹿。乾坤付與壑藏舟。奸雄夜半皆有力。一合金甌無定主。人失未幾人又得。客來怊悵立西風。蒼茫幾閱昆明劫。六朝興廢盡夢中。人生到此槐安國。千燒萬戰 黃媼死。落日寒原但喬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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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릉(秣陵)은 현재 중국의 남경(南京)으로, 고대에는 금릉(金陵)이라고 불렀다. 전국 시대 초 위왕(楚威王)이 맨 처음 금릉읍(金陵邑)을 설치했는데, 세상에 전하는 말에 의하면, 그 땅에 왕기(王氣)가 있으므로 금(金)을 묻어서 그곳을 진압했기 때문에 금릉이라 이름한 것이라고 한다. 여섯 왕조의 수도가 되었다. 당(唐)나라 당언겸(唐彦謙)의 〈금릉회고(金陵懷古)〉에도 “육조의 궁전에 남긴 옛 자취[宮殿六朝遺古跡]”라는 말이 있다. 진 시황(秦始皇)은 금릉에 왕기가 있다는 말을 싫어하여 지명을 말릉으로 바꾸고 북산을 파헤쳐 그 지세를 끊었다고 한다. 《五洲衍文長箋散稿 厭勝辨證說》 금릉의 성쇠는 많은 시인묵객으로 하여금 감회에 젖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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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헌집(睡軒集) 권오복(權五福)생년1467년(세조 13)몰년1498년(연산군 4)자향지(嚮之)호수헌(睡軒)본관예천(醴泉)특기사항김종직(金宗直)의 문인. 김일손(金馹孫)ㆍ강혼(姜渾) 등과 교유
睡軒集卷之一 / [詩] / 秣陵懷古 見大東詩林
龍虎雄蟠建業路。風景蒼茫歷陽樹。名都眞箇帝王州。訪古傷心不忍住。千年王氣今何之。故宮禾黍秋離離。宮前無數來遊鹿。草中半出糢糊碑。近代繁華掃地盡。何況遠問埋金時。仲謀意氣何矯矯。目中奸孼徒雲擾。勢成鼎足業雖分。地跨江南國非小。孱孫不道紫氣歇。靑蓋飜飛洛陽曉。南渡中原如潰瓜。首鼠君臣遯江表。六代交爭一局棋。萬古英雄如過鳥。僭竊相尋險足恃。紛紛割據盡豎子。安得萬斤鐵如意。搥碎石頭平如砥。鍾山酹汝一杯酒。等爲亡國陳更醜。龍沈眢井何顚倒。霜催玉樹花如掃。算來芳臭俱草草。天飜地覆江山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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㵢谿集卷之六 / 七言律詩 / 無題
繡帳流蘇春畫長。蓬山情性轉微茫。豫敎稚髻司花樹。急瀉銀壺浸國香。暫駕雲輧魂蕩漾。更移蓮步佩丁當。一團芳抱閑愁處。靑鳥雙飛有底忙。
春深金屋鏡奩封。十二闌干桂影籠。雲鬢纔收偏窈窕。海棠無力政纖穠。巧將心事情如許。閑伴梅魂默自通。八字遙山嬌半皺。隔簾花片恣東風。
閶闔西風曬夕暉。明光宮瓦露初晞。蓮花滴漏傳鍾遠。鷄舌舍香奏事稀。虎豹自閑靑瑣闥。乾坤淨繞紫宸輝。侍臣媿乏絲綸手。叨奉明王補衮衣。
迎梅小雨壓輕塵。蝶恨蜂愁政暮春。黃鳥飛時花似錦。暖風吹處草如茵。茜裙襯綠行成隊。㔩葉飄紅穩稱身。纔罷祓除添水膩。競將蘭佩贈情人。
蒲柳殘齡能幾存。生逢壽域長兒孫。黃花時節眞吾分。白髮風流是聖恩。鳩杖競拚今日飮。梨顏剩借太平痕。滿頭花影從扶醉。城市歸來月正昏。
靑城渺渺幾千尋。老樹槎牙歲月深。滿壑白雲幽鳥絶。一方明月冷猿吟。懸知洞府馴玄鹿。從想瑤階長紫蔘。辜負聖恩宜早退。願隨喬偓護餘陰。
花月精神浪自媒。由來造物戲多材。窮年措大吟初倦。何物妖娃意暗催。閑嚲舞衫雙窈窕。巧將歌扇重徘徊。曉天雲散無蹤跡。唯見嘈嘈臥落梅。
帝子從遊玉輦春。眞拚一死暮湘濱。貞懷脈脈通黃媼。怨血斑斑染翠筠。淸瑟月中聞窈窕。碧峯江上蘸嶙峋。至今楚俗供蕉荔。花落黃陵愁殺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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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헌집(月軒集) 정수강(丁壽崗)생년1454년(단종 2)몰년1527년(중종 22)자불붕(不崩)호월헌(月軒)본관압해(押海)특기사항김준손(金俊孫)ㆍ이사준(李師俊)과 삼로회(三老會)를 결성하여 교유
月軒集卷之四 / 詩○七言排律 / 金陵懷古
金陵佳氣鬱蔥蔥。虎踞龍盤地勢雄。雉堞聯綿橫碧昊。鍾山突兀聳蒼穹。吳王此地開鴻業。晉帝當年底大功。金碧鮮明同泰寺。丹靑凝煥景陽宮。蘭陵日暮蓮花隕。眢井龍沈玉樹空。千載興亡同逝水。六朝文物盡埋蓬。瑤階芳草纖纖綠。閬苑幽花慘慘紅。破礎頹垣雲黯淡。荒墟遺址月朦朧。悲風似訴奸雄罪。禽韻如哀國祚終。往事茫茫無處問。江流嗚咽古今同。
其二
南國山川舊帝居。金陵紫氣問何如。孫吳此地曾開邑。馬晉當年亦駐輿。靑蓋已符歸洛後。淸談空誤渡江餘。凌歊累榭藏歌舞。帖地香蓮步婕妤。餓死臺城緣已淺。投身眢井計還疏。偸安自作巢堂燕。襲跡誰監覆轍車。六代興亡棋變局。千場富貴夢歸虛。公侯廢宅蟲書篆。將相荒碑魯缺魚。勝勢尙存今北固。名區空說古南徐。客懷何處尤難任。雁度楓橋日落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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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암집(立巖集) 민제인(閔齊仁)생년1493년(성종 24)몰년1549년(명종 4)자희중(希中)호입암(立巖)본관여흥(驪興)
立巖集卷之四 / 七言排律 / 金陵懷古
天開形勝擁金湯。氣毓蔥籠起帝王。鍾阜北來如虎踞。石城西峙似龍驤。江分吳會成天塹。野極荊門控地方。六代衣冠歸草草。千年文物想洋洋。三龍崛起皆偏保。大帝雄圖亦未遑。齊宋興亡那更數。梁陳成敗不須詳。方期霸業從茲久。誰信豪華在後忙。經略中原終自昧。偸安一域等歸亡。山河依舊風流盡。故國如今客恨長。尙憶鳳凰臺底處。遙吟擬和謫仙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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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서전집(河西全集) 김인후(金麟厚)생년1510년(중종 5)몰년1560년(명종 15)자후지(厚之)호하서(河西), 담재(湛齋)본관울산(蔚山)시호문정(文正)특기사항김안국(金安國)의 문인
河西先生全集卷之九 / 五言律詩 / 金陵懷古
鳳去臺千古。城空倚斷霞。晉宮空粉黛。吳殿失繁華。古道林狐窟。斜陽野草花。盡輸龍虎氣。昭代屬皇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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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계집 제1권 / 시(詩) / 역사를 노래하다〔詠史〕
장강의 천참을 바야흐로 믿고 있다가 / 長江天塹方自恃
북군이 날아 건너자 괴이한 일이라며 놀랐지 / 北軍飛渡怪底事
경양루 아래에 원정이 깊으니 / 景陽樓下眢井深
군주가 몸을 숨기고 은신처 얻었다 기뻐하였네 / 國主藏身喜得地
[주-D001] 천참(天塹) : 천험(天險)의 요충지(要衝地)라는 뜻으로, 중국의 장강(長江), 즉 양자강을 가리키는 말이다. 남조(南朝) 진(陳)나라의 공범(孔範)이 “장강이라는 천연의 요새가 옛날부터 남과 북을 가로막고 있으니, 오랑캐 군사가 어떻게 날아 건너올 수 있겠는가.〔長江天塹, 古來限隔, 虜軍豈能飛渡?〕”라고 말한 고사가 전한다. 《南史 卷77 恩倖列傳 孔範》[주-D002] 북군(北軍)이 …… 놀랐지 : 남북조(南北朝) 시대에, 북위(北魏, 386~534)ㆍ동위(東魏, 534~550)와 서위(西魏, 535~557)ㆍ북제(北齊, 550~577)ㆍ북주(北周, 557~581) 등의 북조와 송(宋, 420~479)ㆍ제(齊, 479~502)ㆍ양(梁, 502~557)ㆍ진(陳, 557~589) 등의 남조는 양자강이라는 천험의 요새를 사이에 두고 서로 대치하였는데, 남조에서는 이 강을 믿고 방비를 소홀히 했다가 늘 북조의 침입을 받으면 “북군이 날아서 강을 건너왔다.〔北軍飛渡.〕”라고 하며 놀랐다고 한다. 수(隋)나라가 북주를 이어 건국하고 남조의 마지막 왕조인 진(陳)나라를 멸망시켜 남북조 시대는 끝이 났다. 《群書考索 别集 卷23 邊防門 江》 《御定子史精華 卷11 地部六 四瀆 北軍飛渡》[주-D003] 경양루(景陽樓) : 시의 내용으로 보면 진(陳)나라의 ‘경양궁(景陽宫)’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진나라 후주(後主)가 장 귀비(張貴妃), 공 귀빈(孔貴嬪) 등 자신이 총애하는 미희들과 향락을 즐기다가 수(隋)나라의 침공을 받았을 때 경양궁의 우물에 몸을 숨겼다는 고사가 전한다. 경양루는 남제(南齊)의 무제(武帝)가 종을 만들어 걸어 놓았던 누각을 말한다. 무제의 거처가 궁궐 깊은 곳에 있어서 궁루(宮漏) 소리를 듣지 못했기 때문에 이 누각에 종을 걸어 두고 시간에 맞추어 치게 했는데, 이 종을 치면 궁녀(宮女)들이 일찍 잠에서 깨어 단장을 하곤 했다는 고사가 전한다. 《南史 卷10 陳本紀下》 《南齊書 卷20 皇后列傳》[주-D004] 원정(眢井) : 물이 말라붙은 폐정(廢井)을 의미한다. 원래는 춘추 시대 소(蕭)나라 선무사(還無社)가 몸을 숨겼다가 초(楚)나라 신숙전(申叔展)의 도움으로 위기를 넘겼던 우물을 말한다. 《春秋左氏傳 宣公12年》 여기서는 남조(南朝) 진(陳)나라의 후주(後主)가 수(隋)나라의 침공을 피해 몸을 숨겼던 경양궁(景陽宫)의 우물을 가리킨다. 《六朝事迹編類 巻上》 《南史 卷10 陳本紀下》[주-D005] 군주가 …… 기뻐하였네 : 수(隋)나라의 군사가 쳐들어왔을 때 진나라 후주(後主)는 “창칼 아래 지금은 감당할 수가 없으니, 나에게 묘책이 있다.〔鋒刃之下, 未可及當, 吾自有計.〕”라고 하면서 장 귀비(張貴妃)ㆍ공 귀빈(孔貴嬪)과 함께 우물에 몸을 숨겼다가, 수나라 군사에게 발각되어 사로잡힌 사실이 있다. 유우석(劉禹錫)의 〈삼각사(三閣詞)〉에 보이는 “세 사람이 완정에서 나왔네.〔三人出眢井.〕”나 이백(李白)의 〈금릉가(金陵歌)〉에 보이는 “천자가 경양궁 우물에 빠졌으니, 그 누가 〈옥수후정화〉를 부르랴.〔天子龍沈景陽井, 誰歌玉樹後庭花?〕”라는 구절은 바로 이 일을 두고 읊은 것이다. 《南史 卷10 陳本紀下》 《全唐詩 卷166》 〈옥수후정화(玉樹後庭花)〉는 후주가 총애하던 장 귀비와 공 귀빈의 미색을 찬미하는 내용의 노래라고 한다.
ⓒ 한국고전번역원 | 전백찬 (역) |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