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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병관
통영시 문화동에 있는 세병관(洗兵館)은 제6대 통제사인 이경준(李慶濬)이 통제영을 두룡포(현 통영시)로 옮겨온 이듬해인 1605년(선조 38년) 7월에 준공한 통제영의 객사(客舍)를 말한다. 정면 9칸, 측면 5칸의 단층 팔작지붕으로 된 웅장한 건물로, 모든 칸에는 창호나 벽체를 만들지 않고 통칸(通間)으로 개방했다. 우물마루로 된 평면바닥의 중앙 일부를 한 단 올려놓았는데 여기에 전패를 모셨던 것으로 보인다.
‘세병(洗兵)’은 ‘은하수를 끌어와 병기를 씻는다’는 뜻으로 두보의 시에서 따왔다. 원래 보물이었다가 2002년 10월 국보(제305호)로 지정됐다.
입장료 어른 220원, 청소년 110원, 어린이 50원. 전화 055-640-5109.
■ 통영 충렬사
명정동에 자리한 충렬사(忠烈祠·사적 제236호)는 충무공 이순신의 위패를 봉안한 사당이다. 임진왜란이 끝난 7년 후인 1606년(선조 39년) 충무공의 충절과 위훈을 추모하기 위하여 통제사 이운룡(李雲龍)이 왕명으로 건립했고, 1663년(현종 4년)에 사액됐다. 현재 충무공의 위패를 모신 사당을 비롯해 동서제, 경충제, 숭무당, 비각, 전시관, 강한루 등 22동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매년 음력 2월과 8월 중정일에 춘추행사와 탄신일인 4월28일 탄신기념제, 순국의 기신제(음력 11월19일), 그리고 한산대첩 기념행사의 고유제를 봉행하고 있다.
충렬사 경내 전시관에 보관되어 있는 충렬사명조팔사품(忠烈祠明朝八賜品·보물 제440호)은 명나라 신종(神宗)이 이충무공의 전공을 높이 기려 보낸 군의장물(軍儀仗物)이다. 팔사품은 도독인(都督印), 영패(令牌), 귀도(鬼刀), 참도(斬刀), 독전기(督戰旗), 홍소령기(紅小令旗), 남소령기(藍小令旗), 곡나팔(曲喇叭) 이렇게 총 8종 15점으로 되어 있다. 그동안 통제영에 보관하다가 1895년(고종 32년) 통제영 기구가 개편된 이듬해인 1896년 충렬사로 옮겨왔다.
입장료 어른 1,000원, 청소년 500원, 어린이 300원. 전화 055-645-3229.
■ 해저터널
통영반도와 미륵도 사이의 해협인 ‘판데목’을 지하로 왕래하는 해저 터널. 옛날에는 해협이 사취로 메워졌고, 이후 작은 배가 다닐 수 있도록 다시 파 그 위로는 돌다리를 놓아 인마(人馬)가 통행했다. 일제강점기인 1927년 5월에 공사를 시작해 5년 6개월만인 1932년 12월 해협을 넓히고 그 밑을 파내어 길이 461m, 너비 5m, 높이 3.5m의 콘크리트 터널을 만들었다. 이 터널은 차량 통행이 가능했으나 충무교가 완공된 후에는 도보로만 통행할 수 있다.
일본인들은 운하를 파고 ‘다이코호리’라고 명명했는데, 이는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관명이다. 일본인들이 많은 경비와 시간과 인력을 동원해서 해저터널을 건설한 이유 중 하나는 임진왜란 때 자기 선조들이 이곳에서 많이 죽었기 때문에 조선인들이 그 원혼이 떠도는 곳을 밟고 지나다니지 말고 밑으로 다니라는 의도였다 한다. 또한 조선인들은 일본의 원혼들을 밟고 다니기 위해 나중에 충무교를 건설했다고 한다. 입장료는 없다.
통영반도의 남단과 미륵도 사이의 해저터널 위로는 현재 길이 1,420m, 너비 55m, 수심 3m의 통영운하가 뚫려 있다. 이 통영운하는 여수~부산 간 남해 뱃길의 요지를 이룬다.
■ 한산도 제승당
임진왜란이 일어난 이듬해인 1593년 8월에 선조는 충무공에게 삼도수군통제사를 제수하고 경상·전라·충청 3도의 수군을 통괄 지휘케 하는데, 이 무렵 충무공은 한산도에 진영을 옮기고 장기전에 대비한다.
이후 1597년 2월26일 파직되어 서울로 압송되기까지 3년 7개월 동안 한산도 두억개에 터를 고르고 운주당(運籌堂)을 비롯한 각종 창고 등의 부대시설을 건립했다. 어느 정도의 규모로 어떻게 건립됐는지는 문헌상 명확한 기록이 없어 확인할 수는 없다.
정유재란으로 한산진영이 불타버리고 폐허된 지 142년만인 1739년(영조 15년) 조경 제107대 통제사가 이곳에 유허비를 세우고 운주당 옛터에 집을 짓고 제승당(制勝堂)이라는 친필 현판을 걸었다.
그 후 1760년(영조 30년) 이충무공의 후손 이태상(李泰祥) 제121대 통제사가 낡은 건물을 중수하면서 유허비를 손질하고 비각을 뒤로 옮겨 세웠다. 그로부터 117년 뒤인 고종 14년(1877년) 공의 10세손 이규석(李奎奭) 제198대 통제사가 제승당유허비를 새로 다듬어 세우고 옛비는 그 옆에 묻어 두었는데, 최근에 다시 발굴하여 2기를 함께 보존하고 있다.
1896년 통제영이 혁파되고 뒤이어 주권을 일제에 빼앗기게 되자 지방 유림에서 제승당을 관리했으나 재원조달이 어려워 퇴락했다. 1932년 한산도 주민을 비롯한 통영군민들이 모금운동과 계를 통해 이듬해 한산도 제승당 준공식과 충무공 영정 봉안식을 거행했다. 그 후 1976년 국가 예산을 투입해 대대적인 정화사업을 벌여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현재 유적지에는 충무사, 제승당, 수루, 한산정 등 당우를 비롯해 유허비 2기, 한글 유허비 1기, 통제사 송덕비 7기, 비각 5동 등이 있다. 입장료 어른 1,000원, 학생 500원, 어린이 200원. 제승당 관리사무소 전화 055-642-8377, 9.
■ 착량묘
해저터널 근처에 있는 착량묘(鑿梁廟·경상남도기념물 제13호)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을 모신 사당이다. ‘착량(鑿梁)’이란 임진왜란 때 당항포 해전에서 참패한 왜적들이 쫓겨 달아나다가 미륵도와 통영반도 사이에 가늘게 이어진 해협을 파서 도망친 데서 붙여진 이름으로, 통영 사투리로는 ‘폰데(판다, 판도)’라고 한다.
임진왜란이 끝나자 지방민들이 충무공을 기리기 위해 판도가 보이는 언덕 위에 초가를 짓고 위패와 영정을 모시고 매년 음력 11월19일 기제와 향사를 모셔온 것이 사당의 시초가 되었다. 1877년(고종 14년) 충무공의 10세손인 통제사 이규석(李奎奭)이 기와집으로 고쳐 짓고 착량묘라 했고, 여기서 지방민 자제들을 교육했다. 경내엔 사당, 서재, 동재, 고직사 등 4개 동과 내삼문·외삼문이 있다.
■ 미륵산 용화사
미륵도 주봉인 미륵산(461m) 기슭의 용화사(龍華寺·경남문화재자료 제10호)는 신라 선덕여왕 때 은점(恩霑)이 정수사(淨水寺)로 창건한 절집이다. 고려시대인 1260년(원종 1년)에 산사태로 허물어지자 3년 뒤 자윤(自允)과 성화(性和)가 미륵산 제3봉 아래로 자리를 옮겨 짓고 천택사(天澤寺)라 했다. 조선시대인 1628년(인조 6년)에 불 탄 것을 1752년(영조 28년)에 벽담(碧潭)이 다시 짓고 용화사라 했다.
경내에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기와집인 보광전(경남유형문화재 제249호)을 비롯해 미륵불좌상을 봉안한 용화전, 명부전, 적묵당, 해월루 등 목조건물과 육모정 형태의 종루가 있고, 그 위쪽에 효봉대종사 5층사리탑과 불사리사사자법륜탑이 있다.
전화 055-645-3060.
■ 달아공원
미륵도 남단인 산양읍 미남리에 자리한 달아공원은 다도해상 국립공원 낙조 감상지로 유명하다. 미륵도 해안일주도로를 드라이브하다 공원 입구 주차장에서 완만한 오솔길을 5분쯤 오르면 관해정(觀海亭)이 나온다. 여기서 바다쪽으로 조금만 더 나가면 대장재도, 소장재도, 저도, 송도, 학림도, 곤리도, 연대도, 만지도, 오곡도, 추도, 그리고 멀리 욕지도까지 수십 개의 섬이 한눈에 들어온다. 한쪽에는 대형 지도가 설치되어 있어 섬 이름을 확인해가며 살펴보는 재미가 있다.
‘달아’라는 이름은 지형이 코끼리의 아래위 어금니와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전망 좋은 이 곳의 특성상 지금은 달 보기에 좋은 곳이라는 쉬운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주차·입장료 무료.
■ 통영수산과학관
미륵도 남단 달아공원 인근에 자리한 통영수산과학관은 수산업에서 통영의 위상을 잘 짚어볼 수 있는 곳이다. 역동적인 건물구조는 자연경관이 수려한 한려해상 국립공원과 잘 어우러진다는 평이다. 건물 내부는 장애인을 고려해 건물 전체에 계단이 없으며, 2층으로는 장애인전용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도록 했다. 실내는 자연채광이 되도록 세밀하게 건축됐다.
2층으로 된 전시실은 총 6개의 테마로 나누어져 있다. 휴게소 역할을 하는 1층 로비는 바다와 관련된 유물전과 기획전 등이 열린다. 1층엔 지구와 바다의 탄생을 시작으로 항해를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시뮬레이션 영상체험기기가 있고, 인류의 수산자원 이용 등을 주제별로 전시하고 있다.
2층엔 60명이 동시에 관람할 수 있는 영상실을 비롯해 다양한 해산물을 직접 만져볼 수 있는 터치풀, 조력·파력 발생 체험코너 등도 마련되어 있다. 또 해양도시 통영의 역사와 현주소를 살필 수 있는 다양한 코너가 있어 한번 둘러보고 나면 통영은 물론 인간과 바다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있다.
입장료 어른 1,500원, 청소년 1,000원. 관람시간은 동절기(11~2월) 09:00~17:00. 주차료(50대 수용)는 무료. 전화 055-646-5704.
■ 통제영 12공방
공방(工房)은 지방관청의 6방 중 하나로 제반 공전(工典)에 관한 사무를 맡아보던 관아를 말한다. 주로 진공품과 군기를 만들던 통제영 12공방은 다음과 같다.
통영갓으로 일컬어지는 흑립(黑笠)을 비롯한 벙거지 패랭이 등을 만든 입자방(笠子房), 말총을 엮어 망건·탕건·유건 등을 만든 총방(總房), 버들가지나 대오리를 엮어 고리를 만든 상자방(箱子房), 지도와 수조도(水操圖) 및 의장용 장식화를 그린 화원방(畵員房), 각종 나무로 가구 및 문방구 등을 만든 소목방(小木房), 쇠를 녹여 각종 철물을 주조한 야장방(冶匠房), 주석과 백동 등으로 각종 장석을 만든 주석방(周錫房), 금은 제품을 만든 은방(銀房), 각종 공예품에 칠을 한 칠방(漆房), 활집인 동개를 만든 동개방(同箇房).
신발의 화자방(靴子房), 말안장의 안자방(鞍子房), 자개를 붙여 나전제품을 만든 패부방(貝付房), 가죽제품을 만든 주피방(周皮房), 둥근 부채를 만든 미선방(尾扇房).
임금이 하사하는 단오절선(端午節扇)을 주로 만들어 바치는 선자방(扇子房)은 독립된 공방에 속했다.
■ 통영향토역사관
태평동 세병관 맞은편의 향토역사관은 통영의 역사를 세세히 살필 수 있는 곳. 연건평 169평인 전시관에는 시대별로 선조들이 사용하던 생활용품과 각종 문헌, 사진 등 900여 점을 전시, 통영의 역사를 한눈에 바라보고 이해할 수 있다.
이중 특성이 가장 잘 살아있는 임진왜란 전시실, 통제영 전시실, 통제영 12공방 전시실이 통영향토역사관의 핵심을 이룬다. 영상 스크린을 통하여 나전칠기, 소목장, 통영갓, 문갑, 부채, 연, 누비 등 공예품과 오광대, 승전무 등 유형문화재의 제작 및 공연 과정을 볼 수 있어 생동감을 더해 주기도 한다.
전화 055-640-5107~8 홈페이지 http://www.ty-museum.co.kr
■ 통영의 무형문화재
통영의 중요무형문화재는 12공방의 전통을 이어 내려오는 게 많다. 커튼과 비슷하지만 운치와 기능 면에서 우수한 대발인 염장(簾匠·중요무형문화재 제114호) 소유자 조대용 선생, 주석(朱錫)·방짜·백동(白銅) 등의 합금금속재로서 주로 목공예품에 부착하는 경첩, 돌쩌귀, 들쇠, 고리, 자물쇠 등의 장석(裝錫)을 재래식 기법으로 제작하는 기능인인 두석장(豆錫匠·중요무형문화재 제64호) 소유자 김극천 선생이 있다.
집안에서 쓰이는 장·농·궤·책상·탁자·문갑 등 각종 가구를 제작하는 소목은 나무가 갖고 있는 문양과 색깔을 오묘하게 조화시키고 정교하게 대칭적으로 짜맞추는 목가구 공예의 정수라 할 수 있는 소목장(小木匠·중요무형문화재 제55호) 소유자는 김금철 선생.
한편, 갓은 머리를 감싸는 ‘총모자’와 차양이 되는 ‘양태’로 구성되는데, 양태방에선 대를 쪼개어 머리카락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 죽사(竹絲)로 다듬어 네 가닥씩으로 양태를 엮고, 총모자방에선 쇠꼬리털과 말꼬리털로 앵태를 하고 옻칠을 나눠서 한다. 통영은 양태갓일(笠子匠·중요무형문화재 제4호)의 정춘모 선생이 있다. 이외에도 자개기술을 가진 나전장(螺鈿匠) 송방웅 선생이 있다.
■ 통영 나전장
우리 조상들은 일찍이 기물의 표면에 옻칠을 하고 조개껍질을 다듬어 붙이면 옻의 검은 색과 조개의 밝은 색이 조화를 이뤄 우아한 빛을 발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 때문에 말안장, 장롱, 궤, 탁자, 상, 연적 등으로 제작되어온 우리나라 나전칠기(螺鈿漆器)의 역사는 멀리 삼국시대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청자로 대표되는 고려시대에 이르러서는 귀족적인 조형기법의 등장으로 그 화려하고 섬세한 틀이 잡혔고, 조선시대에는 거칠고 소박한 민중적 조형 기법으로 민속공예로 정착됐다.
나전칠기의 대가인 일사(一砂) 김봉룡(1903-1994·제1대 나전칠기장 기능보유자) 선생 이후 1995년 송방웅 선생이 나전장(중요무형문화재 제10호)으로 지정되어 전통의 맥을 잇고 있다. 원주 단계동에 공방을 두고 있는 이형만 장인도 이곳 통영 출신이니, 우리나라에 2명뿐인 나전칠기장 기능보유자가 모두 통영 출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