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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신33:26-29)
우리가 참 많이 사용하는 말 중에 하나가 바로 “행복”이라는 말입니다. 우리들은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그렇지 못합니다. 저는 너무나도 불행합니다. 제 인생은 너무도 힘들고 피곤하기만 합니다. 라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분명히 계실 것입니다. 또 실제로 다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괴롭고 어려운 형편 속에서 안타까워하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 그 자체가 바로 행복이라는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이 말이 어쩌면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한 말일지도 모릅니다. 항상 들어왔던 말이기 때문에 별로 감동도 없고, 느낌도 없는 말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말은 진리입니다. 이 말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행복은 가까이에 있어요.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가 행복한 자로 살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실제로 행복한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행복의 조건을 관계에 두지 않고 성취나 소유의 넉넉함에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행복은 소유의 넉넉함에 있지 않습니다. 철학자 플라톤이 행복을 위한 조건 5가지 업급하였는데 1)먹고 살기에 조금 부족한 듯한 재산 2)모든 사람이 칭찬하기에 약간 부족한 외모 3)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더 절반 밖에 인정 받지 못하는 명예 4) 남과 겨루었을 때 한사람정도는 이기고 두 사람에게는 질정도의 체력 5) 연설을 했을 때 듣는 사람 절반 정도만 박수를 보내는 말솜씨라고 했는데 이 역시 종합해보면 행복은 소유의 넉넉함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경을 깊이 들여다보면 진정한 행복의 조건은 소유나 성취보다는 좋은 관계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과 좋은 관계가 되면 행복해집니다. 그 말씀이 오늘 본문 말씀인 신명기 33장의 하나님의 사람 모세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씀중에 나옵니다. 4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그 험난한 광야를 떠돌아다니다가 이제 모세는 요단 강 바로 앞 모압 평지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어 옵니다. 가나안 땅을 눈 앞에 두고 마지막으로 모세는 자신의 모든 힘을 다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하나님의 백성으로써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 중에서 29절 말씀을 보면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서 이렇게 선언합니다. “이스라엘아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1. 본문에서는 이스라엘이 왜 행복한 자인지 그 이유를 말씀합니다.
'행복'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아쉬레'는 '충만한 행복', '완전한 행복'을 의미합니다. 나의 감정을 뛰어 넘는, 내가 처한 상황과 내가 처한 환경을 뛰어 넘는 완전하고 충만한 행복을 의미합니다. 사람은 그 공간이 채워지지 않으면 진정한 행복을 느낄 수 없습니다. 파스칼은 "모든 사람의 마음에는 하나님이 만드신 하나의 공간, 즉 공백이 있다. 이것은 어떠한 피조물로도 채울 수 없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만이 채워주실 수 있는 공백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인간 속에는 하나님이 만들어놓은 공백, 텅 빈 곳이 있는데 그 공간은 돈으로도 명예로도 권력으로도 그리고 쾌락으로도 채울 수 없는 공간입니다. 이것은 사람이 아무리 채워 넣으려고 해도 채울 수 없고, 세상 것으로 잠깐은 그 마음을 달랠 수 있겠지만, 긑내 채워지지 않는 마음의 빈 공간은 하나님만이 예수님을 통해서 채워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해서 다윗은 시23편에서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고 고백했습니다. 이 얼마나 행복한 고백입니까? 다윗은 시34:9,10에서“너희 성도들아 여호와를 경외하라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도다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했습니다.
그럼 오늘본문에서 우리가 하나님 때문에 행복한 이유를 구체적으로 보십시다.
1) 구원을 받은 백성이기 때문에 행복합니다(29절).
하나님이 말씀하신 행복의 기준은 구원입니다.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은 백성이기 때문에 행복하다고 하십니다. 구원은 죄와 죽음의 문제를 해결 받는 것입니다. 인간은 이 문제를 해결 받지 못하면 행복해 질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이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 시키셨습니다. 그래서 예수 때문에 나는 행복합니다. 본문에 언급된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430년간 애굽에서 지냈습니다. 처음에는 7년 흉년에서 애굽을 구원했던 요셉의 공로 때문에 애굽사람들에게 대우를 받으며 살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애굽의 왕들이 요셉의 공로를 잊어버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자신들에게 해가 되는 민족으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자신들에게 해가 되는 민족으로 생각한 애굽의 왕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고역을 시키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남자를 낳으면 아기를 죽이도록 명령을 내렸습니다. 고통이 심해지자 하나님을 잊고 살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모세를 보내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왕 바로의 괴롭힘에서 구원해 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을 괴롭혔던 바로 왕은 마귀를 보여줍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능력으로는 바로 왕의 압제로부터 벗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이 아니었다면 그들은 계속해서 바로의 종으로서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어야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마귀의 종이 되어 마귀가 끄는 대로 끌려 다니며 영적 압제를 당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힘으로는 마귀의 세력에서 도저히 빠져나올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구원자가 필요함을 아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해주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영적 이스라엘인 우리들도 우리의 능력으로 구원을 얻을 수 없음을 아시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마귀의 일을 멸하시고 우리를 구원해 주신 것입니다. 요일 3:8에서는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구원은 그들의 공로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제시하신 구원의 방법을 받아드리므로 가능했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구원 역시 하님이 제시하신 구원의 방법을 받아드리므로 가능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셔서 그분이 인류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음을 당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를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을 수 있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엡 2:8에서는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의 노예 상태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통한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습니다(요3:16,17).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세상의 어느 누구보다도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2) 하나님께서 도우시기 때문에 행복합니다(26절, 29절).
26절에“여수룬이여 하나님 같은 이가 없도다 그가 너를 도우시려고 하늘을 타고 궁창에서 위엄을 나타내시는도다”
사람은 누구나 다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시련과 어려움에 처하기 마련입니다. 게다가 세상 사람들은 그러한 처지에 놓여 있는 자신을 도울 힘이 없기에 절망하여 낙심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우리를 돕는 자가 계십니다. 그분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시28:7). 그리고 그 분은 전능자이십니다. 따라서 그분은 우리가 직면한 어떠한 문제도 능히 해결하실 수가 있습니다(시46:1).
하나님께서 하늘을 타고 날으시는 분으로 묘사한 것은 하나님이 모든 것 위에 보좌를 두시고 앉아 계시며 날으는 천사들을 통해 영광을 받으시는 분이시지만 그가 사랑하는 자녀들을 도우실 때에는 급하게 임하여서 역동적으로 도와주실 수 있는 분이란 사실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또 29절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오...” 방패는 적의 공격으로부터 군인들을 보호해 줍니다. 하나님이 방패이시라는 말은 하나님은 우리의 보호자이시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어떠한 하나님이십니까? 삼상2:6~8에“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음부에 내리게도 하시고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시며 빈핍한 자를 거름더미에서 드사 귀족들과 함께 앉게 하시며 영광의 위를 차지하게 하시는도다.”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자이실 뿐만 아니라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분이시라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께서 도우시는 사람이라면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도우시는 사람이라면 누가 그를 해하겠습니까? 하나님이 도우시는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합니다. 하나님이 도우시는 사람은 반드시 승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시편118:6~7“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게 두려움이 없나니 내게 어찌할꼬 여호와께서 내 편이 되사 나를 돕는자 중에 계시니 그러므로 나를 미워하는 자에게 보응하시는 것을 내가 보리로다.”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의 힘이시며 방패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놀라운 보호자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보호하심 속에서 살기 때문에 행복합니다. 그분은 우리의 방패이십니다. 우리의 보호자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행복할 수 있습니다.
3) 하나님께서 승리의 영광을 주시기 때문에 행복합니다(29절하)
본문에 29절“...네 영광의 칼이시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광의 칼이 되어주시기 때문에 우리는 행복자입니다. 인생의 승리가 약속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대적을 쫓으실 것입니다. 27절에 “그가 네 앞에서 대적을 쫓으시며 멸하라 하시도다” 승리자에게는 언제나 영광이 따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이렇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영광의 칼이 되어주시기 때문에 우리는 행복한 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영광스러운 검’입니다. 영광의 검은 성령의 검, 즉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마귀는 끊임없이 성도들을 미혹하고 좌절시킵니다. 마귀는 성도들의 마음속에 “너는 불행한 자다. 너는 행복하지 못해. 네 인생은 비참해. 네 인생은 불행해”라고 속삭입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마귀의 공격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때문에 승리합니다. 인생의 승리가 약속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는 행복한 자입니다. 29절 하반절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 이는 최종적인 승리의 확신입니다. 원수는 일시적으로 승리할 수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원수든, 눈에 보이지 않는 원수든 마찬가지입니다. 원수는 결국 우리 앞에 굴복하고 패배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질병이 우리를 쓰러뜨렸다고 축배를 들지 모르지만, 하나님께서는 질병을 치료하셔서 우리를 영적으로 더욱 성숙시키십니다. 실패가 우리를 넘어뜨렸다고 좋아할지라도 하나님은 실패를 통해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십니다. 마귀가 사람을 속여 승리했다고 잔치를 벌일지라도 하나님은 마귀가 거짓말쟁이임을 드러낼 것입니다. 사망이 우리를 죽여 육신을 관 속에 집어넣고 자축의 잔을 들지라도 그것이 결코 끝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죽은 육신을 다시 살려 영광스러운 부활의 몸을 입게 하시고 영원토록 살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결코 실패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승리를 보장받은 궁극적인 승리자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대적을 이기게 하시므로 승리자가 되게 하십니다. 빽이 없어도, 돈이 없어도 괜찮습니다.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필연적으로 우러를 대적하는 대적을 만나게 됩니다. 그것은 이 세상 공중 권세를 사단이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엘 2:2). 하지만 아무리 많은 대적이 우리를 에워싸고 공격한다 할지라도 우리가 하나님만 의지하면 승리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무한한 능력과 권세를 지니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친히 싸워 주시기 때문입니다(출14:13,14;신31:3,4).
<결론>
그리스도인이 행복한 이유는 분명히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때문에 행복합니다. 첫째, 세상에서 그들처럼 하나님의 놀라운 권능으로 구원을 얻은 백성이 다시 없기 때문입니다. 누구보다도 행복한 사람들입니다.둘째, 하나님이 그들의 방패와 칼이 되어 그들을 보호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누구보다도 행복한 사람들입니다.셋째, 하나님께서 그들로 대적에게서 승리를 거두게 하실 것이기 때문 입니다. 누구보다도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진정한 행복은 세상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행복은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는 것으로서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빼앗길 수 없는 행복을 소유한 사람들입니다. 이 행복을 잘 알고 누려야 합니다. “너희는 행복한 자로다!” 하나님께서 선포하신 이 진리를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매일의 삶 속에서 행복의 향기를 발하는 성도들이 됩시다.
우리가 참 많이 사용하는 말 중에 하나가 바로 “행복”이라는 말입니다. 우리들은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그렇지 못합니다. 저는 너무나도 불행합니다. 제 인생은 너무도 힘들고 피곤하기만 합니다. 라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분명히 계실 것입니다. 또 실제로 다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괴롭고 어려운 형편 속에서 안타까워하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 그 자체가 바로 행복이라는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이 말이 어쩌면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한 말일지도 모릅니다. 항상 들어왔던 말이기 때문에 별로 감동도 없고, 느낌도 없는 말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말은 진리입니다. 이 말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행복은 가까이에 있어요.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가 행복한 자로 살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실제로 행복한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행복의 조건을 관계에 두지 않고 성취나 소유의 넉넉함에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행복은 소유의 넉넉함에 있지 않습니다. 철학자 플라톤이 행복을 위한 조건 5가지 업급하였는데 1)먹고 살기에 조금 부족한 듯한 재산 2)모든 사람이 칭찬하기에 약간 부족한 외모 3)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더 절반 밖에 인정 받지 못하는 명예 4) 남과 겨루었을 때 한사람정도는 이기고 두 사람에게는 질정도의 체력 5) 연설을 했을 때 듣는 사람 절반 정도만 박수를 보내는 말솜씨라고 했는데 이 역시 종합해보면 행복은 소유의 넉넉함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경을 깊이 들여다보면 진정한 행복의 조건은 소유나 성취보다는 좋은 관계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과 좋은 관계가 되면 행복해집니다. 그 말씀이 오늘 본문 말씀인 신명기 33장의 하나님의 사람 모세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씀중에 나옵니다. 4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그 험난한 광야를 떠돌아다니다가 이제 모세는 요단 강 바로 앞 모압 평지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어 옵니다. 가나안 땅을 눈 앞에 두고 마지막으로 모세는 자신의 모든 힘을 다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하나님의 백성으로써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 중에서 29절 말씀을 보면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서 이렇게 선언합니다. “이스라엘아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1. 본문에서는 이스라엘이 왜 행복한 자인지 그 이유를 말씀합니다.
'행복'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아쉬레'는 '충만한 행복', '완전한 행복'을 의미합니다. 나의 감정을 뛰어 넘는, 내가 처한 상황과 내가 처한 환경을 뛰어 넘는 완전하고 충만한 행복을 의미합니다. 사람은 그 공간이 채워지지 않으면 진정한 행복을 느낄 수 없습니다. 파스칼은 "모든 사람의 마음에는 하나님이 만드신 하나의 공간, 즉 공백이 있다. 이것은 어떠한 피조물로도 채울 수 없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만이 채워주실 수 있는 공백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인간 속에는 하나님이 만들어놓은 공백, 텅 빈 곳이 있는데 그 공간은 돈으로도 명예로도 권력으로도 그리고 쾌락으로도 채울 수 없는 공간입니다. 이것은 사람이 아무리 채워 넣으려고 해도 채울 수 없고, 세상 것으로 잠깐은 그 마음을 달랠 수 있겠지만, 긑내 채워지지 않는 마음의 빈 공간은 하나님만이 예수님을 통해서 채워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해서 다윗은 시23편에서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고 고백했습니다. 이 얼마나 행복한 고백입니까? 다윗은 시34:9,10에서“너희 성도들아 여호와를 경외하라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도다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했습니다.
그럼 오늘본문에서 우리가 하나님 때문에 행복한 이유를 구체적으로 보십시다.
1) 구원을 받은 백성이기 때문에 행복합니다(29절).
하나님이 말씀하신 행복의 기준은 구원입니다.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은 백성이기 때문에 행복하다고 하십니다. 구원은 죄와 죽음의 문제를 해결 받는 것입니다. 인간은 이 문제를 해결 받지 못하면 행복해 질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이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 시키셨습니다. 그래서 예수 때문에 나는 행복합니다. 본문에 언급된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430년간 애굽에서 지냈습니다. 처음에는 7년 흉년에서 애굽을 구원했던 요셉의 공로 때문에 애굽사람들에게 대우를 받으며 살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애굽의 왕들이 요셉의 공로를 잊어버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자신들에게 해가 되는 민족으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자신들에게 해가 되는 민족으로 생각한 애굽의 왕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고역을 시키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남자를 낳으면 아기를 죽이도록 명령을 내렸습니다. 고통이 심해지자 하나님을 잊고 살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모세를 보내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왕 바로의 괴롭힘에서 구원해 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을 괴롭혔던 바로 왕은 마귀를 보여줍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능력으로는 바로 왕의 압제로부터 벗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이 아니었다면 그들은 계속해서 바로의 종으로서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어야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마귀의 종이 되어 마귀가 끄는 대로 끌려 다니며 영적 압제를 당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힘으로는 마귀의 세력에서 도저히 빠져나올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구원자가 필요함을 아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해주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영적 이스라엘인 우리들도 우리의 능력으로 구원을 얻을 수 없음을 아시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마귀의 일을 멸하시고 우리를 구원해 주신 것입니다. 요일 3:8에서는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구원은 그들의 공로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제시하신 구원의 방법을 받아드리므로 가능했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구원 역시 하님이 제시하신 구원의 방법을 받아드리므로 가능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셔서 그분이 인류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음을 당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를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을 수 있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엡 2:8에서는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의 노예 상태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통한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습니다(요3:16,17).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세상의 어느 누구보다도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2) 하나님께서 도우시기 때문에 행복합니다(26절, 29절).
26절에“여수룬이여 하나님 같은 이가 없도다 그가 너를 도우시려고 하늘을 타고 궁창에서 위엄을 나타내시는도다”
사람은 누구나 다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시련과 어려움에 처하기 마련입니다. 게다가 세상 사람들은 그러한 처지에 놓여 있는 자신을 도울 힘이 없기에 절망하여 낙심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우리를 돕는 자가 계십니다. 그분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시28:7). 그리고 그 분은 전능자이십니다. 따라서 그분은 우리가 직면한 어떠한 문제도 능히 해결하실 수가 있습니다(시46:1).
하나님께서 하늘을 타고 날으시는 분으로 묘사한 것은 하나님이 모든 것 위에 보좌를 두시고 앉아 계시며 날으는 천사들을 통해 영광을 받으시는 분이시지만 그가 사랑하는 자녀들을 도우실 때에는 급하게 임하여서 역동적으로 도와주실 수 있는 분이란 사실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또 29절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오...” 방패는 적의 공격으로부터 군인들을 보호해 줍니다. 하나님이 방패이시라는 말은 하나님은 우리의 보호자이시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어떠한 하나님이십니까? 삼상2:6~8에“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음부에 내리게도 하시고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시며 빈핍한 자를 거름더미에서 드사 귀족들과 함께 앉게 하시며 영광의 위를 차지하게 하시는도다.”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자이실 뿐만 아니라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분이시라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께서 도우시는 사람이라면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도우시는 사람이라면 누가 그를 해하겠습니까? 하나님이 도우시는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합니다. 하나님이 도우시는 사람은 반드시 승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시편118:6~7“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게 두려움이 없나니 내게 어찌할꼬 여호와께서 내 편이 되사 나를 돕는자 중에 계시니 그러므로 나를 미워하는 자에게 보응하시는 것을 내가 보리로다.”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의 힘이시며 방패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놀라운 보호자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보호하심 속에서 살기 때문에 행복합니다. 그분은 우리의 방패이십니다. 우리의 보호자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행복할 수 있습니다.
3) 하나님께서 승리의 영광을 주시기 때문에 행복합니다(29절하)
본문에 29절“...네 영광의 칼이시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광의 칼이 되어주시기 때문에 우리는 행복자입니다. 인생의 승리가 약속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대적을 쫓으실 것입니다. 27절에 “그가 네 앞에서 대적을 쫓으시며 멸하라 하시도다” 승리자에게는 언제나 영광이 따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이렇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영광의 칼이 되어주시기 때문에 우리는 행복한 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영광스러운 검’입니다. 영광의 검은 성령의 검, 즉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마귀는 끊임없이 성도들을 미혹하고 좌절시킵니다. 마귀는 성도들의 마음속에 “너는 불행한 자다. 너는 행복하지 못해. 네 인생은 비참해. 네 인생은 불행해”라고 속삭입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마귀의 공격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때문에 승리합니다. 인생의 승리가 약속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는 행복한 자입니다. 29절 하반절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 이는 최종적인 승리의 확신입니다. 원수는 일시적으로 승리할 수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원수든, 눈에 보이지 않는 원수든 마찬가지입니다. 원수는 결국 우리 앞에 굴복하고 패배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질병이 우리를 쓰러뜨렸다고 축배를 들지 모르지만, 하나님께서는 질병을 치료하셔서 우리를 영적으로 더욱 성숙시키십니다. 실패가 우리를 넘어뜨렸다고 좋아할지라도 하나님은 실패를 통해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십니다. 마귀가 사람을 속여 승리했다고 잔치를 벌일지라도 하나님은 마귀가 거짓말쟁이임을 드러낼 것입니다. 사망이 우리를 죽여 육신을 관 속에 집어넣고 자축의 잔을 들지라도 그것이 결코 끝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죽은 육신을 다시 살려 영광스러운 부활의 몸을 입게 하시고 영원토록 살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결코 실패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승리를 보장받은 궁극적인 승리자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대적을 이기게 하시므로 승리자가 되게 하십니다. 빽이 없어도, 돈이 없어도 괜찮습니다.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필연적으로 우러를 대적하는 대적을 만나게 됩니다. 그것은 이 세상 공중 권세를 사단이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엘 2:2). 하지만 아무리 많은 대적이 우리를 에워싸고 공격한다 할지라도 우리가 하나님만 의지하면 승리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무한한 능력과 권세를 지니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친히 싸워 주시기 때문입니다(출14:13,14;신31:3,4).
<결론>
그리스도인이 행복한 이유는 분명히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때문에 행복합니다. 첫째, 세상에서 그들처럼 하나님의 놀라운 권능으로 구원을 얻은 백성이 다시 없기 때문입니다. 누구보다도 행복한 사람들입니다.둘째, 하나님이 그들의 방패와 칼이 되어 그들을 보호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누구보다도 행복한 사람들입니다.셋째, 하나님께서 그들로 대적에게서 승리를 거두게 하실 것이기 때문 입니다. 누구보다도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진정한 행복은 세상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행복은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는 것으로서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빼앗길 수 없는 행복을 소유한 사람들입니다. 이 행복을 잘 알고 누려야 합니다. “너희는 행복한 자로다!” 하나님께서 선포하신 이 진리를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매일의 삶 속에서 행복의 향기를 발하는 성도들이 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