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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목적지 의정부 성당,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99호>
* 걸어서 당신께(2)
* 지금까지 도보 여행 총 거리 458Km<순천 → 서울 명동성당 → 수유역까지>
* 2011.5.12(목) 07:00~11:00 <4:00>
* 수유역 → 창동 성당 → 도봉산 입구 → 도봉산 성당 → 망월사역 → 회룡역→의정부역 →의정부 성당(약 16Km, 3시간 30분 소요, 누적거리 474Km)
<창동 성당의 성모 마리아>
지난 번 걷고 난 후 이어 걷는 터울이 너무 길었다. 근 반년 만에 다시 걷게 된 것이다. 그동안 근무하고 있는 직장이 바뀌고 사무실 일이 바빠 마음만 있었지 좀처럼 길을 나설 수가 없었다. 오늘 걷는 이 길도 모처럼 서울 출장 길에 서너 시간 짬을 내어 걷게 된 것이다. 아침 7시 수유역에서 걷기 시작한다. 의정부 쪽을 향해 걷는다. 준비도 없이 그냥 이정표만 보고 걷는다. 수유역 근처의 시장 골목을 들여다 보니 아침 이른 시간인데도 떡집이 문을 열었다. 나는 기웃거리다가 평소에 좋아하는 약밥을 산다. 걸으면서 아침으로 먹을 요량이다. 검은 비닐 봉지에 약밥을 넣어 들고 조금 걷노라니 오른 쪽 길 옆에 창동 성당 돌 표지판이 눈에 들어온다. 그냥 갈 수 없다.
<방학 사거리 풍경, 멀리 도봉산이 보인다>
내가 <둘이서 함께>라는 주제로 순천에서 서울까지 24일간 걸었던 내용을 책으로 묶어낸 후 길동무였던 아내 모데스타와 이제부터는 <걸어서 당신께>라는 주제로 속초를 향해서 함께 걸어보자고 의견을 모았다. 그래서 앞으로 도보여행 길에는 가능한 가는 곳마다 성당을 들러볼 생각이다. 그곳에서 우리는 당신께 우리들의 끝없는 여정을 일일이 알려드릴 것이다. 마치 착한 자녀가 여행에서 돌아와 그동안 있었던 신기하고 행복했던 여정을 어머니 앞에서 끝없이 펼쳐 놓는 것처럼 우리도 당신께 우리들의 삶과 인생을 미주알고주알 털어 놓을 것이다. 나는 성모 마리아님이 좋다. 그녀는 우리들의 신을 낳아 주었고, 내가 삶이라는 과정을 거쳐오는 동안 고통스럽고 힘들었을 때 나의 기도를 묵묵히 들어주었다. 그 과정을 거쳐 그녀는 나에게 고통도 삶의 일부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는 지혜를 주었고, 마침내는 비틀즈가 노래한 Let it be(렛잇비)의 가사처럼 나는 어둠이 찾아들 때면 어둡다고 불평하고 몸부림쳐대던 습관에서 벗어나 기도 속에서 그 어둠을 받아들이고 그 어둠도 내 삶의 소중한 일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지혜를 깨달았다.
<도봉산 입구가 보인다>
<도봉산 입구 풍경>
<도봉산 성당에 있는 한국의 성모상>
창동 성당은 그 정면이 골목길 쪽으로 나 있었다. 나는 성모 마리아상 앞에서 기도를 드리고 조금 전에 사들고 갔던 약밥을 꺼내 아침 식사를 해결한다. 맛있다. 아침 출근길이나 등교길을 나서는 시민과 학생들이 성당 좁은 마당을 가로질러 대로 쪽으로 나가곤 한다. 가끔 내가 서서 약밥을 먹고 있는 성모상 앞으로 다가와 기도를 드리고 가는 이도 있다. 성모 마리상 앞에는 누군가가 놓아둔 조그맣고 빨간 카네이션 화분이 놓여 있고, 장미도 두어 송이 놓여 있다. 성당 정문과 대로 쪽으로 나아가는 곳에는 현수막이 붙어있었는데 그 현수막 내용 중에는 매리지 엔카운터(M.E.) 모임에서 주관하는 프로그램을 선전하고 있었다. 그 현수막에는 부부관계를 주제로 한 영화상영에 관한 안내도 있었다. 나는 지난 시절에 아내와 함께 부부대화 프로그램인 M.E. 프로그램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그 현수막의 내용이 더욱 반가웠다. 상영한다는 영화 제목은 'Fireproof(파이어프루프)'였다. 그 영화 제목 밑에는 '사랑의 도전'이라는 한국어 소제목이 붙어있었다. 그 영화 포스터에는 '결혼을 지키기 위한 40일간의 여정' 혹은 '수많은 부부들을 이혼 위기에서 구한 최고의 기독교 영화'라는 홍보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기회가 된다면 나도 한번 보고 싶었다. 아마도 큰 아이가 결혼을 앞두고 있어서 더욱 부부 대화프로그램에 관심이 쏠렸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식사를 마치고 창동 성당의 성모님을 카메라에 담은 후 성모상 앞에서 이별의 기도를 바친다. 골목길을 벗어나 계속 길을 걷는다.
<도봉산을 배경으로 서 있는 성모마리아>
<도봉산 성당 전경>
나는 지금 서울을 벗어나 의정부 쪽으로 걷고 있으니 출근길 시민들이나 등교길의 학생들과는 반대로 걷고 있는 셈이다. 거대한 생활의 파도를 헤치고 나는 이상과 꿈을 찾아 별도의 세상으로 나아가고 있는 듯한 묘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도봉구민회관이 나오고 이어 방학사거리가 나온다. 그동안 나는 길 건너 왼쪽건물들 사이로 가끔씩 나타났다 사라지는 도봉산 풍경과 숨바꼭질을 하면서 걷는다. 북한산과 관악산은 올라봤으나 아직 도봉산을 가보진 못했다. 방학사거리 화단에는 봄꽃들이 화사하고 아름답게 피어 있다. 꽃을 배경으로 멀리 도봉산을 카메라 앵글에 담아본다. 도봉역 쪽으로 계속 길을 간다. 오른 쪽으로는 의정부 쪽으로 가는 철길, 왼쪽으로는 역시 그쪽으로 가는 대로가 뻗어있다. 나는 철길과 대로의 중간 인도를 걷는 셈이다. 철길은 내 키보다 높은 시멘트 담장으로 이어져 있는데 그 담장에 대나무를 엮어 능소화와 담쟁이 넝쿨을 자라도록 유도하고 있었다. 그 아이디어가 좋아 나는 카메라에 담아본다. 거리를 아름답게 꾸미려는 정성이 혼자 걷는 내 마음에도 전해져 온다. 처음으로 걸어보는 길이지만 이런 사람사는 냄새가 느껴질 때면 오래전 이미 내가 지나간 적이 있는 거리처럼 포근한 느낌이 든다. 도봉산이 왼쪽으로 나를 따른다. 아니 내가 도봉산을 따라 걷는다. 이제 한 시간 반 정도 걸었는데 건물 사이로 도봉산이 나타날 때면 친구처럼 반갑다.
<의정부 성당의 성모마리아>
도봉산역이 나온다. 도봉산 입구 사거리에 이르니 왼쪽 지붕 위로 성모 마리아가 대로 변을 바라보고 서 있다. 그 뒤로 병풍처럼 도봉산이 두르고 있다. 나는 그 모습에 마치 성지에 온 듯한 착각이 들어 카메라를 들이대고 도봉산을 배경으로 성모 마리아를 카메라에 담는다. 나는 또 신호등을 건너 도봉산 성당으로 발길을 옮긴다. 성당 입구의 오른 쪽 화단에 한국의 성모상이 서 있었다. 머리에는 노랑 장미 화관을 쓰고 배경을 이루는 성당 유리벽에는 도봉산이 반사되어 비치고 있었다. 그 장미는 말라 있었지만 나는 갓피어난 황장미 화관을 쓰고 서있는 성모마리아를 마음의 눈으로 볼 수 있었다. 나는 성호를 긋고 기도를 바쳤다.
<도봉산 성당의 성모마리아>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기뻐하소서
주님께서 함께 계시니 여인중에 복되시며
태중의 아들 예수 또한 복되시나이다.
천주의 성모 마리아님! 이제와 저희 죽을 때에
저희 죄인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이제 십리 남았다>
나는 새벽 5시 반이면 잠자리에서 일어나 모데스타와 함께 촛불을 켜고 이 성모송을 반복해서 바치는 기도를 한다. 카톨릭에서는 이 형식을 묵주기도라고 하는데 '주의 기도' 한 번과 위의 성모송을 열번 암송하는 것을 1단이라고 한다. 매일 아침 나는 이 묵주기도 6단을 바치는 것을 생활화하고 있다. 프랑스 루르드 성지의 성모님상이 팔목에 걸고 있는 6단 묵주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5단 기도와 자기 자신을 위한 1단의 기도, 이렇게 6단을 바치는 데 보통 30분 정도 걸린다. 새벽시간, 깜깜한 방안의 십자고상 옆에 있는 루르드 성모상, 그리고 촛불 앞에서 바치는 우리 둘의 기도는 이제 생활의 일부가 되었고, 그렇게 시작하는 하루는 우리 자신의 내부에 평화와 사랑을 채워주고, 관계의 소중함을 깨닫게 해준다. 특히 둘이 함께 바치는 이 기도는 사랑의 신비를 늘 간직하며 생활할 수 있는 원천이 된다.
<역전 교차로에 도착했다>
성당을 나와 이번에는 왼쪽 길을 따라 걷는다. 오전 9시가 넘고 있었다. 두 시간 쯤 걸은 셈이다. 조금 더 걷노라니 의정부 시를 알리는 안내판이 나타났다. 드디어 서울특별시를 벗어난 것이다. 오늘은 지도를 가지고 오지 않았기에 나는 의정부역을 목표로 걸어왔다. 이제 의정부 시에서도 나의 목표는 줄곧 의정부역이다. 의정부역 4Km, 양주 8.2Km 안내 표지판이 나온다. 서울 외곽에서 의정부로 이어지는 길에는 거리가 표시된 이정표가 없었다. 아마도 서울이나 의정부가 같은 시가지처럼 이어져 있어서 그랬는지 모르겠다. 이정표를 보니 반가웠다. 이제 십리만 걸으면 된다. 고가도로 밑을 지나노라니 왼쪽으로 석재상이 있었다. 그 석재 작품들 중에 천사의 상과 성모 마리아상도 서 있었다. 성물로 축성을 받아 공식적으로 자리를 잡기 전에는 작품에 머물겠지만 그래도 반갑다.
<의정부 시내 석재상에 진열되어 있는 작품들>
<의정부역 옆에 들어서고 있는 시민공원 조성 관련 건축물>
곧바로 가면 시내를 벗어나 고양이 나오고 오른 쪽 길로 가면 양주가 나온다. 시내 버스 정류장 <장수원>이 나오고, 망월사역을 지나 회룡역을 지나친다. <경의 교차로>에 이른다. 이제 표지판의 방향이 바뀌어 있다. 곧바로 가면 양주, 시청 쪽으로 좌회전 하면 고양, 반 우회전 방향은 포천이다. 포천을 지나 철원, 와수리, 다목리, 화천 이런 지명들은 나에게 익숙하다. 내가 지금부터 30여 년 전 군복무를 했던 지역들이기 때문이다. 다음 번에 어쩌면 나는 내가 젊은 시절 한 때를 보냈던 최전방 지역으로 발길을 돌릴 지도 모르겠다. 또 다른 안내판이 눈에 띈다. <의정부 성당>이 경기도 문화재 자료 제99호라는 갈색 안내판이었다. 이제 오늘의 목적지 의정부역이 왼쪽에 나타났지만 내 마음은 금새 <의정부 성당>으로 목적지를 바꾸고 만다. 의정부역사 근처는 커다란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미군 기지였던 근처가 시민을 위한 공공시설로 바뀌고 있었다. 왼쪽으로 지하 상가를 지나 의정부역에서 시청 쪽으로 가다 보니 골목길에 <의정부 성당>이 있었다.
<의정부에서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창동역에서 바라본 도봉산 풍경>
아담하고 전형적인 시골 돌집 성당 모습은 나에게 또 평화를 주었다. 노란 유니폼을 입은 유치원생들이 여선생님을 따라 종종걸음을 치면서 성모상 앞으로 오더니 조별로 단체 사진을 찍는다. 나도 그 모습이 좋아 사진을 찍는다. 성모상 앞에서 기도를 바치고, 사진을 찍고 이제 발길을 돌린다. 3시간 반, 16Km 쯤으로 오늘 여행을 정리한다. 그나저나 길동무 모데스타가 이 아름다운 성당에서 나 혼자 기도하며 행복했노라는 자랑을 전해들으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왜 혼자서 걸었느냐 항의하면 뭐라고 변명할까! 길동무가 서울 시내 길을 걷기 힘들어 할까봐 나 혼자서 걸어냈노라고 말해볼까? 틀림없이 웃으면서 이해해 주겠지! 의정부 역에서 기차를 타고 강남 터미날로 향한다. 기차 안에서 발바닥이 갈라지는 증상에 특효라는 덧신을 파는 상인이 지나간다. 한 켤레를 산다. 늘 발바닥이 갈라져서 힘들어하는 모데스타에게 선물해야겠다. 함께 걷지 못해 미안했던 마음도 조금 덜어낼 겸.<2011.5.12. 금>
<의정부 성당> 다음까페 <마음의 고향, 후곡>
첫댓글 걸어서 당신께: 아내를 사랑하는 마음이 깊습니다. 이런 여행도 아름답다는 생각이 듭니다. 부부애가 남 다른 것 같아 좋습니다. 목적 달상을 하시고 성공하여 또 책을 내십시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