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진(極眞) 가라데를 창시한 한국 출신의 세계적인 무술가 최영의(崔永宜, 1923-1994)의 이름이 알려지는 데는 만화가 많은 기여를 했다. 여기서는 만화에서 그의 모습을 어떻게 묘사하는가 보기로 한다. 만화의 영향으로 원래 성과 일본 이름 오오야마 마스타츠(大山倍達)를 합친 최배달(崔倍達)이라는 이름이 본명보다 더 잘 알려져 있지만, 편의상 호칭을 최영의로 통일하고 존칭은 생략한다.
한국에서 최영의, 또는 최배달이라는 이름을 널리 각인시킨 것이라면 단연 방학기의 <바람의 파이터>이다. ≪스포츠서울≫에 1989년 8월부터 1993년 7월까지 연재되어 한때 최장기 신문 연재 만화라는 기록을 지녔던
(주 1) 이 만화는 2004년 양윤호 감독·각본, 양동근 주연으로 영화화되었고, 현재 ≪스포츠서울≫에 재연재되고 있다. 단행본으로는 일일판이라 부르는 얇은 대본소용 단행본으로 2번 발행된 적 있고, 도서출판 길찾기에서 전 10권으로 복간 예정이며 2005년 2월 현재 7권까지 나와 있다. 작가가 키요즈미산 입산 수행(길찾기 복간 단행본 기준 2권) 이후를 소설로 옮긴 책(전 3권, 열림원, 1995)은 한때 절판되었다가 2004년 8월 영화 개봉에 맞춰 재발행되었다.
※주 1: 현재 최장기 신문 연재 만화는 1999년 3월부터 2004년 10월까지 ≪스포츠투데이≫에 연재된 김진태의 <시민 쾌걸>이다.
<바람의 파이터>보다 인지도는 떨어지지만 최배달이라는 이름을 더 먼저 알린 만화는 고우영의 <대야망>이다. 1975년부터 1977년까지 어린이 잡지 ≪새소년≫에 연재된 것으로 여기서는 최영의가 구사하는 무술을 시종일관 태권도라고 부르고 있다. <바람의 파이터>에서 주인공 이름을 최배달로 한 것도 <대야망>에서 영향 받은 것이다. 1977년 ≪새소년≫ 발행사인 어문각에서 전 5권으로 단행본이 나왔고, 1999년 최영의 서거 5주년을 맞아 학산문화사에서 전 6권으로 복간했으나 지금은 절판되었다.
일본 만화 중에는 학산문화사에서 발행되는 <무한의 파이터>(전 17권, 설은미 옮김)가 있다. 1971년부터 1977년까지 코단샤 ≪주간 소년 매거진≫에 연재된 카지와라 잇키(梶原一騎) 원작, 츠노다 지로(つのだじろう, 1-7권)/카게마루 죠야(影丸讓也, 8-17권) 그림 <가라데 외곬 일생>(空手バカ一代, 코믹스판 전 28권, 애장판 전 17권, 講談社)
(주 2)을 번역한 것으로, 만화를 원작으로 TV판 애니메이션 영화
(주 3)와 영화 3편이 만들어졌다. 1936년에 태어나 1987년에 타계한 원작자 카지와라 잇키는 1960-70년대 인기 만화 스토리 작가로, 야구 만화 <거인의 별>(巨人の星, 카와사키 노보루(川崎のぼる) 그림), 유도 만화 <유도 일직선>(柔道一直線, 나가시마 신지(永島愼二) 그림), 한국에는 <허리케인 조>(전 20권, 서울문화사)로 알려진 권투 만화 <내일의 조>(あしたのジョ―, 치바 테츠야(ちばてつや) 그림)
(주 4) 같은 스포츠 만화가 대표작이다.
※주 2: 한국어판은 애장판을 원본으로 한다.
※주 3: 전 47화, 1973년 10월-1974년 9월 방영. 여기서는 주인공이 실명 대신 히쵸켄(飛鳥拳)이라는 가명으로 나온다.
※주 4: <내일의 조>에서는 타카모리 아사오(高森朝雄)라는 필명을 썼다.
사건 자체는 비슷하나 세 편 모두 관련 인물의 이름, 시간 순서가 제각각이다. 예를 들어 <바람의 파이터>에서는 키요즈미산 입산 수행이 전일본 가라데선수권대회 전이나 <무한의 파이터>에서는 대회 뒤로 나오고, <대야망>의 최영의는 곰과도 싸워 이기나 <무한의 파이터>에서는 곰과 결투하는 이벤트를 행하다 경찰의 제지로 중지되고 <바람의 파이터>에서는 곰과 싸우는 사건은 안 나온다.
(주 5) 또한 <무한의 파이터>에서는 일본 여성과 결혼한 것으로 나오나 <바람의 파이터>, <대야망>은 이런 사실을 전혀 언급하지 않아 최영의가 결혼도 하지 않고 수행에 전념한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같은 인물을 만화로 그린 게 맞나' 하는 의구심마저 느낄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일단 최영의 공식 홈페이지(
http://www.mas-oyama.com)나 극진회 공식 홈페이지(
http://www.kyokushin.co.jp) 등에서 공식적으로 전해지는 연대기에는 <무한의 파이터>가 가장 잘 맞는다.
(주 6) 그러나 세 만화 모두 무술 수행과 무관한 여러 부분을 생략하고 있다.
※주 5: 대산사업회 홈페이지에는 곰과 싸우려다 무산된 것이 1969년이라고 나온다. 이것이 맞다면 1960년대 후반을 다루지 않은 <바람의 파이터>에서 이 사건이 안 나오는 것도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러나 격투가로서 기력이 떨어져갈 때인 40대 후반에, 나아가 1969년은 가라데 역사에 큰 전환점이 되는, 최초의 풀 컨택트(full contact: 보호장비 없이 직접 타격) 방식 대회인 제1회 오픈 토너먼트 전일본 가라데선수권대회가 열린 해인데 이런 중대한 사업을 제쳐두고 그런 이벤트를 계획했다는 것은 신빙성이 의심스럽다. 이렇게 본다면 <바람의 파이터>에서는 곰을 이기지 못했다는 사실을 밝히지 않으려고 일부러 이 사건을 빼놓았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주 6: http://www.mas-oyama.com은 잡지 ≪월간 오오야마 마스타츠≫를 내며 최영의를 알리는 데 주력하는 일본의 최영의 기념사업 단체가 만든 홈페이지로, 전북 김제에서 태어난 최영의를 토쿄 출신으로 쓰는 등 최영의의 행적을 왜곡하고 있다. 일본 만화 <무한의 파이터>가 공식 홈페이지의 약력과 잘 맞는 것도 이 때문인데, 이런 정보가 공식화해 있다는 것은 한국에서 최영의라는 인물을 발굴하는 노력이 잘 행해지지 않았다는 반증으로 앞으로 개선해야 할 점이다. 작년 최영의의 세 아들들이 주축이 되어 발족한 대산사업회의 활동을 기대해 본다.
한 인물을 기술하는 데는 여러 수식어가 붙을 수 있다. 최영의도 마찬가지로 한국인 최영의, 무술가 최영의, 구도자 최영의, 극진회 총재 최영의 등 여러 면모가 있는데 세 만화에서 눈에 띄게 차이를 드러내는 부분은 바로 한국인 최영의이다.
<대야망>은 이 부분을 가장 강하게 내세우고 있다. 다른 두 만화에서 나오는,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패망 전까지는 항공학교에 다녔다거나, 패망 이후 한때 야쿠자 밑에서 일했다는 부분을 생략하고 심지어 단무지도 먹지 않는 한국인으로 묘사함으로써 민족주의적인 의도를 강하게 비친다. 각 무술 간의 우열을 비교할 수 있음을 전제로 태권도가 최강임을 강조하고 공수가들을 타도 대상으로 삼는 것도 이런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반면 최영의의 제자가 되는 일본인들은 민족의식과는 무관하게 태권도의 강함에 매료되는 것으로 묘사된다.
<바람의 파이터>에서도 한국인 신분 때문에 가해지는 차별에 분노하고, 같은 한국인 출신인 프로레슬러 역도산에게 동질감을 느끼는 등 정체성이나 민족의식 때문에 고뇌하는 장면이 자주 나오나, 무술 수련 과정은 어디까지나 구도 과정일 뿐 일본이나 일본인을 타도해야 할 대상으로 삼지도 않고 민족적 정체성을 무술 세계에 적극적으로 반영하려 하지도 않는다. 작중에서 최영의가 소설 ≪미야모토 무사시≫(宮本武藏)의 작가 요시카와 에이지(吉川英治, 1892-1962)를 만나 "미야모토 무사시의 삶에서 눈물겨운 자기완성의 고투를 배우고 싶다."고 했듯 그는 일본 것이라도 무조건 배울 것이 없다고 배격하지 않는다.
<무한의 파이터>는 그가 한국 출신임을 철저히 감추고 있다. 한국인에게 온갖 차별이 가해진 것은 부인할 수 없고, 최영의도 기존 무술가들과 다른 길을 걷는 데 더해 한국인이라는 것 때문에 더 심한 비난과 차별을 받아야 했다. 이런 분위기에서 한국인 최영의를 이야기하기 힘들어서 일본인 오오야마 마스타츠를 그려야 했을지도 모르나, 작가는 한 발 더 나아가 그를 충직한 일본인으로 그리고 있다. 1권에서 카미카제 특공대원으로 희생된 동료들을 기리며 '나라를 위해 목숨을 못 바치고 비굴하게 살아 있다'며 안타까워하고, 일본이 전후 피해를 복구하는 과정을 보며 감탄한다. 결혼(단행본 5권) 이후에는 기모노 차림으로 집안을 활보하는 장면도 나온다. 4권에서는 프로레슬러 역도산이 나오는데 그 역시 철저히 일본인으로 묘사된다. 이 때문에 대산사업회가 <무한의 파이터> 한국어판을 발행하는 학산문화사를 고인에 대한 명예훼손으로 고소하려 한 일도 있었다.
목숨을 건 대결에 임해서는 누구라도 고독한 법이고, 일생을 자기완성을 위한 대결로 삼았던 사람이라면 삶 자체도 보통 사람들과 다르게 고독으로 점철되었다고 추측할 수 있다. <대야망>이나 <바람의 파이터>에서는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그러한 고독을 배가하는 장치로 쓰이나(실제로 차별이 공공연히 행해졌기에 이를 극적 요소로 쓰는 것이 그렇게 부당한 것은 아니다) <무한의 파이터>는 그 사실을 배제함으로써 사실을 왜곡한 데 더해 내면의 고독감도 그만큼 약화된다. 반면 <대야망>에서는 한국인 최영의가 다른 최영의를 지나치게 누르고 있고 이것이 줄거리를 평면적으로 만드는 요인이 된다. 이런 문제점은 영화판 <바람의 파이터>도 마찬가지다.
세 만화의 무술관도 제각기 다르다. <바람의 파이터>는 가라데를 배웠으나 홀로 수행하는 동안 어릴 적 머슴 범수에게서 배운 권법과 혼합된 형태, 기존 가라데의 형에 얽매이지 않는 독창적인 면을 강조한다. 작중에서도 전일본 가라데선수권대회 해설자를 비롯한 다른 무술가들이 "어떤 가라데 유파와도 닮아 있지 않고, 굳이 말하면 조선의 택견이 연상된다"고 평하고 있다. 나아가 유도, 쿵후, 무에타이, 카포엘라 같은 다른 무술의 요소를 받아들이며 발전할 뿐 아니라 성(性), 과학, 예술 등 여러 원리를 포괄하는 철학의 한 표현으로까지 승화한다. 그런데 최영의 자서전 ≪최배달, 세계격투기행≫에서는 이런 것을 만화에서처럼 강조하고 있지는 않다. 직접적인 원인은 소위 최영의 자서전이 실제로는 대필 작가의 손으로 쓰여졌다는 것이나, 한편으로는 요시카와 에이지의 소설 ≪미야모토 무사시≫에서 형상화된, 다도, 조각, 그림 같은 다른 기예까지 수행의 방편으로 삼은 '검을 든 구도자' 미야모토 무사시의 모습을 방학기가 최영의 일대기에 투영해서 얼마간 과장이 섞인 탓도 있다.
(주 7) 참고로 방학기는 <바람의 파이터> 외에 자유당 집권기 정치폭력배들의 이야기인 <감격시대>, 시라소니 일대기 <바람의 아들>과 같은 다른 만화에서도 일본 무사들의 예화를 자주 인용한다.
※주 7: 작품 전체에 영향을 주지는 않으나, 이 과정에서 작가는 한 가지 시대착오를 범하고 있다. 1950년대 초·중반 타 유파 격투가들과 싸우고 외국에서 가라데 시범을 보이면서 최영의가 철사장(鐵砂掌)과 같은 기(氣)의 작용을 레이저 광선, 홀로그램에 비유해서 설명하는 대목이 나오는데, 레이저는 1960년 처음 개발된 것으로 철사장을 레이저 광선에 비유하는 설명은 실제로는 나올 수 없었다고 보아야 한다.
앞서도 기술했듯 <대야망>에서는 최영의가 하는 무술이 태권도로 나온다. 특히 다른 두 만화의 최영의는 극진 가라데를 만들어 나가는 반면 <대야망>의 최영의는 이미 체계가 완성되어 있는 태권도를 수련하고 전파한다는 것이 결정적인 차이점이다. 또한 태권도가 가라데보다 우월한 최강의 무술이며 현재 한국에서 수련하는 태권도도 최영의와 관련이 있는 것처럼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최영의가 미국으로 건너가 프로레슬러들과 대결하기 시작한 1952년까지도 태권도라는 이름은 아직 없었고,
(주 8) '최강의 태권도'라는 수사를 씀으로써 마치 무술 자체의 우열이나 강약을 비교할 수 있는 것처럼 오해를 불러일으킨다는 것은 짚고 넘어가야 한다. 한국인 최영의를 어떻게 묘사하는가 설명하면서 <대야망>의 줄거리가 평면적이라고 했는데, 특정한 무술 체계 자체가 우월함을 강조하는 것 또한 주인공을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는, '무엇이 강함인가'를 고민할 필요가 없는 존재로 만든다는 점에서 이에 일조를 한다. 또한 <대야망>은 다른 두 만화에 비해 그림체가 '잘다' 보니 액션 묘사에서도 한계를 보인다.
※주 8: 오픈백과사전
태권도의 역사 항목에 따르면 태권도라는 이름은 1955년 4월 11일에 생겼다 한다. 현대 태권도를 구축한 인물 중 1명인 최홍희가 지은 이름을 이승만 대통령이 승인한 것이다.
<무한의 파이터>의 최영의는 문자 그대로 가라데를 하고, 공식 홈페이지에 실린 약력대로 항공학교 시절 가라데에 입문하는 것으로 나온다. 다른 두 만화가 독창성이나 고유성이라는 덕목으로써 기존 가라데와 극진 가라데를 뚜렷이 차별화하는 반면 <무한의 파이터>에서는 차별성이 크게 드러나지 않는다. 이때는 최영의를 일본인으로 그린 것처럼 사실 왜곡이라고만 보기는 어려운 것이, 기본 동작이나 형(型, 카타: 수련을 위한 연속동작. 태권도의 품새에 해당)과 같은 면에서 극진 가라데의 모습은 최영의가 수련했던 전통 가라데 유파 강유류(剛柔流)와 유사하다. 전통 가라데에서 소멸되어 가던 실전성, 극한의 강함이라는 사상을 추구했으나 그 사상을 담은 기본 틀은 기존 가라데에서 유래한 것이다. 그러나 극진 가라데가 실전성을 추구하며 변하는 과정이 구체적이지 못한 것은 사실이고, 실전성 추구를 사무라이 정신의 연장으로 보는 것도 한국인 최영의를 왜곡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아울러 <무한의 파이터>에서 최영의에게 세계에 가라데를 널리 알리는 홍보 사절이라는 지위를 부여하는
(주 9) 것은 <대야망>의 최영의가 가라데를 굴복시키러 일본에 건너갔다는 것만큼 결과론에 치우친 것이다. 그럼에도 강(剛)과 유(柔)가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거나, 신체뿐 아니라 정신을 단련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등 여러 가지를 깨달으며 자신을 단련해 가는 모습이 잘 나오는 것 역시 부인할 수 없다.
※주 9: 이 과정에서 '극진 가라데'가 아닌 '가라데 일반'으로 홍보 대상이 일반화돼 버린다는 것도 지적해야 한다.
사범 최영의, 극진회 총재 최영의와 같은 모습은 <무한의 파이터>에서 가장 잘(정확성 문제를 제쳐두고 분량만으로 평가한다면) 다루어지고 있다. 제목 그대로 가라데 외곬이던 그가 '싸움 가라데' 같은 비난을 받아가며 일개 문파를 키워나가고 세계로 보급하는 과정과 더불어, 최영의가 키워낸 제자들의 면면도 볼 수 있다(10권 이후로 넘어가면 오히려 제자들 이야기가 더 자주 나온다). 한국 만화 2편, 특히 <바람의 파이터>는 무술가로서 한창 때인 1950-60년대의 최영의에 큰 비중이 주어져 있고, 최영의의 1970년대 이후 활동상이나 저술 활동과 같은(몸으로 보여주는 것 이외의) 부분은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
세 만화에서 최영의의 어떤 점을 강조하고, 어떤 점에서 한계를 드러내는가를 보았다. 한 인물의 행적을 '정답 그대로' 기록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고, 작품이 나온 시대, 지역적 여건에 따라 한계를 띠는 법이지만, 독자들에게 어떤 사상을 주입할 것인가 하는 의도가 너무 강하게 개입되어 역효과를 주는가는 알고 볼 필요가 있다. 소년 잡지에 연재된 <무한의 파이터>나 <대야망>보다는 스포츠신문에 연재된 <바람의 파이터>가 이런 한계에서 조금 더 자유롭다고 보이고, 실제로 지금까지는 <바람의 파이터>가 최영의라는 인물을 논할 때 기본이 되고 있으나, 모두가 각자 한계를 띠고 있고 최영의라는 인물이 (적어도 한국에서는) 그렇게 깊이 탐구되었다고 보기는 어려운 만큼 앞으로 다양한 해석이 나올 가능성이나 필요성은 여전히 크다.
첫댓글 오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