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바스 왕조멸망
500년 동안 번영한 아바스 왕조의 이슬람 제국은 몽고에게 멸망하고 말았다. 그러나, 이슬람교는 이슬람 제국과 이웃하고 있는 지역으로 끊임없이 퍼져나갔다.
-세 칼리프
아바스 왕조의 전성기로 일컬어지는 하룬 알 라시드 시대는 또한 이슬람 제국이 분열의 징조를 보이기시작한 시대이기도 하다.
제국의 변두리 지역에서 작은 왕조들이 하나하나 생겨났다. 그러나 이러한 왕조들은 아바스 왕조의 칼리프를 인정하고 있었으므로 그리 큰 문제는 빚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10세기 첫무렵에 튀니지에서 일어나서 10세기 가운데무렵에 이집트,시리아를 정복한 시아파의 파티마 왕조는 건국 첫무렵부터 스스로 칼리프라고 칭하며 아바스 왕조와 정면으로 대결하였다.
파티마 왕조는 카이로에 서울을 두고 시칠리아섬도 정복하여 지중해로 진출하였다. 파티마 왕조의 출현에 의해 이베리아 반도의 옴미아드 왕조도 칼리프를 자칭하고 나섬으로써 이슬람 세계에는 세 칼리프가 등장하게 되었다.
▼ 모르시 아부 알 아바스 모스크
이란인
중앙 아시아에서 9세기 첫무렵에 일어난 이란인의 사만 왕조도 크게 번영했다. 사만 왕조는 중앙아시아를 넘나드는 대상로(옛 비단길)를 차지하여 막대한 이익을 얻고 있었으므로 수도인 보하라는 이란 이슬람 문화의 중심지가 되었다.
한편 카스피해의 서남 해안에서 일어난, 역시 이란인의 부와이 왕조가 아바스 왕조의 사실상의 지배자였기 때문에 아바스 왕조의 정치를 마음대로 움직였다.
이처럼 10세기에 있어서 이슬람 제국의 동방은 이란인이 그 중심이 되었다.
* 사만 왕조; 중앙아시아를 지배한 이란계(系)의 이슬람왕조(874∼999)이다. 왕조의 창시자 사만 호
다 의 4명의 손자들은 칼리프 알 마문을 충실히 섬긴 대가로 주(州)들을 받았다. 누는 사마르
칸트, 아흐마드는 페르가나, 야히아는 샤시, 엘리아스는 헤라트를 받았다. 그후발흐 출신의
이란계 귀족 사만의 증손(曾孫) 나스르 빈 아마드는 트란스옥사니아를 근거지로 독립하고,
그의 아우 이스마일의 협력을 얻어 호라즘을 점령하였으며, 900년에는 사파르왕조를 무너뜨
리고 호라산을 병합하였다. 나스르 2세 때는 이란 본토를 차지하여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동
서무역(東西貿易)의 요충지인 부하라와 사마르칸트는 눈부시게 번창하여 바그다드를 능가할
정도로 세력을 뻗쳤으며, 각종 모피류·종이·철제품·슬라브인(人)노예·가축 등이 거래되었다.
지금도 남(南)러시아에서 북(北)유럽권에 걸쳐 사만왕조의 화폐가 대량으로 발견되어 그들
의 발전상을 짐작할 수 있다. 이와 함께 학술·문예 부문에서도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으며, 아
라비아와 페르시아의 학자는 그들의 보호를 받았다. 더욱이 이 왕조 때에는 이란에서도 문예
부흥(文藝復興)의 기운이 움트기 시작하여, 시(詩)를 비롯하여 학문 분야에서도 페르시아어
(語)가 사용되었다.
튀르크족의 등장
11세기 첫무렵에 이슬람의 지배를 받던 중앙아시아의 튀르크족의 일파인 셀주크 튀르크족이 힘을 뻗어 중앙 아시아의 통일에 나섰다.
토그룰 베그가 이끈 셀주크 튀르크는 분열되어 있던 이란을 통일하고, 1055년에 바그다드의 부와이 왕조를 멸망시켰다.
아바스 왕조는 베그에게 권력을 뜻하는 술탄의 칭호를 주었지만, 칼리프의 권력은 회복되지 않고, 종교적인 상징에 불과했던 아바스 왕조는 더욱 기울어져 마침내 셀주크 튀르크는 이슬람 제국의 지배권을 장악하게 되었다.
셀주크 왕조는 이란을 중심으로 아바스 왕조의 동쪽 영토를 지배했다.그리고 비잔틴군을 무찌르고 소아시아에 침입하여 그 땅을 차지햇다. 또 파티마 왕조로부터 시리아를 되찾아 이슬람 제국은 셀주크 왕조 지배에서 잠시 평화를 되찾았다.
▼ 셀주크 왕조 성벽
출처; 유레카 백과사전, © encyb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