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아름다워(644) - 멀리서 온 반가운 소식
어제(8월 7일)는 가을에 접어든다는 입추(立秋), 폭염은 여전히 맹위를 떨쳐 이날도 전국이 35도 내외의 무더운 날씨다. 빨리 가을이 오기를 바라는 듯 여러 지인들이 입추를 반기는 메시지를 보내온다. ‘오늘은 절기상 가을에 접어든다는 입추입니다. 아직은 많이 덥지만 얼마 남지 않은 무더위 건강하게 이겨내시고 행복한 하루 되세요!’
입추를 맞아 여럿이 카톡으로 보내온 그림
지난 월요일, 열흘 넘게 분당에 머물다가 광주에 내려왔다. 집에 들어서니 일본에서 날아온 우편물이 주인을 반긴다. 여러 차례 국내외를 함께 걸은 재일동포 안정일 씨가 지난 3월에 제주도 올레길 걸으며 쓴 기행록을 손수 그린 삽화와 함께 일본어로 번역하여 보내온 것이다. 동봉한 편지 내용을 소개한다.
‘태호 교수님, 혜경 선생님!
그간 건강하시고 행복하셨는지요?
교수님의 기행문, 김승자 씨로부터 4월 중순에 받았는데 겨우 오늘에 와서야 보내게 된 것 참으로 죄송스럽습니다.
일본 분들에게는 엔도 회장, 사또 씨, 시마 씨를 비롯하여 여러분에게 6월 중순에 보냈습니다. 일본 분들이 말하기를 교수님의 기행문을 읽으니 다시 제주도 일주를 한 것 같이 생생히 추억이 난다고 합니다. 특히 날마다의 식사, 날씨, 가는 곳곳의 지명 등. 부디 교수님께 감사의 말씀 전해달라는 소리 많기에 이에 전달합니다.
교수님, 혜경 선생님!
더위가 심한 계절입니다. 건강에 유의하시고 항상 행복하시기를 기원합니다.
그리고 정일남 씨(*광주에 거주하는 재일동포)에게도 잘 있다고 안부 전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앞날 어디선가 다시 교수님, 혜경 선생님과 만나 뵙는 기회가 올 것을 믿으면서.
안녕히 계십시오.
일본에서 안정일’
'자연은 아름답고 역사는 엄숙하다'는 제목의 한국, 일본, 러시아 제주도일주 기행록 표지
안정일 씨는 경상남도 사천이 고향인 재일동포로 교토 인근의 시가(滋賀)현에 살고 있다. 그간 2011년 4월에 서울-부산(20일), 2012년 4월에 서울-목포-부산(34일), 2014년 4월에 부산-속초-서울(27일), 2016년 2-4월(55일간)에 대만일주, 지난 3월(2주간) 제주일주 등을 함께 한 걷기동호인으로 2012년과 2014년의 한국일주 걷기 때도 내가 쓴 기행록에 삽화를 곁들여서 번역한 인연이 있다.
2012년의 1차 한국일주걷기 때는 그의 선친이 태어난 사천시 곤명면을 지나게 되었다. 그때 곤명면사무소에 들러 그의 호적을 떼는데 도움을 준 적이 있다. 당시의 기록, ‘하동에서 북천을 거쳐 사천시 곤명면에 들어선다. 재일동포 안정일 씨의 본적지로 등재된 곳, 면계에 들어서며 선친의 고향에 외로운 나그네처럼 입성하는 그를 위하여 박수로 성원하였다. 안정일 씨는 아버지가 17세 때 일본으로 건너간 후 고향과 단절되어 아버지가 살던 곳인 진주부 봉선정이 유일한 단서라고 한다. 사천시 곤명면이 본적으로 된 것은 장모가 20여 년 전에 주선하여 결정한 것이어서 자세한 연유는 모른다고 한다. 신기하게도 그의 본적지에서 오늘 머물게 된다. 곤명면사무소에 도착하니 오후 4시, 사무실에 들어가 호적담당에게 연유를 설명하고 등본을 떼어보니 1990년에 오사카 총영사관을 통하여 본적을 취득한 기록이 있으나 그 아버지에 대하여는 이름만 있고 생전의 주소를 알만한 기록이 없다. 몇 차례 한국에 온 적이 있는 안정일 씨가 최근에 사촌이 진주에 살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촌의 이름을 호적담당에게 말하여 등본을 뗐다. 이를 확인하니 할아버지 이름도 나온다. 그것만으로도 큰 수확으로 여기고 그의 고향입성을 다시 한 번 축하하였다.’
지난 3월의 제주걷기에 서울에 사는 안 씨 3자매가 동행하였다. 이때 안정일 씨와 인사를 나누며 오누이처럼 다정한 사이가 되었다. 기행록에는 그 사연도 적혀 있다. 안정일 씨는 그 대목을 번역하며 안 씨 3자매와 함께 찍은 사진을 삽화로 그려 소개하였다. 번역물 표지와 그 부분을 제주걷기에 함께한 몇 분에게 카톡으로 보내주었다. 이를 접한 지인이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전해왔다. ‘귀한 사진 감사합니다. 안 씨 가문의 단결, 안정일 씨께서 세 자매를 스케치하시고 표현한 일가에 대한 애착... 조국에 대한 그리움과 외로움의 발로가 아닐는지요?’ 또 다른 이의 메시지, ‘잊지 못할 추억을 많이 쌓으시네요. 마음 가득 흐뭇하시겠어요!’
걷는 동안 오누이처럼 다정하게 지낸 안정일 씨와 안 씨 자매를 담은 삽화
즐겨 읽는 잠언에 이런 구절이 있다. ‘먼 땅에서 오는 좋은 기별은 목마른 사람에게 냉수 같으니라.’(잠언 25장 25절) 유례없는 폭염으로 지친 나날, 멀리서 날아온 반가운 소식이 청량제처럼 시원함을 안겨준다. 안정일 선생, 바쁘신 중에도 삽화를 덧붙여 성심으로 번역해주신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뵙기를!
제주일주 때의 안정일 씨 모습, 왼쪽의 활짝 웃는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