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평론] 가상에서 현실로,현실에서 가상으로/ 홍성일
-'인어 공주'가 우리를 판타지로 이끄는 방식들

1. 인어,공주
영화 '인어 공주'의 오프닝 크레디트는 이 영화가 발을 디딘 두 공간을 보여준다. 김나영(전도연 분)의 손을 따라 카메라는 뉴질랜드의 해변 풍광을 스치듯 훑으며 이어 제주 해녀들의 몽환적인 수영 장면으로 뒤바뀐다.
잠시 카메라는 자유롭게 수영하는 해녀들을 관찰하다 수면 위로 떠오르는데,수면 위는 나영의 어머니 조연순(고두심 분)이 목욕관리사로 일하는 목욕탕이다. 수중과 수면 위 세상의 대비,해녀와 목욕관리사의 대비,자연과 인공의 대비는 이 영화가 가상과 현실의 두 공간을 넘나드는 영화임을 간명하게 보여준다.
요약하면 '인어 공주'는 인어,공주로 대표할 수 있는 두 공간의 결합이다. 인어가 현실이라면 공주는 판타지이다. 대개 인어는 북유럽 신화에 등장하는 상상의 산물로 생각되지만 '인어 공주'에서의 인어는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살았던,그리고 뭍으로 올라와도 여전히 물 근처에서 사는 연순에 대한 직유적 의미로 생각된다.
한편 공주는 나영이 꿈꾸고,연순이 꿈꿨을지 모를 판타지를 은유한다. 직유와 은유의 충돌,현실과 판타지의 결합이 인어,공주의 날줄,씨줄로 교직하며 '인어 공주'라는 텍스트를 직조하고 있다.
사실 모든 예술 작품은 수용자에게 현실에서 체험할 수 없는 판타지를 제공한다는 측면에서 직유와 은유의 결합이라 할 수 있다. 특히나 일정한 이야기체를 갖는 영화라면 두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영화에 국한에서 이야기하자면 극장이란 공간 자체도 일종의 가상공간과 현실 공간의 충돌점이다.
극장 안으로 들어와 의자에 몸을 기대는 순간 우리는 새로운 가상공간으로의 진입을 준비한다. 불이 꺼지고 스크린에 寸永풔?빛이 현실을 암실로 뒤바꾸면서 우리는 가상 속으로 공간 이동한다. 촬영 역시 가상과 현실의 경계 위에 존재한다. 카메라는 현실에서 가상을 이끌어내는 도구이다.
세트라는 인공적인 세상과 배우의 연기라는 가공된 행위를 현실 속에서 재단하여 가상공간을 만들어내는 것이 카메라이다. 자연인인 고두심이 극중 배역인 조연순으로 분하는 것도 현실과 가상의 결합이다. 고두심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이미지들이 자연스럽게 조연순이라는 극중 인물로 탈바꿈한다. 이러한 모든 것이 복잡하게 얽히며 가상과 현실의 복합적인 영화계(映畵系)를 구성하고 영화체험을 만들고 있다. 신기한 것은 이와 같은 가상과 현실의 넘나듦의 과정이 순간적이고 너무나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우리는 의식하지 못한 채 영화로 빠져든다. 인어,공주가 '인어 공주'로 결합되며,김나영이 조연순의 세상에 아무런 여과 없이 들어가는 것처럼 말이다.
2.여행은 나중에,나중에라도 갈 수 있다.
가상공간과 실재공간이 생각처럼 명확히 분리되는 것은 아니다. 흔히 가상적 체험은 공상과학 영화에서나 체험할 수 있는 먼 미래의 이야기로 생각된다. 복잡한 센서와 디지털 기술의 힘을 통해서만 우리는 가상공간에 진입할 수 있을 것으로 여긴다.
그러나 노자의 호접몽(胡蝶夢)은 이미 수천 년 전에 가상공간과 현실공간의 구분이라는 철학적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일상에서도 우리는 가상과 현실을 끊임없이 오간다. 우리가 차 안에서 창문을 닫고 음악을 크게 틀어놓은 채로 운전을 할 때,차 안의 공간은 차 밖의 현실과 명확히 구분되는 가상공간이다. 모자를 눌러쓰고 이어폰을 꽂은 채 거리를 걷는 사람의 사고체계는 이미 외부의 현실로부터 유리된 가상공간에서 사고하는 주체의 사고체계이다.
영화 관람을 통해 극중 배역에게 감정 이입되는 순간 우리는 현실로부터 벗어나 영화계로 진입하고 있다. 가상공간은 생각보다 우리 곁에 가까이 존재하는 셈이다.
그러나 가상 세계로의 진입이 아무런 매개 없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꿈이 잠을 필요로 하고 영화 관람이 소등을 요구하며 이어폰이 외부의 소음과 나의 귀를 차단하듯,현실과 가상의 넘나듦은 의식적이거나 무의식적인 준비 과정을 요구한다. 심지어 아무런 매개 없이 머릿속에서 이루어지는 공상조차도 현실의 자극으로부터 감각기관이 분리되어야 이루어질 수 있는 행위의 결과이다.
소음이나 신체적 자극으로 인해 소스라치게 공상에서 현실로 돌아오는 과정은 가상세계로의 진입과 가상적 체험이 일정한 준비단계와 매개를 거쳐야 하는 일임을 보여주고 있다.
'인어 공주'에서 나영이 어머니 연순의 소녀 시절로 되돌아가는 과정도 매개 장치를 필요로 한다. 가상을 현실로부터 분리시키고,현실 세계에서 가상세계로 진입할 수 있는 길이 필요한 것이다.
흔히 이와 같은 장면 전환에서 주요하게 사용되는 영화적 기법은 패이드 인(fade in)과 패이드 아웃(fade out)이다. 이는 화면을 서서히 어둡게 하거나 밝게 하여 관객들로 하여금 마치 잠에 빠져 꿈을 꾸거나,꿈에서 깨어난 듯한 착각을 일으켜 극중인물의 회상이나 상상에 동참하는 효과를 발생시킨다. 가상세계를 준비하는 신체적 경험을 영상으로 재현하여 일종의 유사체험을 제공하는 셈이다. 그러나 '인어 공주'는 이와 같은 일반적인 방법에서 벗어나 새로운 실험을 하는데,그것은 주문을 외우는 것이다.
행방불명된 아버지(김봉근 분)를 찾기 위해 나영은 제주로 향한다. 제주는 나영의 모든 현실적 어려움이 집약되어 있는 뭍과는 다른 공간이다. 그곳은 젊은 날의 어머니와 아버지의 삶의 터전이었으며 뭍으로부터 독립된 섬이다.
섬이라는 특수한 공간은 나영이 어머니의 소녀 시절을 체험하는 가상적 경험의 공간적 배경이 된다. 그녀는 뭍과 섬을 연결하는 바다 위,동시에 현실과 가상을 매개하는 바다 위에서 자신이 포기한 뉴질랜드 연수를 떠올리며 스스로에게 되뇐다. '여행은 나중에, 나중에라도 갈 수 있다. 여행은 나중에,나중에라도 갈 수 있다.' 이와 같은 반복적인 되뇜은 관객에게 주술적 효과를 발생시킨다. 많은 종교적 제의에서 특정 어구의 반복적 사용은 영적 체험을 극대화하는 장치로 사용된다. 마찬가지로 반복적인 나영의 되뇜은 그녀가 앞으로 체험하게 될 가상적 경험과 관객이 앞으로 관람하게 될 판타지를 불러일으키기 위한 주문의 역할을 수행한다. 나영이 미루었던 뉴질랜드로의 여행은 아버지와 어머니를 발견하는 제주로의 여행으로 치환되고,나영의 되뇜은 마법적 효과를 일으켜 그녀를 새로운 가상세계로 안내한다.
관객 역시 나영의 되뇜에 최면이 걸리며 그녀의 감정 속으로 빠져든다. 이후 제주도에 도착해 그녀를 스쳐지나가는 오토바이를 되돌아보면 그곳엔 그녀의 젊은 아버지(박해일 분)가 푸르른 제주의 자연 속에서 친절한 미소로 나영을 안내하고 있다.
사실 '인어 공주'에서 주문?두 번 되풀이된다. 극 초반에 나영이 어려운 집안 환경으로 인해 대학을 포기하며 말하는 '학교는 나중에,나중에라도 갈 수 있다'란 독백이 먼저다. 잘못 보증을 선 아버지로 인해 나영의 가족이 쫓기듯 다른 도시로 이동할 때,아버지는 짐칸에,어머니와 나영은 운전석에 앉아있다. 대학 등록금마저 빚으로 날려버린 나영에게 어머니는 '학교는 나중에,나중에라도 갈 수 있다'고 위로한다.
이를 되풀이하여 말하는 나영은 그렇게 스스로 최면을 건다. 기존에 살던 곳에서 새로운 곳으로 이동하는 길 위에서,나영은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며 현실과 타협할 준비를 한다. 그것은 스스로에 대한 다짐이자 다가올 현실적 어려움에 대한 방어기제이다.
그러나 이 대사는 이후 '여행은 나중에,나중에 가면 된다'와 조응하며 새로운 의미를 발생시킨다. 첫 번째 독백은 나영이 스스로에게 현실을 살아가기 위해 거는 주문이라면 두 번째 독백은 나영이 관객들을 자신의 환상여행으로 동참하도록 이끄는 주문이 되는 것이다. 두 주문은 모두 공간을 전환하는 길과, 바다 위에서 외워진다.
이를 통해 첫 번째 주문은 두 번째 주문을 위한 예비 주문이 된다. 첫 번째 주문에 이미 최면을 준비한 관객은 익숙한 나영의 두 번째 주문 앞에 기꺼이 무장해제하며 그녀가 겪는 가상의 세계 속으로 동참하게 된다.
3. 사진-기억의 재구성
이와 더불어 나영과 그의 남자 친구 도현(이선균 분)이 함께 보는 가족 앨범은 '인어 공주'가 인어와 공주를 연결하기 위한 중요한 장치이다. 사실 앨범은 현실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가상현실의 한 예이다. 찰나의 순간을 포착한 사진은 현실을 가장 정확하게 담고 있는 것처럼 여겨지지만 그것은 선택적으로 기록되고,기록된 것 중 일부만 앨범에 정리된다는 측면에서 기억의 재구성이다.
인간의 희로애락(喜怒哀樂) 중 앨범에 정리되는 기억은 기쁘거나 즐거웠던 순간들이며 노여움과 슬픔의 순간들은 기억의 재구성에서 탈락된다. 그렇게 인간은 기억하고 싶은 것만을 기억하려 하고 이는 실재 현실과는 다른 가상의 내러티브를 구축한다.
기억하기 위해 남긴 기념(記念) 사진은 현실의 단편을 취사,선택해 행복의 내러티브를 구성한다. 미화된 기억으로 말이다. 심지어 영화 '메멘토'가 말해주듯 사진은 기억마저도 조작할 수 있다. 가시성이라는 명백한 효과가 사진을 과거의 정확한 증거로 자리매김하지만 문제는 사진에서 보이지 않는 비가시적인 순간들이다.
앨범에 남아있는 사진들은 희로애락의 복합적 실재와 현실을 희락(喜樂)의 가상으로만 기억시킬 뿐이다. 가상성과 현실성의 복합적인 경험은 이처럼 단순히 영화에서만 확인되는 것이 아닌, 삶 속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경험이다. 관객이 앨범을 통해 나영의 가족사를 보는 것과 관객들 스스로가 자신의 성장을 담은 앨범을 보는 것은 행복한 과거의 가상세계를 구성하는 동일한 행위이다.
나영과 도현이 가족 앨범을 통해 함께 보는 어머니의 젊은 모습은 그대로 나영의 모습과 연결된다. 관객은 이를 통해 전도연이 분한 나영과 젊은 연순이 동일 배우가 연기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다른 인물이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또한 사진을 통해 관객은 나영의 어머니가 지금은 비록 삶에 찌들고 억척스럽게 보이더라도 과거에는 그렇지 않았을 것이란 근거를 발견한다. 지금은 무능한 나영의 아버지 역시 앨범에서는 해맑은 미소로 젊은 연순을 감싸 안고 있어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그들은 과거에 어떠한 사람들이었을까. 그들의 과거는 행복했을까. 이로써 관객은 나영이 앞으로 여행하게 되는 가상공간을 위한 아리아드네의 실타래를 얻었다. 기실 가상공간은 현실의 실마리를 갖지 않고서는 구축할 수 없는 미로이다. 나비가 꿈에 내가 된 것인지,내가 꿈에 나비가 된 것인지 혼란하기에 앞서 나비와 꿈에 대한 인식과 경험이 먼저 존재해야 하며, 이는 가상현실에 대한 현실의 선차성을 나타낸다.
현실의 가능성과 불가능성이 가상현실을 구축하는 열쇠이다. 나영과 도현이 가족 앨범을 보는 장면은 나영이 겪게 될 가상공간의 세계에 대한 관객들의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며 동시에 앞으로 펼쳐질 나영의 환상을 사진을 통해 관객들에게 미리 현실로 확인시킴으로써 가상과 현실의 공간이동을 수월하게 만들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주의해야 할 것은 나영이 겪게 될 공간 이동이 실제 어머니와 아버지가 살며 체험했던 공간으로의 이동은 아닐 것이라는 점이다. 우리가 앨범을 펼쳐들고 가족사진을 보며 당시의 어머니와 아버지의 삶을 상상하듯,나영이 가상과 현실을 오가는 것도 그와 같은 가족사진의 연결 속에 희락의 기억들만 짚어낸 것처럼 보인다.
어머니가 해녀였다는 것을 알고 있고,아버지가 우체부였다는 것을 아는 나영은 이와 같은 사실을 토대로 가족사진을 재구성하여 제주에서의 자신만의 환상과 현실의 경험을 엮어낸다.
앨범은 시간 순서대로 어머니의 소녀 모습과 이후 그를 사랑한 아버지와 어머니의 모습을 짚고 있다. 나영이 경험하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순수한 사랑과 그 연대기는 도현과 나영이 함께 본 앨범의 정리 순서와 일치한다.
그것은 한 소녀가 누군가의 연인으로 되는 과정이다. 나영은 실제로 있었던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랑을 관찰한 것이 아니라 앨범에 기록된 사진을 통해 기억을 재구성하고 사진과 사진의 빈틈을 메우며 자신만의 이야기를 구축한 것이다. 제주에서 나영이 아버지와 처음 대면할 때,지병으로 인해 어깨가 처진 아버지의 뒷모습에서 젊은 아버지의 모습(박해일 분)을 연상하는 것은 나영의 시선이었다.
그와 같은 상상과 현실의 교차가 아무런 영화적 편집 기교 없이 직접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영화가 보여준 젊은 시절 어머니와 아버지의 순수한 사랑이 나영의 눈을 통해 재구성된 것이라는 것을 확인시켜주고 있다.
또한 영화 말미에 나영이 자신의 딸과 앨범을 보며 자신의 기억과 어머니의 기억을 교차시키는 장면은 나영의 환상과 어머니의 기억이 과연 서로 같을 것인가란 여운을 남긴다. 연순의 손녀가 짚어낸 할아버지의 얼굴을 전화로 확인하는 나영과,묘한 여운을 간직하며 욕탕으로 잠수하는 연순의 얼굴이 엇갈리는 장면은 서로 다른 사람에 대한 자기만의 상상이 교차하는 장면이 아니었을까. 비단 영화적 체험뿐만이 아니고서도 사람들은 서로 다른 가상의 공간을 구축하고 그 속에 많은 의미를 두고 살아가기 마련이다. 그와 같은 가상적 기억이 현실의 사람을 살아가게 하는 힘이 되기 때문이다.
4.배우의 진폭과 관객의 해석
'인어 공주'가 설득력 있는 가상 경험을 제공하는 데에는 배우들의 역할도 빼놓을 수 없다. 사실 배우만큼 가상과 현실의 중첩적 경계 위에 위치한 사람을 찾기는 힘들다. 배우는 한편으로는 현실적인 시공간 위에 토대를 두며 자연인으로 존재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배역을 맡아 타인의 삶을 가상적으로 재현해주는 존재이다.
또한 가상적 경험을 제공하는 영화계에서 '다른 사람-되기'를 업으로 삼는 배우는 현실과 가상을 오가며 진자와 같은 움직임을 되풀이할 수밖에 없는 존재이다. 작품이 반복될수록 그 진폭은 더욱 커지거나 수렴될 것이다. 그것은 배우와 관객이 상호 작용하여 만들어내는 또 다른 역동적 움직임이다.
그러므로 배우는 현실적인 자아와 배역으로서의 자아가 충돌하는 경계인이다. 관객들 역시 자연인으로서의 배우와 극중 이미지의 배우를 오가며 영화계를 존속시킨다. 관객들이 이미 잘 알려진 배우를 통해 영화적 경험을 선택하고 꾀할 수 있는 이유는 현실의 극단과 가상의 초입에 모호하게 놓여있는 배우들의 존재 조건 때문이다.
'인어 공주'에서 관객이 현실의 나영과 그녀의 환상을 오가는 데 어렵지 않게 동참할 수 있었던 데에는 주요 배역을 맡은 전도연,고두심,박해일이 갖고 있는 진폭이 가상세계로 진입하기 위한 효과적인 고리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들 배우들이 보여주었던 현실과 가상의 넘나듦은 기존의 작품과 미디어에 의한 노출을 통해 쉽게 예측 가능한 진폭이었다. 전도연이 영화 '내 마음의 풍금'을 통해 보여준 소녀적이고 청순한 이미지는 '인어 공주'에서 새롭게 재생산되어 '인어 공주'의 판타지를 낯설지 않게 해준다. 배우 전도연이 1인 2역을 하는 순간부터 관객은 자신들이 동참하게 될 판타지의 성격을 낯설지 않게 받아들이게 된다. 그것은 '내 마음의 풍금'에서 확인한 순수하고 청순한 세계일 것이다. 고두심이 TV와 영화를 통해 보여준 전통적인 한국의 어머니상과 억척스러운 생활력의 이미지는 고두심이 분한 어머니 연숙을 실재적인 모습으로 구체화시킨다. 연숙은 겉으로는 거칠지만 속으로는 따듯한 마음을 지닌 인물일 것이다. 그녀가 제주 출신이라는 사전 지식도 여기에 덧붙여질 수 있겠다. 박해일이 광고를 통해 보여준 예의 부드러운 이미지와 순수한 모습은 역시 소녀 연숙의 사랑을 더욱 해맑게 밝힐 수 있었다. 비록 아버지는 무기력하지만 어머니 연숙에 대한 정은 은근하고 부드러우며 애틋할 것이다. 착한 청년 박해일의 이미지는 아버지의 젊은 모습과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이러한 영화 외적인 이미지와 가상적 경험들이 '인어 공주'라는 텍스트 속으로 엮이면서 '인어 공주'가 꾀하고 있는 현실에서 가상으로의 진입과 여행을 매끄럽게 만들어주고 있다. 그렇다고 이들 배우들이 기존에 자신들이 갖고 있던 이미지를 복제했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러한 이미지의 차용과 변조가 충분히 예측 가능한 진폭 내에서 이루어지며 관객이 이질감을 느끼지 않고 '인어 공주'가 안내하는 판타지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는 말이다.
이와 같이 영화적 체험이라는 것은 단순히 극장 안에서 영화 관람을 통해 일단락되는 것이 아니다. 생태계가 미시적으로는 단선적인 먹이사슬로 구성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거시적으로는 복잡한 먹이사슬과 순환적인 연결 고리를 가지며 재생산되고 유지되는 것처럼,영화 역시 기존의 영화적 산물을 통해 새롭게 구축되고 재생산된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는 영화계(映畵系)의 일부이다. 비단 제작자나 배우들이 자신의 생산물이나 연기를 통해 재생산하는 것뿐만 아니라 영화를 관람하는 관객 역시 능동적으로 자신들이 갖고 있는 가상의 이미지를 배우에게 투사하고 또한 배우들이 만들어 낸 가상의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수용,창조,확인함으로써 영화계의 고리를 연결한다. 영화계는 단순히 영화 제작 현장,극장,영화,관객의 단선적인 구조를 취하지 않는다. 그것은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며 진화하는 무한 루프이며 가상과 실재의 경험이 복잡하게 연관되는 열린 공간이다. '인어 공주'에서 관객들이 가상의 판타지로 진입하게 되는 데에는 '인어 공주' 바깥에서 장기적이며 계속적으로 구축되어 온 배우들의 이미지 고리가 있었고,이와 같은 이미지 고리는 영화 '인어 공주' 이전에 배우들에게 관객이 투영한 바람의 산물이다. 이를 통해 '인어 공주'가 보여주는 과거로의 판타지 여행은 자연스럽게 영화의 흐름을 관통하며 관객과 함께 호흡할 수 있게 된다.
5.가상에서 현실로-초월적 실재로서의 영화경험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오고 극장의 불이 켜지면 영화 관람이라는 가상의 체험은 현실에 자리를 내주게 된다. 관객이 별다른 두려움 없이 영화라는 가상공간으로 진입할 수 있었던 것은 언제나 안전하게 되돌아올 수 있는 현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관객은 익숙한 몸짓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극장 밖으로 빠져나오며 다음 영화의 관람 전까지 휴지기를 갖는다. 이와 같은 순환 속에서 영화를 통해 체험된 가상의 경험은 현실의 관객이 삶을 성찰하고 변형시키는 힘이 된다. 영화 경험은 단순히 허구적인 경험이기 때문에 가상의 경험에 머물며 잊히는 것이 아니다. 영화를 통해 관객은 다른 이의 삶에 감정이입하고,그들을 통해 현실을 살아가는 힘을 얻으며,삶을 다각적으로 응시하고,새로운 의미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영화가 제공하는 가상의 경험은 단지 허구로 폄하할 수 없는 또 다른 실재가 된다. 그것은 현실과 가상 세계를 연결하며 현실을 변형하고 가상을 창조하는 물질적 경험이다. 구체적으로 나의 물리적 몸을 관통하고 이를 통해 현실이 변형된다는 의미에서 영화 경험은 체험(體驗)이다.
나영이 어머니와 화해하는 장면은 가상 경험이 현실과 관련을 맺으며 현실을 변화시키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나영은 가상 세계로의 여행을 통해 그녀가 그토록 싫어했던 어머니와 화해를 한다. 실연의 상처에 아파하는 젊은 연순에게 나영은 실제의 어머니에게는 말할 수 없었던 사랑과 그리움의 감정을 고백한다. 세속적이고 삶에 찌든 어머니이지만 그와 같은 변화가 어머니의 책임이 아니라는 것은 그 누구보다도 나영이 잘 알고 있다. 어머니는 욕을 입에 달고 살며 언제나 매몰차게 나영과 남편을 대하지만,그 속에는 누구보다도 착하고 정감이 넘치는 사랑을 갖고 있을 것이다. 나영이 제주로 여행하기 전부터 그녀의 가슴 속 깊은 곳에는 이와 같은 어머니에 대한 사랑이 존재했었다. 다만 현실적으로는 삶의 무게에 짓눌려 서로 마음을 열고 말할 기회가 없었고,이로 인해 어머니는 어머니대로,나영은 나영대로 서로에게 상처를 주었을 뿐이다. 어쩌면 그와 같은 현실을 감히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수도 있다. 나영이 가상공간의 힘을 빌려 가능하게 된 어머니와의 화해는 비록 상상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것이지만 이와 같은 상상적 경험이 실제로 아버지와 어머니를 재회하게 만들고 가족 간에 깊어졌던 감정의 골을 극복하게 만드는 현실적인 효과를 발생시키고 있다. 마치 관객이 영화를 통해 삶의 경험을 끄집어내고 구성해 내며 이로 인해 현실을 변화시키는 것처럼 말이다.
관객이 영화를 통해 체험하는 영화 경험은 현실과 가상을 관통하고 이들에게 각인되는 초월적 실재라 할 수 있다. 사실상 순수한 가상도,순수한 현실도 존재하지 않는다. 동전의 앞뒷면처럼 현실과 가상은 서로의 경계를 넘나들며 현실을 재편하고 가상을 구축한다. 영화계가 무수히 반복되는 영화 경험 속에서도 여전히 새롭게 생성되고 다양한 영화 경험들을 파생시킬 수 있는 것은 영화가 제공하는 가상의 경험이 밀접하게 관객의 물리적 현실 속으로 연관되고 영향을 미치며,이와 같은 경험들이 모여 새로운 영화적 경험을 만들기 위한 재원이 되기 때문이다. '인어 공주'가 인어와 공주의 결합으로 읽히는 이유도 영화에서 재현하고 있는 현실과 가상의 매끈한 봉합 때문이다. 현실에서 가상으로,가상에서 현실로 전환하며 액자 구성을 취하고 있는 '인어 공주'는 그 자체로 영화에 대한 메타-영화가 된다. -끝-
입력시간: 2005. 01.01.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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