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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세푸스 증언과 빌라도 보고서
성경 이외에도 예수에 대해서 그의 행적을 증거하는 역사적 사료가 존재하는가?
그러나 이상스러운점은 예수생존시기에 수많은 저술가의 저술에서 예수에 대한 자료를 전혀
찾을수가 없다는 점이다. 4복음서에는 예수의 예루살렘 입성시에 수많은 군중들이 호산나를
외쳤고, 예수의 오병이어 기적 때에는 모인 남자만 하더라도 5천명에 이르렀다고 한다.(여자
와 아이들까지 합치면 수만명이 될 것이다) 이렇게 대중의 지지를 받은 예수와 그의 추종자들
에 대해서 어째서 기록이 없는 것인가?
예를들어, 유대인 역사학자로서 많은 저술을 남겼던 필로 (Philo of Alexandria. BC 20~AD 5
0)는, 그 당시 결코 주류를 이룰 수 없었던 미미한 종교 분파인 떼라퓻 또는 에세네파에 대해
서도 자세히 기록한 바 있는데, 그의 온 저서를 통하여 예수가 언급된 곳은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저스투스(Justus of Tiberia), 노인 플리니(Pliny the Elder)등, 그 외 수십명의 예수와
동시대의 유대인 저술가 들이 있고 그들의 저술은 현대의 도서관 하나를 채우기에 충분한 양
이지만, 모두 예수에 관한 언급에는 실패 하고 있다.
예수가 로마의 저술가들에게 언급되고 있는 것은 기독교인들이 로마사회의 이슈가 된 수세기
이후, 예수에 대해서 세간에 떠도는 이야기가 언급 되고 있을 뿐이다. 대표적인 그런 저술로서
는 로마의 역사가 타시투스(Tacitus)의 저서 연대기(Annals)에서 기독교인들에 대해 언급을
들수 있다. AD 64년의 로마의 대 화재 발생시 네로 황제가 기독교인에게 책임을 돌린사건을
기록하면서, 기독교인(Christian)이라는 단어가 티베리우스 황제 통치시 빌라도에게 처형 당
한 크리스투스(Christus)라는 인물에게서 비롯 되었다는 것을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이 저술은 AD 112년에 기록된 것이므로, 그가 시중의 기독도들의 주장을 그대로 옮겨 적었을
따름이다. (학자들에 따라서 AD 116~117 년경에 작성된 문서라는 주장도 있음) 또한 그는 크리스투
스외 에도 많은 이방 신들에 대해서 마치 그들이 실체로 존재한 양 언급하고 있는 것을 볼 때
역시 예수의 실존성에 대한 자료는 불충분하다.
그러나 이러한 예수에 대해서 불충분한 자료와는 달리 주목받고 있는 저술이 하나있다.
바로 유대역사가 플라비우스 요세푸스(Flavius Josephus : AD 37~AD 101년)의 저술이다.
(1) 요세푸스 증언의 실체
플라비우스 요세푸스(Flavius Josephus)는 AD 37년에 유대 상류가문인 마티아스 가에서 태
어나 AD 68년 그의 나이 31세 때, 갈릴리 총독과 로마군에 대항하는 유대 독립군의 사령관이 되었다.
그의 군대가 요타파타 전투에서 전멸되자 요세푸스는 로마 장군인 베스파시안(Vespasian)과
그 아들 티투스(Titus)에게 포로로 잡힌다. 그후, 요세푸스는 친로마파가 되어 로마황제밑에서
부귀를 누렸던 인물이다.
그의 첫 번째 저서로는 유대 전쟁사(De bello Judaicae, 전7권)가 있으며, 여기서 그는 AD 66
~73 년에 일어난 독립 투쟁사를 기록 하고 있다. 이 기록이 아주 세밀한 것은, 본인 자신이
그 전쟁의 와중에 중요 인물로 활동 했기 때문인데, 이 책중 어디에도 예수에 대한 언급은 없다.
두 번째로 그의 자서전(Vita Josephi)이 있는데, 그 책에서 그는 자신의 출생 배경 부터 시작해
서 친 로마파가 된 자신의 합리화와 미화를 꾀하고 있다. 반(反)유대주의를 논박하는 내용의
아피온 반론(Contra Apionem, 2권)이라는 저술도 있다.
세 번째의 책으로 유대 고대사 (Antiquitates Judaicae, 전20권)가 있는데 예수에 관한 유일한
자료가 이 책의 사본들에 기록되어 있다. 이 책은 아담과 이브로 시작되어 아브라함을 비롯한
족장 시대, 출애굽을 망라하며 독립 전쟁 직전 (AD 66년) 까지의 유대인 역사를 서술 하고 있다.
집필 연대는 요세푸스가 밝히고 있듯이 도미티안 (Domitianus) 통치 제13년, 즉 AD 93~94 년이다.
책 뒷 부분에 문제가 되는 예수 인용구가 있는데 그 것 들을 보기로 하자.
첫 번째의 구절이다.
"이 무렵 예수라고 하는 현자가 있었다. 만일 그를 한 인간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그는 놀라운
기적을 행하는 자였으며, 진리를 기쁨으로 받아들이는 이들의 선생이었다. 다수의 유대인들뿐
만이 아니라, 헬라인들 중 많은 이들이 모여들었다. 그는 구세주였다.
우리 지도층에 있는 사람들이 그를 고소했고, 빌라도는 그를 십자가에 처형하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처음부터 그를 사랑하던 자들은 멈추질 않았다. 그는 3일 째 되는 날 다시 부활해서
그들 앞에 나타났다. 이는 하나님의 예언자들과 다른 많은 놀라운 일들이 그에 관해 선포했던
일이었다. 그를 따라 그리스도인들이라고 명명된 무리들은 아직까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유대고대사 18 권 63~64절]
또 하나의 두 번째 구절을 보자, 유대고대사를 통털어 예수 인용구는 이 두 구절 뿐 이다.
"그는 즉 구세주라 칭함 받는 예수의 형제, 야고보와 몇몇 다른 인물들을 산헤드린 앞에 소환한다.
그들을 정죄 하여 돌에 맞아 죽게 한다." [유대 고대사 20권 200절]
위에서 언급한 두 구절은 성경에 나타나는 예수와 얼마나 정확히 부합되는 묘사인가?
하지만 그 구절들은 중세부터 현대에 까지 끊임없는 조작시비를 불러일으킨 부분이다.
원래에 없었던 구절이 필사본으로 전해지는 동안 덧붙여 진 것이다.
이 구절들에 대한 끊임없는 논란의 역사적 배경을 골드버그의 서술로 먼저 간단히 훑어 보자.
AD 93년: 유대고대사가 로마에서 발간되다.
헬라어로 쓰여진 원본들의 권말에는 티투스 황제가 직접 서명하고 발간을 윤허 했다. 지금 우
리가 가지고 있는 것들은 이 원본들이 아니다. 원본들은 한 권도 남아 있지 않다. 현재 남아있
는 가장 오래된 사본도 10 세기경의 것으로 추산 되고 있다.
220~250년경: 유명한 초기 기독교 변론자인 오리겐(Origenes : 오리게네스라고도 불림)은
헬라적 신화를 차용해서 예수신화를 만들어 냈다고 비판하는 이교도들에 대항해서 '첼수스에
대한 반론'(Contra Celsus)을 기록했다.
이 책에서 그는 "요세푸스는 예수를 믿지 않았다"고 기록했다.
예수라는 이름은 당시 아주 흔한 이름이었는데, 요세푸스의 저작물들 속에서도 여러 명의 예
수들이 등장한다.
하나는 선원들을 선동했던 사피아스(Sapphias)의 아들 예수,
도적단의 두목으로 체포된 예수,
7년 동안 예루살렘 주변을 돌아다니며 "슬프다, 슬프다, 예루살렘이여 슬프다!"를 외치다가
여러 번에 걸쳐 두들겨 맞았지만 어떠한 저항도 하지 않았던 예수가 있다.
(결국 이 예수는 예루살렘 함락 때 돌에 맞아 죽었다고 한다)
오리겐은 자기가 원하는 예수를 찾을수 없어서 실망한것 같다.
324년: 추기경 유세비우스가 처음으로 문제의 구절을 인용하는데, 이 내용은 현존하는 복사
본들의 내용과 거의 똑같다.
10 세기: 아랍 역사 학자이자, 아랍지역의 기독교 추기경인 아가피우스가 두번째 구절을 인용
한다. 그런데 그의 인용구는 유세비우스의 인용 내용과는 조금 다르다.
"유대인 통치에 관한 저술에서 유대인 요세푸스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 이즈음 예수라 불리는
현자가 있었다. 그의 행실은 의로웠으며 고결한 인품의 소유자였다. 많은 유대인과 이방인들이 그의 제자가
되었다. 빌라도가 그를 처형 했다. 그러나 그의 제자들은 제자 직분을 버리지 않았다. 그들의 보고에
의하면 예수는 3일만에 부활 해 그들 앞에 나타내 보였다. 따라서 그는 아마도 선지자들이 예언했던
구세주였던 것 같다"
16 세기: 1500 여년 동안 아무도 의심 하지 않아 오다, 16 세기에 들어 와서야 조셉 스칼리거
라는 인물이 18권에 등장하는 구절의 진위를 의심 하기 시작했다. 기독교 색채가 너무 짙다는
것 이었다.
17 세기: 리차드 몬테규 추기경이 "그는 구원자 였다"라는 구절이 훗 날 기독교인이 복사 과정
에서 덧 붙여 쓴 것이라고 주장했다.
1737년: 요세푸스의 저술들을 번역했던 위스튼이 요세푸스가 기독교인 이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두 번째 구절 전체가 원래 그에 의해 쓰여 졌을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18 세기~ 20 세기 초반: 많은 학자들이 상기 구절이 전체 또는 부분적으로 위조 되었다고
주장했다.
1929년: 대커리가 위조설을 지지하면서, 누가 복음과 유대 고대사에 공통 점이 많음을 지적했다.
그는 누가와 요세푸스의 상면 가능성도 주장했다.
1931년: 아이슬러가 기독교 검열 하에 많은 부분의 삭제가 있었다며 그 나름대로 재수정 복구된
구절을 제시했다.
1941년: 마틴이 부분적인 위조를 지적 하고 나머지 부분은 정확 하다고 주장했다.
1954년: 폴 윈터가 위조된 곳은 세 곳 뿐이며 나머지는 정확 하다고 주장했다. 세 군데 위조는
"그는 구원자였다", "사람이라고 불릴 수 있을까?"의 두 구절과 뒷 부분의 예수가 부활했다는
구절 이었다. 이 주장은 당시 많은 공감을 샀다.
1960년: 콘젤만이 누가 복음과 사도 행전에 내포된 신앙관과 문제의 두 번째 구절간에 공통성
을 발견하고, 18권의 문제 구절 전체가 기독교인에 의해 위조 됐다고 주장했다.
1963년: 펠드만이 거의 모든 부분이 정확 하다고 단정했다.
1971년: 파인스가 9~10 세기 아랍 및 시리아 본을(위에서 언급한 아가피우스의 구절) 발견하고,
이들 사본에는 "구원자" 구절과 "인간이라 부를 수...." 두 구절이 포함되어 있지 않음을
들어 이것이 위조되지 않은 원본 기록일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1973~1983년: 렝스토푸가 요세푸스의 저술을 집대성하여 용어 색인 체계를 만듦으로 학자들
의 연구에 편리하게 했다.
1984년: 버즈올이 렝스토푸의 색인 체계를 이용 하여 두 번째 구절의 문체를 분석하면서,
요세푸스의 문체와 너무 다르므로 구절 전체가 위조라고 주장 했다.
1991년: 마이어가 폴 윈터의 설을 지지 하면서 세 군데만 위조 됐다고 주장했다.
1995년: 골드버그가 컴퓨터를 동원하고 통계학의 개념들을 이용하여 두 번째 구절과 누가복음의
엠마오 노상의 이야기(예수가 부활 해서 엠마오로 가던 두 사람에게 나타난 이야기)에 신기한
공통점을 발견한다. 따라서 두 번째 구절과 "엠마오 이야기"는 이제는 잃어 버린 어느 초대 기독교 문서에
공통적으로 근거를 두고 있다고 주장하다. 결론으로 그는 "구원자" , "사람일수..." 구절 두 개만 빼고는
전부 원본에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거의 모든 학자들이 부분적이건 전체적이건 위조가 있었다는 사실에는 동의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의 저술중의 예수에 대한 구절의 문제점은 무엇인가?
첫째로 유대교의 제사장인 요세푸스의 말에 따르자면 성경은 신의 영감으로 된 것이므로 일정
한 계시의 기간에만 이루어 진 것이다. 즉 성경은 모세로 부터 아닥사스(Artaxerxes, BC 465
~ 424)왕 때까지 기록된 것이라고 주장한 요세푸스는 철저한 유대인이었다.
그의 저술에 의하면 로마의 식민 통치하에 소작 농민들은 25%의 세금과 사원에서 부과하는
22%의 헌금 등으로 궁핍한 생활을 하는 동족들앞에 이상한 옷차림을 하고 신탁을 알리는 자칭
선지자들이 득시글 거렸다고 한다. 그들은 여러 가지 비유(譬喩)와 알레고리(寓話)로 사람들
을 현혹하여 설교하며, 멀지 않아 전쟁이 일어나 메시아가 나타나서 세계를 통치하게 될 것이
라는 예언을 퍼트리며 돌아 다녔는데, 이 소문들을 이용하여 스스로 메시아라고 자처하며 게
릴라 투쟁에 지도자로 나선 무리가 무수히 많았다고 한다. 유대교를 신봉하면서, 동시에 매국
노였던 요세푸스는 유대인의 무장독립투쟁을 모두 사기꾼,강도등으로 간주했다.
"파두스가 유대의 총독이던 시대에, 테우다스라는 이름의 어떤 사기꾼이 많은 수의 대중을
선동했다. 그는 대중들에게 소유물을 가지고 요단강으로 그를 따라오라고 선동했다. 그는 그가
예언자이며, 그의 명령에 따라 그 강이 갈라지고 그들을 쉽게 건너게 해 줄 것이라고 말했다."
[유대고대사 20권 97절]
"이집트에서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 와서 자기가 예언자라고 선언하고, 대다수의 대중들에게
그를 따라 예루살렘에서 5퍼얼롱(furlongs) 떨어져 있는 올리브 산으로 나가자고 선동했다.
그는 그곳에서 그의 명령에 의해 예루살렘 성이 무너지는 것을 보여 줄 것이며, 그 때 그들이
예루살렘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유대고대사 20권 169~70절, 유대전쟁사 2권
261~62절]
요세푸스는 당시 갈릴리의 유다, 페레아의 시몬, 톨로마이오스, 테우다스,등 메시아를 사칭하여
폭동을 일으켰던 자들에 대해 모두 사기꾼들로 평가했다.
그런데, 예수와 관계된 문제의 구절은 그가 예수의 신성과 기적, 심지어 부활까지 인정하고 있는
것으로, 요세푸스가 마치 기독교인인 것처럼 착각하게 만들 정도이다. 다시 말하자면, 독실한
유대인이 기독교를 믿는 것처럼 말하고 있는 것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만약 요세푸스가 문제의 그 구절을 직접 기록했더라면, 예수도 사기꾼처럼 묘사했을 것이고,
역설적으로 그것이 예수의 실존성을 증거한 중요한 증거가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두 번째로, 유대인의 매국노라고 볼수 있는 요세푸스가 메시아라고 주장했던 사람은 바로
로마황제였다! 유대-로마 전쟁때 패배하여 베스파시안 앞으로 끌려간 요세푸스는 그가 바로
유대인이 학수고대하는 메시아이며, 곧 로마황제가 될 것이라고 예언한다. 요행인지 몰라도
그의 예언은 적중하여 베스파시안은 69년에 로마황제로 등극한다.
황제는 예언에 대한 보답으로 요세푸스를 로마에 데려가 측근의 한 사람으로 삼았다.
그를 가르키는 '플라비우스 요세푸스'(Flavius Josephus)라는 말도 '플라비우스 왕가의 요세푸스'라는 뜻이다.
요세푸스는 베스파시안이야 말로 유대인들이 기다리고 소망하여 왔던 메시아이며, 그와 티투스는
멀지 않아 로마의 황제가 될 것이라고 아첨을 했던 사람이었다. 그는 고대의 신탁에서 예언된 메시아가
바로 베스파시안과 티투스임을 주장하며, 메시아를 사칭하여 로마에 대해 무장투쟁을 일삼는 유대동족들을
비난했다.
그런 요세푸스가 '유대 고대사'에서 갑자기 그의 정치적 처세술을 모조리 부정하고, 예수를 메시아로
칭송하는 글을 남긴셈이다. 한술 더 떠서 티투스 황제가 그의 책에 서명을 하고 발간을
허락한 셈이 되니 더욱 어이없는 일이다.
세 번째로, 요세푸스는 장황설을 늘어놓는 작가로, 그는 보다 중요성이 적은 사람들에 대해서도
광범위하게 썼다.
예수에 대한 부분 만큼은 선행한 구절이나 뒤따르는 구절과 아무런 연관이 없으며 문제의
구절은 다른 부분과 문체까지도 다르다. 즉, 문제의 구절만 빼버린다면 완벽한 그의 문체가
이루어지는 셈이다. 또, 그 구절은 유대인들에게 닥친 재앙에 관한 이야기들의 모음들 가운데에
나오는데, 그 구절이 차지하는 위치는 그 역사가의 글에 공간을 만들기 위한 개작의 손길에 의해
나뉘어졌음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네번째로, 요세푸스의 저술인 유대 고대사는 안티오코스의 예루살렘 점령 부터 AD 70 년의
예루살렘 함락 까지의 내용을 유대전쟁사에서 그대로 복사하고 있다. 빌라도가 군중 시위를
진압하는 과정 등 다른 부분들은 거의 동일하게 서술 되었는데 유대전쟁사에서는 유독 상기의
예수 인용구들만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
다섯번째로 유대고대사의 사본들이 전부 기독교인들의 관리 하에 전수 되었으며, 초대 교부들
과 기독교 변증가들은 왜 요세푸스의 저술을 인용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유대고대사는 초대 기독교인들에게도 상당히 인기가 있었으며 그들은 열광적으로 그 책을 읽
었고 소중히 여겼다. 초대 기독교인들은 예수의 실존과 그의 놀라운 기적들에 대해 끊임없는
질문을 받았고, 이러한 과정은 초대교부들의 저술에 반영되어 있다. 하지만 아무도 이렇게 좋은
증거물을 제시 하지 않았다.
유대고대사가 발간된 것이 AD 93 년경 이었는데, 거의 140~250년이 흘러간 AD 324년이
되어서야 유세비우스 추기경에 의해 처음으로 문제의 구절이 처음 인용 되었다.
마샬 거빈(Marshall J. Gauvin)은 "유세비우스는 신앙의 명분 아래 문서 변조를 지원 하였고
요세푸스외의 여러 저술가들의 책들도 변조 시켰다"고 말하며 문제의 구절은 유세비우스의
위조품이라고 혹평했다. 마찬가지로 요셉 웰레스도 문제의 구절이 유세비우스의 위조작 이었다고
지적 한다. 요셉 웰레스는 많은 연구 끝에 당시 교부들 사이에 유행하던 문서 변조의 행태를
캐어 낸 인물이다. 그는 문서 변조의 대표자로 유세비우스 추기경을 꼽았다.
유세비우스 자신도 그의 저서 '복음적 증명'(Evangelical Demonstration)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의 구세주에 관하여, 내가 이미 생산(?) 해낸 이 증거들 만으로도 충분 하다. 하지만 유대인
요세푸스를 여분의 증인으로 이용 하는 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Eusebius/ Ev
amgelical Demonstration, Book III / P.124]
유세비우스 자신도 그것이 조작이었음을 솔직히 토로하고 있는 것이다.
역사와 이성의 모든 논증들은 그 구절이 염치없는 위조임을 증거한다. 이러한 이유로 정직한
기독교 학자들은 누구나, 그것을 첨삭된 것으로써 버려왔다. 딘 밀먼(Dean Milman)은 "그것
은 많은 추가적인 구절들과 함께 첨삭 되었다."고 지적했으며, 브리타니카 백과사전을 썼던 딘
패러(Dean Farrar)도 "요세푸스가 현재 있는 것과 같은 구절을 전부 썼다는 것은, 제대로 된
정신의 비평가라면 절대 믿지 않는다."로 혹평했다.
챔버스(Chambers) 백과사전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요세푸스의 유명한 그 구절은 일반적으로 첨삭임이 인정된다." [The Chambers Encyclopedia]
왈버튼(Warburton)주교는 그것을 "비열한 위조이며 매우 어리석은 것이기도 하다"며 비난했다.
(2) 빌라보 보고서
한편, 요셉푸스의 기록 외에도 기독교인들이 만들어낸 조잡한 위조문서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빌라도 보고서라는 것이 있다.
필자가 조잡한 위조라고 말하는 것에 분개하는 기독교인들이 많을지 모르겠는데, 정말로 위조
를 하려면 그럴듯하게 해서 사기를 쳐야 할것이다. 예를들어 앞에서 언급한 요세푸스의 문제
의 구절을 경우를 따져보자. 요세푸스의 저작물을 이용해 예수가 실존인물이라는것을 증거하
는 자료를 위조하려 한다면 머리좋은 사기꾼은 다음과 같이 위조할것이다.
"그 무렵 예수라는 사기꾼이 존재했다. 그는 스스로를 구세주라고 칭하며 대중들을 미혹했다.
우리 지도층에 있는 사람들이 그를 고소했고, 빌라도는 그를 십자가에 매달아 처형했다. 그러나
그를 따르는 추종자들은 예수가 3일만에 부활했다는 헛소문을 퍼트리며 다니며 백성들을
선동하고 있다."
기독교인은 이글을 읽고 분노를 느낄지 모르겠으나, 요세푸스가 위와같이 예수에 대해 부정적
으로 기록을 했다면 역설적으로 예수의 실존성을 알려주는 중대한 자료가 되는 것이다. 특히
요세푸스의 정치성향과 그가 다른 유대인 메시아들을 강도나 사기꾼으로 매도했던 여러 정황
을 파악하면 더욱 그렇다.
바로 이런 글의 대표적으로 꼽히는것이 이른바 빌라도 서신이다.
한동안 빌라도 보고서라는 글이 인터넷에 떠돌아 다녔다. 기독교들의 주장에 따르면 이문서가
빌라도가 로마황제에게 보고한 법정에서 만들어진 공식적인 문서라고 이며, 현재 터어키의
성 소피아사원(寺院)에 소장되어 있다고 한다.
필자는 이 빌라도 보고서라는것에 대해서 자료를 수집하려고 했으나, 하나같이 전부 똑같은
카피글 뿐으로써, 이 문서에 대한 어떠한 배경자료를 전혀 찾을수 없었다. 수많은 카피글에는
모두 판에 박힌 듯 "본 보고서의 내용은 도날드 N.리드만박사가 소정의 요금을 지불한 후 특별
허가를 얻어 읽고, 영어로 번역하여 예루살렘에서 간행(刊行) 되고 있는 월간더 마운트 자이언
리포터(The Mount Zion Reporter 시온산 보고서; June 1974)에 게재한 것을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라고 간단히 언급 되어 있을뿐이었다.
그 글을 퍼트리고 다닌 기독교인들은 한결같이 빌라도가 황제에게 보낸 공문서임을 주장하고
있으나, 읽어보면 너무나 어처구니가 없다.
"제가 생각하기로는 우리 조상의 종교는 예수의 종교로 대치될 것이며, 이 숭고한 관용의 종교
는 로마제국을 허망하게 붕괴시킬 것입니다. 그리고 가련한 저는 유대인의 말을 빌자면 하나
님의 섭리요, 우리의 말대로 하자면 운명의 도구로 쓰여진 것일 것입니다."
빌라도는 보고서 전반에 걸쳐 예수를 칭송하고 있는데, 특히나 위에서 인용한 구절은 정말로
어처구니가 없다. 로마의 종교를 비하하고, 로마제국까지도 붕괴할것이라는 말을 감히 황제에
게 보고 했다는 것이 믿어지는가?
그런데 안티 기독교 운동을 하시는 다른 분이 필자에게 알려준 제보에 의하면 인터넷에 떠돌
던 그글은 미국 미조리주, 분스빌(boonsville)이라는 마을 출신의 마한(W. Mahan)목사의 작
품이라고 한다. 1884년에 마한 목사는 적어도 12개의 날조 문서(The Archaeological and the
Historical Writings of the Sanhedrin, Talmuds of the Jews, Translated from the Ancient P
archments and Scrolls at Constantinople and the Vatican at Rome 등등)를 발표했다고 한다.
문제의 빌라도 보고서는 프랑스의 극작가 요셉메리(Joseph Mery)가 1837년에 르뷔 드 파리
(Revue de Paris)에 발표한 폰스 빌라도 비엔느(Ponce Pilate a Vienne)라는 소설을 베낀것이
며, 다른 저작물들 중에는 유명한 벤허까지 베꼈다고 한다.
이 일로 인해 마한목사는 법원에 고소 되어 1년간의 자격정지 처벌을 받았으나 그가 남긴 날
조문서는 계속해서 출판되고 있다고 한다.
인터넷에 떠돌아 다니던 빌라도 보고서가 19세기 미국 목사의 창작물 이었다는 점에 필자는
맥이 빠진다. 그런데 빌라도가 예수를 칭송하는 내용으로 편지를 써서 로마황제에게 보냈다는
이른바 빌라도 서신이라는 고문서는 정말로 존재한다. 아마도 빌라도가 기독교의 성자였다는
오래된 전승이 유럽을 떠돌아 다니다가 결국 어느 소설가를 만나 그의 글속에 녹아 들었는지
모른다.
중세의 카톨릭 전승에 따르면 빌라도의 아내 프로클라는 기독교인이었으며 성인의 대열에 들
어가 있다. 이디오피아에서는 빌라도 부부가 성인으로 되어있다.(카톨릭과 이디오피아의 성인
축일표에도 빌라도 부부의 날이 있다) 또한 초대교회 서술가 테르툴리아누스는 빌라도를 성인
과 비슷하게 취급했다. [윌리스 반스토운 / 숨겨진 성서(the other bible) 2권 / 이동진 역 /문
학수첩 / p.365]
이런 배경을 기반으로 빌라도를 성인(聖人)으로 올려놓기 위한 빌라도 보고서는 또 있다.
위에서 언급한 어느 목사의 위조문서가 아니라, 대영박물관에 소장 되어있는 6세기~7세기의
시리아어 필사본이 숨겨진성서(the other bible)에 소개되어 있다. 빌라도의 서신들은 비슷한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본문의 내용이 각각 다른 유사문서들이 여러 가지 버전으로 현존하고 있
다. (인터넷에 떠돌던 그 빌라도 보고서와 착각하면 안된다. 빌라도가 예수를 찬양하는 내용을
담아 황제에게 보낸것은 동일하지만 본문의 내용은 완벽하게 다르다.)
숨겨진 성서(the other bible)의 저자는 빌라도 서신에 대해 이렇게 설명해 놓았다.
"티센도르프 박사는 그의 저서 비경전 계시록들에서 파리 필사본 가운데 그리스어로 된 사본
을 구했는데 '본문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논의할 가치가 없다.'라고 말했다. 빌라도의 편지 뒤
에는 후대에 필사자가 추가한 요약 구절이 들어있다. 거기 나오는 유스티누스는, 역사가 요세
푸스가 자기와 동시대의 역사가라고 말한 티베리아의 유스투스로 이해된다.
우리는 이 요약된 구절의 진정성을 찬성하는 쪽으로 기울 수가 없다. 유스투스가 그리스도에
관해서 언급한 적이 없다고 포니우스가 증언하기 때문이다. 테오도루스라는 인물을 우리는 티
베리우스 황제라고 이해한다." [윌리스 반스토운 / 숨겨진 성서(the other bible) 2권 / 이동진
역 / 문학수첩 / P.347]
위조화폐의 경우에는 정밀성이 요구된다. 그러나 고대의 위조문서들은 메스메디아 부재나 지
식의 일부층 독점등으로 그 위조의 수법이 유치해도 무지자들은 그대로 믿을수 밖에 없었다.
빌리도 서신이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문서인지는 직접 읽어보기만 하면 금새 알수가 있다. 로
마총독이 공식적으로 왕들에게 보냈다는 공문서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예수에 대한 찬양으로
가득하다. (위에서 언급한 위조 빌라도 보고서와 유사하다)
아예 한술 더 떠서 헤롯이 빌라도에게 보낸 서신중에는 "당신네 부부는 밤이나 낮이나 예수를
기억하면서 허리에 띠를 두르고 정의로움을 받아들이십시오"라고 권하기도 한다. 이쯤되면 빌
라도 뿐만 아니라 헤롯 까지도 기독교로 개종한듯 보인다.
한편, 빌라도가 헤롯에게 보낸 서신에 따르자면, 그는 백부장 롱기누스로부터 예수의 부활에
대한 보고를 받는다. 그리고 빌라도와 그의 아내앞에 부활한 예수가 등장한후, 두 부부는 예수
의 앞에 엎드려 눈물을 흘리며 기도를 했다고 한다. (이 편지들은 직접 전문을 다 읽어보면 너
무도 기독교적인 찬양과 서술에 조잡한 위조를 한눈에 알아채게 만든다)
그리고, 빌라도가 로마황제에게 보낸 서신들은 위의 빌라도의 보고서와 유사한 성격의 문서이
다. 이 서신에도 후대의 필사자가 "빌라도는 개인적인 보고서와 함께 아래 내용을 로마의 황제
에게 보고했다"라면서 이것이 공문서임을 미리 언급하고 있다. 그리고, 숨겨진 성서에는 앞에
서 소개한 빌라도 보고서 바로 뒤에, 내용은 유사하지만 또 다른 빌라도 보고서가 2개 더 실려
있다. 전부 유사한 내용이지만 각각 다른 글들인 것이다. 빌라도는 똑같은 내용의 서신을 황제
에게 계속해서 보냈단 말인가?
빌라도 보고서라고 주장하는 여러 가지 버전의 글들을 보면 한눈에 그 조잡함을 느끼게한다.
한마디로 평가하자면 복음서의 축소판에 불과하다. 즉, 예수가 병자들을 치료한 기적으로 서
신의 대부분의 지면을 할애하고 있는데, 복음서에 있는 나자로의 부활, 예수의 옷자락을 만진
후 치유된 여인...등등 복음서의 내용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예수의 기적이 실제로 있었던 것이라고 가정해도, 빌라도는 이런 기적들을 자신의 눈으로 직
접 본것도 아닐텐데, 이런 기적행위들로 서신의 대부분을 할애해서 공문서를 작성한 보낸 빌
라도는 황제에게 예수를 믿으라고 호들갑을 떨고 있다.
그리고 숨겨진성서에서 이 빌라도 서신과 함께 소개되어 있는 빌라도의 최후는 더 가관이다.
빌라도의 최후 역시 두가지 버전이 있다.
첫번째는 빌라도를 성인으로 만든 파라도시스이다. 편지를 읽고 난 로마황제는 "그렇게 위대
하신 분을 죽였단 말인가?"라고 화를 내며, 빌라도를 로마로 소환하여 목을 베라는 사형선고
를 내린다. 사형을 당하기 전 빌라도는 기도를 했고, 그 순간 하늘에서 빌라도를 축복해 주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그의 목이 떨어지자 천사가 빌라도의 머리를 받았으며, 그 모습을 본
빌라도의 아내 프로크라는 기쁨에 넘쳐서(?)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또 하나는, 빌라도의 처참한 자살버전이다. 빌라도의 편지를 읽은 황제는 화가 나서 그를 소환
했으나 빌라도는 예수의 옷을 걸치고 황제앞에 나타났다. 예수의 옷을 걸친 그를 볼때마다 이
상하게 황제는 분노가 사그러 들었다. 그런데 황제의 측근인 어느 기독교 신자가 빌라도의 옷
을 벗겨 보라고 귀뜸해 준다. 빌라도의 옷을 벗기자 황제는 분노가 치밀어 올라 빌라도에게 사
형선고를 내렸다. 하지만 빌라도는 처형당하기전에 자신의 단검으로 자살해 버렸다.
빌라도 보고서는 여러 가지의 버전이 있으며, 담긴 내용조차 도저히 공문서라고 볼 수 없는 기
독교인들의 조잡한 문서일뿐이다. 차라리 빌라도 복음서라고 부르는게 더 나을것이다.
▶ 신화를 벗겨낸 예수의 정체?
루돌프 불트만(Rudoph Bultmann)의 양식비평에 따르면 복음서의 내용은 예수 추종자들에 의
해 기록된 '신앙의 그리스도' (Christ of faith)이지 '역사적 예수'(historical Jesus)가 아니라는
것이다. 양식비평(Form criticism)이란 복음서가 형성되기 이전에 여러 구전(oral traditions)
들이 전해졌다고 보고, 그 구전들을 여러 양식(forms)으로 분류하여 원래의 상황(Sitz)들을 찾
아보자는 것이다.
이러한 비평을 통해 불트만은 지금의 복음서는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그는 초대 교회 당시 예수에 관한 많은 구전들과 이야기들이 존재 했었고, 교회라는 공동체가
이러한 것들을 그들 의도대로 편집했다고 주장했다. 예를 들어, 복음서에 나오는 "다음날", "즉
시", "길 가실때에" 등의 구절들은 여러 다른 구전 자료들을 서로 잇기 위한 수단이었다는 것이
다.
또한 복음서 안에 있는 문서, 시간, 장소 등의 표시는 비역사적이며 믿을 수 없는 것이므로
이러한 것들은 다 떼어내어야 한다고 말하면서, 초대 교회의 인위적인 편집을 해체하여 이 기
록에 들어있는 구전의 원 형태를 찾아 최초의 전승을 재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늘날, 아무리 보수적인 복음주의 신학자라고 할지라도 크리스마스와 부활절이 이교도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것은 대체로 동의하고 있다. 다소 진보적인 자유주의 신학계에서는 예수의
동정녀 탄생과 부활을 신화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독일의 '종교사학파'를 비롯하여, '탈
신화화'를 주창한 불트만과 미국의 '예수 세미나' 학파에게 이르기까지 예수의 일대기에서 신
화를 걷어내려는 노력은 끊임없이 시도 되었다.
충격적이겠지만, 최근에 전세계적으로 기독교계를 강타한 '예수는 신화다' (The Jesus Myster
ies)에서는 동정녀 탄생과 부활은 물론, 예수와 관련된 모든것들이 이교도 신화와 헬라철학에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티모스 프리크와 피터 갠디는 예수에게서 이교도 신화와 헬
라철학을 걷어내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고 단호하게 주장한다!
필자는 대체적으로 이들의 주장에 동조하면서 다음장에서는 예수에게 씌워진 신화의 장막을
걷어낼 것이다. 그러나 예수에게서 이교도 신화와 헬라철학을 걷어내면 정말로 아무것도 남지
않을까?
그 점에 대해서는 필자는 약간의 의구심이 남는다. 필자가 파악한 바로는 이교도 신화와 헬라
철학을 걷어내고 남겨지는 것은 전혀 낮선 모습의 이상한 예수이다!
(1) 예수의 제자들은 유대혁명가?
가롯 유다는 예수를 은화 30냥에 팔아먹은 배신자로 모든 기독교인에게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의 행적에 대한 구체적 기록을 더듬어보면 석연치 않은 점이 적지 않다.
예컨대 유다가 예수를 배반한 이유가 실망감 때문 이었다는 것이다.
예수가 베다니에 있을때 마리아라는 여성이 예수에게 향유를 부었다. 당시 향유는 일반인은
만지지도 못할 엄청나게 비싼 것이었다. 그러자 가롯유다가 "어째서 향유를 팔아 가난한 사람
에게 나누어 주지 않는가?"라고 꾸중하자, 예수는 그 여자의 행위를 옹호한다. [요한복음 12
장 3~8절, 마가복음 14장 3~9절, 마태복음 26장 6~13절]
가롯유다는 이러한 예수에게 실망을 느낀 것이 아닐까? (반면에 누가복음 22장과 요한복음 1
3장에는 '악마' 가 들었기 때문이었다고 다소 엇갈리는 설명이 나와 있다. 덧붙여 이야기 하자
면 한국목사들은 예수에게 아낌없이 바치는 이 구절을 악용하여 신도들의 고혈을 빨아먹는데
심심하면 이용하고 있기도 하다.)
유다이름의 가롯(Iscariot :이스가리옷)은 당시 열심당(Zealots)을 지칭하는 단어인 '자객'(sic
arri)과 라틴어 '시카리우스'(sicarius) 발음상 매우 유사성을 가지고 있다.
'자객'(sicarri)은 열심당 계열의 엘리트로 직업적인 암살자를 칭하는 말이었다. 슐테스(Schult
hess)와 벨하우젠(Wellhausen)은 '가롯'(이스카리옷)은 아람어로 암살자를 뜻하는 이스카르
야아('isqarya"a)에서 파생된 말로 보고 있다. [정인찬 / 성서대백과사전 / 서울: 기독지혜사,
1992 / P.67]
그가 예수를 배반한 이유는 돈 때문이 아니라 예수가 로마의 식민통치로부터 해방시켜 줄 정
치적 메시아이길 바라는 열심당원이었기 때문에 실망해서 배반했다는 설이 가장 많이 알려져
있다.
그러나 문제는 가롯유다뿐만이 아니라 다른제자들의 이름 역시 열심당원임을 시사해 준다는
점이다.
마태복음 16장 17절에서 예수는 시몬 베드로를 가르켜 '무법자'라는 뜻으로써 열심당원들에
게 흔하게 따라붙는 이름이었던 'baryona'에서 파생된 '바르요나'(Bar-jona)로 부른다.
예수는 마가복음 3장 17절에서 세배대의 아들 야고보과 요한을 가르켜 '보아너게'(Boanerge
s) 즉 '천둥의 아들'(sons of thunder)이라 불렀다. 누가복음 9장 51~55절에서 야고보는 그런
별명을 얻기에 합당한 발언을 하는데, 예수를 환대하지 않는 사마리아 전역을 불로 태워 버리
자고 주장한다! 히브리어로 '천둥의 아들들'(benei ra'ash)역시 당시에 열심당을 부르는 또 다
른 말이었다.
"마태와 도마와 및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및 셀롯이라 하는 시몬과" [누가복음 6장 15절] -
공동번역판에는 "혁명당원 시몬"
또 한명의 제자인 시몬은 열심당(Zealots)이었다고 한다. (시몬 베드로와는 다른 또 다른 사람
이다.) 누가복음에서 등장한 '열심당원 시몬'이 마태복음 10장 4절에는 '가나안 사람 시몬'으
로 등장하는데 헬라어 원문의 '카나나이오스'(Kananaios) 시몬의 오역이라고 한다. '카나나이
오스'는 '열광적'을 의미하는 열심당에 대한 아람어이다.
또한 예수와 함께 못박힌 두 강도는 열심당일 가능성이 크다.
당시 유대인의 무장투쟁으로 인해 로마는 질서 유지를 위해서 종종 십자가형을 사용했다고 한
다. 요세푸스의 말에 따르자면 "십자가형은 사망의 모든 방법 중에서 가장 파멸적인 것" 이라
고 했는데, 당시에 무장투쟁을 일으킨 수많은 유대인들이 십자가 처형을 당했다. 십자가 처형
은 일반적인 범죄자보다는 반역자에게 주로 내리는 최고의 형벌이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또한
열심당원들은 당시에 강도라고도 불렸다.
앞서 필자가 '시대상황과 무관한 복음서'라는 글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오늘날 전해지는 복음
서속에서는 당시 피바람이 몰아치던 당시 유대사회의 상황을 파악하기 힘들다. 그러나 놀랍게
도 예수 제자들의 이름속에서 열심당의 흔적이 무수히 발견되는것은 무엇일까?
(2) 칼을 뽑아든 예수!
예수에 대해 일반인들이 갖고 있는 이미지는 '사랑과 평화의 예수'이다.
그러나 4복음서를 살펴보면 숨겨진 예수의 또 다른 단면을 살펴보고 있다.
알려진것과는 달리 또 다른 예수의 단면은 우리가 보아온 예수 영화속에 표현된 그런 성품과
는 거리가 멀어보인다. 또 다른 예수의 모습은 다분히 독단적이고 위협적이며 인자하거나 후
덕해 보이지 않는다.
안티 기독교 운동가들은 납득하기 힘든 이러한 예수의 언행을 지적한바 있다. 마찬가지로 필
자도 안티 기독교 활동을 하던 예전에는 예수의 납득하기 힘든 언행을 지적한 바 있으나, 곰곰
히 따져본 결과 무엇인가 감이 잡히는것이 있었다. 그래서 납득하기 힘든 이러한 예수의 언행
을 지적하는 차원을 넘어서 분석을 시도 해보고자 한다.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내가 온 것
은 사람이 그 아비와 딸이 어미와 며느리가 시어미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다. 사람의 원수가 자
기 집안 식구니라.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또 자기 십
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리라.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
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 [마태복음 10장 34~39절]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려고 온 줄로 아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도리어 분쟁케 하
려 함이로라. 이후부터 한 집에 다섯 사람이 있어 분쟁하되 셋이 둘과, 둘이 셋과 하리니, 아비
가 아들과, 아들이 아비와, 어미가 딸과, 딸이 어미와, 시어미가 며느리와, 며느리가 시어미와
분쟁하리라 하시니라." [누가복음 12장 51절~53절]
일반인들이 예수에 대해 갖고 있는 평화의 이미지와는 너무도 대비되는 구절이다. 위의 구절
을 음미해보면, 예수는 화평을 주려고 온것이 분쟁을 일으키려고 왔다!
어떤 의미에서 보자면 위와 같은 예수의 말은 오늘날의 사이비종교 교주가 지껄일 법한 말이
지만, 당시의 시대상황과 여러 정황을 종합해 보면 상당히 다른 의미가 될수가 있다!
"검 없는 자는 겉옷을 팔아 살찌어다" [누가복음 22장 36절]
예수는 여러차례에 걸쳐 제자들에게 검을 소유하고 사라고 명령한다. 그러자 제자들은 재빨리
품에서 검 두 자루를 내어 보인다.
"저희가 여짜오되 주여 보소서 여기 검 둘이 있나이다. 대답하시되 족하다 하시니라" [누가복
음 22장 38절]
예수는 제자들이 품속에 지녔던 검을 꺼내 보이자 만족해 한다. 4복음서 모두 검을 숨기고 있는
제자가 있었다는 사실과 예수의 체포 당시 제자들이 저항했다는 점을 말해준다.
"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田土)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 [마태복음 1장 29절]
"장차 형제가 형제를, 아비가 자식을 죽는 데 내어주며 자식들이 부모를 대적하여 죽게 하리라
." [마태복음 10장 21절]
예수는 자신의 추종자들이 핍박을 받게 될 것을 말하면서, 부모도 형제도 버리라고 말하고 있
다. 여러 배를 상속받고 또 영생을 상속받기 위해서 모든 예수의 추종자들은 부모 형제도 재산
도 모두 버려야 한다. 예수는 뻔뻔하게도 자기 자신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만을 강요하고 있다.
그러한 예는 또 있다. 누가복음 9장 59~60절에서 "부친의 죽음에 대하여 장례식을 거행할수
있도록 시간을 허락하여 주소서"라고 제자가 간청하자, "죽은 자들로 하여금 자기의 죽은 자들
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라고 예수는 대답한다.
일반인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예수의 모습이다. 오늘날의 사이비교주가 신도
들에게 집도, 가족도 버리고 맹목적인 신앙을 요구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게다가 예수는
자기 스스로 분쟁을 일으키고 검을 주려고 왔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 당시 가정과 재산을 포기하자고 주장하며 유대민족을 선동한 사람이 사람이 있었
다! 요세푸스의 기록에 따르면 테우다스(Theudas)라는 자는 가정과 재산을 포기하자고 주장
하며 사막에서 추종자들을 불러 모았다. 그는 무리들을 모아 서쪽 예루살렘으로 진군을 시도
했지만, 로마 총독 쿠스피우스 파두스(C. Cuspius Fadus)에 의해 무참히 살륙 되었다고 한다.
물론, 테우다스(Theudas)와 예수를 동일시 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당시 유대사회에서 무
장독립투쟁을 선동했던 지도자들이 "가정과 재산을 포기하자"고 주장 했던것을 고려해 보면
예수의 납득하기 힘든 말도 이해가 될수 있다.
예를들면, 마사다 요새의 함락이 임박하자 요새안에 있던 1000여명의 사람들이 집단자살 했
던 일이 있었다. 요세푸스의 유대전쟁사에서는 마사다의 지도자 엘르아살이 집단자살을 하기
전에 장황하게 말했던 연설문을 그대로 옮겨놓고 있다. 그 연설의 내용은 영혼은 불멸의 존재
이며, 육체안에 속박된 영혼을 자유롭게 해주는 것이야 말로 숭고하고 용기있는 행동이라며
집단자살을 유도하고 있다.
당시의 유대사회의 집권층이었던 사두개파들이 지독한 현실주의자였던 반면에, 무장독립투쟁
을 선동했던 사람들은 째독이 주장했던 '제4의철학'과 같은 영혼불멸과 부활의 사상을 설파하
면서 무장투쟁을 벌였던것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또한 예수는 오로지 이스라엘 민족에게만 복음을 전파하라고 가르쳤다. 그는 열두제자를 사방
에 보내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예수께서 이 열둘을 명하여 가라사대,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
어가지 말고 차라리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마태복음 10장 5∼6절]
기독교인들은 이 구절에서 등장하는 이방인과 사마리아인을 가르켜, 타락한 사람 혹은 비기독
교인들에 대한 은유적인 표현이라고 주장할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기독교 교리적인 관점에
서 보면 타락한 사람 또는 비기독교인들은 전도의 대상이지 회피대상이 아니다. 또한 그것이
은유적인 표현이라면 이방인이라는 단어 하나로도 충분한데 어째서 사마리아인까지 집어 넣
었을까?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들을 극도로 혐오 했다.
비슷한 또 다른 구절이 있다. 마태복음 15장에서 한 가나안-팔레스타인 여자가 자기 딸에 씌
인 마귀를 쫓아달라고 하자,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외에는 다른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고 예수는 대답했다. 그러자 그 여자는 포기하지 않고 예수의 발목을 붙잡고 애
원을 한다. 그러자 예수가 대답한다.
"자녀들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마태복음 15:26]
예수는 이스라엘과 사이가 좋지않은 팔레스타인 여자에게 '개'라는 용어도 서슴치 않았다!
그래도 그 여인이 계속해서 애원하자,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라고 대답하며 그 여자의 딸
을 고쳐 주기는 하지만, 이방인을 차별하며 '개'라는 용어도 서슴치 않았던 예수의 행동은 도
저히 납득되지 않는다. (그와 동일한 이야기가 마가복음에도 나와있는데, 마가복음에서는 '수
로보니게 여인' 즉 오늘말로 하면 '시리아-페니키아 여인'이라고 등장한다)
물론, 복음서의 맨 끝에 승천하는 예수가 "너희는 땅끝까지 복음을 전파하라"고 명령하는 대목이
나온다. 그러나, 가장 오래된 마가복음에는 예수의 장례를 치른 동굴(무덤)이 비어 있는 것을
발견 하는 장면에서 끝을 맺는다! 예수의 부활과 승천은 후대에 첨가된 대목이다.
카톨릭 성경은 주석에서 이점을 밝히고 있는데, 마가복음에는 짧은 것과 긴것의 두 종류가 있
는데 승천부분은 오래된 고사본에는 없었다고 색인 난에서 밝히고 있다. 대부분의 기독교에서
는 주로 긴 것을 쓰고 있는데 이 점을 다음과 같이 주석 난에 "어떤 사본에는 9-20 절까지 없
음"이라고 말하고 있다. 카톨릭 백과사전에는 이렇게 언급 되어 있다.
"마지막 16:9-20 의 12 절은 그 진위에 문제가 있다. 마가는 그 끝 맺음에 3 가지가 있는데 8
절에서 끝나는 짧은 버전, 9-20 절을 포함한 긴 버전, 그리고 중간 길이의 버전.....(중략)...이
셋 중 중간 길이의 것은 쉽게 제거 되는 바....(중략)...아무도 이 중간 것을 진본으로 채택 하지
않는다....(중략).... 긴 것과 짧은 것 중 어느 것이 진본인가 하면...(중략)...'유세비우스'에 의
하면 긴 것은 모든 고사본에 없었다고 되어 있고...(중략).... 모든 마가 고사본이 8 절 에서 끝
나고 있다고 이 역사가는 서술 하고 있으며...(중략)... 성 '제롬'도 거의 모든 헬라어 고사본에
9-20절 구절은 포함 되어 있지 않다고 기록했으며.....(중략).... 3세기, 4세기의 교부들도 이
구절에 대해 침묵 하는 것으로 보아 동 구절을 모르고 있었던지, 또는 제외 시킨 것으로 여겨
진다."
성경통신대학 제1권에서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마가가 기록한 부분은 16:8에서 끝난다. 어떤 이유인지는 알수 없어도 그 뒷부분은 오늘까지
보존되어 있는 두 개의 가장 오래된 사본에도 16:8로 끝나있다. 후에 어떤 사람이 다른복음서
의 내용을 참고하여 9~20절을 보충 첨가 하였다고 본다." [성경통신대학 제1권 / 대한 예수교
장로회 총회 교육부]
다시말해 "땅끝까지 전하라"는 구절이 포함된, 예수의 부활과 승천은 AD 4 세기 경이 지나서
야 나타나기 시작했다.
한술 더 떠서 사도 행전에 의하면 예수가 승천한 후, 11 제자들은 땅 끝까지 선교 하러 나가는
대신 예루살렘에 모여 있었다고 한다. 남겨진 제자들은 "땅 끝까지 전 하라"는 예수의 마지막
지상 명령을 전혀 들은 적이 없는 것 같이 행동 하는데, 예를들어 사도행전 10 장을 보면 베드로는
처음으로 이방인 '고넬료'의 초청을 받고 거부감을 표시한다. 완강히 거절 하다가 하늘에
서 내려오는 보따리 환상을 통해서야 베드로는 자신의 결심을 바꾸게 된다.
그러나 이어지는 사도행전 11 장에서는 사도들과 신도들이 베도로의 전도행각을 전해 듣고는
"왜 할례받지 않은 자의 집에 들어가서 식사대접까지 받았느냐?" 며 베드로의 이방 선교를 비
난 한다.
(3) 두얼굴의 예수!
복음서들을 읽다보면 예수가 남긴 말들은 상당부분 헬라철학에 기인한 듯하다. 그런데 문제는
복음서 안에서 예수와 예수가 서로 대립하고 있다는 점이다! 문자 그대로 해석하자면, 예수는
자신이 한말도 실천하지 못하고 떠벌이고 다닌 인간이라고 볼수 있는데, 뺨맞은 예수의 반항
을 예로 들수 있겠다.
"나는 이렇게 말한다. 앙갚음을 하지 말아라. 누가 오른뺨을 치거든 왼뺨마저 돌려대고, 또 재
판에 걸어 속옷을 가지려고 하거든 겉옷까지도 내 주어라." [마태복음 5장 39~40절]
예수는 이와 같이 유명한 말을 남겼는데, 재미있는 점은 예수가 정말 뺨을 맞은 적이 있었다.
유대인들에게 체포되어 대제사장에게 심문을 받을 때, 예수가 대답하는 말이 좀 공손치 못했
던지 그의 옆에 있던 경비병 한사람이 "대사제님께 그게 무슨 대답이냐?"라고 말하며 그의 뺨
을 때렸다. 그러자 요한복음 18장 22~23절에서 예수는 "내가 한 말에 잘못이 있다면 어디 대
보아라. 그러나 잘못이 없다면 어찌하여 나를 때리느냐?" 라고 대답했다. 예수는 제자들에게
는 한쪽 뺨을 때리거든 다른쪽 뺨마저 돌려대라고 가르쳤지만 자신은 뺨을 맞자 즉시 항의했
던 것이다.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것을 뛰어 넘어서 예수가 남긴 말이 서로 대치되는 경우도 있다.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
제를 얻은 것이요, 만일 듣지 않거든 한 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 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증
참케 하라. 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 [마태복음 18장 15~17절]
위에서 남긴 예수의 가르침은 마태복음 18장 22절의 "일곱번 뿐 아니라 일흔번씩 일곱번이라
도 할찌니라"라는 유명한 예수의 용서의 가르침과 바로 대치 된다.
마가복음 9장 40절의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우리를 위하는 자니라" 라는 예수의 말은,
마태복음 12장 30절의 "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
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 라는 복음서의 말과 서로 상치되고 있다.
그리고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마태복음 5장 9절의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다"는 예수의 말
과, 누가복음 12장 51절의 "나는 화평을 주러 오지 않았다. 화평이 아니라 분쟁케 하려고 왔
다"는 예수의 말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
마태복음 26장 52절의 "검을 가진 자는 검으로 망하리라"와 누가복음 22장 36절의 "검이 없는
자는 겉옷을 팔아 검을 살지니라"의 괴리감은 무엇으로 설명할 것인가?
또한 누가복음 6장 27절의 "네 원수를 사랑하며 너를 미워하는 자를 선하게 대하라"는 예수의
말과 요한복음 2장 15절의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쫓으시고...환
전상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를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
엄연히 말해서 이것은 성경의 오류이다! 그러나 돋보기를 들고 좀더 깊이 관찰해보면 복음서
속에는 2가지 모습의 예수가 서로 대립하고 있음을 느낄수 있다.
바울은 로마서 1장 3~4절에서 "예수는 육신은 다윗의 혈통에서 나왔고 영(靈)은 하나님에게
서 왔다."라고 말하고 있다. 반면에 복음서의 내용대로 라면 예수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태어
났을뿐 아버지 요셉과는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남남지간 이다!
예수가 성령으로 잉태되었다고 주장하면서, 아버지 요셉의 다윗왕가 족보를 꼬박꼬박 댓수를
헤아려 가며 열거한 이유는 무엇인가? '다윗의 혈통'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오늘날 우리에게 흔히 알려진 예수는 사랑과 관용의 예수, 동정녀 잉태와 부활과 같은 신화적
예수의 모습이다. 이런 신화와 헬라철학을 걷어내 버리면 전혀 낮선 모습의 예수가 우리에게
다가온다.
(4) 독선적인 예수!
예수의 언행 중에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의 독단과 독선이 자리잡고 있다.
"또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바다에 던지움이 나으리라. 만일 네 손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버리라. 불구자로 영생에 들
어가는 것이 두손을 가지고 지옥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 보다 나으니라. 만일 네 발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버리라. 절뚝발이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발을 가지고 지옥에 던
지우는 것 보다 나으니라.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빼어버리라. 한눈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지우는 것 보다 나으니라." [마가복음 9장 42
~47절]
예수의 말에는 독선이 자리잡고 있다. (덧붙여서 마가복음의 9장 44절과 46절은 '없음'이라는
말로 기록되어 있다, '개역한글판', 'NIV'등은 그 외에도 마태17:21, 마태23:14, 마가11:26 ,마
가15:28, 누가17:36, 누가23:17, 사도8:37, 사도15:34, 사도28:29, 로마서16:24등에도 '없
음'이라고 표기 되어 있다. 그러나 KJV에는 이 모든 부분이 전부 기록 되어있다. 어쨌든 이 문
제는 12장에서 언급하기로 하고 예수에 대해서 계속 살펴보자.)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마태복음 23장 33절]
"풀무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마태복음 13장 41~42절][마태복
음 13장 50절]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 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
[마태복음 25장 30절]
세계 4대성인이라는 명칭에 걸맞지 않게 예수의 언행이 너무 심하지 않은가?
예수는 사랑과 자비로운 인물이 아니라, 오만과 독선으로 넘쳐나는 인물같다.
"이튿날 저희가 베다니에서 나왔을 때에 예수께서 시장하신지라. 멀리서 잎사귀 있는 한 무화
과나무를 보시고 혹 그 나무에 무엇이 있을까 하여 가셨더니 가서 보신즉 잎사귀 외에 아무것
도 없더라. 이는 무화과의 때가 아님이라. 예수께서 나무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제부터 영원토
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먹지 못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이를 듣더라." [마가복음 11장 12
~14절]
무화과가 열릴 철도 아닌데 예수는 열매가 없다고 저주를 내려 나무를 죽여 버렸다. 도데체
예수는 언행과 행동들은 배타와 독선으로 철철넘쳐나고 있는 것인가?
그리고 예수는 그 시대에 심판의 날이 임박한 것으로 확신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섰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
하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 [마가복음 9장 1절]
"이 동네에서 핍박하거든 저 동네로 피하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의 모든
동네를 다 다니지 못하여서 인자가 오리라." [마태복음 10장 23절]
"나는 분명히 말한다. 여기에 서 있는 사람들 중에는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를 볼 사람들도
있다."[누가복음 9장 27절]
"나는 분명히 말한다. 이 세대가 없어지기 전에 이 모든 일이 일어나고야 말 것이다. 하늘과 땅
은 사라질지라도 내 말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누가복음 21장 32~33절]
"분명히 말해둔다. 이 모든 죄에 대한 형벌이 이 세대에 내리고야 말 것이다." [마태복음 23장
36절]
예수는 공공연히 그의 추종자들이 죽기전, 그 세대에 심판의 날이 일어난다고 주장하고 다녔
다. 마치 1992년 종말론을 내세우다 부도난 사이비 교주의 언행을 보는 것 같다.
예수와 그의 제자들의 행위는 혁명적 메시아운동 집단들과 유사한 점이 많다. 복음서만 보더
라도 적어도 한 번은 폭력을 행사한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성전에서 멀리서 온 순례자들을 농
간하는 악덕 환전상들을 습격했다.
더욱이, 예수가 예루살렘에 입성한 방식이 바로 '왕권을 주장하는 유대인 왕의 입성 방식' 그
대로 이다. 의도적으로 구약 스가랴(Zechariah)의 예언을 성취시키기 위해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들어간 것인데, 이는 스스로도 자신이 유대인들의 왕임을 주장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찌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찌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
하나니 그는 공의로우며 구원을 베풀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새
끼니라. 내가 에브라임의 병거와 예루살렘의 말을 끊겠고 전쟁하는 활도 끊으리니, 그가 이방
사람에게 화평을 전할 것이요. 그의 정권은 바다에서 바다까지 이르고 유브라데 강에서 땅 끝
까지 이르리라...(중략)...내가 오늘날도 이르노라 내가 배나 네게 갚을 것이라 내가 유다로 당
긴 활을 삼고 에브라임으로 먹인 살을 삼았으니 시온아 내가 네 자식을 격동시켜 헬라 자식을
치게 하며 너로 용사의 칼과 같게 하리라 여호와께서 그 위에 나타나서 그 살을 번개 같이 쏘
아내실 것이며 주 여호와께서 나팔을 불리시며 남방 회리바람을 타고 행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그들을 호위하시리니 그들이 원수를 삼키며 물매 돌을 밟을 것이며 그들이 피를
마시고 즐거이 부르기를 술취한 것 같이 할 것인즉 피가 가득한 동이와도 같고 피 묻은 제단
모퉁이와도 같을 것이라." [스가랴 9장 9~15절]
구약속에 나귀 타고 예루살렘 입성하는 사람은 분명 전쟁의 메시아이다. 병거와 말을 탄 대적
들을 복종시키고 기를 꺾기 위해 일어선 다윗의 후손 이었다. 그런 이유로 민중들은 우리나라
로 치자면 "독립만세!"에 해당하는 "호산나!"(Hosanna)를 외치며 예수를 환영했던것이다.
당시 예루살렘의 사정은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결코 아니다. 자신이 유발시킨 이런 선동적이고
전투적인 행동의 의미를 예수가 몰랐다면 그것은 넌센스가 아닐수 없다.
(5) 세례요한과 예수는 어떤 관계인가?
복음서를 유심히 살펴보면 기이하게도 세례요한과 예수는 날카롭게 대립되어 있다.
복음서속에서 등장하는 세례요한은 예수에게 세례를 행한다. 일반적으로 안수 세례는 영적 지
도자가 밑에 사람에게 행하는 것이다. 더욱이 요한의 세례는 회개 하기 위한 것이었다. 요한은
"회개 하라 천국이 가까 웠노라"[마태 3:3, 마태 3:11,누가3:1,마가 1:4]라고 말하며 세례를
행했는데, 신의 아들이며 성육신이라는 예수가 무슨 이유로 요한에게 세례를 받아야 할까?
그리고 요한복음에서는 세례요한에 대해서 강력한 라이벌 의식을 가지고 있는 듯 하다.
세례 요한에 대하여 요한복음은 "그는 빛이 아니다"[1:9], "그는 예수보다 앞서 있지도 않았
다" [1:15,30], "예수는 흥해야 하고 그는 쇠해야 한다"[3:30]라는 부정적인 기록을 남기고 있
다. 공관복음서에서의 세례요한에 대한 구절은 짤막하게 나오는데, 요한복음 만큼은 세례요한
과 예수를 계속해서 비교한다.
또한 요한복음은 마태복음에서 세례요한에 대해 언급한 예수의 말을 뒤집어 버리기도 한다.
"또 묻되 그러면 무엇, 네가 엘리야냐 가로되 나는 아니라 또 묻되 네가 그 선지자냐 대답하되
아니라." [요한복음 1장21절]
세례요한에 대해서 "당신이 그리스도냐? 엘리야냐?" 하는 질문에 아니라고 세례요한은 자신
이 그리스도도 엘리야도 아니라고 대답한 것이다. 요한복음의 이러한 기록은 예수가 세례요한
을 가르켜 엘리야라고 말한 마태복음 17장 10~13절, 마태복음 11장 11~15절 의 내용과 상치
되는 것이다. 그리고 특이하게도 요한복음은 세례요한에 대해서 특이한 진술을 하고 있다.
"예수의 제자를 삼고 세례를 주는 것이 요한보다 많다하는 말을 바리세인들은 들은 줄을 주께
서 아신지라." [요한복음 4장 1절]
요한도 세례를 주고 있고 예수도 세례를 주고 있는데 예수에게 사람이 더 많이 몰리게 됐다고
바리세인들에게 소문으로 전해졌다고 한다. 요한복음 1장 40절에 따르면 시몬 베드로와 그의
형제 안드레라도 요한의 추종자였다가 예수를 따르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요한복음 3장에
서 예수와 요한은 서로 각자 독립적으로 세례를 베풀었다.
"이후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유대 땅으로 가서 거기 함께 유하시며 세례를 주시더라. 요한도 살
렘 가까운 애논에세 세례를 주니 물들이 많음이라 사람들이 와서 세례를 받더라." [요한복음 3
장 22~23절]
분명 세례요한은 자신이 직접 말하기를 "나는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물과
성령으로 세례를 주노니 나는 그의 신들메도 감당치 못하리라"라고 했으면서, 예수를 만난후
계속해서 세례주는 일을 중지하지 않았던 것이다.
또한, 세례요한이 예수를 가르켜 "이분이 그리스도"라고 사람들 앞에서 분명히 말했음에도 불
구하고, 세례요한의 제자들은 예수를 인정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이에 요한의 제자중에서 한 유대인으로 더불어 결레에 대하여 변론이 되었더니 저희가 요한
에게 와서 가로되 랍비여 선생님과 요단강 저편에 있던자 곧 선생님이 증거하시던자가 세례를
주매 사람이 다 그에게로 가더이다." [요한복음 3장 25~26절]
좀더 뜻이 명확한 공동번역판의 동구절을 올린다.
"그런데 요한의 제자들과 어떤 유다인 사이에 정결 예식을 두고 논쟁이 벌어졌다. 그 제자들은
요한을 찾아가 선생님, 선생님과 함께 요르단강 건너편에서 계시던 분이 세례를 베풀고 있읍
니다. 선생님께서 증언하신 바로 그분인데 모든 사람이 그분에게 몰려 가고 있읍니다 하고 말
하였다." [요한복음 3장 25~26절 / 공동번역판]
그러자 세례요한은 그들에게 다음과 같이 답변한다.
"요한이 대답하여 가로되, 만일 하늘에서 주신바 아니면 사람이 아무것도 받을수 없느니라. 나
의 말한바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요 그의 앞에 보내심을 받은자라고 한 것을 증거할자는 너희
니라. 신부를 취하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이 충만하노라.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 [요한복음 3장 27~
29절]
오늘날 기독교측은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니"라는 말을 근거로 세례요한
의 겸손함을 말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세례요한의 말에는 앞뒤가 맞지 않는 점이 있다.
세례요한의 말을 살펴보면 '신부=예수의 추종자', '신랑=예수', '결혼식을 보고 기뻐하는자=세
례요한' 이라는 비유를 들고 있다. 기독교적으로 따져보자면 세례요한은 분명히 구경꾼의 사
명자가 아닌 직접 그 신부격의 사명을 감당해야 할 자일 것이다. 그러나 세례요한은 신부로서
짝이 되지 못하고 '신랑의 친구'(=또 다른 선지자)가 되었다고 말한 것이다.
뒤에 따라오는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라는 말은 세례요한에게 부정적
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 요한복음의 저자가 지어내거나 덧붙인 이야기가 아닐까?
요한복음외에도 마태복음에도 세례요한에 대해서 부정적인 진술을 하고 있다. 세례요한은
헤롯의 치부를 트집잡다가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요한이 옥에서 그리스도의 하신 일을 듣고 제자들을 보내어, 예수께 여짜오되 오실 그이가 당
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마태복음 11장 2~3절]
이 구절은 참으로 세례요한 답지 않은 말이다.
감옥에 갇혀서 크게 낙담한 세례요한은 제자들을 예수에게 보내에 "당신이 그리스도가 정말
맞는가?"하고 회의적인 질문을 하는 것이다. 그러자 예수는 매우 불쾌한 듯이 자신이 행한
기적에 대해 말했고 세례요한을 비하하는 발언을 했다.
"누구든지 나를 인하여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 저희가 떠나매 예수께
서 무리에게 요한에 대하여 말씀하시되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
는 갈대냐. 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이냐 부드러운 옷을
입은 자들은 왕궁에 있느니라. 그러면 너희가 어찌하여 나갔더냐 선지자를 보려더냐 옳다 내
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보다도 나은 자니라. 기록된 바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
내노니 저가 네 길을 네 앞에 예비하리라 하신 것이 이 사람에 대한 말씀이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
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저보다 크니라.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
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마태복음 11장 6~12절]
예수는 세례요한을 가르켜 '실족한자', '흔들리는 갈대', '천국에서 작은자', '침노하는 자'등으
로 비하를 하고 있다.
요한은 요세푸스의 저술에도 나타나고 있고, 또한 그가 에세네 파와 어떤 관련이 있다고 보는
설도 있다. 혹시, 세례요한의 종파가 예수의 추종자들의 라이벌이 아니었을까?
세례요한 역시 범상치않은 방법으로 태어났다. 세례요한의 아버지 제사장인 사가랴와 그의 부
인 엘리사벳은 나이가 많도록 자녀를 낳지 못했으나 천사의 계시를 받고 아이를 잉태했다. 그
리고 세례요한은 타락한 헤롯일가를 비난하다가 살로메에 의해 은쟁반에 목이 잘려지는 범상
치 않은 죽음을 맞이한다.
기독교인들은 잘모르는 사실이겠지만 예수를 거짓 선지자로 몰아 붙이고, 세례요한을 참 메시
아라고 규정한 영지주의 종파가 있었다. 이러한 종파로는 요한파와 만다교가 있었다. 이들종
파는 초대교회시절부터 존재하고 있었고, 특히 만다교는 이라크 남부 및 이란 남서부(후지스
탄 지방)에 현재까지 존재하고 있다.
"이 명칭은 아람어(語)의 방언 만다(manda:靈知)에서 유래하였다. 교리는 지극히 절충적,혼합
주의이나 세례,성찬예식 등에는 엄격한 제례(祭禮)가 따른다. 특히 세례는 반드시 흘러가는 물에서만
갖는다. 전통적 분리주의를 견지하며 현재까지 남아 있으나, 근대교육, 생활의 기계화,
교역 등으로 존망의 위기에 처해 있다.
중세의 근동 여행기에 이미 '성 요한의 그리스도자'라는 이름으로 이 교파의 존재를 알리고 있는데,
이들이 세례자 요한을 자기 종파의 일원으로 인정하고 있는 점으로 미루어, 그노시스적(的) 유대교와의
관계를 짐작할 수 있다. 교도의 수는 약 2,000명 정도로 추산되며, 경전은 1세기경에 성립된 '긴자(보물이라는
뜻)가 대표적인 것이다."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 만다교 Mandaism항목]
복음서에서는 세례 요한의 행적은 어떤 의미에서는 정치적 성격을 나타냈다고 보여진다. 즉
헤롯과 자신의 형제와 이혼한 여자 헤로디아의 결혼을 비판했고 이에 괴씸죄에 걸려 죽임을
당한 것으로 말하고 있다.
(6) 정치 혁명가 예수
앞선 단락에서 예수 시대에 유대땅을 둘러싸고 있던 사회적, 정치적 상황을 살펴 보았다. 복음
서는 당시 유대사회의 정치적 상황을 너무도 무시하고 있다.
당시 유대민중들은 과중한 세금의 부담과 관리들의 부패, 공물징수와 노동징발 등으로 신음했
다. 소작인들은 25%의 농산물세를 로마에 바쳐야했고, 대제사장과 아들들에게 십일조를 바쳐
야 했으며, 토지세는 토지평가액의 1%에 달하였다. 로마에 바치는 세금은 시저(Julius Caesar)
가 BC 47년에 내린 법령에 의거한다. [Robert Grant/ Early Christianity and Society / 김쾌상
역 / 서울: 대한기독교출판사, 1988 / P.54]
특히 경제적인 곤궁 때문에 세금, 특히 십일조를 정확하게 내지 못할 때 율법학자들은 경멸적
인 의미에서 '암 하레츠'라고 불렀다. [Willabald Bosen/ Galilaa als Lebensraum und Wirku
ngsleld Jesus / 황현숙 역 / 천안: 한국신학연구소, 1998 / P.308]
따라서 갈릴리 농민들은 로마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예루살렘 귀족들에 대한 증오심도 그에
못지 않았다. 로마가 유대땅을 지배하던 시기에 이 지역에서 가장 두드러진 사회현상은 바로
광신적인 메시아 신앙이었다. 유대인들의 무장투쟁은 끊임없이 일어났다. 로마나 유대지배계
급은 이 독립운동의 주체들을 강도(lestai)라고 불렀으나, 이 강도들은 단순히 강도질만 하는
것이 아니라 유대인 지주들과 로마 세리들에 항거하려는 목적이 주된 것이었다.
긴박했던 당시의 상황은 유대 민족을 로마의 식민통치에서 구출해 낼 메시아에 대한 믿음이
강하게 싹트기 시작했다.
메시아에 대한 헬라어는 '크리스트' 또는 '크리스토스'이다. 히브리어와 헬라어에서 메시아라
는 용어는 단순히 '기름부음 받은 자'를 의미하는 일반적으로 왕을 가리키는 용어였다. 따라서
다윗은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았을 때 '메시아' 또는 '크리스트'가 되었으며 다윗 가의 모든 왕
들은 바로 그 명칭으로 알려졌다.
로마가 유대를 점령한 기간 동안에도 로마에 의해 임명된 대제사장은 '제사장적 메시아' 또는
'제사장적 그리스도'로서 알려졌다. 하지만 열심당원들 및 로마를 적대하는 다른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이 꼭두각시 제사장은 말할 것도 없이 '거짓 메시아'였다. 그들에게 있어서 '참 메시
아'는 로마 제국의 식민통치에서 구원해줄 다윗가의 알려지지 않은 후손을 의미했다.
예수 시대에는 그러한 메시아에 대한 기대가 극에 달하여 병적인 상태까지 도달했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완전히 멸망하기 까지도 메시아 신앙은 더욱더 강해졌다. 실제로 AD 66년의 폭동은
주로 메시아의 재림이 임박했다는 열심당의 선동에 의하여 촉발 되었다.
복음서는 당시의 시대 상황을 아예 침묵으로 일관하고 로마제국의 심기도 건드리지 않으려 한
다. 로마인에게 세금 바치는 물음에 관한 예수의 답변은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였다. 갈릴리 유다가 세금거부로 항쟁의 불길을 일으키던 당시의 상황에서
예수가 남긴 그 말은 매국노가 남길 만한 말이기도 했다.
친로마파인 요세푸스 조차 매우 비열하고 포악한 인물로 평가하는 빌라도를 복음서에서는 예
수의 처형 문제로 고뇌하는 소심한 인물처럼 묘사하고 있다. 누가복음에서는 예루살렘에서 예
수가 체포 되자 빌라도는 그가 갈릴리 출신이라는 이유로 자신의 관할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갈릴리의 허수아비 분봉왕 헤롯 안티파스에게 예수를 넘겼다. 예수를 넘겨받은 헤롯
안티파스는 무척이나 기뻐하며 예수에게 고문을 하고 다시 빌라도에게 되돌려준다.
사도행전에서 스테반을 돌로 쳐죽였다고 하는 산헤드린 공의회는, 자신의 힘으로 얼마든지 처
형할수 있었던 예수를 빌라도에게 넘겨준뒤 예수를 제발 죽여달라고 부르짖는 모순된 행동을
보인다. 빌라도는 예수를 어떻게든지 살려주려고 노력하고, 사형이 선고되자 예수의 피는 자
신과 아무 관련이 없다고 말한다. 유대인들이 예수를 죽이라고 부르짖으며, 그 피의 댓가는 자
신들이 질것 이라고 외친다! 복음서의 이런 경향에 대해 브랜던(S. Brandon)은 다음과 같이
평가 하기도 했다.
"마태, 누가, 요한복음의 저자들은 예수의 박해를 유대인의 탓으로 돌리는 데 관심했다. 그들
은 대체로 마가의 이야기를 따랐으나, 일차적인 것은 예수를 친로마적인 인물로 그리는데 주
안점을 두었기에, 예수의 평화주의의 주제를 발전시킨 것이다." [S. Brandon/ The Trial of Je
sus of Nazareth / New York: Dorset Press, 1988 / P.76]
4복음서가 쓰여진 것은 AD 2세기부터 4세기 무렵이라고 하는데, 여러가지의 복음서중에서 우
리가 지금 접하는 것은 로마인들의 입맞에 맞게 제작된 복음서가 아닐까?
오늘날 우리에게 알려진 예수의 생애 상당부분은 이교도 신화와 헬라철학을 차용한것이라고
다음장에 설명을 할것이다. 필자는 그점을 의심치 않는다!
예수라는 인물이 정말로 존재했을지도 모른다. 만약 예수가 실존인물이라면 그는 무장독립혁
명가 였을 가능성이 크다. 오늘날의 복음서는 당시 유대(특히 갈릴리)의 사회의 정치적 대혼돈
과 역사적 정황을 무시하고 있다. 불트만(Bultmann)의 지적대로 복음서는 예수시대에는 만들
어 지지 않았으며, 초대교회의 신자들 사이에서 예수의 이야기가 다양한 구전의 형태로 전해
내려오다가 문서화 되었다고 보는것이 옳다.
예수에 대한 수많은 전승들이 초대교회에서 복잡한 모습으로 퍼져 나갔을것이다. 뒤에서 설명하겠지만,
할례문제를 비롯하여 각종 유대율법 문제로 초대교회에서 분쟁이 일어났던 상황을 고려하면, 초대교회에
전해 내려오는 예수의 전승은 복잡한 양상을 띄었을것으로 본다. 이것은 구약의 오경이 여러가지 전승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같은 내용이 반복적으로 나오거나, 율법이 서로 대치되는 것과 비슷한 양상이라고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예수의 전승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이교도 신화와 헬라철학이 흘러 들어와서 또 다시 복잡하게
뒤섞여 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예수에 대해 떠돌던 여러 전승들이 드디어 문서로 기록되
기 시작하면서, 로마제국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유대인을 악역으로 만들고 당시 혼돈스
러웠던 유대사회를 침묵으로 일관하는 또 다른 왜곡이 벌어졌을 가능성도 있다. 그리고 시간
이 오래 흘러간 뒤에 문서화 되었기에 역사적 사실과 점차 거리가 멀어졌을 것이다.
필자가 한가지 덧붙여 말을 하지 않으면 않될것이 있다고 판단되는데, 그것은 최근에 전세계
적으로 인기를 끈 '다빈치 코드'와 그 원조라고 말할수 있는'성혈과 성배'같은 책이다.
이 책의 주장에 따르면 예수와 관련된 비밀결사 조직이 현재까지 명맥을 이어오면서 무엇인가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주장에는 많은 문제점이 있으며 그점은 부록에
서 언급 하고자 한다. 필자는 그런 음모론에 찬성할수 없다!
▶ 잃어버린 원시복음?
복음서를 파악하기 위해 먼저 요한복음을 가려내는 것이 우선이다. 그 이유는 요한 복음은 나
머지 세 복음과 모든 면에서 매우 다른 문서이기 때문이다. 쓰인 단어나, 예수 행적의 순서, 신
학적 사상이 나머지 복음서들과 상당히 틀리다. 예수 탄생, 산상 수훈, 12 제자 이름, 최후의
만찬에서의 빵과 포도주 이야기 등이 요한 복음에는 없다. 예루살렘을 방문횟수도 다르고, 예
수 사역의 본거지를 갈릴리가 아닌 유대아로 잡고 있다. 요한은 예수의 이적과 징표를 강조 하
는데 나머지 복음서는 예수의 말씀과 행적을 중시 하고 있다. 신학적 사상 역시 영지적이어서
요한복음을 영지적 복음서라고 부르기도 한다.
요한복음을 제외한 나머지 세 복음서는 기본적으로 비슷한 단어와, 비슷한 사건 배열 순서 및
비슷한 주석을 공유 하고 있다. 따라서 세 문서를 함께 엮어서 읽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 공관
복음(Synoptic)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앞서 소개한 바와 같이 공관복음서의 내용이 대부분 흡
사한데, 서로 간에 상치되는 부분은 역시 너무나도 상치된다는 데에도 문제가 있다.
이 모순 스러운 현상에 직면한 학자들은 나름 대로의 해석을 내어 놓게 된다.
첫째로, 구전의 전통에 의거 하였다는 설,
둘째로, 상호간 참조 하였다는 설,
셋째로, 독립된 어느 초기 문서(Q복음서)에 기초 하였다는 설 들이 그것이다.
3가지 이론중에 어느 하나만이 맞다고 볼수는 없다. 복음서는 3가지 방법이 모두 동원되어 만들어
졌다고 보는것이 가장 타당하다고 볼수 있겠다.
어거스틴은 집필의 순서를 마태 - 마가 - 누가 의 순으로 보았고 이것이 오늘날 신약 성경의
배열 순에 반영 되어 있다. 하지만 오늘날 신학자들에 의해 마가복음이 제일 먼저 쓰여졌다는
설이 무게를 받고 있다. 먼저 한 저자가 집필한 후, 두 번째 저자가 그것을 토대로 두 번째 복
음을 집필하고, 마지막 저자가 앞의 두 복음을 참조 하였다는 상호 참조설에 의하면 마가복음
이 다른 복음들에게 영향을 미쳤다고 볼수도 있다.
그러나 마가복음보다 더 오래된 초기 문서가 존재했을 가능성도 있다. 학자들은 이 가상의 자
료를 Q라고 부르고 있는데, 이 연구의 길을 열은 것은 홀쯔만이었다. 1863년 홀쯔만 (Heinric
h Julius Holzmann)은 오늘 날 복음서 연구의 전제로 간주되는 '2 자료설' (마가와 Q복음서를
가장 오래된 예수 전승으로 보는 이론)을 창시했다. 그의 자료 이론은 훗날 양식비평, 편집비
평과 같은 도구와 더불어 역사적 예수 연구를 더욱 정교화하는데 적잖은 기여를 했다.
Q복음서는 공관복음서의 내용을 모두 담고있는 풍부한 내용일 것으로 간주되며, 오늘날의 복
음서들은 Q복음서에서 내용을 선택적으로 추출해 사용 했다는 것이다. 학자들은 Q복음서는
예수의 행적보다는 예수의 가르침을 담은 어록(語錄)과 같은 형태일것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학자들은 외경인 도마복음서를 주목한다. 복음서의 가장 초기의 형태라고 판명되는
도마복음서에는 예수의 행적이 전혀 기록되어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4복음서속의 예수의
주요한 가르침이 거의 다 수록 되어 있다. 즉, 구전으로만 내려오던 예수의 가르침이 도마복음서
혹은 Q복음서속에 집대성 되고, 다시 여기 수록된 예수의 가르침에 그의 행적이 덧붙여져 현재의
복음서가 만들어 진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필자는 여기에 덧붙여 Q복음서에서 원시복음을 거
쳐 오늘날의 복음서로 발전했다고 추측한다)
그러나 예수의 행적이 없는 Q복음서 보다, 필자가 주목해 보고자 하는 것은 예수의 행적이
살아있는 원시복음(原始福音)이다. 원시복음이 존재한다 하더라도, 아마 Q 복음서보다는 시기
가 늦을 것이라고 필자는 추측이 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의 행적이 살아있는 원시복
음은 우리의 관심을 끌게 만들지 않을수 없다.
학자들은 마가복음이 가장 먼저 등장한 복음이라고 주장을 하는데, 놀랍게도 마가복음보다
앞선 '마가의 비밀복음'이라는 것이 존재했다. 게다가 마가의 비밀복음은 요한복음까지도 아우
를수 있는 풍부한 내용을 담고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마가의 비밀복음은 오늘날 남아있지
않지만, 알렉산더의 클레멘스의 편지에서 그 단서를 찾을수가 있다.
"마르코의 비밀복음은 2세기 초에 쓴것이고, 그 장소는 시리아가 가장 유력하다. 우리가 현재
가지고 있는 마르코 복음은 그 이후에 작성된 것이며, 그안에는 비밀전통이 흔적만 남아있다."
[윌리스 반스토운 / 숨겨진성서 3권 / 이동진 역 / 문학수첩 / P.206]
나자로의 부활은 요한복음에만 나오는 일화인데, 놀랍게도 마가의 비밀복음에 그 내용을 담고
있다고 한다. 즉, 이것이 위에서 원시복음일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어째서 이 복음이 버림
받았는가? 마가의 비밀복음속에 특별한 내용들이 오해를 불러 일으킬 정도의 내용을 담고 있
기 때문이다.
영지주의의 한 분파였던 카르포크레테스(Carpocrates)는 마가의 비밀복음을 입수해 그것을
자신들의 음욕적인 행위를 정당화 시키는데 사용했고, 클레멘스는 그의 제자 테오도루스에게
편지를 보내, 카르포크레테스파 사람들이 제시하는 마가의 비밀복음에 대해서
진위를 파악시킨다.
클레멘스는 마가의 비밀복음을 부정하지 않고 그것은 마가가 직접 기록한 것이지만,
더 높은 진리에 이르는 사람에게만 비밀스럽게 공개할뿐 일반신도들에게 공개하는
내용이 아니라고 말한다. 이제부터 그의 편지 내용을 살펴보자.
"당신이 카르포크라테스의 말도 안되는 가르침을 잠잠하게 만든 것은 잘한 일이오. 왜냐하면
이 사람들은 예언에서 나오는 방황하는 별들이며, 계명의 좁은 길에서 벗어나 육체적이고 쾌
락적인 죄악의 끝없는 심연으로 빠져 방황하기 때문이오...(중략)...왜냐하면 이 사람들이 진실
한 것을 어느정도 말한다고 해도, 진리를 말하는 사람이라면 이 사람들에게 동조해서는 안되
기 때문이오. 또한 진실하다고 해서 모두 진리가 아니며, 인간적 관점에서 진실 하다고 보이는
진리라 해도 신앙에 따른 진실한 진리가 아니기 때문이오."
클레멘스는 이상스러운 말을 하고 있다. 이단자들이 진실한 것을 어느정도 말한다고 해도,
그들에게 동조해서는 않되고, 진실하다고 해서 모두 진리는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이 사람들이 거룩한 영감을 받은 마가복음에 대해서 계속해서 주장하는 내용은 그 일부가 위
조이고, 다른 부분은 진실한 요소를 약간 포함한다고 해도 진실하게 전달된 것이 아니오. 왜냐
하면 진실한 내용이 추가로 꾸며낸것과 섞여서 위조가 되어, 속담처럼 소금이 제맛을 잃기 때
문이오.
마가는, 베드로가 로마에 머물고 있는 동안 주님의 행적을 기록했소. 그러나 그 행적을 전부
밝힌것도 아니며, 비밀의 행적들을 암시하지도 않았으며, 다만 교리를 배우는 사람들의 신앙
을 두텁게 하는데 가장 유익하다고 판단한 내용만 골라서 기록했소. 하지만, 베드로가 순교한
뒤, 마가는 자기가 기록한 자료와 베드로의 자료를 함께 가지고 알렉산드리아로 왔소. 마가는
지식을 발전시키는데 도움이 될만한 내용은 두가지 자료를 뽑아, 자기가 먼저 기록한 책에다
가 추가 했소. 마가는 이렇게 함으로써 신앙이 더욱 깊어진 사람들이 사용하도록 좀더 영신적
인 복음을 저술한것이오....(중략)....그리고 죽을때에는 자기 저술을 알렉산드리아 교회에 맡
겼소. 여기서는 지금도 그 책을 철저하게 보관하는 한편, 위대한 신비에 들어가는 사람에게만
읽어주고 있소.
그러나 악마들이 항상 인류의 파멸을 궁리하고 있기 때문에, 악마들의 가르침을 받고 그 속임
수를 쓰는 카르포크라테스가 알렉산드리아 교회의 어떤 장로를 손아귀에 넣어서 비밀복음의
사본을 얻어 내었소. 카르포크라테스는 이 비밀복음을 자신의 독신적이고 쾌락주의적 교리에
따라 해석할뿐 아니라, 심지어 흠없고 거룩한 말씀들을 참으로 철면피한 거짓말들과 섞어 오
염시켰소. 이런 혼합에서 카르포크라테스의 가르침이 나온 것이오.
그러므로 앞에서 내가 이야기 했듯이 이 사람들에게 절대로 져서는 안되오. 또한 이 사람들이
자신들의 위조된 내용을 들고 나올 때, 비밀복음이 마가의 저술이라고 수긍하지도 말고, 비밀
복음 자체를 부정하는 맹세를 해야 하오. 왜냐하면, 진실한 것들은 모든 사람에게 전부 말해
주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오. 이러한 뜻에서 하나님의 지혜가 솔로몬을 통해서 바보
에게는 그 어리석음을 가지고 대답하라고 충고하며, 정신적으로 소경인 사람들에게는 진리의
빛을 숨겨야만 한다고 가르치는 것이오...(중략)....그러므로 당신이 제기한 여러질문에 주저하
지 않고 복음의 말씀 그 자체를 가지고 저 사람들의 위조를 반박하겠소. 예를들어,그 사람들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에 있었다는 구절과 그 이하에서 부터 3일뒤 그분이 일어날 것이다
는 구절에 관하여 비밀복음 구절을 그대로 옮기면 다음과 같소."
클레멘스는 마가복음이 두 개의 버전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일반적인 신자들을 위한
것, 또 하나는 좀더 높은 지식을 얻으려 하는 자를 위한 영지적인 복음이 있다고 한 것이다.
클레멘스는 편지속에서 마가가 마가복음을 먼저 기록하고, 나중에 비밀스러운 내용을 덧붙여
마가의 비밀복음을 만들었다고 하지만, 숨겨진 성서의 저자 윌리스 반스토운은 마가의 비밀복
음이 가장 초기 형태라고 설명했다. 그 이유는 오늘날의 마가복음에서 비밀복음의 단서가 등
장하기 때문이다. 만약 마가복음에 내용을 추가해서 비밀복음이 만들어 졌다면, 오늘날의 마
가복음속의 알몸에 아마포를 두른 남자의 이야기는 아예 들어가 있지도 않을것이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뒤에서 언급하겠다. 계속해서 클레멘스의 편지를 살펴보자, 여기서 부터 클레멘스
는 비밀복음을 인용하고 있다.
"그 사람들이 베다니에 들어갔다. 거기 오라버니를 여윈 한 여인이 있었다. 여인이 와서 예수
앞에 엎드려 '다윗의 아들이여, 제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라고 말했다. 그러자 제자들이
여인을 꾸짖었다. 화가난 예수는 여인과 함께 무덤이 있는 정원으로 들어갔다. 즉시 무덤에서
고함치는 소리가 들렸다. 다가간 예수가 무덤을 막은 돌을 굴려 치웠다. 그리고 즉시 젊은이가
있는 무덤안으로 들어가 팔을 뻗쳐 그 젊은이의 손을 잡아서 일으켰다. 그러자 예수를 올려다
보던 젊은이는 예수를 사랑했다. 그래서 예수를 따라 다니겠다고 간청했다.
무덤을 나온 둘은 젊은이의 집으로 들어갔다. 젊은이가 부자였기 때문이다. 6일이 지나자 예
수가 젊은이에게 할 일을 지시했고, 그날 밤 젊은이가 나체에 아마포를 두르고 왔다. 예수가
젊은이에게 하나님 왕국의 신비들을 가르쳐 주었기 때문에 그날밤 젊은이와 예수가 함께 머물
렀다. 그후 자리에서 일어나 예수는 요단강 저쪽으로 돌아갔다."
참으로 놀랍게도 마가의 비밀복음에 요한복음에만 등장하는 나사로의 부활 이야기가 언급 되
어있다. 더욱이 젊은이가 부활하기전 무덤속에서 고함이 들렸다는 이야기나, 젊은이가 밤중에
알몸에 아마포를 두르고 와서 예수에게 가르침을 받았다는 이야기는 동성연애를 연상시킬 정
도이다. 카르포크레테스파의 사람들은 문제의 구절을 악용하여 동성연애와 음욕적인 행위에
사용했던 것 같다. 일부 학자들은 젊은이가 부활하기전 무덤속에서 고함이 들렸다는 이야기를
지적하면서 이것은 중근동에서 행해졌던 영지주의자들의 입회식(무덤격리)에 가깝다고 지적
하기도 했다. 클레멘스의 편지를 계속해서 살펴보자.
"바로 그 뒤에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에게 왔다라는 구절과 그 부분이 모두 이어지오. 그러나
나체의 남자와 같이 있는 나체의 남자라던지, 당신이 질문한 구절들은 비밀복음에 없소. '예수
는 여리고에 들어갔다'라는 구절뒤에 비밀복음은 '오직 예수가 사랑한 젊은이의 누이와 그 어
머니와 살로메가 거기 있었으나 예수는 이 여인들을 만나주지 않았다'라고만 추가하오.
그러나 당신이 거론한 많은 내용은 위조로 보일뿐 아니라 위조가 분명하오. 이것이 진실한 설
명이며, 진실은 철학에 맞소."
카르포크레테스는 마가의 비밀복음에 나오는 문제의 구절에 노골적인 동성애 내용을 더 추가
해 넣었던 것 같다.
마가의 비밀복음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필자는 이렇게 해석해 본다. 마가의 비밀복음에 기록
되어 있는 나사로의 부활은 동성연애적인 오해를 불러 일으킬 만한 사건으로 오늘날의 마가복
음에서는 이 부분을 아예 삭제해 버렸고, 마가의 비밀복음을 참조했던 마태복음과 누가복음도
나사로의 부활사건을 취하지 않았다. 그러나 영지적인 성격의 요한복음은 나사로의 부활사건
중에 오해를 불러 일으킬 만한 부분(부활하기전 무덤에서 소리가 들림, 알몸에 아마포를 두르
고 예수에게 가르침을 받은일)을 수정해서 집어 넣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마가복음엔 비밀복음의 단서가 있는가? 놀랍게도 알몸에 아마포를 두르고
예수를 따라다녔던 추종자가 있었다.
"한 청년이 벗은 몸에 베 홑이불을 두르고 예수를 따라오다가 무리에게 잡히매, 베 홑이불을
버리고 벗은 몸으로 도망하니라." [마가복음 14장 51~52절]
예수가 붙잡히자, 알몸에 아마포만 두른 젊은이가 아마포를 벗어 던지고 나체로 도망갔다고
언급되어있는 것이다. 개역한글판에는 '베 홑이불'로 되어있지만, 공동번역판에는 "삼베만 몸
에 두른 젊은이가 삼베를 버리고 알몸으로 달아났다"고 기록되어 있다.
사실상 이이야기는 현존하는 마가복음만을 가지고 본다면 납득하기 어려운 이야기이다. 예수
의 추종자중에 알몸에 속에 훤히 보이는 아마포만 걸치고 다니던 사람이 있었다는것은 정말로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클레멘스가 남긴 비밀복음의 단서를 가지고 본다면 이 젊은
이가 나사로, 혹은 나사로와 같은 종교의식(?)을 행하려던 사람임을 추측해 볼수 있는 것이다.
아마도 마가의 비밀복음, 즉 마가복음의 초기판에서 오해를 불러일으킬 만한 부분을 삭제해서
오늘날의 마가복음이 형성된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위에선 언급한 것처럼 그 흔적은 아직
까지 남아 있다. 또한 오늘날의 마가복음은 여러번에 걸쳐 변형된 것이다. 윌리스 반스토운은
마가의 비밀복음의 설명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마르코의 복음이 예수의 말, 이야기, 비유, 계시록, 수난장면을 모은 기존의 책을 이용했을 뿐
만이 아니라, 마지막 장에 두가지 독자적이고 긴 끝맺음을 추가하는등, 그 복음이 완성되는 과
정에서 여러단계를 거쳤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윌리스 반스토운 / 숨겨진성서 3권 /
이동진 역 / 문학수첩 / P.205]
당시의 영지주의자들은 "진리란 문서로 전해진 것이 아니라 구두로 전해진 것"이라고 주장했
다. 그들은 바울의 말을 인용하여 "신앙이 성숙한 사람에게는 우리가 지혜로 말하나 그 지혜는
이 세상의 지혜가 아니다"라고 했다. 영지주의자들은 예수가 일반 군중들에게는 피상적이고
수준이 낮게 가르쳤으나, 특수한 제자들에 대해서는 비밀스러운 계시를 내렸으며, 이 비밀의
계시는 일반 육적인 신자들에게는 감춰 두지 않으면 안된다고 말했다.
"이르시되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너희에게는 주었으나 외인에게는 모든 것을 비유로 하나니."
[마가복음 4장 11절]
즉, 보통신자들에게는 비유로 말했지만, 특수한 자들에게는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전수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비밀이라는 것이 오해를 불러 일으킬 만한 것들이어서, 그 후에 등장한 복
음서들에선 문제의 내용을 삭제 돼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