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를 넘어 미래로
출 14:10-14
하나님께서 당신을 위하여 축복의 새역사를 시작하셨습니다.
사실 오늘 설교는 제가 2월4일 주일에 했던 설교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동영상의 사운드가 좋지 못하여 제대로 전달되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때의 아쉬움이 있어서, 오늘 설교를 다시 전하고자 합니다. 또한 오늘 설교를 들으실 때에 2024년 교회 주제와 실천 사항을 보시면 새로운 마음 그리고 새로운 인생이라는 것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교회가 30년을 지나고 새로운 10년을 시작하는 이 때에 새로운 담임목사와 더불어, 온 성도가 새로운 마음과 인생을 꿈꾸는 마음으로 최근의 설교들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보시면 아시는 말씀이라도 새롭게 들리 것이라고 믿고, 말씀을 전합니다.
나폴레옹은 세계를 정복을 하고 그 꿈을 꾸며 영토를 확장했고 사람들이 부러워할만한 모든 것을 소유했던 사람입니다. 지배와 소유의 정상에서 말할 수 없는 인생의 성취감도 누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죽을 때 그가 남긴 말은 “내가 진정 행복했던 때는 단 6일밖에 없었다.”입니다. 인생무상이란 말이 바로 그에게 적용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러나 헬렌 켈러는 듣지도 못하고 말하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지만 말년에 과거를 회상하면서 “내 인생은 기쁘고 행복한 나날이었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런 차이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인생의 행복은 소유와 지배가 아닌 마음에 있기 때문입니다. 헬렌 켈러는 마음에서 행복을 찾았고 나폴레옹은 환경에서 행복을 찾았기 때문에 마지막에 느끼는 차이는 대단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그 마음에 평안이 있고 행복을 얻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신앙의 능력은 과거를 극복하는 파워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악한 영들은 과거에 매여 살도록 합니다. 요즘은 트라우마라는 단어가 흔한 말이 되었습니다. 과거의 영향력 아래 사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과거의 지배를 받으면 현실을 부정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언제까지 과거에 매여 살아야 합니까? 신앙인은 과거를 극복하는 인생의 소유자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과거에 매인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미래를 향하여 담대히 나아가는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첫째, 두려움은 후회하게 만듭니다.
성경은“바로가 가까이 올 때에”라고 합니다. 바로가 뒤에서 따라옵니다. 이때 나타난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은 어떠했습니까?
10 바로가 가까이 올 때에 이스라엘 자손이 눈을 들어 본즉 애굽 사람들이 자기들 뒤에 이른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심히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부르짖고
11 그들이 또 모세에게 이르되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우리에게 이같이 하느냐
12 우리가 애굽에서 당신에게 이른 말이 이것이 아니냐 이르기를 우리를 내버려 두라 우리가 애굽 사람을 섬길 것이라 하지 아니하더냐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노라
이 때 이스라엘은 두려움에서 자포자기하고 과거로 돌아가려고 하였습니다. 한마디로 후회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일 불행한 인생이 후회하며 사는 인생입니다. 후회는 과거 속에 머물게 합니다. 그러나 이미 지난 과거는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런 현실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은 홍해를 건너야 했습니다. 바로가 가까이 오지 않았으면 홍해를 건넜겠습니까? 아마 홍해를 건널 생각은 하지 않고 그 앞에 진치고 세월아 네월아 하면서 쉬었겠지요.
인생은 참 역설적일 때가 많습니다. 어려움 때문에 발전하고 성장하는 일들이 많습니다. 영적인 도전 때문에. 신앙의 발전합니다. 그러므로 힘들어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때를 선용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이스라엘 백성, 홍해 앞에 주저 앉았을 그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을 찾습니다. 여호와께 부르짖고” 애원합니다. 그나마 뒤에서 적이 쫓아오니까 하나님께 부르짖었던 것입니다.
두려워하는 마음은 죄성의 때문입니다. 아담도 죄를 짓고 나서 하나님 보기를 두려워하여 숨어 있었습니다.“두려워말라”고 하신 말씀은 구약에 107회, 신약에 42회 언급되어 있습니다. 성경이 두려워하지 말라는 명령을 내린 것은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기를 잊거나 거부할 때에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니”(딤후1:7)
두려움은 죄의 결과입니다. 죄를 짓지 않았더라면 사람들은 두려워하지 않고 살 수 있을 것입니다. 두려움의 대상은 오직 하나님이어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이 나의 삶의 주인이시며, 생명의 주인이십니다.
비록 이스라엘 백성의 등 뒤에 당시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군대인 애굽의 군대가 있을지라도, 그들이 생명이, 안전이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믿었다면 그들은 두려워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요한 웨슬리는 “죄만을 부끄러워하고, 십자가를 자랑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 100명만 있으면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면 세상을 겁내지 않고 변화시킵니다. 이런 사람은 넉넉히 세상을 이깁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만을 두려워하십시오.
둘째, 원망은 과거로 돌아가게 합니다.
바로의 군사들이 쫓아오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를 원망하였습니다. 11절에는“애굽에서 매장지가 없으므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뇨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내어 이같이 우리에게 하느뇨”라고 합니다.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노라”고 하였습니다.
토마스 머턴은 ‘고독 속의 명상’에서 “감사와 배은망덕 사이의 중립적 입장은 없다. 감사하지 않는 이들은 곧 모든 것을 불평하기 시작한다”고 하였습니다.
원망과 불평이란 망국 백성의 근성입니다. 구원이란 가장 큰은총에 대한 감사보다 작은 부족 때문에 큰불평과 원망을 하게 됩니다. 이게 인간의 본성입니다. 당연하지 않습니다란 설교에서 말씀드렸듯이 당연하게 여김으로 감사가 작아지면 불평은 커지고, 감사가 커지면 불평은 작아집니다. 사람들은 산에 걸려 넘어지지 않습니다. 그들은 조약돌에 걸려 넘어집니다. 산같은 구원의 은총을 받고, 조약돌 같은 원망 때문에 넘어지고, 실패하고, 좌절하고, 탈락합니다. 세상에서 원망과 불평을 만들어내는 것들은 구원에 비해 볼 때 작은 조약돌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이런 작은 것들 때문에 넘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인은 영적인 안목으로 세상을 봐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눈에는 당장 눈앞에 보이는 바로의 군대가 보이겠죠. 그러나 영적으로 안목으로 보면 그들을 지배하시는 하나님이 보입니다. 그러니 위기가 왔을지라도 감사할 수 있는 존재가 됩니다.
이번에 출발하기 전에 아이들과 저녁 식사를 하면서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어린 나이였지만 아빠가 이민교회, 개척교회, 미자립교회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랐습니다. 고동학교 때에는 교인들 돌보느라, 아이들의 고민을 알지 못했습니다. 때로는 용돈을 못주니, 차비가 없어서 학교에서 걸어왔던 일도 많았다고 합니다. 돈많은 유학생들 사이에서 스타벅스라도 가면, 난감한 일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아이들이 같이 힘들게 목회를 했더라구요. 그러나 온가족이 모여 고백하기를 “우리 가족의 힘든 시절을 하나님께서 어여삐 보셨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새로운 길도 허락하시니 너무 감사하고 기쁘다.”라고 나누었습니다. 과거는 힘들었지만, 원망과 불평의 시간이 아니라, 지금의 나를 만드는 터전이었고, 지금이 얼마나 귀한지 더욱 깨닫게 하는 시간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의 가르침이 무엇입니까?
없지만 있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졌지만 승리했음을 깨닫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원망은 과거로 돌아가게 합니다. 감사를 사라지게 합니다. 그것이 죄의 결과요, 악한 영들의 간섭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셋째, 하나님의 사람은 현실을 넘어 미래를 봅니다.
13절에는 모세가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라고 합니다. 이 말은 10절의“심히 두려워하여”에 대한 해답입니다. 백성들이 두려워하고 있을 때에 모세는 두려워하지 말라고 합니다. 모세는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고 합니다. 이 말은 “애굽인이 뒤에 미친 것을 보고”에 대한 해답입니다. 모세는 다시“애굽 사람을 또 다시는 영원히 보지 못하리라”라고 합니다. 이 말은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낫겠다”고 한 말에 대한 해답입니다. 다시 과거로 돌아가려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는 설득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앞을 봅니다. 현실이 미래의 디딤돌임을 알고 있습니다.
사탄은 우리의 과거를 가지고 트집을 잡습니다. 그것이 그가 가진 전부이기 때문입니다. 사탄에게는 미래가 없습니다. 우리의 미래를 과거에 얽매이게 해서는 절대 안됩니다.
뒤를 돌아보고 과거에 집착하는 것은 현재와 미래에 걸림돌이 됩니다. 애굽을 잊어야 가나안에 들어갑니다. 세상을 잊어야 하늘나라에 갈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잊는데 얼마나 걸렸습니까? 무려 40년이 걸렸습니다. 하나님은 애굽을 완전히 잊고 노예 근성을 버리고 가나안에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이 기간이 40년이란 말입니다.
입니다.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빌3:13)
뒤에 것 잊어야 앞을 향해 갈 수 있습니다. 앞을 향해 가기 위한 필수적인 요건이 뒤를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오늘의 생각은 내일의 행동을 낳는다.
오늘의 고집은 내일의 증오를 낳는다.
오늘의 질투는 내일의 분노를 낳는다.
오늘의 분노는 내일의 학대를 낳는다.
오늘의 욕망은 내일의 간음을 낳는다.
오늘의 욕심은 내일의 횡령을 낳는다.
오늘의 죄책감은 내일의 두려움을 낳는다”
내일을 위하여 과거를 벗어버리십시오. 내일을 위하여 오늘을 충실하게 사십시오. 현재 눈 앞에 있는 작은 어려움 때문에 큰 구원을 망각하지 마십시오. 현재의 작은 어려움 때문에 과거로 돌아가려고 하지 마십시오. 현재의 고난은 장차 올 영광과는 비교도 안됩니다. 이미 시작된 구원의 역사는 마침내 하늘나라에 다다르게 합니다. 우여곡절이 있지만 가나안에 무사히 도달하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이미 나의 것이 아닌 과거에 집착하거나 돌아가려고 하는 생각을 버리고 우리 앞에 놓인 미래를 향하여 힘차게 달려가는 한 해의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