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여러분.
현충일 징검다리 연휴는 잘들 보내셨나요? 아니, 잘 보내고 계신가요?
전 오랜만에 집에서 교정 업무 안 보고 순수하게 연휴를 즐겨서 너무 꿈만 같네요.
물론 조만간 이 여유는 깡그리 박살이 나겠지만, 이 순간만은 전 자유!
이 시간을 알차게 써서 독서 노트 하나 완성했습니다.
대리 독서 신청을 받고 읽게 된 책입니다.
도서명: 호밀밭의 파수꾼
저자: J. D. 샐린저
* 이 도서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재활통신망 넓은마을 도서관에 데이지 형태로 제작되어 있습니다.
* 소개글 서평
일단 이 책은 자의로 읽었다기보다 신청을 받은 작품이다. 아주 오래 전에 한 번 독서했던 작품이기 때문이다. 정확하게는 완독 시도를 했다가 작파한 책이다.
굳이 읽을 까닭이 적은 이 작품을 든 이유는 ‘신청을 받아서’라고 해야겠다. 요컨대, 오랜만의 대리 독서 신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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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의 3일간의 방황 - 《호밀밭의 파수꾼》
소설은 회상이자 독백으로 시작한다. 당연히 주인공 홀든 콜필드의 회상이며 독백이다.
그는 학교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서 있다. 때는 겨울이다. 아래로 보이는 학교에서는 축구 경기가 한창이다. 거의 전교생이 축구 경기에 이목과 관심을 쏟고 있다. 자기네 학교 축구부와 원정을 온 학교 축구부의 경기이기 때문이다. 다들 승부의 성패가 어떻게 될지 집중하고 있다. 언덕 위의 소년, 홀든만 빼고서.
그는 ‘석별의 정’이라는 것을 느껴보려 한다. 학교를 완전히 떠나기 전에 말이다.
홀든은 이 학교에서도 퇴학을 당했다. 그가 학교를 옮긴 것은 이번이 네 번째였고, 학교를 옮긴 이유는 그 전 학교들에서도 퇴학을 당했기 때문이었다. 홀든은 4개 과목 낙제를 받았고, 학업에 진지하게 임하라는 여러 번의 권고가 있었음에도 따르지 않았다. 그래서 네 번째로 퇴학을 당했다.
그러나 소년은 펜싱부 주장이었다. 하지만 경기 당일 펜싱 장비를 지하철에 두고 내리는 바람에 경기는 고사하고 학교로 돌아와야만 했다. 펜싱부에서도 왕따를 당하는 건 덤이었다. 교우관계도 원만하지 못해 속마음을 털어놓을 친구나 하소연할 단작도 없다. 학교에서 쫓겨나게 된 상황에 그를 배웅하거나 작별을 아쉬워해줄 친구도 없다.
좌우간 네 번째로 퇴학당한 홀든 콜필드는 기숙사로 가서 짐을 챙긴다. 그러다 룸메이트가 자신이 관심을 둔 이성과 데이트하는 것을 알고 질투심에 사로잡혀 그를 자극한다. 몇 대 쥐어팰 심산인가 했는데, 오히려 홀든 자신이 피가 철철 흐르도록 두들겨 맞게 된다.
지금 감상문 쓰면서도 어이가 없는 내용이다. 이 대목에서 대체 이 찌질함은 뭔가 싶을 것이다.
어쨌든 그날 기숙사를 떠난 홀든은 집에 돌아갈 용기가 없어서 뉴욕으로 향한다. 딱 봐도 가출이다. 여기서 거리를 방황하며 담배 좀 피우는 등의 한국 청소년 스타일 방황을 생각하면 오산이다.
왜냐? 이 소설은 아메리카 스타일이기 때문이다. 미성년자 주제에 호텔 나이트클럽에서 칵테일을 시키거나, 옆자리 아가씨들과 춤을 추고 그녀들에게 술을 사기도 하며, 호텔 엘리베이터에서는 엘리베이터 보이와 이야기하다 하룻밤 잠자리를 할 여자를 사기도 하는 등 이탈의 스캐일이 아주 남다르다.
하지만 홀든의 캐릭터가 좀 궁상이라 반항이자 어설픈 어른 흉내는 흐지부지하게 끝나기 일쑤였다. 칵테일 주문은 거부당하고, 매춘을 하려고 했으나 결국 여자를 돌려보냈으며, 그 문제로 엘리베이터 보이에게 돈도 더 뺏기고 맞기까지 한다. 이럴 거면 대체 왜 학교에서 쫓겨나고, 집은 또 왜 나가서 삽질하고 있나, 이 소설 읽는 독자가 답답해 환장할 지경이다.
내가 그랬다. 과거에 내가 이 책 읽다가 덮어버린 이유였고, 지금도 끝까지 완독하는 데 이 주인공의 행태가 큰 방해 요인으로 작용했다. 그래도 겨우 완독한 거 보면, 내 인내심이 많이 향상된 것을 느낀다. 😣
홀든 콜필드가 뉴욕에서 발랑까진 짓만 한 건 아니다. 사랑스러운 여동생 피비에게 줄 음반을 사기도 하고, 여자 친구 샐리를 만나 공연도 보고 스케이트도 타러 간다. 그렇지만 귀결은 좋지 않게 끝나고, 폐렴에 걸려 죽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하게 된 홀든은 3일간의 이탈인지 궁상인지 방황인지를 끝내고 집으로 향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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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밀밭의 파수꾼》 - 호불호 극명한 소설, 어른의 경계 앞에서 순수함을 간직한
이 소설은 미국판 현대소설이다. 우리나라 현대소설이 좀 재미가 없고 호불호가 갈리며, 깊이는 있는데 딱히 술술 읽히지 않는 것처럼 J. D. 샐린저 《호밀밭의 파수꾼》도 유쾌, 상쾌, 사이다 같은 감성은 없다.
단지 책을 다 완독하고 덮었을 때 ‘아 기어이 다 읽었다!’는 성취와 안도감 같은 것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 소설은 성장 과도기에 놓인 소년 홀든 콜필드의 시선을 통해 지식인 계층의 위선과 현대 사회의 추악한 속물 근성을 적시한다. 심지어 소년은 변호사인 자기 아버지 또한 신용하지 않는다. 교사와의 유대를 가져보려 하지만 그것 역시 소년의 행실로 인해 무산된다. 가출을 감행해 만난 뉴욕의 기성 세대 역시 그에게 어떤 믿음이나 존경할 만한 대상, 멘토로 삼을 만한 인물이 되어주지 못했다.
그렇기에 소년은 방황한다.
그렇지만 나는 생각한다. 홀든 콜필드 또한 기성 세대에게 믿음을 주지 못했다고 말이다.
요컨대, 어른들과 청소년은 각자가 다른 잣대로 서로를 판단했고, 그것만으로 쉽게 단정을 지어버렸다. 교사가 그를 성적만으로 판단한 오류를 저질렀다면, 홀든 역시 교사가 믿을 만한 준거를 제시하지 못한 셈이다.
소년은 기성 세대가 마냥 부도덕하다고 비난한다. 그것이 사실이긴 하지만 그것을 반면 교사 삼을 수도 있었을 텐데 비난만 하고 스스로를 그 부도덕 속에 내던지기도 한다.
기성 세대들은 청소년에게 더 나은 세상을 보여줄 의무가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다.
말하자면, 홀든과 어른들은, 둘 모두 뭔가 바꿔볼 시도를 해보지도 않고 그러려니 할 뿐이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느끼기에는 그랬다.
그러나 홀든은 끝내 방황의 여정을 끝내고 여동생 피비에게서 자신의 이상을 찾는다. 오빠가 퇴학당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걱정하는 여동생 피비는 그에게 묻는다. 진짜로 좋아하는 것이 있는지, 앞으로 뭐가 되고 싶은지.
홀든은 그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나는 늘 넓은 호밀밭에서 꼬마들이 재미있게 놀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곤 했어. 어린애들만 수천 명이 있을 뿐 주위에 어른이라고는 나밖에 없는 거야. 그리고 난 아득한 절벽 옆에 서 있어. 내가 할 일은 아이들이 절벽으로 떨어질 것 같으면, 재빨리 붙잡아주는 거야. 애들이란 앞뒤 생각 없이 마구 달리는 법이니까 말이야. 그럴 때 어딘가에서 내가 나타나서는 꼬마가 떨어지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거지. 온종일 그 일만 하는 거야. 말하자면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다고나 할까.”
이때 ‘호밀밭’은 순수함의 이상향 같은 게 아닐까 싶다. ‘절벽’은 이 세상이 동화 속이 아니라는 것, 소위 사회의 현실을 깨닫고 좌절하는, 순수성을 잃게 되는 것이고 말이다.
‘파수꾼’은 그 좌절의 세계로 떨어지려는 아이들을 지키는 존재로서 순수함을 지키고 싶다는 의미가 아닐까.
그러나 홀든이 그런 파수꾼이 되기 위해서는 변화가 필요하다. 최소한 퇴학을 밥먹듯 하고, 반항한답시고 찌질하게 구는 행동 갖고는 파수꾼은커녕 파수꾼의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인물밖에는 될 수 없다.
소설 끝에서 함께 가출하고 싶다며 토라진 피비를 달래기 위해 홀든은 여동생과 동물원에 간다. 그리고 피비가 회전목마를 타고 빙글빙글 돌아가고 있는 것을 지켜본다. 갑작스레 내린 비로 흠뻑 젖었음에도, 여동생 피비의 환한 표정을 보며 행복감을 느끼게 된다. 🎠
비를 맞아야 초목은 자란다. 그런 의미에서 마지막 장면은 홀든의 성숙을 암시하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최소한 성장을 위한 시작점에 서 있다는 암시는 아닐까?
《호밀밭의 파수꾼》은 주인공 홀든의 3일간의 시점과 감정, 생각의 흐름을 따라 서술된다. 누군가는 그 부분이 지루하지 않았다고, 완전 공감 갔다고 평하겠으나, 일단 나는 전반적으로 캐릭터 성향이 맞지 않은 탓인지 이 소설이 매우 지루했다. 적어도 내가 반항했으면, 홀든처럼은 안 했다!
때문에 고전이고 뭐고, 영화나 노래 등 많은 작품에 영향을 줬건 어쨌건, 독자들에게 이 책 한번 읽어보시라는 권유는 차마 못하겠다. 나부터도 완독 힘들었는데 뭐.
그저 꼭 읽어야겠다면, 내 독서 노트 겸 서평이 도움이 됐으면 싶다. 불특정 다수의 여러분이 느낄 노고를 덜 수 있기를. 💖
이런 면에서 이 글도 나름대로 파수꾼 아닐까?
첫댓글 파수꾼?
지킴 을 당했던 자는 남도 지켜 줄수있는 것 같습니다.
세상에 버릴 사람은 없다는 말이 있듯이 자신의 위치가 곧 인격체임을 자각하는 삶이 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