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배로 거둔 열매
/ 제15회 동창회장 고병균
“100만 원입니다.”
2025년 5월 동창 모임에서 알린 모교 역사관 조성기금 모금 목표액이다.
“우리가 50만 원, 재경회원이 50만 원, 이렇게 부담하면 되겠습니다.”
정○○ 친구의 발언이다. 그 생각에 동의했다. 즉시 실행에 옮겼다.
1월 동창 모임에 협찬한 친구가 있었다. 나주에 거주하는 최○○ 친구가 협찬한 10만 원을 역사관 기부금으로 돌렸다. 또 4월에 시행한 야유회에 협찬한 친구도 있었다. 장○○ 친구가 협찬한 20만 원 중 10만 원을, 김○○ 친구가 협찬한 50만 원 중 10만 원을 기부금으로 돌렸다. 순식간에 30만 원이 확보되었다.
그러던 중 생각이 달라졌다. 올해 내 나이 여든이다. 내년이면 졸업 60주년이다. 그동안 모교를 위해 봉사한 사례가 있었는가? 단 한 번도 없다. 나중에라도 이런 기회가 있을까? 그럴 가능성은 없다. 이번이 내 인생에서 마지막 기회다.
420여 동창회원 중에는 나처럼 생각하는 친구가 있을 것이다. 이런 뜻을 친구들에게 알릴 필요가 있었다. 그러려면 카톡만으로는 어렵다. 편지를 띄워야 한다.
우선 친구들의 주소를 정비했다. 011, 016, 017, 018, 019 등으로 시작되는 번호는 연락이 안 된다. 따라서 010으로 시작되는 번호를 기준으로 정비했다. 작고한 친구가 100명 가까이 확인되었고, 외국에서 거주하는 친구도 몇 있었다. 주소가 확인된 친구에게 우편물을 발송했다. 모교 역사관 조성 사업의 목적과 규모를 알리고, 모금 방법도 안내했다.
얼마 후 화순에서 거주하는 정○○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기부금 '100만 원을 입금했다'는 것이다. 그 순간 꾸물거린 내가 부끄러웠다. 즉시 100만 원을 송금했다.
미국에 거주하는 황○○ 친구에게서 카톡으로 연락이 왔다. '은행 정보를 알려달라'는 것이다. 해당 은행과 총동문회에서 정보를 받아 알렸다. 며칠 후 미화 '1,000달러를 부쳤다'고 했다. 환전되어 130여 만이 입금되었다. 미국에 거주하는 친구와 이처럼 쉽게 연락할 수 있다니 세상 참 좋다.
이후 친구들의 기부가 이어졌는데, 9월 30일로 마감했는데 그 실적이 놀랍다.
기부금 100만 원 이상은 총동문회로 직접 입금하도록 안내했는데, 그 실적이 15건에 8천 830여만 원이나 되었고, 기부금 100만 원 미만은 우리 동창회로 입금하도록 안내했는데, 총동문회로 일곱 차례 전달한 실적이 52건에 660만 원이나 되었다. 티끌 모아 태산이다. 이리하여 총 모금 실적은 67건에 9천 490여만 원이나 된다.
솔직히 나는 참 못났다. 학창시절에도 그랬고, 초등학교에서 근무할 때도 그랬다. 그래도 초등학교 교사는 나에게 천직이었다. 교육의 본질을 추구하는 일에만 진심이었다.
교사로 근무할 때는 도벽을 일삼는 등 말썽꾸러기 학생이 있는 학급, 까다롭게 구는 학부모가 있는 학급이 나에게 맡겨졌고, 육성회비, 야영수련활동 등 까다롭고 다루기 어려운 업무가 내게 주어졌다. 그래도 학생 교육에 전념했었다.
교감으로 근무한 학교는 두 군데였는데, 선생님들이 꺼리고 싫어하는 학교였다. 순천의 ○○초등학교는 교감이 지원하지 않는 학교였고, 장성의 ○○초등학교는 5년 동안이나 교감이 없는 학교로 학생 수 51명에 불과한 소규모 학교였다. 나는 선생님들의 교육활동을 돕는 일에 전념했었다. 그리고 당시 도입된 교육 정보 시스템(NIS)을 가장 먼저 정착시키기도 했다. 다른 학교에서 근무하는 선생님을 만나고 온 교사들이 그렇게 증언했다.
교장으로 근무한 장흥의 ○○초등학교도 그런 학교였다. 교사는 총 7명이었는데 승진을 바라보는 교사는 없었다. 그 구성원 중 정년을 앞둔 교사가 3명이나 되었고, 40대 50대 교사가 2명인데, 이 중 1명은 2급 정교사도 아닌 준교사였으며, 나머지 2명은 신규 교사로 60을 바라보는 퇴직교사였다. 새 학년은 시작되었는데, 학교 교육계획을 수립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는 수 없이 내가 나섰다. 20여 일 동안 늦은 밤까지 작업에 몰두했었다.
이런 상황에서 내건 교육구호는 ‘아이들이 행복한 세상, ○○초등학교’ 였다. 아이들은 물론 교직원과 학부모까지 그 구성원 모두가 행복한 학교를 만들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그것을 푯대 삼아 전심전력했다. 그 효과는 놀라웠다. 학생들의 폭력 사건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교장 선생님께서 부임하신 후로 학교의 민원사항이 사라졌습니다.’라고 교육과정이 증언했었다. 근무한 지 1년 5개월 되었을 때 ‘학교 급식비 100% 완납’이라는 전대미문의 성과로 나타났다. 또 정년으로 퇴직했을 때는 ‘○○초등학교 교사 전면 개축 및 재배치 사업비’ 32억여 원의 예산을 확보했었다.
돌이켜보면 초등학교에서 교사로서 교감으로서 또 교장으로서 봉직한 37년 동안 스스로 수행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정성을 다했었다. 그 일에 진심이었다.
동창회에서 봉사하는 일에도 나는 진심이었다. 그것 때문인지 모르지만, 모교 역사관 기금 모금을 알렸을 때, 협조하는 친구가 하나둘 나타났다. 자발적으로 협조했다. 몇몇 친구는 투병 중에 협조했었고, 또 어떤 친구는 협조하면서 굳이 ‘알리지 말라.’고 당부하기도 했었다. 그런 친구들의 선행이 가슴 벅차게 다가왔다. 그 겸손함이 거룩하고 숭고하게 느껴졌다.
모교 역사관 기금 모금 실적을 친구들에게 보고한다. 10월 19일 총동문회가 주최한 한마당 행사 중에 보고한다. 뜻깊은 자리가 되기를 소망하며 협조한 친구들에게 감사한다. 애초 목표 금액의 100배로 결산하게 된 것 깊이깊이 감사한다. 5천만 원을 기부한 송○○, 1천5백만 원을 기부한 조○○, 1천만 원을 기부한 정○○ 등 세 친구를 포함하여 알게 모르게 협조한 친구들에게 머리 숙여 감사한다.
이들 친구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오로지 기도하는 일뿐이다. 80을 바라보는 지금까지 복된 삶을 살아온 것처럼 앞으로의 삶도 복되기 바라며 기도한다. 모금 실적표에 실린 60여 친구, 이름을 한 분 한 분 읽어가며 기도한다. 그들의 영혼이 잘 되고, 범사가 잘 되고, 강건하기를 바라며 기도한다. 은혜의 하나님, 능력의 하나님께 간절히 간절히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