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디드 힐러
-상처받은 자에서 치유자로
‘모든 치유자는 상처 입은 사람이다.’라고 칼 융은 말했다. 상처가 있는 사람이 누군가에게 진정한 치유자가 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자신이 아파 본 만큼 다른 사람의 아픔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진정한 힐러는 내 상처를 극복함으로써 다른 이들을 치유하는 사람이다.
세계적인 명작의 반열에 오른 장 지오노의 소설 <나무를 심은 사람>은 혼자서 수십만 그루의 나무를 심어 폐허를 낙원의 숲으로 가꾼 감동적인 환경 서적이다. 그러나 내게는 그것이 단순한 환경 작품이 아니라 한 인간의 자기 치유과정으로 읽혔다.
소설 속 주인공 엘제아르 부피에는 아무도 모르게 묵묵히 세상을 위한 일을 해 나간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그 기적의 숲이 한 개인의 힘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한 채 자연적으로 생긴 천연의 삼림이라 여긴다.
늙고 외로운 양치기로 묘사되는 부피에는 사실 노인이 아니라 쉰다섯 살의 남자이다.
그는 그 지역으로 오기 전에 다른 곳에서 가족들과 농장을 일구며 살다가 큰 불행을 겪은 사람이다. 갑자기 하나뿐인 아들을 잃었고, 아내마저 얼마 안 가 세상을 떠났다. 가족 모두와 사별하고 홀로 남게 된 그는 아들과 아내에 대한 기억으로 사무친 그 마을을 떠나기로 마음먹는다.
그리고 ‘마실 물 한 모금도 발견할 수 없는’ 낯선 땅으로 개 한 마리만 데리고 와 언덕빼기의 버려진 오두막에서 살기 시작한다. 그의 슬픔이 얼마나 깊었는지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슬픔과 고독은 인간을 늙게 만든다. 그는 심지어 말하는 습관을 잃어버릴 정도로 외로운 생활을 했다.
그렇게 3년을 외톨이로 살던 남자는 어느 날 오두막 문을 열고 세상 밖으로 나온다. 그가 시작한 일은 야생 라벤더 외에는 아무것도 자라지 않는 척박한 산비탈에 씨앗을 심는 일이다. 밤마다 그는 도토리 열매들을 꺼내 탁자 위에 펼쳐 놓고 좋은 놈들만 고른다. 금이 가지 않고 성한 것들만…….
아픔을 딛고 일어서기 위해서는 자신의 감정 중에서 건강하고 긍정적인 것만 선택해야 하는 것과 같다. 부서지고 금 간 감정들은 조심스럽게 골라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들이 인생의 자양분을 모두 빼앗아 가기 때문이다.
“양치기는 작은 자루를 가지고 와서 그 안에 든 도토리 한 무더기를 탁자 위에 쏟았다. 그는 도토리 하나하나를 주의깊게 살피면서 좋은 것과 나쁜 것을 따로 골랐다. 그리고 굵고 실한 도토리들을 한곳에 모으더니 다시 열 개씩 세어서 한 무더기로 나눴다. 그러면서 도토리들을 더 자세히 살펴보고, 그중에서 작거나 금이 간 것들을 다시 골라냈다. 그렇게 해서 완벽한 상태의 도토리가 열 무더기 모아졌을 때에야 비로소 그는 일손을 멈추고 잠자리에 들었다.”
그 작업이 그에게는 치유의 과정이었다. 그는 그 작업을 꾸준히 실천했다.
37년 동안 매일 100개의 실한 도토리를 산비탈에 심어 마침내 수십만 그루의 나무들을 싹틔웠다. 그렇게 해서 황폐했던 땅이 삼림으로 변하고, 공기가 달라지고, 단 세 명밖에 살지 않던 마을은 만 명의 주민이 사는 곳으로 변화했다. 한 사람의 행동이 폐허를 아름다운 터전으로 바꿔 놓은 것이다.
나무를 심는 작업은 그에게 고산지대의 신선한 공기를 선물했으며, 몸과 마음에 활력을 주었다. 죽은 땅에 지팡이로 구멍을 뚫고 씨앗을 심으면서 본인의 슬픔을 파묻고 삶의 희망을 심었다. 이 일을 통해 자신의 아픔을 치료하고 나아가 대지의 상처인 황무지까지 치료할 수 있었다. 오랜 시간 대 자연 속에서 하늘과 바람과 나무와 이야기하는 동안 인생이 안겨 준 상처가 아물고 마음의 온전함을 회복했다. 커 나가는 나무들을 보면서 기쁨이 고통의 자리를 채워 나갔다.
삶은 이따금 우리 자신을 폐허로 만든다. 예기치 않은 불행이 영혼을 유린한다. 상처투성이인 마음밭에는 가시돋힌 덤불만 무성하다. 살아 있는 한 그런 일들이 반복해서 일어난다. 중요한 것은 자기 치유를 위해 어떤 일을 하기로 마음먹는가이다.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자신뿐 아니라 세상을 치료하는 일로 이어지는가 하는 것이다. 이것이 인간이 지닌 자기 회복력이다.
인간은 언제든 슬픔을 딛고 온전한 존재로 돌아갈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성장하는 영혼이 세상을 성장시킨다.
내면에서 실한 도토리 열매를 꺼내 세상에 심는 것은 아름다운 숲을 예고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 자신의 마음과 세상은 폐허인 채로 남아 있게 된다.
삶의 지혜는 불행을 멈추게 하는 것이 아니라 불행 속에서도 건강한 씨앗을 심는 데 있다. 그것은 그만큼 생명의 원천을 신뢰하는 일이다.
역경은 씨앗의 껍질을 벗겨 내는 바람 같아서, 우리 존재의 중심부만 남긴다. 그러면 그 중심부가 놀라운 힘을 발휘한다.
자연주의자 소로는 말했다.
“나는 씨앗에 대해 깊은 믿음을 가지고 있다. 당신에게 씨앗이 있다고 한다면 나는 놀라운 기적을 기대할 것이다.”
알프스 산택의 고산지대를 여행하다가 주인공 부피에를 만난 소설 속 화자는 이렇게 그를 묘사한다.
“이 사람과 함께하는 시간에는 평화로움이 있었다. 그 무엇도 그의 마음을 흔들어 놓을 수 없다는 인상을 나는 받았다.”
우리가 타인과 세상을 위해 하는 일들은 자신의 상처와 문제까지 치유해 준다.
상처로 고통받은 적 있는 사람이야말로 누군가에게 진정한 치유자가 될 수 있다. 그것이 ‘운디드 힐러 wounded healer’, 즉 ‘상처입은 치유자’의 의미이다. 운디드 힐러는 내 상처를 극복함으로써 다른 사람들을 돕고 치유하는 사람이다.
저자 장 지오노는 수십 년에 걸친 주인공의 삶을 묘사한 후에 이렇게 결론짓는다.
“인간이란 파괴가 아닌 다른 분야에서는 신처럼 유능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처 입은 사람들이 서로에게 늑대가 되는 것만은 아니다. 우리 대부분은 상처의 치유가 자신 안에 머물러 있는 데 반해, 부피에는 세상을 바꾸었다.
자신의 고독과 불행을 치유하기 위해 시작한 나무 심기는 ‘서로 미워하면서 죽음을 기다리는 것밖에는 희망이 없던’낯선 사람들에게 샘물이 흐르고 새들이 노래하는 생명 넘치는 숲은 선사했다.
가장 좋은 치유자는 자신이 깊이 상처 입은 적 있는 치유자이다. 단순하지만 강력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나무를 심은 사람>은 그런 운디드 힐러의 이야기다. 132쪽
라다크 해당화
첫댓글 나무아미타불 나무가 인간에게 주는 혜택은 130가지가 된다고 합니다. 돈이라는 논리로 제주에서도 숲이 많이 파괴되고 있습니다 안타갑지요
네~ 좋은 글 감사히 읽습니다...감사합니다. 아미타불_()_
감사합니다 ...
최근에 저도 염불을 하면서 느낀 것은 저와 이 일진법계, 삼천대천세계가 둘이 아닌 하나라는 가르침을 받았으니 제 자신을 치유하고 정화하는 것이 곧 세상을 치유하고 정화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를 위해서 염불하는 것도 세상을 위하는 것이고 세상을 위해서 염불하는 것도 저를 위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일천 강에 드리운 달을 생각해봅니다.
나무아미타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