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을 살피며 속을 채우는 신앙,
한국교회는 세계 교회사에 기록될 놀라운 부흥과 성장을 이룬 경험이 있다. 세계에서 제일 큰 교회와 동네마다 십자가가 가득한 교회들, 교세의 확장에 따른 성도의 수와 물질 등 모든 게 차고 넘치며 많은 부러움을 샀다. 하지만 지금 한국교회는 부흥과 성장도, 사람과 예산도 큰 하향곡선을 그리며 추락하고 있다. 예견된 일이라고 진작에 말한 사람도 있고, 모두 거품이며 유행에 불과하다고 비웃는 이도 있다.
사회적 신뢰도는 바닥을 치고 얼마나 더 떨어지고 작아질까가 세상의 관심이다. 물론 기독교만의 문제는 아니다. 세상이야 어떻게 평가하든 지금 교회는 이 상황에 대해 어떤 마음과 생각이냐가 중요하다. 아이가 자랄 때에 키와 몸이 자랄 때가 있는가 하면 내면과 정신이 자랄 때가 있다. 어쩌면 지금의 위기가 기회일 수 있다.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가 신앙을 간절히 필요로 하고 역할을 요청하고 있음을 인식하여 그동안 축적된 힘과 은혜를 제대로 사용할 수만 있다면 얼마든 그렇다. 교회나 종교가 위기라는 말은 사회 전체가 그런 상황이란 의미이기도 하다.
지금은 겉보다는 속을 챙기며, 외연보다는 내연을 살피며 힘을 모아야 할 때다. 광주의 어머니라 불렸던 서서평(Elisabeth johanna shepping. 1880-1934) 선교사의 침대 머리맡에서 발견된 문구, “성공이 아니라 섬김이다.”를 깊이 묵상하며 그 가치를 살려가야 한다. 조선 사람보다도 더 조선 사람같이 살았으며 자기의 전부를 내주며 척박한 땅의 빛이었고, 이름조차 없는 외로운 여인과 아이들의 어머니와 벗으로 새로운 삶을 열어준 그는 영락없는 예수였다. 처녀의 몸으로 한 인생을 밀알로 내놓은 그녀를 통해 다시 태어난 값진 인생을 살게 된 사람이 정말 많았다.
물질과 문명이 최고의 힘을 자랑하는 시대에 교회는 사람이 우선이며 최고임을 말해주어야 한다. 사람이기에 그냥 소중하고 대접을 받을 수 있음을 확인해 주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교회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든든히 서야 한다. 복음의 능력을 믿고 공동체로서의 교회를 세상에 빼앗기지 않아야 한다. 예수의 가르침에서 참 배움을 맛보아야 한다.
헛헛하고 공허한 현대인들, 군중 속의 고독이란 말처럼 누구 하나 외롭지 않은 사람이 없고, 아프지 않은 사람이 없다. 불안하고 두려움에 떠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능력과 소유로 차별을 받는 사람들을 넉넉한 품으로 환대하며 동행을 요청할 수 있어야 한다. 세상적 가치와 기준이 교회 안에서는 아무런 힘을 못 쓰고 별것이 아님을 알게 해야 한다.
예수는 사람들을 모으는 데는 별 관심이 없으셨다. 다만 누가 진심으로 믿음을 품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생명과 평화의 가치와 뜻을 알고 따르려고 하는가에 마음을 두셨다. 영혼과 생명에 대한 애정을 안고 그에 반하는 것과는 치열하게 싸우며 세상 위의 기쁨과 행복을 누리게 하셨다.
“큰 강물이 말라가면 작은 물길부터 살펴주고, 꽃과 열매를 보려거든 먼저 흙과 뿌리를 보살피라” 했다. 작은 것의 소중함은 물론 모든 게 기본에서 비롯됨을 말해준다. 초대교회는 그야말로 아무것도 없는 예수의 공동체였다. 어떤 제도나 물적 지원은커녕, 법적인 보호조차 받을 수 없는 위태롭고 불안한 모임이었다. 하지만 누가 그들을 막을 수 있었으며, 그들이 전하고 나타낸 것은 무엇이었나, 세상이 유혹하며 쫓게 만드는 그런 게 아니었다. 은혜는 가장 기본적이지만 정말 소중한 것이다. 그걸 초대교회는 가슴에 안고 나눈 것이다. 주님의 교회는 시대의 제약이 없다, 얼마든지 그럴 수 있음을 알고 한 사람 그리스도인과 하나의 교회가 그리된다면 세상은 그렇게 희망에 있다.
이제는 교회의 부흥과 성장보다는 교회의 본질과 존재에 천착하여야 한다. 교회의 존재감을 새롭게 가질 수 있기를 희망해야 한다. 교회를 교회답게, 신앙을 신앙답게 만드는 일에 매진해야 한다. 그동안 알게 모르게 배어온 나쁜 습성과 전통을 바꿔내야 한다. 개혁교회의 정신을 살려 배우고 비우며 낮아져 기본을 세울 때 진정한 신앙의 신비를 누리며 나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