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김만영 제38대 회장]

설.

기다림은 닮은꼴이 만들어 준 선물이다.

이제 곧 완전한 밤이 된다. 노을은 이미 어두워져 짙은 감색이었고 갈매기가 몰고 가는 구름 위에만 붉은 태양의 흔적이 어스름하게 남아있다. 

한 무리의 참새가 정겨운 세레나데를 연주하고 있다.

가슴사리 물때의 흔들리는 물결은 고요했다. 통통배 뱃머리는 요동도 없이 잔잔했다.

어느 집에서나 저녁 준비하는 냄새가 난다. 또 어느 집에선 윷놀이소리, 아이들의 시끌벅적하게 울지는 소리가 그윽하게 울려 퍼졌다.

아버지는 떡을 써신다.

흰 가래떡을 몇 시간째 미동도 없이 썰고 계신다. 이틀 동안 먹을 떡이다. 매년 반복되는 연례행사처럼 내가 봐온 세월만 오십년이다. 아버지의 떡 썰기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매년 계속된다. 일 년에 두 번 뿐이 볼 수 없는 손놀림이지만 흰 가래 떡 썰기를 하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노라면 숨 넘어 가는 줄도 모르고 지켜보게 된다. 손주들은 그런 할아버지를 ‘떡 썰기 달인’이라고 부른다. 할아버지의 흰떡 썰기는 직접 갈아서 만든 집게 손가락만한 칼을 가지고, 일초이피의 순간 이동식(대패삼겹살 자르는) 기계처럼 칼질을 하신다. 예전에는 일초오피까지도 가능하셨지만, 최근 들어서 많이 느려진 것이다.

손주들은 전을 붙인다.

손주들도 할아버지 옆에서 전 부치기만 십여 년을 해온 터라 실력이 모자라지 않다. 손발이 척척 맞는다. 안 맞을 내야 안 맞을 수가 없다. 꺼내는 전주리 크기만 봐도 몇 개의 전을 부쳐야 하는지 알 수가 있다.

할아버지의 칼잡이가 부드러운 듯이 애민한 손놀림에 있다면 손주들의 주걱 뒤집기는 힘을 앞세운 절제된 손목 움직임에 있다. 잘 달궈진 사각프라이팬에 재료를 목욕을 시킨다. 그들이 ‘그를 부치지 전에는 하나의 재료에 지나지 않았다. 그들이 그를 부칠 때 비로써 전이 되었다’ 하나의 주걱 판에 다섯 개의 전을 올려 뒤집는다. 나올 순서대로 전을 주걱 위에 오층으로 쌓는다. 전주리에 던진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착 착 착 소리를 내며 자기 자리를 찾아서 눕는다. 전주리에는 여덟 가지의 모양과 생김이 다른 전들이 모락모락 김을 올리고 누워있다. 할아버지와 손주들은 닮아 가고 있었다.

나는 십여 년 전에 아들들에게 전 부치기를 물려주었다. 아버지의 떡 썰기를 물려받기 위해서다. 그런데 아버지는 “아직은 때가 아니다.” 이 한마디로 정리하셨다. 끝난 샘이다. 나는 더 이상 내 자리를 주장할 수가 없었다. 그 후 나는 명절 때면 뒷방 신세가 되었다.

여기서, 혹 자는 아들들한테 물려주었던 전 부치기를 하면 되지 않느냐? 하는 분들이 계실 수도 있겠지만, ‘아니 될 말이다.’ 이 세계도 엄연한 좌우 위아래 법칙이 존재하는 법, 오년간의 수련을 통해서 물려주었던 전 부치기는 한 낯 단순한 전 부치기가 아니다. ‘알은 새에게 하나의 세계이다.’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나는 그들에게 새로운 세계를 보여준 것이다.

나는 한가롭게 동네 한 바퀴를 돌고 있다.

앞에 가던 아이가 걸음을 멈추었다. 그곳에 맑은 물웅덩이가 있었다. 물웅덩이 안에도 작은 밤하늘이 있었다. 그 물은 순수했다. 물에 별이 반짝이고 있었다. 물웅덩이 안에 아이와 내 얼굴도 있었다. 왠지 내 마음이 떨리고 있었다. 밤하늘과 물웅덩이는 닮아 있었다.

-2020년 경자년 설 전날에~  김만영 올림.

[김미숙/38대/안산.시흥회장]

글 잘 봤습니다.

[김만영 제38대 회장]

감사합니다.회장님^^

[이은선18(학습국장)]

설날 풍경을 잘 표현한것 같아요
잘 봤습니다 ~

[김만영 제38대 회장]

ㅎ웃자고 쓴 글인데, 많이 부족하네요ㅎ

[김영숙(18학번 수원)]

화목한 가족들의 모습을 잘 그려주셨네요~ 즐감했습니다 ^^

[김만영 제38대 회장]

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ㅋ

[서영숙4(수원)수석부회장]

오우!! 수필로 등단하셔도 되겠는걸요...
좋은 글 잘 봤습니다...^^

[김만영 제38대 회장]

절레절레~~ ㅎ